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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빗속에서 3박 4일 일본 여행을 같이 했던 신회장(85세)께서 7.12부터 2박 3일간 대마도 여행을 가자고 하신다. 지난 여행에 동행했던 회장님 사돈 김사장님(77세)의 아들이 대마도에서 횟짐을 하는데 모두 섭섭잖은 여행이 될 것이란다. 회장님 말씀이 이러 하니 우리 일행 모두는 군말없이 복종이다. 우선 대마도 여행경비 기구당 100만원을 회장님이 알려주신 계좌(알고 보니 사돈 아들의 계좌였음)로 송금하고 출국날만 가다렸다.
대마도 여행은 09:00 부산국세선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하는데 오전 7시까지는 터미널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마쳐야 한단다. 박사장, 이사장(각 71세)이 부산 구경을 한지도 오래 되었다하여 7. 11 오전 9시 서울발 KTX타고 부산에 내려가 오후시간 부산관광을 마치고 일박을 한 후 대마도를 떠나기로 하였다. 기차 예약, 부산 관광계획, 호텔예약 이런 건 모두 가장 젊은 우리집 몫이다. 아내와 함께 한 달전 부터 부지런히 예약들을 다 해 놓았는데 날씨가 영 걱정이다. 한동안 가물다가 여행 출발을 한 주일 앞두고 큰 비가 내리고 예보를 보아도 여행기간동안 남쪽 지방에 장마전선이 오락가락한다.
평소에 나쁜 짓을 많이 안았으면 하늘이 도우리라 믿고 7. 11.(수) 오전 8시 조금 전 집을 나서 철산리행 3번 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갔다. 광명역에는 이미 신회장님 부부가 도착해 계셨다. 9시 16분 도착한 기차에 오르니 서울역에서 승차한 이사장, 박사장 부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여덟 자리가 함께 붙은 가족석을 예약했었다. 그러면 1인당 53천원하는 서울~부산 편도요금을 33,250원 정도로 줄일 수 있어 경로우대보다 월씬 싼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고 또 일행이 자리를 함께 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 좋다.
잠시 조는 사이에 2시간 여가 지나고 기차는 계획대로 11:40 부산역에 도착하였다. 역 밖으로 나오니 굵은 빗방울이 자욱한 가운데 처가 예약한 부산시내관광 여행사의 15인승 벤츠마크 버스와 기사 겸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기사 말이 우천 관계로 충분한 관광은 불가능하나 성심껏 모시겠다고 한다. 밥부터 먹자고 하니 영도 태종데 관광이 시작되는 입구로 안내하였다. 바닷가에 욌으니 생선 집으로 가서 생선구이, 생선조림, 해물탕과 소주 3병으로 입가심부터 하며 점심을 맛있게 끝냈다. 가격은 109천원, 술 포함 1인당 만원을 조금 넘으니 부담도 적다. 2~3년부터 신회장님의 주량이 좀 줄어 1인 1병이 잘 안된다. 태종대는 자동차로는 못 올라가고 셔틀버스가 돌면서 뷰포인터마다 내려 구경을 하다가 10분도 안 되어 오는 다음 셔틀버스를 타고 구경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는데 이 날같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관광객도 없고 셔틀버스도 운행을 않는단다.
식사를 끝낸 일행은 관광버스를 타고 우선 얼마 전 영도에 개관한 부산해양박물관으로 향했다. 넓은 부지에 3층의 전시관과 옥상공원까지 갗춘 돈 좀 들인 시설인대 규모에 비해 전시물이 빈약했다. 앞으로 내용이 더 충실해야 할 것 같다. 와관은 비 탓으로 찍지 못하고 내부만 몇 컷 찍어보았다. 사진 솜씨가 시원찮아 본 것을 잘 표현 못하는 것 같다.
삼층 중앙에 베니스의 곤돌라를 배치해 두었는대 한국해양박불관에 왜 베니스와 곤돌라가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수족관을 혜임치는 고기들의 모습,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코너다.
대한민국 주변의 해류 등을 설명하는 조형물, IT기술을 이용하여 전달내용이 수시로 바뀌도록 하고 있다.
