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9.
순지르기를 기다리며
감자순이 투명 비닐 아래에서 녹색 빛을 발한다. 환희!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있을 수 없다. 두둑 깊이 15cm 정도에 씨감자를 파종했다. 평년보다 비가 잦고 양이 많아 걱정스러웠으나 20일 만에 싹을 틔웠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마도 3월 25일쯤 덮은 비닐이 보온을 잘 해줘서 서둘러 출아한 듯하다.
지금부터 하얀 감자꽃을 기다려야 한다. 감자꽃이 이랑 위를 줄지어 피면 삽괭이 잡아 쥔 교육생들의 마음도 풍성해진다. 하지만 감자는 냉해를 대비해야 한다. 구례는 분지라는 특성 때문에 4월 중순에 한 번의 서리가 찾아온다고 들었다. 해마다 반복하는 서리는 농민들의 경험에서 얻은 현장 지식이다. 이미 그렇다고 교육이 되었으니 일기예보에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한다.
그보다 우선해야 할 일들이 몇 개 있다. 비닐 구멍을 뚫어야 한다. 감자순이 자라나 비닐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비닐이 흡수한 열에 연한 새잎이 닿으면 열상으로 피해가 발생한다. 서둘러 해야 할 일이다. 쪼그리고 앉아 지름 5cm 정도 구멍을 내면서 순과 같이 올라오는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이랑 한 줄에 50여 개의 씨감자를 파종했으니 100여 개 구멍을 뚫어야 한다. 잠시의 작업이라도 몸이 뻐근함을 느끼리라.
출아 후에는 순의 개수도 살펴봐야 한다. 10일 정도 여유를 가지고 씨감자 하나에는 2개 정도의 순이 적당하니 초과하는 것은 순지르기한다. 더불어 두둑의 폭을 넓혀주는 북주기 작업이 필요하다. 북주기는 감자 줄기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작업으로 감자의 수확량을 결정짓는다.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이 몇 개 있다. 팥알 크기만 한 리톱스가 담긴 화분과 자보, 천대전금, 스투키 등 사람의 관심이 적을수록 유리한 화분이 반수 정도다. 식물에 대한 지식이 다양하고 많거나 애정이 깊은 것이 아니라 잘 키우고 꽃피우는 능력은 부족하다. 단지 볕이 잘 드는 남향이라서 가끔 꽃구경도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감자는 관상용 식물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재미가 있다.
살아가면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무엇일까.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 재미있다. 본디 좋아하는 일이 재미있고 잘하는 일이 재미있다.
첫댓글 때가 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아버지가 거두어드린 잘 자란 감자만 보았지 어찌 어찌 이리되었는지 일절 관심도 없다가 오라비 농부된덕에 알게되니 지나간 세월이 아쉽고 한탄스럽네
아버지에게 무관심했는지 감자에게 무관심했는지 나쁘긴 매한가지다
효녀여! 그대는 늘 지금같은 마음으로 살았구나. 아버지도 마음으로 다 아셨을껄. 말만 안하신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