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중에서 발췌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검토할 때 잘라버릴 만 한 건 모조리 잘라버리게. 무얼 내팽개쳐야 할지 아는 게 핵심이야. 잘하고 있는지 여부는 뭘 버리느냐에 달려 있다네. 다른 작가가 쓰더라도 정말 재미있겠구나 싶은 걸 내버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는 걸세.”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하지만 작업 요령을 터득하고 난 후에는 독자에게 모든 걸 전달해서 예전에 읽어본 얘기가 아니라 자기에게 실제 일어난 일처럼 기억하게 하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해. 이게 글쓰기를 평가하는 진정한 시금석이라네. 그리되면 독자는 흥분해도 자넨 아무렇지도 않아.”
“잘 쓸수록 힘들어져. 오늘 쓴 이야기는 어제 쓴 것보다 나아야 하니까. 세상에서 가장 고달픈 짓이지. 쓰는 일 말고도 하고 싶고 더 잘할 수 있는 게 수두룩하지만, 펜을 놓고 있을 때는 기분이 더러워져. 내가 가진 재능을 썩힌다는 생각이 들거든.”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 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소질만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야.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딱 한 가지 충고는 꾸준히 쓰라는 걸세. 물론 지독하게 고된 짓이지. 내 경우 단편 열 개를 써봤자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뿐 나머지 아홉은 버린다네.”
“기억해두게. 자네가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떤 일을 하는가가 중요한 거야. 자네 어머니께선 다르겠지만 자네가 죽든 살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 개인으로서 자네는 아무것도 아닌 거야. 자네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아무도 관심 없어. 자네가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야 해,”
“나도 자네 나이 땐 그런 형편없는 걸 글이라고 썼으니까. 작가는 다 그래. 글 쓰는 법을 터득해야 해. 처음 써본 이야기가 팔린다는 건 작가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라네. 똥 같은 걸 팔게 되면 똥 같은 걸 계속 쓰게 돼. 행여 글이 나아진다 해도 독자들은 언제나 첫인상으로 그 작가를 기억하지.”
“난 이제껏 살아오면서 누구의 입맛에 맞게 써본 적이 없어.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신문 잡지의 취향에 맞게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제대로 쓰고 싶다면 어떤 잡지에 보내건 간에 이야기를 거기 입맛에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해. 난 이야기를 탈고할 때까지 출판에 대해선 일절 생각하지 않아. 이야기는 정확히 자기가 마땅히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는 거지 출판사 편집자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게 아니야.”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난 말일세,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든다네.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야.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지. 세상에 못해먹을 짓이야. 쉽다면 개나 소나 다 하겠지. 그냥 앉아서 한 편 써 보내면 돈이 굴러들어오는 게 아닐세. 그네들이 거액을 지불하는 이유는 딱 하나야. 그런 고된 짓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
“최고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나요?”
“아니야, 최고의 이야기는 꾸며내는 거라네. 액션을 꾸며낼 수 있어야 해. 소설이 될 만한 일을 실제 삶에서 벌일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열에 하나 정도야. 자네가 자네를 소재로 쓰면 그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죽는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 쓰면 천 번을 죽고도 계속 쓸 수 있지. 자네가 아는 사람을 하나 골라 그의 나이와 전력을 바꾸고 그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나라로 그를 옮겨놓게. 그래도 그는 실존 인물인 거야. 그를 재미있는 상황에 던져놓고 액션을 만들어내. 꾸며내는 요령만 터득하면 소설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네.”
“지금 자네한테 필요한 건 눈을 이용해서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래야 쓸 때 그것들을 고스란히 나타낼 수 있어. 어떤 하나를 다른 것과 비교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네.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지. 모든 것이 고유하다네. 내가 쓰는 방식을 자네한테 교습할 생각은 없어. 절대적인 글쓰기라는 게 있지. 그걸 가르쳐주면 나중에 자네 나름의 스타일을 계발할 수 있을 거야.”
“자네는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기 전에 비난하는 버릇이 있어. 그 점을 경계해야 하네. 자네는 신이 아니야. 절대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게. 모름지기 작가는 상이한 두 성격이 있어야 해. 인간으로서 자네는 천하의 개망나니일 수도 있고 사람을 증오하고 비난하고 다음번 만났을 때 놈의 대갈통을 총알로 날려버릴 수 있겠지만, 작가로서 자네는 누구에 대해 쓰기 전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의 관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자네의 사사로운 반응을 섞지 않고 그 사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요령을 터득해야 해.”
“자네는 아직 아무것도 본 게 없어.”
“아는 소재만 있으면 이야기는 나오는 걸세. 하지만 바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가장 힘든 곳이지. 10년을 나와 있어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게 바다야. 육지에서 전쟁이 터지면 달라. 전쟁터에 석 달만 나가 있으면 장편소설을 하나 건질 수 있지.”
