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 묵상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1-3)
⁋ 찬송-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 기도- 남태양 권사
⁋ 성경- 마가복음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말씀
고난주간 월요일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하신 날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마지막 사역은 갈릴리에서 첫 사역과 대비된다.
갈릴리 첫 사역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안식일에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 들어가셨다.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주요 지역으로 해변 길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만큼 소문이 빨리 퍼지는 곳이다.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셨는데,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하였다. 먼저 나사렛 목수 출신인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지혜를 가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내용과 권위에서 다른 종교인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떠돌이 설교자에 불과한 예수님을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비교한 것만으로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의 권위는 무엇인가?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 귀신에 들린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악령의 포로가 된 사람이다. 그래서 선한 의지와 도덕성이 완전히 상실된 존재이다.
더러운 귀신은 회당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달리 먼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즉각 예수님과 자신 사이에 방어벽을 치면서 경계한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24).
여기에서 나사렛 출신을 강조한 것은 예수님을 조롱하려는 의도이다. 비천한 동네에서 온 설교자임을 밝혀 예수님과 청중들을 분리시키려고 한다. 자기는 이미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하였다.
아마 영적으로 피차 알만한 사이이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타협안일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귀신 들린 자를 꾸짖으신다. 귀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25).
예수님은 단호하고 간단하게 명령하셨다. 그 결과를 보라.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26).
회당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진정한 권위는 권위 있는 말씀과 권위 있는 행위 때문이었다. 그들은 평생 이런 일을 본 적이 없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 악한 귀신조차 순종하는 권위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복음은 악한 세력과 영적인 싸움이요, 악의 지배에 대한 의의 전쟁이었다. 공포에 싸인 당시 사회를 향해 평안을 전하는 일이었다. 더러운 귀신의 영의 지배를 받고 사는 고달픈 인생에 대한 자유함의 선언이었다.
안셀름 그륀은 예수님의 악령치유 기적을 가리켜 “무의식의 은신처에 숨어있는 더러운 영을 밖으로 끌어낸 일”이라고 보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회당 안에 귀신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회당이 더러운 귀신으로 오염되어 있었다. 유대인에게 회당은 그 지역에서 영적 중심이며, 기도와 가르침의 장소이다.
만약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사람들은 ‘거룩함’이 아닌, 그런 귀신의 존재 때문에 ‘더러움’을 계속 배웠을 것이다.
진정한 권위는 예수님이 회당에 오심으로 회당이 회당다워졌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묻는다.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27).
사람들이 놀란 까닭은 ‘권위 있는 말씀’ 때문이고, 귀신을 쫓아낸 신적 능력 때문이고, 회당을 회당답게 하신 때문이었다.
‘새 교훈’은 세상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참 권위는 바로 악을 몰아내는 능력, 아픔을 치유하는 능력, 왜곡된 진실을 바로 잡는 능력,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능력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능력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복음에는 거룩하고, 생명력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가버나움으로부터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나갔다. 새 교훈 때문에 회당은 회당다워지고, 거룩함을 회복하였다.
고난주간 월요일은 성전 정화의 날이다.
성전 개혁은 어떠한 손해와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진짜 계명’, ‘진짜 예배’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진짜인가?
과연 우리의 교회는 성전다운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못하면 거룩한 성전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일 뿐이다.
고난주간은 예수님을 배우고, 닮고, 따르려는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에 집중함으로써 나를 새롭게 하고, 정화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주기도문
“오늘도 주님의 평화!”
첫댓글 예루살렘에 오셔서 먼저 성전을 정화하신 주님. 저의 몸과 마음이 주님의 성전이라 하셨으니 늘 성결하게 지키게 하옵소서.
한국교회가 성장 지상주의가 아니라 영적으로 변화되어 새롭게 거듭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교회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거룩한 성전 되기 원합니다
주님, 내 안의 성전에 여전히 존재하는 악한 생각과 마음들을 물리쳐 주옵소서. 먼저 나의 마음을 정화하도록 성령충만으로 이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