1977. 3. 13. 제1회 해운의날을 맞이하여 박정희대통령께서 쓰신 친필 휘호, 이 박물관 전시물 중에서 제일 감명깊게 본 작품이며 가장 값진 소장품이 아닌가 한다. 그 밖에 조선의 배 모형 등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대충 둘러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는 영도를 빠려나와 부둣가 도로를 달려 다음으로 다달은 곳은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 자리잡은 유엔묘지공원이다. 정문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묘지공원 정문으로 들어서니 양 쪽에 서 있던 젊은 헌병이 절도있는 자세로 거수경례를 해 준다. 언제 받아봤던 거수경례던가. 수고하십니다로 대답은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공원은 잘 다듬은 향나무 등으로 둘레를 꾸미고 잔디와 묘석, 그리고 묘지석마다 정돈된 관엽수와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
유엔공원묘지는 1951년 유앤군사령관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1955년 유엔총회에서 국제연합기념묘지로 지정한 세계유일의 유엔묘지로 처음에는 미국, 영국 등 참전 16개국의 1만 1천 여기의 묘소가 있었으나 대부분 본국으로 송환되고 지금은 캐나다. 네델란드, 호주, 콩고 등 11개국 2,293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한다. 유엔묘지공원은 한국인 뿐만 아니라 참전국 국민등 내외국인 30여만 명이 찾는 부산시 관광명소의 하나이기도 하단다.
이 땅에 살면서도 처음으로 유엔묘지를 찾게 됨을 다소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자유수호를 위해 공산도당의 침략에 대항하여 이국의 땅에서 고귀한 목숨을 바친 이들의 명복을 빌며 우중이라 동선의 제약이 있어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몇 장의 사진을 올려본다.
다음은 인천대교의 준공으로 한국 최장의 다리라는 기록을 잃은 광안대교를 지나 해운대 동백섬에 위치한 누리마루 APEC 회의장으로 향했다. 이 건물은 2005. 11. 18~19 양일간 열린 제13차 APEC정상회의 개최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건축한 건물로 역대 회의장소중 주변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한다. 역시 우천중이라 사진이 시원찮다. 하기야 날씨가 맑아도 다리도 시원찮고 하니 포인트찾아 헤메면서 좋은 사진 찍을 재주도 없겠지만,
정싱회담이 열린 누리마루 회의장소 내부
내부에서 바라본 등내방향, 역시 비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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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서 한 컷, 여기는 그래도 좀 낫다.
다음은 해운대 달맞이고개를 넘어 기장에 있는 용궁사라는 절을 가기로 했다. 백팔계단을 내려갔다 올라와야 된다기에 신회장님 부부와 관절염이 있는 나는 차에 남고 나머지 다섯 명만 갔다 오기로 했다. 마침 비도 좀 그치자 기사 말이 조금 내려가면 12지신상도 있고 볼 거리도 좀 있으니 엔진을 꺼서 답답한 차 안에 있느니 산책삼아 조금 걸으시면 어떠냐 한다. 입구의 표지와 탑 등민 구경했다.
용궁사 관광을 마치니 시간도 오후 다섯시가 가까워온다. 되돌아갈 여정도 길어 이로서 부산 관광을 마치기로 했다. 저녁은 자갈치시장에서 회로 하겠다니 기사가 숙소인 부산역 앞 토요코인에 가서 체크인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시장까지 데려다 주겠다한다. 마침 이종사촌이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고 그 2층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다기에 이왕이면 아는 사람 것을 팔아주기로 했다. 자갈치시장에 도착하여 광어와 민어 5.5킬로를 20만원에 사고 바닷장어 두마리와 멍게, 서더리탕에 추가할 조개는 서비스로 얻은 후 기사와 혜어졌다.
부산 오후 관광은 15만원에 계약했으나 젊은 사람이 성심껏 안내해준 고마움에 2만원을 더 얹어 주었다. 다음은 2층 서울횟집에서 올라가 회와 장어구이, 멍게, 서더리탕 등과 소주 여섯 병을 비우고 숙소인 토요코인 호텔로 향했다. 저녁 먹는 모습을 한 컷 짝었다.
오전 7시에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에서 여행사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기에 여섯시 반 호텔 로비에 일행이 모여 택시로 터미널까지 갔다. 부산역 앞에서 터미널 까지는 택시로 10분도 안 걸렸다. 역에는 어젯밤 내려오신 신회장님의 사돈 김사장(77세) 부부도 와 계셨다. 신회장님의 큰 아들이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하다가 지금은 분당 신회장님 회사 아랫층에서 영업중인데 그 부인이 김사장님의 큰 딸이란다. 터미널 내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하고 일행 열명은 출국수속을 마치고 8시 40분경 배에 올랐고 배는 아침 9시 정각에 부산항을 출발했다.
배는 KOBEE 라는 약 200여명이 탈 수 있는 쾌속선인데 부산~이즈하라를 1시간 55분에 달린다한다. 다음은 이즈하라 항에서 찍은 코비호의 모습이다.
