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분화에서 범세계적 확신
확산, 내실, 권유
디카시의 국내 및 세계적 확산이 그야말로 눈부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삼남 일대를 휘돌아 전국을 석권하고 미국·중국 등 해외로 그 지평을 넓혀온 디카시 창작의 열풍이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일상성과 동시대 디지털 문화 양식에 최적화된 영상 등의 장르적 특성이 이를 부양한다. '일상의 예술'이자 '예술의의 일상'을 진작하는 새롭고 유용한 문예 형식이라 호명하는 이유다.
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확산의 규모와 더불어 창작 환경의 내면이 더 튼실하게 다져지고 있다는 점이다. '디카시'는 이미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문학용어로 등재 되었으며 여러 검정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전국 각처의 문학 행사나 문학제에서 공모전을 개최하는가 하면, 다수의 신문 및 문예지가 고정 게재란을 두고 있기도 하다. 곳곳에서 디카시 신인상이 신설되고 ‘좋은 디카시집' 시리즈가 기획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제껏 목도할 수 없었던 새 문예 장르의 대두를 말하는 것이며, 그 배면에 하나의 시대정신(Zeitgeist)이 잠복해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문예 창작의 오랜 역사적 흐름에 비추어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측면이 없지 않다. 순간포착의 영상과 촌철살인의 언술, 그리고 실시간 소통의 물결에 밀려 문학 본류의 심원한 가치를 놓쳐버리기 쉬운 것이다.
그러기에 디카시는 너무 많은 욕심을 내지 않는다. "디카시는 시가 아니다. 디카시는 디카시다"라는 언표는 바로 이 대목에 대한 경각심을 함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카시의 양적 질적 성장과 발전은, 이 운동을 추동해온 이들에게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이 일이 공여하는 즐거움과 동도(同道)의 나눔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활력 있게 이끌어줄 것이다. 그런 연유로 눈을 들어 보다 먼 문학과 예술의 지평을 바라볼 수 있다.
바야흐로 오늘의 인류는 '코로나19'의 팬데믹 재앙으로 생활 형식 전반에 걸친 변화를 감당하고 있다. 비대면 간접 소통의 문학 교류 또한 이 시대를 넘어서 하나의 패턴으로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도 디카시는 강력하고 빠르고 효율적이다. 문학의 길을 함께 가는 많은 분들에게, 또 머리맡에 작은 시집 한 권 놓아두기를 원하는 독자분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디카시에의 관심과 동참을 권유해 본다.
김종회교수의 디카시 강론 [디카시, 이렇게 읽고 쓴다] 중에서
2024. 11. 4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