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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3:12-13(950) 측량할 수 없는 인생 2026-9-20
교회를 구성하는 남녀 비율을 살펴보면, 남성이 30%를 차지하고 여성이 남성의 두 배를 넘는 70%를 차지하는 것이 평균적인 비율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교역자 때에는 어머니 같은 연배를 가진 권사님과 심방을 같이 하기도 했고, 그리고 청년대학부를 지도할 때에는 20대 젊은 자매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이야기 주제 중에 가장 많았던 주제가 바로 “보석이나 장신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보석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여성들은 하나의 목소리를 냅니다. 10대 소녀이던, 아니면 80을 훌쩍 넘기신 나이 드신 어르신이던 상관없이 보석 이야기만 나오면, 모든 여성분들은 눈이 반짝 거리면서 관심을 가집니다.
그리고 제가 내린 결론은 “모든 여성분은 나이와 상관없이 보석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여성분들도 그렇죠? 제가 내린 판단이 잘못된 판단이 아닙니다.
남자친구가 만난지 100일 되는 날에 <100일 기념반지>로 이름 이니셜이 새긴 10만 원짜리 은반지를 아가씨에게 선물하였습니다. 여자는 반지를 늘 손가락에 끼고 쳐다보면서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스무 살 때에나 그게 좋은 것이지, 마흔 살 넘긴 중년 아줌마가 얇은 은반지 하나에 감격하는 것을 보기 힘듭니다. “당신과 같이 산지가 몇 년인데, 내 나이 마흔에 고작 은반지냐?”라고 불평하면서 도리어 집어 던져 버릴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좋은 것을 보고 난 다음에는 시시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느끼는 감정입니다. 십 여년 전에 집사람 생일이 되어서 가방 하나 선물하려고 함께 백화점에 갔습니다. 가방을 구경하는데 처음부터 싼 것을 보았으면 제 지갑에 부담 안 되는 적당한 것을 골랐을 터인데, 처음부터 좋은 것은 보고 나니 그 다음부터 다른 가방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성에 차지 않은 것이지요, 결국 제가 판단착오로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나름대로 비싼 가방을 하나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보고 난 다음에는 시시한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은 신앙에도 해당되는 원리입니다. 사도바울을 생각해 보십시다. 사도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세상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이전에 좋았던 세상 기준이 다 바뀌어 버렸습니다. 전에 좋다고 매달렸던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보니 ‘싸구려 은반지’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이 비교할 수 없는 보석이요, 복음이 다이아몬드입니다.
세상 것들이 시시해서 별로 마음에 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 모든 것들을 나는 배설물로 여긴다”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어떤 것이 여전히 매력적이고, 그 매력적인 것이 여전히 나를 흔드는 유혹의 도구로 다가온다면 “내 안에 있는 믿음의 다이아몬드”를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것 때문에 흔들린다면, 그 분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참된 영생의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분입니다. ‘복음의 영광을 맛보고, 다이아몬드보다 더 소중한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는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고대 헬라 철학자 제논(Zenon)은 “한 번 흘러 간 강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사와 삼라만상을 보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없고 모두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과 권력과 물질과 모든 것은 이동하고 있습니다. 정해진 법칙과 시간에 따라 질서 있게 존재합니다. 정체된 것 같지만 모든 사물은 변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로 곤혹을 치루었던 금년 한여름 폭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무더웠고, 도무지 지나가지 않을 것처럼 열대야가 이제는 꽁지를 내리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제 무덥다고 하더라도, 아침 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이 다가오는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기에 모금도 모자람이 없는 계절입니다.
이제 금주간에는 추석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이 한해를 이끌어 주셔서 모진 겨울의 추위도 지나가고, 따사로운 봄의 시간도 넘기고, 무서웠던 한 여름의 폭염도 이제는 과거 속의 일처럼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좋은 9월의 시간 속에서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섬기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1. 기쁘게 살아 갑시다
12절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라고 말합니다. 기쁨이라는 중요한 단어를 소개하면서 ‘사람이 사는 동안에’라는 구절로 한정을 지어 버립니다. 여기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목적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기쁨을 드러내고 싶어도 이미 죽은 사람은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와 함께 계심을 기뻐하십시오. ‘기뻐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성도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기뻐하기 보다는, 기뻐하는 것이 없다고 해도, 내가 기뻐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 기쁨을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기뻐해야 될 기쁨의 원리입니다.
기뻐하는 성도, 기쁨을 나누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어떤 선물을 주실까요?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믿음, 건강, 행복, 재물, 형통의 은혜”를 주십니다. “믿음, 건강, 행복, 재물, 형통의 은혜”는 내가 얻으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주셔야 받을 수 있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모든 것은 다 헛 것입니다.
막 5장을 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귀신들의 힘이 얼마나 센지 쇠사슬로 묶어놨는데 그것을 다 끊어 버렸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귀신 들린 자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에게 “네 이름이 무엇인가?”질문하자, 그 사람은 “나는 군대니라”라는 전혀 엉뚱한 말로 대답합니다.
귀신들린 그 사람 이름이 <군대>라는 말이 아니에요. 여기서 군대는 영어로는 “legion”인데, 로마군대의 편제에 따라 대략 6천여명이 모여 있는 <군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사람이 내 이름이 군대라고 말한 것은, 내 안에 대략 6천개의 귀신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다중인격>이 영화의 중심주제로 많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에게 하나의 인격이 있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다중인격자는 한 사람의 몸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존재하면서 그 사람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게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안에 6천개의 귀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귀신들린 사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서는 이런 모습, 저기에서는 저런 모습을 보입니다. 오직 역할로만 살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촌장이란 팀으로 가수활동을 하였던 하덕규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만든 아름다운 복음송이 있습니다. 바로 <가시나무>라는 노래입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내 속엔 가시나무가 너무나 많다고 합니다. 내 속에 있는 너무나 많은 가시나무 때문에 당신이 편히 쉴 곳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내 속에 있는 가시가 무엇일까요? 나만 생각하는 내 자아가 많고, 내 욕심이 많고, 내 고집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쉴 곳이 전혀 없습니다.
