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장편소설, 예담, 2009년 발행
이 책은 현재 53쇄를 찍을 정도로 베스트셀러이고 스터디셀러이다.
우리가 예쁜 여성에게 우선 눈이 가고 좋은 인상을 받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인간의 미덕 중에 眞善美가 있듯이 예쁜 여성에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 타고 난 것이어서 어떻게 후천적으로 따라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데에 있다. 누구나 큰 키에 균형잡힌 몸매, 아름답고 얼굴을 가지고 싶지만 어차피 미인의 상당부분은 타고 나는 것인데 예쁘게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이렇게 자기의 노력에 관계없이 타고난 미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예쁜 여성에게 온갖 이익과 프레미엄과 찬사와 좋은 대우를 해 주는데, 못생긴 여성은 어디서든 대우받기 힘들다. 불공평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땅의 여성들은 (남성들도 어느 정도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서로 차별화하면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면서 서로를 맘속으로 공격해대고 있다.
이 책은 그런 못 생긴 여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 박민규가 언급했듯이 아마도 이것은 우리나라 문학 사상 처음일 것 같다. 모든 것이 아름다운 여성위주로 흘러가니 못생긴 여성은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에서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 이 소설은 못생긴 여성을 소재로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박민규의 미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박민규는 그 전에 표절의 시비가 있었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그 책의 소재도 항상 패배하는 불쌍한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이었다. 그렇게 박민규는 휴머니스트이다. 약자와 못난 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나 이런 미덕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휴머니스트가 되고 싶은 내가 박민규를 최고를 추켜세우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자질도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것이리라!!
이 책이 주 무대는 화려한 백화점이다. 그래서 그녀의 못생긴 면이 더욱 돋보이는데 박민규는 이 책에서 외모지상주의 뿐만 아니라 현세태의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적인 면을 비판하려 했다. 백화점이 계속되는 바겐세일을 하는 것이 서로 알면서 속이고 속는 뻔한 게임인데도 자본주의는 이런 욕망들과 그 욕망을 부추기는 시스템에 의하여 견인되고 있다. 모든 인간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적인 그러한 욕망들에 사로잡혀 있다.
이 작품은 또한 감각적이다. 우리보다는 10살 정도 젊지만 그래도 50살 정도가 된 작가임에도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톡톡 튀는 감각을 구비하고 있고 구성도 문체도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현란하면서도 파격적이면서도 잘 받아들여진다.
이 소설은 결국은 청춘들의 사랑이야기이다. 누군가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주기에는 아깝다’고 했는데, 이리저리로 휩쓸릴 수밖에 없는 19~20살의 젊은이들의 사랑과 방황은 나이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들에게는 나름 뜨겁고 진지한 것이고 그러한 청춘의 방황과 사랑이 무르익어 결국은 나중의 인생에 밑거름이 되겠지! 여하튼 나에게는 최고의 소설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감각적인 묘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것들을 일부만 거론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內面은 코끼리보다 훨씬 큰 것이고, 인간은 결국 서로의 일부를 더듬는 소경일 뿐이다” 45쪽.
“이런저런 고민들을 늘어놓고는 마치 해답처럼 한 잔 더요!를 외치던 술자리였다.” 62쪽
“사람을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놓고는, 또 갑자기 숨쉬기 운동 시~작 하는 느낌으로 풀어주는 능력을 요한은 가지고 있었다.” 107쪽
“정말이지 자정 무렵엔 간단한 인수분해라도 무리 없이 풀 수 있을 만큼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146쪽.
“어린아이처럼 놀이터의 그늘에 앉아 있던 봄볕과... 그 포근한 등을 살짝살짝 떠밀던 소심한 바람을... 나는 보았다.” 292쪽.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그녀는 못생긴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서울여상(?)을 나올 정도로 공부도 잘 했고 지식도 교양도 풍부하여 나와 요한과 3명이 대화를 나누어도 죽이 잘 맞았는데, 문제는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게으르고 교양도 없는 그 많은 그녀들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그런 여성은 소설의 소재로 나오기가 힘들겠지? 아마도 악역은 모르겠다.
또 쓸데없는 생각. 그날 얘기 되었듯이, 그녀는 그래도 키라도 컸었거나, 아니면 몸매는 쫌 되지 않았겠는가?? 뭔가 나와 요한이 이끌릴만한 외적인 매력이 혹시 있지 않았겠는가?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