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초고] '지대본위화폐' 시대를 상상한다②ㅡ탈자본을 꿈꾼 사람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 AI동료들
지난 회에서 화폐는 무엇을 담보로 삼는가를 물었다. 그런데 이 물음은 필자가 처음 던진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함께 넘어서려 한 사람들, 성장 만능주의를 의심한 사람들, 그리고 화폐 자체를 다시 물었던 사람들의 오랜 계보가 뒤에 있다. 이번 회와 다음 회는 그 계보를 짚는다.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알아야 어디로 갈지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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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한복판에서 제3의 길을 묻다
인도의 사상가 P.R. 사카르(1921~1990)가 1959년 제창한 프라우트(PROUT, Progressive Utilization Theory, 진보적 활용이론)는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려 한 사회경제 이론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나왔음에도, 오늘날 논의되는 협동조합 경제와 분권화, 생태경제, 기본생활 보장 같은 문제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제기했다는 점에서 되짚어볼 가치가 있다.
핵심 원리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자원의 최대 활용과 합리적 분배다. 둘째, 핵심 산업은 공공이 운영하고 중간 규모 산업은 협동조합이 담당하며 소규모 경제활동은 민간이 수행하는 다층적 경제구조다. 셋째, 과도한 부의 집중은 억제하되 개인의 능력과 기여에 따른 차등 보상은 인정한다. 넷째, 경제와 정치 권력을 지역사회로 분산한다. 다섯째,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경제 원리 안에 포함한다.
특히 "최소한의 필요는 모든 사람의 권리"라는 사카르의 명제는 오늘의 기본생활 보장이나 기본소득 논의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기본소득 사상 자체는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프라우트 역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경제체제의 필요성을 일찍부터 제기한 사례다.
사카르의 영향을 받은 경제학자 라비 바트라는 이 문제의식을 현대 경제학의 언어로 옮기려 했다. 그는 불평등이 심해져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가 벌어지면 소비 수요가 위축되고 결국 경기침체가 온다고 주장했고, 소련 체제의 위기와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경고해 주목받았다. 다만 그가 내놓은 일부 예측은 실제 역사와 어긋났고, 학계에서는 그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사카르가 던진 물음이 반세기가 지나 여러 경제사상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반세기 후의 재발견
케이트 레이워스가 제안한 도넛경제학은 사회적 기초와 생태적 한계 사이의 안전한 공간에서 인류가 번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도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자원을 박탈당하지 않으면서 지구 생태계도 파괴하지 않는 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다.
웰빙경제는 국내총생산 성장 자체보다 삶의 질과 사회적 행복을 중심에 두려는 흐름이다. 스코틀랜드와 뉴질랜드,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이 국가 정책 평가에 웰빙 지표를 적극 활용하는 실험을 이어왔다.
탈성장론은 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근본에서 비판한다. 자원과 생태계가 유한한 세계에서 끝없는 성장을 좇는 것은 결국 환경적·사회적 파국을 부른다는 문제의식이다.
세 흐름은 모두 기존 경제체제의 한계를 정확히 짚는다. 불평등의 심화, 성장 만능주의, 생태계 파괴, 삶의 질 저하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덜 다뤄진 영역이 하나 있다. 화폐와 금융체제 자체의 구조다. 물론 도넛경제학이나 탈성장론 안에도 공공화폐와 지역화폐, 공공은행 논의가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설명할 통합적 화폐체계의 모델이 합의된 단계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길은 화폐로 이어진다
지난 회에서 피아트화폐가 실물의 사용가치보다 무형의 신뢰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여기서는 그 체제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조금 더 들여다보자.
첫째, 오늘날 화폐의 상당 부분은 민간은행의 대출 과정에서 창조된다. 영란은행이 2014년 설명했듯이, 현대의 은행은 기존 예금을 중개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출을 통해 새로운 예금을 만들어내는 기관이다. 돈이 있어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주면서 돈이 생긴다.
