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의 외출인가 .. 거의 2년만의 나들이다 ... 이젠 제법 커서 엎기엔 조금 벅차건만 두달후면 첫돐을 맞이하는 아들아이가 초겨울 밤공기에 혹여나 감기라도 들세라 등에 힘겹게 들쳐엎은체 길을 나선다 어린 마음에도 행색에는 아랑곳없이 아이만 따뜻하면 상관없을것같았던 선이 는 아이를 솜 포데기에 온통 싸메고도 모자라 밤색코트를 아이위에 얹어덮고 스카프 질끈 묶은체 종종걸음을 걸으면서도 군것질꺼리를 찾는다 아이를낳아 엄마지 아직도 어린탓인지 두리번거리는 선이의 눈에 리어커에 즐비하게 늘어놓은 깨엿.콩엿.생강엿 등등 먹음직 스러운 먹거리가 쏙들어온다
"나 엿사줘요" "그래"
한봉지 성큼 받아쥐고는 먹으면서 걸어가는 선이.. 아이 아빠 하나주고 자기입에 하나넣고
뒤를 힐끔거리던 남편이 가까이 다가오며 조용히 말을건다
"당신 저사람알아" "누구" "지금 당신 옆을 지나가는사람" "응?" "조금전부터 따라오는것같던데..." "글쎄.....................
어디선가 눈에익은듯한 뒷모습 곤색양복이 맵시있게 어울리는 것이 어디서 본듯한 모습인데.. 갑자기 가슴이 뛰며 머리속이 멍해지는것이 아무런생각도 없어지는것이다
아닐꺼야 아니겠지 설마 그럴라구...
정신없이 달려가 확인하고싶어지는 선이는 마음은 바쁘면서 걸음은 천천히 걸으며 침착하려 노력한다 뒷모습에 눈을떼지못하고 커다란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가는 그사람을 다시한번 확인하고싶어 혹시나하는 마음에 바라본다
선이와 같은마음의 그사람도 유리문을 통해 바라보고있는것이다 설마했던 사실이 현실로 부딪히면서 언뜻떠오르는 생각은 지금의 이초라한모습 감추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신없이 뛰어달아나고있는 선이는 아이가 등에 엎혀있다는 것조차도 잊었다 손에 들려있던 엿봉지가 달아난것도 몰랐다 아이아빠가 불러대며 달려오는것도 아랑곳없었다 코트자락이 한쪽으로흘러내려 땅에 질질 끌려가고있는것도 상관없었다
세운상가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올라 가로질러 종로 3가쪽으로 달리면서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못하고 흐느끼며 얼마나 뛰었는지...
등에엎힌아이가 불편한지 울어댄다 종로 3가 육교 계단에 털석 주저않은체 아이를 내려 가슴에 안고 서럽게 서럽게 울었다
"왜 뛰어 왜 달아나 왜 그래 왜 울어 .. 소리를 질러대는 남편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며 "왜 말해 그냥 모른체 갈일이지 왜 알려줘 왜에~~ 선이가 더 악을 써대며 포악을 떤다 "이게머야 이게 머냐구 왜 왜 알려주냐구~~~~~~~~~~` 아이를 던지듯 남편에게 안겨주고 다시 뛰어간다
기다리마 약속해놓고 간다는 인사한마디없이 종적도없이 그사람 앞에서 사라져버린 후 2년만의 해후인데 얼마나 가슴아프게 그리운사람이었는데 거의 매일을 울면서 잊어보려고 무던히도 애쓰면서 살았는데.. 지난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가슴이 미어진다
어이없게도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미처 대처할 능력도 담력도 없었던 선이는 본의 아니게 돌아설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정말 죽을것같았다 정말 그대로 죽을것같았다 혼인신고 용지를 내보이며 연신 싱글벙글 대는 오빠라 불렀던 사람이 얼마나 얄밉던지 작은 아버지 댁에서 한달을 쉬면서 생각할시간을 달라고 했었는데 자꾸만 집으로 찾아오는 그사람에게 아버지가 혼인신고먼저 해오라 시며 호통을 치신것이다
엄마가 작은아버지댁에 선이를 데리러왔다 "선아 그래도 그사람 양반이더라 정말 조씨는 짚신을 꺼꾸로 신어도 양반이라 그러더니 참말로 양반이더라 느네아버지가 그리 머라해도 말한마디 대꾸도없이 그저 죽을죄지었읍니다 그러면서서 그많은 호통 다 받더라 어쩔수없는 일이지머 니 잘못도 크다 아나"
"..........
