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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현 형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카톡 방에 올렸을 때, 나는 이미 선운사에 도착해 있었다. 이날따라 웬일로 카톡 방은 조용하기만 했다.
하늘이 참 고운 날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차츰 미명이 밝아지며 창 너머로 보이는 천장산 능선 위로 맑은 감빛으로 피어오르는 여명과 그 위로 밝아진 하늘이 너무나 깨끗해서 마음속까지 다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6시가 되어 출발할 때까지 아직 나는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은 벌써 며칠 전부터 이 산행을 떠 올릴 때마다 한 고민이었는데, 별 건 아니고 고속버스를 이용할까 나의 길벗과 함께 할까 하는 그것이었다. 거리도 멀고 비용도, 혼자 가는 것이라면 고속버스가 훨씬 경제적이고 편한 것이었으나 툭하면 닳아버리는 휴대폰의 충전도 그렇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길벗이 바뀌었다. 흔히들 애마라 부르고 나도 한 때 내 차를 애마라 불렀는데 이젠 길벗이 더 어울리는 말이 되었다. 내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날 때, 늘 함께 하는 존재는 바로 이 차이기 때문이다. 지난 18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와 함께 한 나의 정든 길벗은 얼마 전 폐차를 했다. 아직 더 함께 할 수 있는 성능이었는데 얼결에 그리되어버렸다. 새 길벗은 이제 조금 나와 호흡을 맞추어가기 시작한 것이지만 아직, 고속도로를 함께 달려보지 못했다.
글쎄, 모르겠다. 어쩌면 혼자 하는 여행이 외로워 음악을 들려주고 길 위를 교감하는 느낌의 차가 내게는 길벗이 되었는지.... 그 차 안에서 나는 참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정리야말로 내게는 시세 말로 힐링인 것이다.
하여튼 결론은 역시나 내 길벗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고속도로 주변엔 이제 억새들이 한창이다. 가는 곳마다 무리지어 길게 늘어서서는 갸냘퍼 보이는 몸짓을 한다. 그 억새들이 햇빛에 반짝거리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순한 투명함으로 옅게 푸른 하늘과 이제 가을로 들어서 탈색이 시작된 초록이 잘 어울리고 거기에 반짝거리며 무리지어 흔들리는 억새가 보기 좋다.
꽤나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길은 온통 막혀있다.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 맑은 날 모두 다 길로 나선 듯한 느낌이다.
출근을 할 사람이, 조금 더 자면 좋겠건만 굳이 내가 일어난 시간에 따라 일어나 -사실은 나보다 일찍 일어나려고 맞춰 놓은 벨을 고단한 아내를 위해 내가 꺼놨었다- 내가 씻는 동안 행여 늦을 새라 아내는 부지런히 김밥을 말았다. 산을 찾을 때, 먹을 것은 오히려 귀찮아하는 나는 그 김밥 두 줄과 새로 내린 커피와 물만 챙겼을 뿐인데, 아내는 가면서 먹으라며 작은 도시락에 따로 김밥 한 줄을 더 챙겨 주었다.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막상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속이 쓰려왔고 그것은 시장기를 느낀 위장의 신호였다. 통상은 고비를 넘기면 그런 증상은 사라지는 것이지만 이 날은 아내의 김밥으로 속 쓰림을 달랬다.
혼자 선운사로 간다. 아직 조금 이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나마 이미 꽃들은 피었을 것이다. 다음 주는 연극팀 ‘언젠가는’의 모임이 있어 불가하고, 그 다음 주는 추석이다. 추석에 먼 길을 간다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아닌가!
봄은 동백, 이처럼 가을에 들어설 무렵의 선운사는 꽃무릇이 좋다고 한다. 몇 번의 방문 끝에 동백과는 어지간히 인사했고, 이제 꽃무릇을 만나려 한다. 선운사 앞으로 흐르는 내는 늘 보기 좋고 특히나 오래 된 단풍나무들은 가을이 익어 피워내는 붉은 단풍도 일품이지만 여름에 이루는 터널 같은 숲도 좋은데, 지금 철은 그 여름의 아직 남은 숲과 꽃무릇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분명 조금 이르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번 아예 성질 급한 한 두 송이만 만날 수 있었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흔히들 상사화라 한다. 서로 그리는 꽃, 그리워 하지만 잎과 꽃이 영원히 함께 하지는 못하는 꽃이다. 그것은 뜻 자체로 보아 무척 애잔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토종의 상사화는 노란 것이다. 이곳 선운사의 꽃무릇 혹은 석화라 부르는 이 꽃은 원래 일본이 원산이란다. 그것을 알고는 조금 실망하기도 했으나 꽃의 아름다움에 국적이 관여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이 아닐까 여기며 꽃무릇을 찾는다. 다른 한 곳은 영광의 불갑사가 또 유명하고 토종의 노란 상사화는 변산의 마실길이 유명하다. 꽃무릇도 그런 줄은 모르겠지만 변산의 토종 노란 색깔의 상사화는 꽃송이가 지지 않는단다. 피어난 자리에 그대로 말라 결국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그대로 있다고 한다. 사실은 이 또한 고민이었다. 차라리 행선지를 마실길로 바꿔? 그렇지만 선운사다. 내게는 선운사라는 것이 더 중요했다.
