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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마털 양말
오늘 미국인 친구 S에게서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직인을 보니 어제 부친 것이었는데, 빠른우편으로 보내선지 하루 만에 도착한 것이지요.
물론, '라마털 양말'이었답니다.
나에겐 역시 '라마'에 대한 단어만 떠올려도, 웃음이 나는... 그런 일인데요,
소포를 받고 나서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리고 S가 지난번에 여기 와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 컴퓨터 작업한 이미지 하나를 칼라 출력해서 첨부했던데, 그 뒤에는 사인펜으로 쓴 글씨가 보였습니다.
'장, 당신은 우리 부부에겐... 한국을 덜 외로운 곳으로 만들어 준 사람입니다.' 하는 문구였습니다.
사실 난, 그들에게 별로 해 준 게 없는데......
어쩌면, 그들은 내 정을 조금이나마 느낀 거겠지요......
그래서 내가 소포를 받았다는 답을 메일로 보냈더니, 오후엔 그 답이 와 있드라구요.
그렇게나 빨리 소포가 도착했냐며, 한국의 우편 시스템에 놀라는 반응과 함께,
그는 6 월이 지나고 7월이 되면... 자기 처가집이 있는 프랑스에 2년 만에 가게 된다며,
아를르() 지방에 집을 하나 사는 것이 그들 부부의 꿈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7 월에도 아를르에 가서 집을 알아볼 것인데,
혹시 재수가 좋아 집이 마음에 드는 게 나타나서 사게 된다면,
'장, 당신은 그 집에 와야된다(You must come and visit...).' 문구가 실려 있었습니다.
더구나 거기는 내가 살다 왔던 '바르셀로나'와 가까운 곳이라 너무 잘 됐다며(그는 날 생각하면 바르셀로나를 연관시키곤 한답니다.), 자기도 그런 꿈을 갖고 사노라고도 했답니다.
글쎄요, 그런 날이 오긴 올까요?
'그들의 프랑스 아를르 지방의 집에 놀러간 뒤, 얼만큼 지내다가... 그들과 함께 바르셀로나에 가서 내 스페인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는 일도 벌어질까?' 하는 꿈에 젖어보기도 했답니다.
요즘 내 홈페이지에, 한 아가씨가 '산티아고 가는 길'에 가는 준비 상황 등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혹시 가능하다면 부담스럽지 않은 상태로 그 길을 걸으면서도 이따금 글을 올려줄 수 있느냐고... 내가 메일로 부탁을 해서 있는 얘기.)...
S의 그런 메일을 받고 나니, 갑자기 나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아, 바르셀로나.
멀리서 생각하면 나에겐 꿈 같은 곳... 그 곳에 가서 한 며칠 보낸 뒤, 산티아고 가는 길로 떠난다면......
물론 그런 일이 이 세상에서 일어날 현실이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현실이 아닌 일처럼, 아름답게 가슴에 와 닿는 기분이랍니다.
나는 그 걸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라, 그 곳에 직접 살았었고 다녀왔던 사람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여기 생활도 나쁘진 않습니다. 아니, 참으로 좋습니다.
그렇지만,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다른 문젭니다.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잠깐 이 세상을 잊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여기서 사는 건, 세상을 잊을 수는 없거든요?
왜냐면, 세상이 나를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걷는 것은, 세상을 잊기도 하는 것이니...
그러니, 더욱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6 . 5
# 막걸리 한 잔
조금 산만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속도 없이 바쁘고 또 나갈 일도 생겨서, 요 며칠 산만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작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마음 한 편에선 불만이 일기도 합니다.
오늘도 통나무집에 손님들(내 친구 상범과 관계된)이 왔습니다.
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어쨌거나 손님이 오면... 어수선한 건 사실입니다.
정신을 집중할 수도 없거니와, 그들의 행동에도(내가 심어 놓은 꽃들을 뜯거나 밟는 등, 오늘도 내가 애지중지하는 구철초(들국화)를 쑥인 줄 알고 뜯었던 사람이 있어서... 내가 질겁을 하면서 말렸습니다.)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입니다.
오후 들어, 어쩐지 막걸리가 마시고 싶어서,
손님들이 돌아가는 차가 전주에서 오는 편에, 사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혼자서 막걸리를 마시려던 것은 아닌, 그저... 술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그랬던 것인데요,
언제라도 마음이 내킬 때 마시면 되는 거니까요......