"결혼식은 천천히 하고 혼인신고먼저해 오라고했다
..................
"머라 말좀해봐라 그래 너도 입이 열개라도 할말없을꺼다
........................
"엄마 나 ...
"그래 왜"
"순대 먹고싶어"
"왠순대는 쳐다보지도 않더니..
"몰라 그냥 먹고싶네 그리고 시원한 사이다 먹고싶고 그리고또....
"애가 ....
"얼릉 빨리"
"참 기가찬다했더니 한술더뜨네.. 어이없다 어이없어 아이구 이웬수야 언제부터 그랬는데
"................
"첫아이는 떼면 안된다 딴생각말아라"
휑하니 털치고 일어나며 던지는 엄마의 말에 선이는 정신이 몽롱해 지는것을 느끼며 손가락을 헤어본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별게다 먹고싶었구나 어쩌나 어떻게 해야한나
엄마에게 임신사실을 전해들은 그사람은 득달같이 달려와 벌어진 입을 다물지도 못한다 가진것도 하나없으면서 번듯한 방한칸 없으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대책도 없으면서 아이만 덜썩 가지면 어쩌라고 병원에 가야한다고 막무가내로 때쓰는 선이를 붙들고 사정을 하는 그사람은차라리 애처롭기까지하다 당사자인 선이는 죽을맛인데 주위의 식구와 친척들은 무슨벼슬이라도 한것처럼 난리 법석들이다 뱃속에 아이가 족쇄처럼 그대로 선이를 주저앉혀놓은채 묶어 버렸다 선이의 사랑을 .. 선이의 꿈을 ... 선이의 미래를 .. 여러눈들이 무서워 병원에갈것은 생각조차 할수없어 견딜수밖에없었다 시장을 가면서도 뛰어가고 일부러 넘어져도 보고 산에가서 뛰어내려도 보았다 모두가 부질없는 어리석음인것을... 어느날 아침 선이는 마음을 흔들어놓는 꿈틀거림에 화들짝 놀라 일어나 배를 가만히 쓸어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미안하다 ... "나 여기있어 "하면서 몸으로 이야기하는 너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그날부터 선이는 세상보는눈이 조금 달라졌다 모든게 신비롭고 아름답고 그리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아다니며 발길질해대는 아이를 빨리 만나고 싶어지기도 했다 다 잊었다 아니 잊은줄알면서 아이만 생각하며 살았다 엄마를 닮은 탓인지 선이는 참 알뜰했다 또순이라는 별명을 달고다닐정도로 알뜰했다 쌀한말에 2400원하던 그시절에 연탄 한장에 7원이었고 100원들고 시장에나가면 5원어치 콩나물사고 5원어치 부추사고 20원어치 칼치사고 군것질도 하고 그러고도 돈이 남을때도있덨던 때이다 삼만원의 남편월급으로 이만원은 무조건 저축을 하고 5천원으로 한달 생활비 때어놓고 나머지 오천원으로 병원비 교통비 등으로 한달을 살았다 태어날 아이는 내집에서 낳고싶었기때문이었을까 .. 친정에서 마련해준 전셋돈을 저축한돈에 합해서 만든 25만원을 들고 만삭된배를 쓸어안고 흔들며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모른다 답십리 극장 뒤로 얕으막한 산동네에 방두개짜리 내집을 마련하고는 얼마나좋아했는지 3.5 키로의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 내집에 눞혀놓은후 느긋하게 바라볼수있는 뿌듯한 그 마음 누군들 알까.... 선이의 인생에 처음으로 빛이 내려오던날 이었다
남자들이란 다 그런걸까 아니면 선이의 남편만이 그런것일까.. 선이가 알뜰하게 뫃아 마련한 집에 미처 정도 붙이기전에 남편은 매일같이 선이를 구슬러대는것이다 집을 팔자고 집을 팔아서 양복점을 하나 하고싶다고 집이야 다음에 돈벌어서 다시사면 된다면서 몇날며칠을 들볶이면서도 끝내 말을 듣지않자 엄마에게 달려가서 사정이야기를 했던것이다
"선아 어쩌니 애비도 자신이 있느니까그렇겠지 그렇게 해줘라 내가 해주고싶어도 버릇될까봐 못해주겠다 하다가 않돼면 우리가 있으니까 해줘라"
"..................
