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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마이너 곡인 현인의 '비내리는고모령'을 올려 봅니다. 아직 흘림주법이나 고운소리가 생각만큼 잘 안되는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연습과 시간이 지나야 되는줄 잘 알지만...
우리 가요사에 유명한 곡이지만 고모령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른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검색하여 같이 올려봅니다. (농아리님! 사진방에 있는 농아리님의 사진을 허락없이 여기 다시 올렸습니다. ㅎ ㅎ)
<펌글 1> 〈비 내리는 고모령〉은 현인이 부른 한국의 트로트 곡이다. 현인과 함께 히트작을 많이 낸 유호와 박시춘 콤비의 작품이다. 유호의 필명인 호동아 작사, 박시춘 작곡의 〈비나리는 고모령〉이라는 제목으로 1948년에 발표되었다. 노래의 배경은 대구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개인 고모령(顧母嶺)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 곳이 진병이나 징용으로 멀리 떠나는 자식과 어머니가 이별하던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별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만들었다는 설을 비롯해 유래에 대해 여러 일화가 전한다. 발표 당시에는 이 지역이 경상북도 경산군이었으며, 인근에는 경부선 철도역인 고모역이 있다.
가사는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슬픈 내용으로 시작하여, 고모령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화자가 오랫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노래 속의 고모령은 한 맺힌 이별의 장소로 그려지며 "눈물 어린 인생고개"로 은유되기도 한다. 스스로를 "망향초 신세"라 자조하면서 비통하게 향수를 달래는 내용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격동기의 시대 상황과 잘 어우러졌고, 이후 오랫동안 애창되었다. 1969년에는 임권택 연출로 이 노래의 제목을 딴 동명의 멜로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한국방송의 성인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가 2005년에 방송 20돌을 맞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가장 많이 방송된 노래를 발표했을 때, 〈울고 넘는 박달재〉와 〈찔레꽃〉에 이어 전체 순위 3위를 차지하여 꾸준한 인기를 입증했다. <펌글2> 비내리는 고모령”에 얽힌 전설과 박시춘에 의해 작곡되어 가수 현인에 의해 1946년에 불린 비내리는 고모령은 일본제국주의 시대 고향을 등지고 타향으로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을 담은 노래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행가였다. 일제 시대에 경산에 있는 작은 마을에는 장성한 두아들과 노모(老母)가 살고 있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는데, 독립운동을 하던 두 아들은 왜놈에게 잡혀서 모두 대구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남편없이 기른 두 아들이 모두 감옥에 가 있는 것이 어머니로서는 견디기 힘든 슬픔이었는지라 시간만 나면 감옥으로 면회를 가곤 하였는데, 그날도 대구 감옥에 있는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다. 고모령 고갯길에 이르렀는데 그날따라 비는 내리고,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서러움으로 고모령을 넘어오던 어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경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고개를 넘어야 하고, 그 고개를 넘으면 대구가 더 이상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고개는 고개를 돌려서 본다는 고(顧)와 어머니 모(母)를 붙여서 고모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