하덕규씨가 부른 가시나무에 나오는 이 모습은 오늘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분노가 늘 존재합니다. 증오가 가슴에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미움과 시기와 갈등이 마음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자리 잡을 공간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넓디 넓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축원드립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기쁨으로 넘치는 생활을 나타내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들의 교회생활, 가정생활, 직장생활에 충만한 기쁨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2. 평범한 일상생활에 누리는 하나님의 선물
13절“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13절은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보여 줍니다. 흔히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면, 아주 거창한 것을 생각합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축복, 혀를 내두를 정도의 부귀영활’이런 것을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물질적 축복이 하나님의 선물이기도 맞습니다.
하지만, 13절에서는 또 다른 하나님의 선물을 말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전도서를 서술한 솔로몬 왕은“먹고 마시고 수고하여 그 열매를 먹는 평범한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인생의 기본 모습입니다. 그리고 땀 흘리며 수고하여 그 댓가를 바라보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입니다. ‘먹고 마시는 즐거움, 손으로 인한 댓가를 받는 즐거움’,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될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은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평범함”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크게 아프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랍니다. 공부를 잘하여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공부합니다. 크게 잘난 것은 없지만 또한 모자라지 않게 성장합니다. 남편은 무던하게 직장생활을 잘하며, 아내를 사랑하고, 집안을 화목하게 잘 이끕니다.
로또 당첨되는 것 같은 놀라운 복은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 가정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 생활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일상생활입니다.
전도자는 바로 일상생활 중에 만나는 이런 즐거움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너무나 평범한 생활, 자랑할 것 하나 없는 모습이지만, 이런 평범한 생황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시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런 모습이 불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하는 아름다운 행동입니다.
마 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평범하지만 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생활, 바로 이런 모습이 불신자들에게 보여주는 전도의 모습이 됩니다.
칼빈은 “세속적인 직업에 종사하더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그 일이 소명 받은 일이며 주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금이 간 양철통”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각각 양철통 하나씩을 매달아 물지게를 만들어 물을 실어 나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른쪽 양철통은 새것이라 온전했지만, 왼쪽 것은 오래된 것이라 약간 찢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을 받아서 집으로 오면, 오른쪽에는 물이 차 있었으나, 왼쪽에는 물이 반 밖에 없습니다.
물이 자꾸 새어 나가는 왼쪽 양철통은 주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주인에게 힘든 일을 두 번 시키는 것처럼 보여 너무 미안한 나머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님, 제가 도저히 송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찌그러지고 물 새는 낡은 양철통입니다. 저를 버리시고 좋은 것을 사서 사용하세요.”
그러자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네가 찢어져 물이 새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항아리를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단다. 우리가 물을 나르면서 지나온 길을 한번 보렴. 금이 가지 않은 항아리가 있는 오른쪽은 아무런 풀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이지만, 너가 지나왔던 왼쪽을 한 번 봐라. 너가 흘린 물로 말미암아 아름다운 꽃이 피었고, 풀이 자라고 있지 않니? 너 찢어진 것 때문에 또 다른 생명이 자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너를 버릴 수 있겠니?”
여러분! 우리 인생이 찢어져 물을 흘리는 양철통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금이 간 자, 부족한 자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먹고 마시고, 아침되면 일어나 일터로 나가고, 저녁이면 집에 들어오고, 그렇게 하루를 살고 한달을 보내는 것이 평범한 일상생활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한 모습을 통해 날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평범한 하루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한 달의 시간을 선물로 받을 것이며, 한 달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일 년의 시간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깨닫고, 하나님 선물을 받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단조로워 보여도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 이런 성도가 바로 평범한 일상 생활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 누리는 성도입니다. 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로또 당첨되지 않아도 일상의 감사를 통해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과테말라의 한 시골 마을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아주 소박한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집을 예쁘게 페인트칠하고 싶다.”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그녀는 조금씩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페인트를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남편의 생계를 위해 꼭 필요한 전기톱이 고장 나 버립니다. 그녀는 고민하다가 모아놓은 돈을 모두 남편의 전기톱을 고치는 데 사용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집에 페인트칠하는 것은 이제 포기해야겠구나.”
그런데 얼마 후 그 마을에 미국의 교회 선교팀이 방문을 하였고, 그 녀는 선교팀을 위하여 그녀의 가정을 숙소로 제공하고 헌신적으로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 앞으로 거액의 돈이 미국으로부터 송금이 됩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집에 머물렀던 선교팀원들이 미국으로 돌아가 숙소의 딱한 사정을 보고, 페인트 칠만 아니라 집을 수리할 거금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페인트 칠 할 돈을 다 사용해 버려서 잔소리하고 분노하는 여성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없는 중에도 순종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 여성에서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면 큰 기적과 큰 축복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서 3장 13절에서 ‘먹고 마시는 것, 내가 땀 흘려 일하는 것, 그리고 그 수고 가운데 누리는 작은 기쁨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한 끼의 식사도, 가족과 함께 웃는 시간도, 열심히 일하고 그 열매를 누리는 것도, 내가 원했던 작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줄로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탈무드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한 날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평범한 일상의 작은 기쁨 속에도 숨어 있습니다.”
9월의 모든 시간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길 소망합니다. 금주간에 있는 추석 명절 연휴에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놀라운 은혜의 시간을 누리시길 소망합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로 채우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