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월(心月)
계 용 묵
“이애 저 그 울안에 가두운 닭 모이 좀 줘라. 그만 깜박 잊었구나.”
“건 줘서 뭘 해요?”
“뭘 하다니! 종일 굶었겠으니 오죽 배가 고프겠니?”
“아이 어머니두 ! 저녁에 잡을 걸 모인 줘서 멀 해요?”
“그래두 그렇지 않으니라. 아무리 잡을 거래두 목숨 있는 즘생이니 목숨이 있기까지야 배고픈 게 오죽 거북하겐? 왜, 그 고방 문 안에 쉬쌀이 있지?”
“아이 어머닌 벌써 네 신데―여섯 시문 뭐 제녁 칠 걸.”
“무슨 계집애가 이르는 말을 그리두 안 듣게 마련이냐! 또……?”
자꾸만 우기는 어머니의 말을 금순이는 거역할 수가 없었다.
배고플 것을 애처롭게 여길진댄, 목숨을 끊기는 더욱 애처로울 것인데 그것은 조금도 생각지 않는 것 같은 어머니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고 금순이는 생각을 하며 고방 문 안에 수수쌀 바가지를 들고 뒤꼍으로 돌아가 한 줌을 푹 퍼서 어리 위로 떨어뜨려 주었다.
우두커니 쭈그리고 앉아서 눈만 껌벅거리던 닭은 성큼 일어서 모이를 쪼아 먹는다. 몇 시간 아니 있어 목숨이 끊길 것도 모르고 그저 먹어야 살겠다는 듯
이 그냥 그냥 쪼아먹는다.
이것을 본 금순이의 마음은 까닭 없이 그 닭이 불쌍해 보였다. 사랑은 받으면서도 목숨은 빼앗겨야 한다! 그것이 닭의 목숨이다. 어머니의 엄령에 아니 받을 수 없는 닭의 운명이다. 열 마리나 되는 닭 가운데서 하필 왜 저놈이 붙들렸을까? 아버지의 생신 때문에 저놈은 죽누나! 금순이는 생각을 하며 모이를 재냥스레 쪼아먹는 닭의 주둥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허겁지겁 모이를 주워 치던 닭은 별안간 캑캑 하고 주둥이를 땅에다 쥐어박는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듯이 주둥이를 땅에다 줄줄 끌면서 어쩔 줄을 모르고
뛰로 물러 걸음을 치며 어리 안을 뱅뱅 돈다.
웬 까닭일까? 금순이는 어리를 방싯이 들고 손을 넣어 닭의 발목을 붙들어 내었다. 그리고 주둥이를 비집어 보았다. 뜻밖에도 주둥이 아래턱과 위턱 사이에 부러진 바늘 토막이 딱 모으고 서서 걸려 있었다.
고팠던 배에 가릴 여지가 없이 분주히 주위 먹다가 그만 바늘까지 겹집어 삼킨 모양이었다. 금순이는 나무 꼬치로 바늘을 걸어서 퉁기어 보았다. 꽤 깊이 박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닭은 아픈 듯이 캑캑 하고 목세를 쓰며 요동을
친다.
어떻게 해야 바늘을 바로 뽑아 낼 수 있을까, 금순은 새끼손가락을 닭의 주둥이에 들이밀어 바늘을 걸었다. 아픔을 참지 못하는 듯이 닭은 전신에 힘을 다하여 화드득 하고 깃부춤을 친다. 그 바람에 걸렸던 바늘은 얼결수에 손끝에
걸려 나왔으나 품안에 안았던 닭은 자기도 모르게 빠져나서 담 모퉁이로 비칠비칠 달아나고 있다.
아하, 닭을 놓쳤구나! 저 닭을 어떻게 붙드나? 하는 생각과 같이 그렇게도 닭의 목숨만을 애처롭게 생각하던, 그리고 걸린 바늘까지 그것도 어떻게 아프지 않게스레 하는, 그저 닭에게 향한 애처로움만으로 가득찼던 금순의 마음은 한 떼의 구름 앞에 침노를 받은 달같이 갑자기 마음이 흐리어졌다. 저 닭을 잡지 못하는 날이면 어머니한테 꾸중을, 아니 매까지 맞을지도 모르리라는 두려운 생각이 무엇보다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금순이는 아무것도 생각할 능력을 잃고, 오직 두려운 공포심에 마음이 떨릴 뿐이었다.
금순이는 멍하니 서서 달아나는 닭을 따라 눈을 쫓아 굴리며 쫓으려 달렸다.
닭은 잡히지 않으려고 뒷 울안 담을 끼고 돌며 풀포기 새로 숨었다 나왔다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한참이나 쫓아다니니 닭은 그만 기진하여 더 달리지를 못하고 위급을 피한다는 것이, 담 뜸 새에 대가리만을 들이박고 주저앉는다. 금순이는 옳다구나 하고 달려가 덮쳤다.
닭의 주둥이에서는 바늘에 받은 상처 때문에 붉은 피가 입술 가장자리로 긍정하게 비질비질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금순의 눈에는 그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과 같이 그 닭을 어머니가 모르게 어리 안에 어서 가져다 넣어 둬야 된다는 생각만이 다만 금순이로 하여금 닭의 다리를 힘있게 붙들고 있게 하였을 뿐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