"절대로 조서방에게는 친정이야기 하지말고 해줘라 알았지"
".............
저녁나절에 적당히 취해들어온 남편은 다시 구슬러대는것이다 엄마에게 들은 말도있으니 어쩔수없어 하면서도 해줄수밖엔없었다 집을 복덕방에 내놓고 가계를 보러 다니기를 여러날 만에 아담하게 다듬어놓은 집은 30만원에금방팔려버리고 가계는 마땅한것이 없고 ... 복덕방 할아버지에게 부탁했더니 157번 종점앞에 잘되는 양복점하나 내놓은게 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서 달려온 남편은 나이가 어린탓인지 생각이 부족한 탓인지 잘되는 가계를 왜 내놓은것인지 이유를 알아볼필요도 없이 덜썩 계약을 하고왔던것이다
농촌 의 없는 살림에 아버지없이 홀머니 손에 육남매가 살아나오려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았을까 그 세월을 보상이나 하려는듯 열심히 할꺼라면서 기대에 한층 부풀어 꿈도 많았는데 속았던 것이다 아니 몰랐던 것이다 종점이 다른곳으로 옮겨간다는것을 종점을 옮겨가니 큰길이었던 그길이 뒷길이 되어버린것이다 자연히 사람의 발길은 뜸할수밖에... 어이없게도 제대로 주문하나도 받아보지도 못하고 ... 재봉사 월급도 주지못하고 .... 석달도 못채우고 문을 닫을수밖에없었다
때로는 여자가 남자보다는 담이 클때가 있는것인지 아니면 믿는곳이 있어 그런것인지 그도저도 아니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그런건지 선이는 오히려 담담하기만하다 어차피 내것이 아니었나보다 생각하니 속도 덜 상한다 정말 속상한것은 그돈 뫃으느라 먹고싶은거 하나제대로 못먹으면서 아둥바둥살았던 시간이 아깝고 입고싶은것 하나 제대로 장만하지않았던 주변머리가 한심할뿐이다
그래서 속이 더상한다 잃어버린돈이 아깝기보다는 잃어버린 내 입맛이 더 아쉽다 어차피 그리된바에는 먹고싶은거나 시컷 먹어야지..
"아빠 나 돈까스사줘 나 지금 돈없는거 알지요 당신 다줘버리고... 이동네 돈까스말고 소공동 돈까스 먹고싶어 나가자 ..그리고 거리도 걷고싶다 그동네 가본지가 언젠데"
"그래 나가자 가서 돈까스도 먹고 삼일로 도 걸어보자"
아이를 등에엎고 단단히 덮어씌운후 버스를 타고 광교에서 내린 두사람은 소공동에서 먹은 돈까스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투덜대며 먹은후 삼일로를 걸으며 남편에게 엿을 사달라는 선이의 목소리를 길을 건너기위해 건널목에 서있던 그사람이 들은것이다
넋을 잃은체 앉아있는 선이를 남편이 추수려 대려 가는대로 끌려 가다보니 집에 와있었다 몇날 며칠을 가슴앓이를 하면서 견디기에는 선이는 지쳐있었다 보고싶어서... 미치도록 보고싶어서... 가고싶어서 그사람에게 달려가고싶어서 ... 마음은 온통 허공에 떠있었다 며칠후면 이사도 해야 하는데 친정엄마가 얻어준 남의 집으로 다시 이사를 해야하는 절박함에 처해있으면서도 그절박함은 가슴미어지게 차오르는 그리움을 이길수는 없었다 그 마지막 모습을 정정하고싶었다 나 그렇게 초라하지 않다고 변명이라도 하고싶었다 말을 해야하는데................. 당신여자였던 나 선이는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다고 말을 해야하는데... 그때는 어쩔수없었다고 .. 당신을 기다리지못한 내가 어리석고 미안했다고 ... 참담한 마음으로 거의 매일을 정신놓은사람처럼 마음으로는 매일매일 그사람에게 "가야한다 가야한다 가서 만나야한다" "아니 이제와서 만난들 어쩌랴 이못난 몰골 다시보이면 그사람 더 힘들껄 " 그렇게 혼자 생각하며 달래며 몇날며칠을 지냈다 그리곤 작심을 하고 나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