20년이나 넘게 마음에 그리다 몇 년 전부터 드디어 선운사 출입을 시작했다. 선운사는 서정주의 시처럼 이거나 송창식의 노래처럼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런 시들 만큼 내 마음에는 또 내 나름대로의 깊은 정서를 심어주었다. 비록 먼 길이지만 시간만 있다면 언제라도 찾아 가고 싶은 곳, 그것은 20년이나 넘게 그린 마음이 거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가니 마음은 이제 든든히 뿌리내린 듯하다. 어지간한 바람에도 끄떡없을 만큼, 선운사 절 마당에 자란 붉은 꽃의 배롱나무처럼 마음은 그렇게 훌쩍 자라있었다. 그것을 바라보자니 든든하다. 그래서 그랬었구나!
보통 선운사를 찾을 때 느끼는, 뭐랄까? 어딘가 먹먹하고 어쩐지 아린 것처럼 느껴지는 느낌이 이 날은 없었다. 그저 어서 이 절 마당을 확인하고, 또 꽃무릇을 만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처음 함께 고속도로로 나온 내 길벗과 잠시 무리한 주행을 시험했다. 길이 조금 한가해지자 속도계에 표시 되어있는 끝 까지 속도를 내 보았다. 시속 240Km.... 굽은 길에서도 녀석은 무리 없이 달린다. 조용한 가운데 흔들림도 없고 힘도 좋다. 그렇게 수 분을 달렸다. 어지간히 속도를 내며 보이지도 않게 앞 서 가던 차들이 순식간에 내 길벗의 뒤로 쳐지며 꾸물거린다. 정말 바람처럼 달려가는, 속도는 거의 무리가 없다. 다시 속도를 줄인 뒤 녀석과 나는 이제 진정한 느낌을 나누게 된 것 같다. 수동이 아니어서 섬세한 맛은 없지만 지난 몇 번의 동행도 있고, 나름대로 이제 나와는 어지간히 호흡을 맞추고 교감도 형성된 것 같다.
충청도나 벗어났을까 싶은 그 때부터 눈앞에 놓여 진 풍경이 다르다. 구릉 같은 얕은 산들이 잇대어 있고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넓은 하늘을 보여준다. 하늘의 빛깔은 물론이고 그 빛깔을 나눈 산의 능선이 그려 내는 맵시가 곱다. 참 곱다. 보선이고 저고리고 처마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문화는 선을 뽑아내는 데 많은 정성을 쏟았다. 그 선들은 어쩌면 바로 이 풍경을 보고 따 온 것이 아닐까 여겨질 만큼 아름답다. 수시로 만나는 풍류 같은 소나무들이 그 고운 선 위에 해학처럼 서 있고, 그 아래로는 무덤....
군산을 지나고 드디어 지평을 드러내는 벌, 김제. 유일하게 툭 트인 공간. 보이는 세상에 막힘이 없다.
주차장에 길벗을 쉬게 두고, 막 신발을 갈아 신었을 때 광현 형은 도착했다는 선언을 공지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슬프지 않았다. 붉은 꽃무릇은 꽃이 잎을 만나지는 못해도 그런 꽃송이끼리 서로 기대어 자라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 깊은 슬픔을 서로가 이해해 나누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상한 대로 조금 일러 붉은 바다처럼 펼쳐진 장관을 보지는 못했지만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 군락을 보고서는 이처럼 서로 기대어 나누며 자라는 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슬퍼도 피어날 수 있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운 것들끼리 서로 나누어 기대는....
차라리 다행이다. 눈이 예쁜 미인의 속눈썹처럼 기나 긴 꽃술이 가녀린, 이 붉은 꽃들이 바다처럼 온 들에 다 피어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털썩 주저앉아 통곡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지 붉은 꽃물결 하나지만 그것은 얼마나 커다란 회한처럼 느껴졌을 것인가!