저녁을 일찍 챙겨먹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돌아와 옮겨 심은 화초에 물도 주고, 하모니카도 불었습니다.
그런데,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자... 어쩐지 조금은 울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실까?' 했는데, 어쩐지... 혼자 마신다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산장 쪽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늘 뭔가를 하는 산장아저씨가 지금도 무엇을 하고 계신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보니, 언뜻... 그 모습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것 같더니, 저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저 양반을 부를까?' 하다가, 아니, 내가 막걸리를 직접 들고 쳐들어가는(?) 방법이 떠올라,
나는 막걸리 한 병을 덜렁덜렁 들고 산장으로 향했습니다.
어쩐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서 인사를 하자, 아주머니는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막걸리 한 병이 손에 들려있는 것을 보자... 까르르 웃드라구요.
그래서,
"아저씨를 부르려다가, 이 방법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술을 들고 왔습니다." 했더니,
"잘 오셨어요." 하면서, "저 쪽에 가서 앉아 기다리세요." 하드라구요.
나는 원두막 하나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우선 잔과 누룽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조금 기다리세요. 바로 부침개 하나 부쳐올테니..."
그렇게 막걸리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막걸리 한 병에 딱 두 잔.
우리는 한 잔씩 따라 천천히 마셨습니다.
아주머니가 금방 부쳐온 부추전이 따끈따끈하게 맛있었습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쳐들어갔기 때문에, 산장아저씨는 하루의 마무리를 해야 하는 등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상태여서... 일을 마무리하러 가셨습니다.
나는 먹던 누룽지를 손에 들고, 씹으면서... 이제 어두워져 가는 시골 마을길을 걸어 '夢想?'에 돌아왔습니다.
괜히 배만 부르고, 술 기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막걸리는 썩 맛있지도 않았습니다.
기분만 내고 싶었던 것이지, 술이 받지는 않았던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마시자거나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저 막걸리 한 잔이면 된 것 같았습니다.
어쩐지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러지도 않는다면, 이 밤이 너무 울적할 것 같아섭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을 집중할 수 없고... 그렇다고 술기운을 빌리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기에......
그저 맹숭맹숭하게, 배만 올챙이처럼 부른 느낌으로... 밤을 맞습니다.
6 . 5
날씨가 종일 나른하고 후텁지근했다.
아침으론 흐린 듯하더니 날은 뿌옇게 더워져만 갔다.
'내일은 비가 온다'는 인터넷상의 예보가 있자, 기로는 세탁기에 그 동안의 빨래를 넣고 돌렸다.
그런데, 어째 날이 바짝 말라있는 폼이... 비가 내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면서는,
'이제 완전한 여름인가?' 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뭔가 작업을 해야만 할 것 같았는데, 기로는 몸이 나른한 상태여서 모든 게 다 귀찮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팽개져 있던 흙작업대의 비닐을 들쳐 보니, 요 며칠 부산한 사이에 흙 작업은 거의 말라가고 있었다.
물론 두어 군데 가는 금이 가긴 했어도, 그대로 말려 구우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석고 틀에 새로 흙을 채워 넣고도 싶었는데, 우선 힘이 없어서... 선뜻 손을 대지지가 않았다.
'그래, 다음에 맑은 정신으로 하지......' 하면서 방으로 돌아와,
낮잠을 한 시간 정도 잤다.
졸려서가 아니라 어쩐지 낮잠이라도 자 둬야할 것 같아서였다.
요즘, 기로는 잠이 부족한 상태였다.
하루에 네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시간만 빨리 지나갔다.
저녁을 해 먹기 전에 기로는 문득,
'아, 이제 넝쿨을 내 뻗으려하는 축대 사이에서 커 가는 나팔꽃에 끈을 매 주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면 다른 방법은 없고, 할머니 댁 지붕에 얹혀진 바람에 날리지 않게 양철을 눌러 덮은 블록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 양쪽으로 끈을 묶은 뒤 대나무를 가로로 매달아 놓고 거기에 줄을 매주면 나팔꽃이 뻗어 올라가 언젠간 그 콘크리트 담을 다 덮을 거라는 계산으로.