둘째, 통화량 증가에 따른 장기적인 화폐가치 하락이다. 인플레이션은 경제활동에 일정 부분 필요하지만, 지속적인 가치 하락은 자산을 가진 쪽과 갖지 못한 쪽의 격차를 벌린다.
셋째, 금융자산과 부동산 중심의 자산가격 상승이 부의 집중을 심화시킨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얽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자본주의 비판도, 생태경제 논의도, 결국 화폐체계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분배를 아무리 손질해도 화폐가 만들어지는 입구에서 이미 기울어져 있다면 그 기울기는 되돌아온다.
세 사람, 세 갈래
화폐를 다시 물었던 사람들 가운데 이 연재와 특히 가까운 세 사람을 짚어둔다.
헨리 조지는 토지 가치 상승의 상당 부분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발전과 공공투자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사회가 환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것이 곧바로 토지가격을 영으로 만들거나 투기를 완전히 없앤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토지 불로소득을 크게 줄이고 토지 이용의 효율을 높일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실비오 게젤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다. 1932년 오스트리아의 뵈르글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치가 줄어드는 지역화폐가 실험적으로 쓰였다. 사람들은 화폐를 쌓아두기보다 빨리 쓰려 했고 지역경제는 한동안 활기를 얻었다. 이 실험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끝났고 전해지는 수치와 효과에는 논란도 있다. 그러나 화폐가 저장수단이 아니라 순환수단으로 기능할 때 경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으면 부가 점점 더 집중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목한 문제는 토지뿐 아니라 금융자산과 기업 지분, 상속자산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축적 메커니즘이다.
여기서 세 사람이 겨냥한 지점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조지는 화폐가 무엇을 근거로 태어나는가, 곧 담보를 겨냥했다. 게젤은 태어난 화폐가 어떻게 도는가, 곧 유통속도를 겨냥했다. 피케티는 쌓인 부를 어떻게 되돌릴 것인가, 곧 재분배를 겨냥했다. 셋은 배타적이지 않고 오히려 결합할 수 있다. 다만 이 연재는 조지 쪽 경로를 따라간다. 담보를 바꾸지 않으면 유통속도를 조절해도, 쌓인 뒤에 재분배해도, 같은 기울기가 되풀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색에서 설계로
지대본위화폐는 아직 검증된 경제체제가 아니다. 실제로 운영해본 나라도 없다. 그러니 그것은 하나의 가설이고 사상적 실험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그렇게 여겨왔다.
그런데 사색을 이어가는 동안 어느 지점에서 물음이 바뀌었다. 지대본위화폐가 가능한가에서, 그것 말고 다른 답이 있는가로. 화폐의 기준이 될 만한 후보들을 하나씩 따져볼수록, 조작하기 어렵고 어디에나 있으며 해마다 새로 확인되는 실물의 흐름이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달리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연재는 가설을 설계로 옮겨보려 한다. 다음 회에서는 화폐의 담보를 에너지에서 찾으려 했던 또 하나의 계보를 살펴본다. 포드와 풀러에서 오늘의 블록체인 실험에 이르는 흐름인데, 그들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닻의 자리는 왜 달리 잡아야 하는지를 함께 짚을 것이다.
이어서 중국과 유럽의 내력을 통해 화폐의 담보가 어긋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하고, 그 위에서 지구촌 차원의 기구를 구상한 뒤, 나라별로 이 기준이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하나씩 따져볼 참이다.
역사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프라우트가 던진 질문도, 도넛경제학의 경고도, 탈성장론의 문제의식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가설도 설계도를 가질 자격은 있다고 믿는다.
참고로 프라우트에 대해 최근에 쓴 필자의 글을 소개한다.
프라우트에서 지대본위화폐까지 — 탈자본을 사색하기 : 돈經濟 | PUM 지금
첫댓글 http://www.hani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