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84:1-6 사랑스러운 주의 장막 2020. 10. 25.
“교회는 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천국과 가장 먼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한 분이 있습니다. 일본인으로 불신자들에게까지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우찌무라 간조의 말입니다. 참 역설적인 말이죠. 가장 거룩함과 속된 곳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 교회랍니다.
우리 몸 안에서 대표적으로 세균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 입안이라고 합니다. 결백증에 걸린 사람들은 키스를 하면. 더러운 세균에 옮을 수 있다고 해서 키스도 안합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키스를 하면, 세균이 입에서 입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놀라운 말이지요? 세균처럼 빨리 옮겨 다니는 것들이 사랑의 모습 안에서 발이 묶인다는 말입니다.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미국 의학잡지에 연구사례로 실린 내용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꾼 생활의 여러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바뀌어진 모습이 사람들이 악수등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손을 마주 잡거나 등을 두들기는 친밀감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악수를 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습니다. 마주 보면서 어떤 행동을 해야만, 내가 반가움을 표시할 것인가를 고민많이 했습니다.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고 멀둥멀뚱 쳐다만 보려니 너무 서먹서먹했습니다.
나중에 주먹악수나 팔꿈치 악수가 등장했지만, 저는 아직도 주먹 악수를 하는 것이나, 팔꿈치 악수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주먹악수를 하고자 주먹을 내밀면 꼭 주먹질하는 도전적인 모습이어서 여전히 선듯 내밀기가 꺼려집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난 뒤에 인사를 나눌 때에도 목례를 하면서 눈인사만 대체합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참으로 이런 행동은 목회자로서, 그리고 성도가 성도끼리 교제를 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으로 적한 것인가?’라는 의문점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종종 “거룩한 입맞춤으로 성도들에게 문안 한다”는 말을 적고 있습니다. 거룩한 입맞춤이라고 하니깐, 모일 때마다 키스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거룩한 입맞춤이란,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으로 성도의 사랑을 나누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하루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우리 덕민 교회 모든 교우들이 모일 때마다 이런 사랑의 행동을 서스럼 없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을 잡고 안부를 나누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그 마음이 성도의 거룩한 교제입니다.
말로 뭐는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행함이 뒤따르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지금 비록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는 사랑의 교제는 멈추어서 안 됩니다. 저희 교회야 적은 성도로서 인원수 제한이 없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인원수 제한으로 다모여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소모임도 금지하고, 식사 모임도 금지하고,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모임 자체를 불허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덕을 세우는 모습이 될까요? 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믿음에서 물러서지 말고 지혜롭게 이 문제를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는 행동 조차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마음마저 축소된다면, 이것은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됩니다.
주변에서 많이 들리는 말이, 바이러스 통제로 인해 주일날 교회에 처음 나가지 않았을 때에는 안절부절하고 교회 가고 싶은 마음이 꿀떡이랍니다. 처음 주일날 집에 있으려니 좌불안석입니다. 오전 예배 시간이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될 줄을 몰라 안절부절합니다.
그런데 주일날 교회 나가지 않는 것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깐, 주일날 편히 쉬는 것에 쉽게 적응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주일성수를 입에 달고 살면서 몸에 배여 있는 것이 주일성수라고 여겼는데,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랬다는 말을 합니다.
자신은 대대로 이어진 신앙인이고, 나름 교회에서 직분을 가지고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입장이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쉽게, 그리고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여러분의 믿음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더더욱 든든하게 믿음의 반석에 굳건하게 서기를 축원 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 즉 성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 아름답게 기록되어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더욱 사랑하고, 성전을 통해서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여호와의 성전을 사모하라.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문구로 쓰여진 시편 84편은 고라 자손중에 어떤 분이 쓴 찬송시입니다.