그래서 기로는 옆집 할머니 집에 갔다.
일단, 할머니 허락을 얻은 뒤, 사다리를 놓고 지붕에 올라갔다.
할머니는,
"기왕에 지붕에 올라가는 질에... 비가 새지 않도록 혀 줘." 해서,
기로는 양철을 걷어내고, 지난번에 자신이 드린 비닐 장판을 그 밑으로 집어넣은 뒤 다시 양철을 덮는 식으로 할머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마루에 앉아서 기로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맘에 든다는 표시였던 것이다.
그런 뒤 기로는 지붕에서 내려와, 사다리를 타고 대나무에 끈을 매어... 덩굴을 뻗어내는 나팔 꽃 서너 그루에 먼저 줄을 매 주었다.
새로운 터전
현충일을 낀 주말 며칠을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현충일 아침 일찍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서울에서 구 병태 부부가 왔고, 그날 저녁 무렵엔 또 전화도 없이 열 명이 넘는 많은 손님을 몰고 김 선생님이 오셔서... 물론 술자리가 벌어져 한 밤중 두 시 가까이에 행선지 별로 몇 대의 차로 돌아들 가기까지,
나는 술자리가 벌어졌던 내 작업 방의 한 쪽에 누워 잠이 들어있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엔 구 병태 부부가 돌아갔고, 잠깐 쉬는가 싶었는데... 오후에 김 선생님이 다시 오셔서, 결국은 선생님을 따라가게 되어... 선생님 댁에서 '인천'과 '군산' 등, 두어 커플이 바뀌면서까지... 다시 이틀을 술과 함께 보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자정 즈음에 돌아오니, 개줄이 풀려있던 격만이... 새까맣게 그리고 초롱초롱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제(일요일) 저녁 무렵에 이 집의 주인인 친구한테서,
"나, '夢想?'에 와 있는데, 열쇠가 어딨냐?"는 핸드폰이 와서,
그렇잖아도 격 때문에 걱정이었던 나는, 격을 풀어주어... 용변을 보게끔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거든요.
(내가 돌아왔을 때 용변의 흔적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저께 밤부터 어제 오후까지 내내 참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돌아와 보니, 격이는 줄에 묶이지 않은 상태로 어두운 집을 지키고 앉아있지 않았겠습니까?
나를 보자마자, 길길이 뛰어오르더니... 몸에 올라타고 난리를 치던 것이었습니다.
아마, 개줄을 풀어준 친구가 다시 묶지 못한 상태로 돌아간 모양이었습니다.(그 친구에게까지도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는 도도한 개랍니다.)
개를 다시 묶으려고 아무리 부르면서 잡으려 해도, 오지 않아서... 애를 태우다가 포기하고 돌아갔을 것이었겠지만요......
그렇다면,
밤이 되자 격은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아무도 없는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저런 상황을 나중에 친구로부터 확인했답니다.)
개가 충직한 동물이라더니, 그렇게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하는가 봅니다.
그러니, 그런 개가 퍽 신통하기도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구요......
어쨌거나 피곤해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집안은 이래저래 뒤죽박죽이고 마음도 산란한데... 김매러 가시던 산장할머니는,
"어저끄는 왜, 하루 종일 아무도 안 보여... 집이 훵! 허든디?" 하고 말씀하면서 지나가시드라구요.
내가 어딜 갔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고 하시면서요.
그러니, 아무래도 무리였는지... 내 몸은 축 늘어지고 컨디션이 말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과 함께 하니 그 당시엔 행복했지만, 이것저것 술을 섞어 제법 마신 뒤끝이라...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근데, 내가 그렇게 술을 마셔도 되는 건가?'
아, 그렇게... 어느덧 나는 술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요 며칠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심신이 많이 피곤하기만 합니다.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고, 머리는 길어서(머리 깎은 지 이제 6 개월이 지나 조만간에 머리를 다시 짧게 깎아야 합니다.) 꺼칠하고... 작업이고 뭐고 하나도 못한 상태로, 6 월 초순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을 떠나왔더니, 당시 같이 했던 사람들은 지금... 내 세상에선 저만치 뒷전으로 물러나 있고,
여기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몇몇 서울 사람들과는 통화도 되고 여기까지 찾아오기도 하지만, 요 근래엔... 김 선생님을 비롯한 이 지역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과 나는 자주 어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어디에 있거나... 자신만의 터전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나 봅니다.