초입부터 그렇게 피어있는 꽃무릇을 보고 슬픔보다는 위안을 느끼며 선운사를 향해 간다. 탁한 목소리로 육자배기를 부르는 주모는 비록 없지만 복분자 원액과 이런저런 먹거리를 파느라 목 쉰 여인네는 흔한, 이제 누릇하게 말라가는 벚꽃나무 터널을 지나 선운사로 간다. 오랜만에 만나는 내는 쉼 없이 반대로 흐르며 도란거리고 그리워 붉어진 꽃무릇은 내를 따라 천지여서 아쉬울 것이 없었다. 걷는 내내 지천이 꽃무릇이다.
선운사 절마당에 들러 잠시 훌쩍 자란 내 마음을 만나고, 그리 깊게 뿌리내려 이제 흔들림 없을 내 마음을 확인 한 후, 다시 내를 따라 도솔암으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차가 다니는 넓은 길을 비켜 그 건너편의 산길을 택했다. 일전에 꽃무릇을 바라고 왔었을 때 걸었던 바로 그 길이다. 산행로라 말하기는 부끄러운 길이지만 잦은 돌길이 제 깐에는 험한 길이다. 도솔암에 닿고, 이제부터 거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초입, 기와가 씌워진 비탈의 돌담 앞에 이르렀을 때 또 한 무리의 꽃무릇. 이 곳은 제법 무리를 지어 피었다.
일단은 낙조대까지 한 숨에 오른다. 사람이 너무 많고 그 많은 무리의 사람들은 무슨무슨 산악회, 산악회 들이다. 주로 전라도 말씨를 쓰는 사람들이고 가끔은 충청도 말투의 무리도 있다. 선운사를 찾은 어느 때보다 사람들이 많아 걸리적거리기까지 했다. 그저 혼자인 나는 그 막힘 많은 산길을 묵묵히 걷는다. 사선으로 깎아지른 바위 밑으로 돌탑들이 소망으로 쌓여있고, 산죽나무 숲 사이로 꽃무릇이 또 피어있고 예쁜 산길을 잠시 걷노라니 또 벌써 천마봉 그리고 낙조대. 그 길은 너무나 짧아 마치 과거처럼 느껴진다. 지나온 삶이란 단 한 순간에 다 기억나지 않는 가! 건너편에 지난 번 아내와 함께 넘은 사자바위가 보이고, 반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자바위 또한 범상치 않다.
낙조대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김밥을 먹었다. 아내는 두 줄을 싸 주었는데 그 중 한 줄만 먹었다. 그 한 줄로 시장기를 지우기에는 충분했다. 그곳에 앉아 잠시동안 먼 산들을 바라보고, 보기에는 꽤나 먼 것처럼 느껴지는 선운사를 또 보고, 바로 아래에는 도솔암이 보인다. 바람이 딱 알맞게 불어주고 있었고 그러나 마음은 이제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그 때 시간은 겨우 열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 길은 너무 막혔다. 여러 샛길로 돌아 봤지만 결국 더 빠르게 귀가하지는 못했다. 혼자 간 것이어서 뒤풀이는 없었고, 돌아오는 중 저녁에 술 한 잔하자는 제의에 사 들고 들어 간 소주와 맥주를 아들과 함께 마신 것이 뒤풀이라면 뒤풀이...
첫댓글 선운산이 어디지요?? 충청도??^^;; 등산후에 운전, 힘들진 않은가요??
새로운 길벗이라~~~ 네비아가씨인줄요^^ 저도 혼자산행을 하고 싶긴한데... 좀 외롭진 않을지.. 무섭진 않을지.. 그래서....ㅎㅎㅎㅎ
전라도 고창에 있어~^^
막상 다녀보면 또 그나름의 재미가 있지~
언제 함 용기를 내 봐~ㅎ
선배님..어깨랑 다리는 좀 어떠세요??
김밤 먹고싶어요..ㅎㅎ 그리고 은림아~ 산이는 절때루다가 혼자가면 안 도ㅑ
특히 은림이처럼 이쁘고 쪼꼬만 아줌마는 산할아버지가 압어간당께...
에거~ 요즘 내가 쬐끔 바쁜척 허니라궁~ ㅎ
다리는 게안코~ 어깨는 스트레칭이 필요한 상태~^^
근디 화영아~ 요즘 산에 호랭이 엄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