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金東鎭, 1867∼1952 / 壽 85歲)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선성(宣城),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정산(貞山) 또는 석포(石圃)이다. 1867년 1월 8일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서 아버지 김헌규(金獻奎)와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884(고종 21)년 봉화 유곡의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권연하의 추천으로 서산 김흥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4년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대한독립의군부의 활동에 연루되어 체포되었고, 1919년 4월 이후 독립청원운동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서명자들이 체포될 때 서명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40여 일간 투옥된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기도 했다. 1925년 김창숙이 내몽고 지역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로 계획하고 자금 20만원을 모집하기 위해 비밀리에 입국하였다. 이에 선생은 아들을 군자금 모집에 참여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1926년 4월 2일 김화식(金華植) 등이 체포되면서 관련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제2차 유림단의거’였다.
제2차 유림단의거로 1926년 5월 중순까지 관련자 600여 명이 체포되어 40∼50명이 기소될 때 함께 체포되었다.
1927년 1월 2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대구감옥에 구금되었다가 약 1개월 만에 출옥하였다. 1952년 12월 22일 지금의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문집으로 12권 7책의 『정산집(貞山集)』이 전한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