여기도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고, 나는 그 속에 묻혀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지만, 어쩌면... 투박한 맛이 있어서 더 순수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긴 하지만요.
그렇게, 하루하루...
내 '夢想?'에서의 삶,
삼 분의 일이 채워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6 . 9
이제 방안에서 문을 닫아놓고 있으면 답답하고 더워서 싫은 시절이 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밤에도 문을 열어놓을 수만은 없다 보니, 기로는,
'방충망을 사다가 발라야하는 건가?' 하고는 있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밤인데도, 방안에서 문을 닫아 놓고 앉아 있기가 싫어서... 쉼터에 나가니 시원해서 좋았다.
물론 아직은 모기도 없어서 쾌적하기까지 해서,
기로는 쉼터에 앉아 하모니카 몇 곡을 불었다.
격은 엎드려 그런 기로를 껌벅껌벅 쳐다보고 있었고,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아, 요 며칠... 다른 사람들과 밤을 보냈더니, 이렇게 혼자 있는 밤이... 낯설기만 하고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하지'가 올 때까진 밤이 조금씩 더 짧아져갈 것인데, 작업은 언제 한다지?' 하는 걱정이 되긴 했지만,
분명 좋은 밤이긴 했다.
# 내 방식?
격이(개가) 요즘 밥을 잘 먹지 않습니다.
여름을 타는 건지, 아니면 요 근래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상처를 입은 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기 왔던 손님 중의 한 사람이 그러다군요.)
그러니, 개를 위해 특별히 해 주는 건 없다지만... 신경이 보통 써지는 게 아닙니다.
며칠 전에 호수를 건너면서, 개에게 수영을 시키려고 억지로 물에 집어 던졌었는데... 그 날 입은 상처 때문일까요?
아니, 그 것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수영을 시켰던 이후... 이제는 아예 배에도 타지 않으려고 하던 개라, 나중엔... 내 가슴이 아프기도 했었는데,
그 때 생긴 후유증일까요?
내 딴에는, 용감해지라고 그랬던 건데... 내(사람의) 욕심에 개를 맞추려고, 무자비하게 그런 행동을 개에게 강요했던 것이라... 지금은 당시의 내 지나친 행동(?)에 후회도 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나를 주인이라고 길길이 뛰며... 혀로 핥고 꼬리치며 달라드는 개를 바라보면, 측은하기도 하고 연민의 정도 미안함도 느껴지는데요......
격과 이 집에 살면서,
'너를 애완용 개처럼 그렇게 애지중지 키우지는 않으리라. 나하고 살려면, 조금은 냉철하고 강해져야만 한다. 그 걸 못 맞춘다면, 너는 나와 살 자격이 없다.' 는 내 생각 대로 개를 키워왔거든요.
그랬더니 사실, 내 요구대로... 어느 정도, 개도 호응을 해주었는데요,
처음에 올 땐, 개발새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던 천방지축이던 개가, 점점 똥 오줌을 가리고...
또 아무나 보고 자주 짖지도 않으면서(이 동네의 다른 개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짖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밤에 필요할 때는 짖어주거나... 적어도 나와 함께 있을 때만은, 아무 거나 함부로 입에 대지 않는 둥... 영리함과 신통함도 보여주어, 한 편으론 자랑스럽기까지 했었는데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허, 그 놈 참 잘 생겼다."거나, "영리하게 생겼다."면서,
"나중에 새끼 낳으면, 꼭 한 마리를 팔아라." 거나, 나에게 전화를 걸 때에도... 개의 안부를 묻는 등,
이런 개를 갖고 싶어하고, 또 퍽 이뻐하고 있거든요? 게다가 새카맣게 생긴 게, 퍽 총명하게 보여서... 정이 가기도 하는 등......
그렇지만, 개가 주인을 닮아서(?) 아무나에게나 쉬 정을 주지 않아... '쌀쌀맞다'고는 하지만(여기에 오는 사람들이 개하고 친해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격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쉬 접근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앙칼지게 짖는 것도 아닌, 겉으로 보기엔... 소리 없는 순한 개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렇게 나와 익숙해져가던 개에게, 내가 너무나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일까요?
