외국인 사위를 맞이하며
박윤자
첫째 사위를 처음 보았을 때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쌍꺼풀진 눈과 짙은 눈썹에 새카만 속눈썹이 꼭 외국인을 보는 것 같았다. 결혼식장에서 서 있던 큰 사위의 뒤통수는 영락없이 외국 영화배우의 모습 이었다. 첫째 사위가 외국인같이 생긴 건 무난했지만 나중에 실제로 외국 사람이 둘째 사위가 될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다.
20대 후반 늦게까지 어학공부하며 봉사활동에 전념하던 둘째딸이 하루는 딸이 사윗감이라고 데려온 청년이 까만 가죽잠바를 입었고 큰 키에 조용히 웃으며 내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둘에게 말했다. “오늘은 잘못 왔네, 돌아가게.” 둘은 집안에는 들어서지도 못한 채 정원에서 서성이다 갔는데, 그 이유는 외국 사위를 보는 것을 반대하는 남편이 사윗감이 온다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돌아가는 아이들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문득 남편이 나와 결혼하기 위해 애썼던 45년 전을 회고해 본다. 어머니의 완고한 고집에 단지 담대한 패기 하나로 승리를 거둔 남편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다. 이제 그때 그 상황을 재현하고 있는 둘째딸과 사위 앞에서 과연 나도 어머니의 뒤를 따를 것인가.
나는 남편과 함께 이것만은 안 된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아이들을 설득하려고 식음을 전폐하며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드는 건 아마도 늦게 낳은 딸에게 기대를 지나치게 하다가 기대에 못 미쳐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듭 찾아오는 아이들을 설득하여 돌려보낼 만한 뾰족한 흠은 없었다. 오히려 반쪽을 찾아 바다 건너 외국에서 찾아온 사람을 다른 문화권이라고 홀대한건 아닐까 자문해 보며 애써 생각을 우회하려고 노력한 기억이 떠오른다.
교제 몇 달 만에 우리의 반대를 통과하고 둘은 결혼을 해서 대전에 보금자리를 준비해 놓고 사위 나라 고향으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장인 장모를 대동하고 함께 가잔다. 이미 비행기 표까지 사놓았다니 못이기는 척 따라가서 일주일 동안 구경 한번 잘했다. 역시 딸을 낳기를 잘했다는 안도감까지 들면서 사위가 직접 그 나라 구석구석을 안내하니 아주 편하게 기쁜 마음으로 새로운 국가의 관광을 즐겼다. 나라의 경계가 무엇이 필요할까 하는 계기가 된 것은 음식이다. 같은 식재료의 향 만 좀 다를 뿐 맛있게 먹고 살아가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 여행을 생각하면 외국 사돈 내외의 다정한 모습이, 특히 이른 아침에 부엌에서 요리하는 사돈 내외 뒷모습이 잊혀 지지 않는다. 새로운 문화권를 경험하고 온 후로 남편도 설거지뿐 아니라 잔 집안일도 거들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여자의 일을 거드는 것이 남자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외국둘째 사위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지난날 친정어머니의 불편한 마음을 이해로 받아주신 고마움을 헤아려 드리지 못한 나의 결혼을 되돌아 볼 때, 과연 나는 현재 둘째 딸처럼 엄마에게 산뜻한 위로를 해드린 자국이 있었나를 다시 한 번 기억해 보고 송구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저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만으로 효도를 다 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세월을 보내다가, 이제 늦게나마 둘째 사위를 통해 새삼 되돌아보고 더욱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