배는 정확히 10시 55분 대마도의 이즈하라(熊原)항에 도착했고 입국수속이 끝나고 나오니 3박 3일동안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 겸 기사 신우진씨가 35인승 버스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이즈하라는 대마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시청, 경찰서, 법원, 검찰청 등이 있고 대마번주와 덕혜옹주의 유적도 있는 마을이다 일행은 우선 버스를 타고 좁은 산길을 돌아 가미자카 공원(上見坂公園) 전망대에 올랐다. 이 곳은 1246년 치쿠젠에서 온 고레무네 시게나오의 군세가 당시 대마도의 통지자 아비루씨를 여기서 물리치고 소(宗)씨가 대바도의 번주로 자리잡았다는 전설이 있다한다. 다행히 날이 개어 관광에 지장이 없었으나 바다에는 안개로 시야가 넓지는 안았다. 일행 중 흰 수건을 목에 두르고 100킬로가 넘는 젊은이가 가이드 신우진씨다. 신우진씨는 신회장 사돈 아들과 친구로서 우리 일행이 누구인지 잘 알기에 아들처럼 친절이 안내해주는 동시에 팁이나 기타 비용도 일체 없는 것이 이번 여행의 특징이다.
다음은 이 공원에 자리잡은 덕혜옹주의 남편이자 마지막 대마번주의 아들인 소오다케유키(宗武志)의 시와 대마도를 중심으로 지구를 그린 비석이다.
공원에서 내려온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을 들렸다. 메뉴는 메밀소바인데 얼마든지 추가로 들어도 좋단다. 나와 처는 한 판을 더 시켜 갈라먹었다. 식당 입구는 찍었으나 내부는 먹기에 바빠 찍지 못했다. 진귀한 음식을 많이 먹었는데 여행 내내 그랬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남으로 남으로 차를 몰아 대마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미기산 자연공원 내 쓰스자키라는 곳으로 향했다. 마다 멀리 보이는 등대는 백년도 넘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언덕위에 등대를 새로 세워 사용한다고 한다. 이 곳은 동쪽 쓰시마해협을 흘러운 물과 서쪽 대한해협을 흘러운 물이 서로 만나 자년스럽게 파도를 이룬다한다. 등대가 있는 바다사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쓰스자키까지는 원형으로 바다와 절벽을 끼고 원형으로 돌도록 되어 있다.
미기산 자연공원 안내도(일본식 호칭을 잊었다)
쓰스자키 전망대의 경위도 표지석
해무 탓으로 선명하지는 못하지만 멀리 옛날 등대와 양 해류가 마주쳐 일어나는 포말이 보인다
전망대 끝에서
전망대 밑은 아득한 절벽이다.
전망대를 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대마도 제일 남단 전망대 광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북으로 방향을 돌려 섬속의 심산유곡 은어가 돌아온다는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에 도착했다. 출렁다리 아래 수백 미터의 단일 암반이 계속되고 맑고 찬 물이 흘러 일행 모두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며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겼다.
공원 표지석
암반과 계곡물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의 계곡에서 잠시 더위를 식힌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다 보니 시간도 어느듯 4시가 다 되어간다. 기사 겸 가이드는 노인네들의 체력도 생각해서 한 시간 정도 온천욕을 즐기면 어떠냐고 묻는다. 물이 좋고 시설이 좀 후진 온천과 물은 보통이고 시설이 좋은 온천이 있단다. 다들 시설 좋은 온천으로 가자고 한다. 그런데 이 곳 온천은 비누는 제공되는데 수건은 안 준단다. 다들 수건이 없다. 그래서 가이드가 1인당 1장씩 렌트를 헤서 나누어준다. 다음은 온천장 입구 사진이다. 우리 일행 말고도 다른 관광차도 보인다.
대마도는 토지의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도로도 굴곡이 심하고 좁은데다 좌측통행이다보니 앞에서 오는 차와 곧장 부닫칠것 같아 아슬아슬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와 통행방향이 달라 처음 차를 모든 사람은 렌트를 했다가도 운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천천히 차를 몰아 이즈하라 근처 신회장 아들이 하는 민박집인 숙소로 행했다. 김사장 아들은 좋은 집안에 태어나 좋은 대학을 나온 46세의 잘 생긴 젊은이로 25년간 일본에서 대학교수르르 지내신 신회장이 주례를 서기도 했다한다. 그러나 낚시가 취미라 부인이 딸의 교육을 위하여 띨과 함께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시기 직장을 그만두고 일본에 와서 친구와 함께 낙시꾼 안내를 위주로 한 민박사업을 했는데 최근 의견차이로 헤어져 좀 작은 규모의 집을 사서 사업을 계속한다고 한다. 대마도에 머문 지는 9년이 좀 넘었고 대학시절 국제낙시대회 입상한 적도 있으며 4미터가 넘는 상어를 잡아본 적도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민박을 하기 위하여는 여관면허는 물론 식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조리사 면허도 필요하고 낙시군 안내를 위한 면허증 자격증도 많이 필요한데 모두 땃다고 한다. 부모로서는 평범하게 잘 살기를 바라지만 사람마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워낙 취미에 몰두하다보니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조용한 바닷가 포구 안에 자리잡은 신회장 사돈 아들의 민박집과 그 입구에 선 일행 10명, 그리고 신회장 사돈 아들의 영업용(?) 민박낙시여행 전문의 버스이자 이번 여행기간동안 우리가 이용한 버스의 사진이다.
