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는 생명력과 정화력(淨化力), 그리고 부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우리 조상은 믿어왔다. 캄캄한 새벽 한 그릇의 정한수를 떠놓고 모든 소원을 빌던 우리 어머니들의 치성은 수천년을 이어온 민간신앙이다. 또 물은 여성적인 생명력의 상징이라는 믿음도 깃들어 있었다. 물을 신성시(神聖視)하기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은 모든 '생명의 기원'이라고 여겼다.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생명이 있는 일체의 것은 물에서 생겨났다"는 수성설(水成說)을 주장한 바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은 '물이 만물을 재생시킨다'고 생각했으며 '인간을 죽음의 의고(擬固)에서 해방시키는 것도 물'이라고 믿었다. 성경에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세례(洗禮)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은 1,274mm다. 세계 평균 750mm의 1.6배가 넘는 수치다. 연간 우리나라에 쏟아지는 강수량은 1,200여억톤이나 된다.
그러나 이 가운데 5분의4는 유실되거나 증발해버리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량(水量)은 불과 22%인 286억톤에 지나지 않는다. 땅속으로 스며들거나 증발하는 양이 42%나 된다니 효율적으로 물자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걸핏하면 '물 쓰듯 한다'는 말은 이제 꼬리를 감출 때가 됐다. 물의 중요성을 열번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때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가지내의 하나인 탄천(炭川) 어귀로서 멀리 관악(冠岳)에서 발원한 양재천(良才川)이 흘러온다. 한강과 탄천 그리고 양재천까지 합류하는 잠실 벌판은 장마 때면 물바다가 되기 쉽상이다.
그래서 강남구에 자리한 봉은사(奉恩寺)에서 바라본 탄천과 양재천의 합류지점을 새일('새여울'의 준말)이라 불렀고, 그 새일에 백로 왜가리 해오라비 같은 철새(습금류)가 모여들어 '학여울'(鶴灘)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지하철 3호선에 학여율역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봉은사 일주문(一柱門) 안에 들어서면 '주지나시호선사 수해공덕비'(住持羅時湖禪師 水害功德碑)가 눈길을 끈다. 글귀로 알 수 있듯 을축년 홍수로 잠실과 탄천, 양재천 일대가 온통 물바다를 이루었을 때 708명의 인명을 구해낸 은덕을 기리기 위한 불망비(不忘碑)인 것이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나시호(羅時湖) 선사는 나무토막으로 뗏목을 엮어 700명이 넘는 인명을 구해내고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는 것이다. 비문에는 독립투사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선생의 "우러러 시호선사의 자선(慈善)을 감사한다'는 글귀도 뵌다.
일제 때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의 몇 사람이 자주 이 봉은사를 찾아 왜경이 "어찌하여 그런 사람을 함부로 절에 들이시요"라고 힐난할 때마다 나시호 선사는 "나는 오직 불사만을 알뿐 불공드리러 찾아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염불할 뿐이오"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독립투사 장지연(張志淵)의 '봉은사'라는 시에는 '강가 들길 숲속에 뻗고/ 속세 이몸 하루에 오가네/ 불당에 꽃 향기 가득한데/ 난간에 신록이 모촘하이// 불공에 미쳐 참배않고/ 떠돌이의 하루 한가로워라/ 아기중 웃는 것도 모르는 채/ 술에 취해 솔밭길 걸오나오네'라고 이 일대의 정경을 읊고있다.
관악에서 발원, 과천을 거쳐 탄천에 드는 양재천은 관찰 서초구와 주민의 협조로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맑은 내로 되살아났다. '양재천'이란 이름처럼 그야말로 양질(良質)의 물이 흐르고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