잘 관찰해 보면, 원래 겁이 많은 암캐인데, 마치 숫캐처럼 용감해지라고 물속에 집어 넣는 등... 내 눈높이에 맞추려고 했더니, 개가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다가 요 근래엔, 손님들이 와서 고기를 구워 먹는 기회가 있거나 혹시 산장에 서 밥을 먹을 때도 생선가시 등 먹다 남은 것을 싸다가 주곤 했었는데, 거기서 고기 맛을 들였는지... 그 전에 주던 식의 밥은, 입에 잘 안 대려고 하는 중이거든요?
전에는 밥을 갖다 주기만 하면 금방 싹싹 핥아먹어 그릇을 깨끗이 비워놓곤 했는데,
요 즈음에는 저녁에 주었던 밥이 다음 날 밥을 줘야할 시간까지도 남아있어서, 파리들이 꾀는 모습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을 먹지 않으면 새로운 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유도를 했더니,
아쉬운지, 그렇게 따라오는 것 같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그 전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져있는 겁니다.
힘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 한 이틀 내가 집에 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밥만 주었던 게,
용변을 보지도 못한 것에서도... 스트레스는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사람도 똥 오줌을 참고 견디기가 힘든데, 말 못하는 개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개를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라 방치해두었더니,
이래저래 개가 이전 모습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 마음도 아픕니다.
그러게, 개에게 욕심을 갖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 눈높이에 맞춘답시고, 개에게도 상처주고... 나 역시 마음이 아프니......
그렇지만요,
'어쨌거나, 내가 사는 방법에 니가 적응을 못한다면, 나는 너를 키울 수 없다. 그러니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니가 해야 할 책임은 니가 져라. 너에게만 매달려 내가 살아갈 수는 없다.' 하는 내 생각은 여전한데,
그래도 밥을 잘 안 먹고 또 힘도 없는 것 같아서... 어쩐지,
'병원에라도 데려가야 하나?' 하는 등의, 신경이 자꾸만 쓰이는 겁니다.
아무튼 전에는 없던, 개를 키우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내 사는 모습이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엊그제 서울에서 왔던 구 병태의 말이 떠올라서 하는 말입니다. 그 친구는,
"개도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한다." 고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사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게다가 구 병태는, 마당에 옮겨 심은 몇 가지 화초에 물을 주면서도,
"이 건, 꽃을 흙에 심은 게 아니고... 완전히 바위 위에 심어 놓았잖아? 이런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 하고 묻기도 하더군요.
그 때, 나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나다운(?)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아무리 식물이라지만, 내가 옮겨다 심어서 날마다 물을 주는 등의 정성을 기울이는데도 못 살아난다면... 그뿐이야." 라고.
내가 그런 꽃을 좋아해서(구절초나 도라지 또는 코스모스 등) 여기저기서 힘들여 옮겨다 심고, 날마다 정성껏 물을 주어 가꾸는데(요즘엔 비가 안 오기 때문),
'땅이 척박하다고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러라는(죽으라는) 거지요.
나는 최대한 내 성의를 보여주기는 하니까, 그들도 이 상황에 적응을 하여 살아남으라는 거지요.
굳이 비옥한 땅을 만들어주면서까지(그러니까, 내 생각으론 과잉보호나 과 영향상태로 만들어 우량종으로) 살리지는 않겠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지들 나름대로도 참고 견딜 것은, 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도 구 병태는,
"꽃도... 주인을 잘못 만나서......"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내 주장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하고 살려면, 거기에 맞춰줘야 돼......'
그런 식이지요.
좌우간 내 삶의 모습이 그런 식이니, 식물이거나 동물이거나 나와 함께 살려면... 그만큼의 고생은 각오하라는 거지요.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반대의 말을 하고 싶으니까요.
딴에는, 나도... 그들에게, 얼마나 정성을 들이는데요......
다만, '내 방식(?)' 이라는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을지는 모르지만요.
6 . 9
이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실히... 기로는 단호하고 또 냉정한 데가 있었다.
"나는 까칠한 사람이야." 하는 본인 말도 있지만, 그 행동도... 끊고 맺는 건 정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본인이 생각해도,
'그래서 좋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관대한 '너그러움'은 없는 편'인 것도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