그 다음은 저녁 식사다. 저녁 식사는 신회장 사돈의 아들인 김기홍사장이 알바 아주머니 둘을 불러 직접 만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자갈치에서 회를 먹고 간다기에 신회장 사돈이 그보다 훨씬 좋은 고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다. 아들은 걱정을 말라고 했댔다. 2층이 6조 다다미방이 셋, 일층 좌측에 둘, 그리고 일층 우측은 식당방 겸 팩스 등이 있는 사무실로 쓰이는 큰 방과 부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사장, 박사장과 나는 이층에 짐을 풀고 신회장과 사돈 내되는 일층에 짐을 풀었다. 반바지로 갈아입고 밑으로 내려오니 신회장 아들이 직접 회를 뜨고 있었는데 60센티가 는 싱싱한 돌돔 한 마리와 40센티 가량의 뱅어돔을 잡고 있었다. 회 준비가 다 되었다고 방으로 들어가시라기에 들어갔더니 커다란 상 셋에 가리비구이, 전복회, 닭고기와 돼지고기, 버섯 등을 넣어 끓인 이리야끼라는 대마도 특유의 탕요리들이 잔뜩 차려 있었다.
술은 일본의 경우 부부당 3병씩 반입이 가능하다기에 박사장, 이사장, 나 셋이서 부산 세관에서 싸고 향기 좋은 양주 잭다니엘 1000씨시짜리 세 병씩을 준비해 와서 각 1병씩은 마시고 2병은 가지고 귀국하기로 했는데 신사장 사돈이 우리 술 좋아하는 것을 알고 발렌타인 17년산 한 병을 따로 내어 놓으신다. 안주 좋고, 술 졸고 회는 먹어도 먹어도 남고, 발렌타인 한 병을 후딱 비운 뒤 잭 다니엘 1000씨시 병을 반이나 비웠다. 이 음식상과 생선머리(내려갔을 때 몸체는 회로 변하고 커다란 머리와 지리 등만 남아있었다) 등을 사진에 담아 두어야 하는데,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는 생각에서, 또한 술과 음식만 보면 다른 생각은 다 잊어버리는 천성 탓으로 이를 찍어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여행기 쓰기도 쉽지 않아 부산 여행과 대마도 첫날을 1부로 하고 나머지는 2부에서 따로 적어 올리기로 한다.
2012년 7뤌 15일
첫댓글 와 벌써 그림이 끊나노 앞으로 계속 되제?...계속 업데이트 중이었구나!
일본 제1의 청정지역 바다 낛시터로 유명하고, 예나 지금이나 부산사람과 교류하면서 부산의 한 지역처럼 느껴지는 곳 독도가 일본땅이라 우기면 대마도는 부산땅이라고 버티자.
여행중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였다.이렇게 여행을 같이 할 수 있는 일행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럽기도 하다.
대성이 지난 여행 사진을 보고 우리 부부도 여행 할 수 있는 마음 맞는 친구 계모임 만들자고 둘이 합의를 보고 계원을 물색 중에 있다.
해양박물관은 지난 여름에 우리 온가족과 가까운 친지들과 같이 갔었다.
유엔묘지를 처음본다.고귀한 생명들이 잠들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지기도 한다.
그런데 서더리탕이 뭐꼬? 설명 부탁한다.즐거운 여행 다음호에 계속 기다릴께.여행기 쓴다고 수고 많다.
덕택으로 여행 잘 했다. 고마버.
서더리탕이 고추가루를 안넣은 해물탕이구나! 맛이 궁금하다.
서더리는 생선을 회를 뜨고 난 후 남는 것을 말하고 탕은 메운탕으로 많이 끓인다. 일식집 정식코스에서 식사 할 때 나오는 탕과 같다.
금란이도 평소에 여러번 먹어놓고도 이름에 관심이 없었을 뿐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