시편 84편을 기록한 분이 누구인지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시편 기자는 주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특심한 나머지 몸이 쇠약해 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요즈음이야 눈만 들어 보면, 여기저기 교회당이 안 보이는 곳이 없습니다. 도심의 밤하늘은 빨간 십자가로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있어서 교회당을 쉽게 찾아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편 기자가 꿈에도 몽매간에 보고 싶어 매 달리던 성전은 그리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한 번 갈려면, 몇 년을 준비해서 경비를 모으고 큰 나들이 행사를 해야 합니다. 마치 옛날 우리 선조들이 한양에 한 번 가기 위해서는 큰 맘 먹고 몇 달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양 가는 길에는 도적들의 위험과 여행 중에 당하는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행하는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도의 위험과 길의 위험과 천재지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돈과 시간과 모든 것이 다 맞추어져야지만, 성전에 찾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니,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해 시편 기자의 몸과 마음은 점점 쇠약해져 갑니다.
이 마음이 2절에 나타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얼마나 예루살렘 성전이 보고 싶었으면, 얼마나 예루살렘 성전을 사랑했으면, 찾아가 보지 못하는 마음 때문에 쇠약해진다고 표현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시편기자가 성전을 애타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몸이 쇠약해지는 이 절절한 사랑의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길 소망합니다.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교회사랑은 정비례한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 또한 덩달아 정비례로 커진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식어지면 교회사랑 또한 따라서 식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기라고 말합니다. 단순하게 주일예배를 금지 당해서 다가오는 외면적 모습이 위기가 아닙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주일성수를 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나태되어져 가는 모습으로 인해, 교회에 대한 사랑이 식어져 갑니다. 거기에 정비례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약화되어져 가고 있는 것이 한국교회가 겪는 가장 심각한 위기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서도 우리 덕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커져가고, 교회에 대한 사랑 또한 정비례로 커져가는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택사스 부근에 루손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흑인 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총기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뒤 엄마는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어린 아들과 근근히 살아갑니다. 하루는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고양이 한 마리만 사 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합니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생활비도 빠듯한 데, 고양이 살 돈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엄마는 애둘러 모른 체 외면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가도 고양이에 대한 아들의 투정이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는 아들을 달래며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고양이를 꼭 선물로 주실 거야.”라고 말하며, 두 모자가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 저희에게는 고양이를 살 돈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셔서 우리에게 고양이 한 마리가 꼭 생기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막상 기도는 하였지만, 아들은 하나님이 고양이를 주신다는 말을 선뜻 믿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나님은 기도를 꼭 들어 주시는 분이야. 그러니 믿고 기다리자”라고 말하며 아들을 달랩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가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오후, 엄마는 집에 있는 작은 마당에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엄마의 무릎 위에 툭 하니 떨어집니다. 엄마는 깜짝 놀라 앉아 있던 의자에서 뒤로 자빠집니다. 정신 차려 보니깐 고양이 한 마리가 발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것도 싸구려 길에서 보는 고양이가 아니에요. 척 보아도 값이 비싸 보이는 품격 있는 고양이가 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놀랍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고양이가 떨어지다니요.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기뻐 뛰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으로 믿고 주변 이웃들에게 자랑합니다. 이 얘기는 <하늘에서 떨어진 고양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삽시간에 지역 신문과 TV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며칠 후 어떤 여인이 이들 모자를 찾아와서, 자기가 고양이의 주인이라며 내 놓으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말하기를 자신의 집이 여기서 80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나무에 올라간 고양이를 끄집어 내리려 나무가지를 휘어 당기다가, 나무가지가 퉁겨 고양이가 하늘로 솟아오르며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집에서 튕겨 날라간 그 고양이가 여기에 떨어진 고양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고양이의 원주인이기 때문에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가서 재판을 하게 됩니다. 각계 전문가들이 나와 조사를 시작합니다. 그 퉁겨졌다는 나뭇가지에 인조 고양이를 달아 수차례 실험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날라 가도 20-30m 이상은 날라 가지 않습니다. 결국 고양이가 800m를 날아갈 수 없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고양이 주인이라는 사람의 주장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재판장은 “이 고양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라고 판결을 내렸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상식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분임을 믿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안 된다고 말하는 기적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성도에게는 이루어지는 기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찬송하고 기도하라