“쇠돌고래들은 누가 가장 높이 점프하는지 결판을 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쇠돌고래 한 마리가 믿을 수 없는 높이까지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방향을 틀어 도약할 때 생긴 비등하는 물구멍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 이내 수백 마리가 도약하여 길게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하자 하늘이 온통 녀석들로 가득 찼고, 멀리서 보면 마치 물위를 저공비행하다 먹이를 덮친 후 다시 날아올랐다가 다시 급강하를 반복하는 새떼같이 보였다. (…)
“놀라웠어요! 대단한 장면이었죠? 아직도 가슴이 떨립니다.”
“그걸 써볼 생각일랑 아예 말게. 묘사가 불가능해. 그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
그제야 나는 E. H.도 나 못지않게 감동했다는 걸 알았다. 차이가 있다면 그건 그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
E. H.는 그 일을 잊지 않았다. 몇 년 후 그날의 쇠돌고래들은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어부의 꿈속에 등장했다.”
“무엇을 본다는 것과 그것에 대해 쓴다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네. 누군들 못 보겠나.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고 벌어진 그대로 쓸 수 있어야 모름지기 작가라고 할 수 있지. 항해일지를 쓰다보면 내가 어떻게 기록하는지 보게 되고, 무얼 주의 깊게 봐야 하는지 배울 거야. 치밀해지는 법을 배우고, 문장을 다루는 요령 같은 것도 배우게 될 걸세.”
“쓰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라네. 그게 내가 사는 이유니까. 그러나 우리가 낚시하는 동안에는 나도 별수 없어.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야. 글쓰기를 직업으로 여기고 매달릴 거라면 나중을 위해 둘도 없이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될 걸세. 이런 경우가 아니면 결코 만나볼 수 없는 흥미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될 테고.”
“기죽을 거 없어. 나중에 더 좋은 걸 건질 수 있을 걸세. 제대로 된 쓸거리는 나타나지도 않았어. 고기다운 고기를 아직 만난 적도 없잖나. 올해는 저 북부지방의 흉년만큼이나 낚시하기에 불운한 해야. 놈들이 이동을 시작할 때가 됐는데 소식이 없어. 난 우리가 사상 최고의 청새치를 낚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네.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 날엔 잡지사들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걸 건질 수 있을 걸세.”
“제가 작가 될 만한 그릇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아지고 있어. 무척. 소질이 있다면 언젠가는 드러날 거야.”
“제게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지. 있는지 없는지는 해봐야 알아.”
“작가가 못 되면 신문사 일자리를 구할까 합니다.”
“그런 식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네. 죽도록 하고 싶다면 마음을 굳게 먹어야지.”
“몇 년이 지나서야 소질이 없다고 판명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꾸준히 써보게. 그렇다고 낙심하지 말고. 자네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쉽게 낙심하는 사람이야. 그게 천재의 징후일 수도 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해.”
“있잖아요, 제 가장 큰 문제는 근사한 단어들을 지나치게 많이 쓰려고 했던 일 같아요.”
“자네만의 문제가 아니야. 최상의 글쓰기는 절대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서 들은 말 중에서 필요한 어휘를 고르게. 그것들은 수세기의 검증을 거친 말들이야.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눈과 귀를 사용하는 거야. 부두 위에 보이는 사람들을 전부 관찰하게나. 요트들이 들어오거든 그 소유주들과 승무원들도 관찰하고. 그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해서 그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게.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 귀를 기울여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각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기억해두게. 자네는 자아에 대해 감수성이 예민해. 그건 꼭 필요한 자질 중 하나지. 그러나 타인에 대해서도 감수성이 예민해야 하네.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방식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알 수 있어야 해. 계속 노력하면 계발되는 능력이라네. 누구도 자네가 겪는 고난 따위엔 관심 없어. 자신이 겪은 고생담을 늘어놓는다면 지독하게 따분한 놈으로 전락하고 말아. 자네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고, 자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사람들은 눈곱만큼도 신경쓰지 않아. 자네 자신은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피게.”
“자네가 가진 최고의 얘깃거리는 노스다코다 농장 생활과 자네 누이의 살해사건이야. 자네 말고는 누구도 쓸 수 없고, 세상 누구도 자네한테서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건 오랫동안 쓰지 않는 게 좋아. 최상의 소재는 어찌 다뤄야 할지 터득하기 전까지 아껴줘야 해. 다시 쓰지 않는 한 같은 걸 두 번 쓸 수는 없으니까. 비극을 쓰려거든 완전히 초연해야 하네.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말일세. 예술의 꼭짓점은 비극이야. 세상에서 가장 쓰기 힘들지. 쓰지 않는 한 얘깃거리를 잃어버릴 일은 없다네.”
“한 번에 몇 주 동안 써지지 않을 때가 있을 거야. 그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낙심하지 말게. 세상 그 어떤 작가라도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러려니 하게. 기력이 빠지거든 자네가 본 것들을 빈틈없이 써보게나. 그것들이 종이 위에서 꿈틀거려 독자들이 그것들을 볼 수 있도록.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말하는지,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표정, 두드러진 이목구비 등에 주목하게. 그런 것들이 글을 생동감 있게 하는 거라네. 그러니 독자가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쓰는 연습을 하게. 그러고는 독자가 공감하길 바라는 감정이 무언지 파악하려고 힘쓰는 거야. 난 그런 식으로 글 쓰는 법을 터득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