4-5절 “4)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5)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4-5절에서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이 복이 있고, 시온의 대로가 마음에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의 집에 살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직장도 안다니고, 사회생활도 안하고, 날마다 교회에서 살라는 말인가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주의 집에 살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말은, 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몸은 직장이나 가정에 있어도,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행동하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시온의 대로가 열려지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과 교회를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성도는 그 입에서 찬송과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두고 믿음의 선순환이라고 말합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니 더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이 악순환이 되면 곤란합니다. 믿음의 선순환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가 전쟁에 패한 근본 이유를 분석가들이 분석하였는데, 히틀러의 전쟁 패배원인을 끄집어내는데, 놀랍게도 그의 <분노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당시 히틀러는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관찰력, 그리고 예리한 판단력과 비상한 통치력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분노조절이 안되고 자주 화를 잘 냅니다. 자기의 비위를 조금만 상하게 해도 미움과 분노가 폭발합니다. 그러자 휘하에 부하들은 히틀러가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워 제대로 보고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막지 못한 대패가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세를 뒤집어 놓은 것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상륙 작전입니다. 당시 독일진영에서는 노르망디 지역으로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주력부대는 소련 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소련으로 향하는 기갑사단을 노르망디 쪽으로 돌리기만 하여도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들은 히틀러의 부관은 낮잠 자는 히틀러를 겁내 깨우지 못합니다. 잠을 깨웠다가는 벼락같은 화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한참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 이미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완전히 상륙하여 진지를 구축한 뒤였고 이로 인해 독일이 패망하게 된 것입니다. 히틀러의 분노가 결정적으로 독일제국을 패망에 이르게 만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분노를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바이러스로 인해 바깥출입이 자제되고 집안에만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전국에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매우 많은 분쟁이 보고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충동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안에 갇혀 있는 분노가 그냥 폭발합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보복운전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다 이해되는 상황인데, 자신의 분노를 기반으로 행동하니깐, 재산상 손해가 다가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제하지 못하는 그 분노가 사람을 죽이는 상황까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는 항상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비록 내 몸이 교회 안에 머물지는 못하지만, 내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습이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힘들수록 더 찬송하십시오. 어려울수록 더 기도하십시오. 찬송과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여는 만능열쇠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찬송과 감사와 기도로 10월을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11월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면서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어 회장이 되어 회사를 경영한 사람은 찰스 스웹(charles m. schwab)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잡역부로 취직한 사람입니다. 그가 맡은 일은 잡역부였지만, 모든 일에 성실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매일 출근하면 공장의 구석구석을 자신의 집처럼 정리하고 깨끗이 청소합니다. 자신의 구역이 아니어도 찰스는 주저하지 않고 나서서 일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아냥과 비난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합니다. 결국 성실함을 인정받아 정식 사원이 됩니다.
정식 사원이 되고 난 후에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근무를 성실하게 합니다. 결국 이런 모습이 결국 카네기 회장의 눈에 들어가게 됩니다. 강철 왕 카네기가 연로하여 은퇴할 때가 되자, 세간의 관심은 ‘이 거대한 회사의 후계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에 촉각을 세웁니다. 사람들은 하버드대학 출신이 후계자가 될까, 프리스턴 대학의 출신이 후계자가 될까? 아니면 어느 명문대가의 자녀가 후계자로 발탁될 것인지 저마다 이래저래 생각하며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막상 후계자 뚜껑을 열고 보니 모두들 깜짝 놀랍니다. 바로 카네기그룹의 후계자는 잡역부 출신으로 비서가 되었던 찰스 스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당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빅뉴스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무엇을 맡고 있던, 어떤 일을 하던 간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눈물골짜기를 지나는 아픔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함께하면 그 눈물골짜기는 기쁨의 샘으로 채워진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말씀이 바로 6절 말씀입니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기도해야만 하는 것들이 우리들에게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복된 출산 후 회복을 하고 있는 지혜 집사님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수능이 12월 3일이라 한 달여 시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민영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만 기도만 할까요? 아니지요. 기도해야할 것이 정말로 많습니다. 고로 기도하고 찬양함으로 10월을 보내고 11월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도록 항상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