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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담 산방 2
앞을 보다 말고
뒤를 돌아다볼 수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삶, 죽음. 명세와 민이가 떠난 날부터
한시도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은 말들이었다.
그것을 생각하지말라는 공자의 말을
지함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리학을 뛰어넘었다는 화담이 겨우 공자의 말로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의 답을 대신하다니.
화담 산방 학인들에게는
그 이상의 진리가 필요없기때문인가?
화담의 강의가 끝나자 학인들이 산방을 나왔다.
학인들이 지나가면서 이상한 눈초리로
지함을쳐다보았지만 지함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함이 보름여 마당을 판 끝에 석 자가 되는 돌탑이올라갔다.
학인들이 모두 내려간 저녁나절이었다.
지함은 계곡을 내려가 화담의 처소로 갔다.
화담은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돌탑을 다 쌓았습니다."
"그런가? 거기 기다리게. 마저 마시고 올라가봄세."
화담은 그렇게 말을 해놓고는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나누면서 계속 술을 마셨다.
손님은 밤이 이슥해서야 화담의 집을 떠났다.
"자, 그럼 가보세."
화담은 비틀거리면서 산방으로 올라갔다.
화담은 지함이 쌓은 돌탑을 보더니 소리를 버럭질렀다.
"정성을 들이지 않았어. 흙이 묻어 있지 않는가.
내가 돌탑을 쌓으랬지 흙무덤을 쌓으랬던가?"
"......"
화담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휘둘러 돌탑을무너뜨렸다.
우르르 돌탑이 무너져내렸다.
돌탑은 지함의 가슴 속에서도 무너졌다.
속에서 무언가 울컥 치밀었다.
"다시 쌓게. 서둘러 쌓게."
화담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계곡을 내려갔다.
지함은 무너진 돌탑 위에 앉았다.
속에서는 계속 무언가 치밀어올랐다.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지함은 밤을 새워서라도 돌탑을 다시 쌓으리라결심했다.
지함은 달빛으로 희미한 성황목 아래,
무너진돌무더기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어렝이에 돌을 담아 냇가로 가져갔다.
하나하나 물에 씻어 다시 어렝이에담았다.
밤새도록 돌을 닦아 다시 쌓았으나 한 자도 오르지않았다.
이튿날도 지함은 계속 돌을 씻어 날랐다.
산방 강의는 매일매일 계속되었다.
기 철학자답게
화담 서경덕은 역시 기론(氣論) 강의를 주로 하였다.
"오늘은 기(氣)를 이야기하세.
기를 논하지 않고는학문에 들 수 없으니
내가 한번 뜻을 풀겠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 보면 이런 말이나오네.
하늘과 땅이 갈라지기 전,
그러니까 계란이부화되기 전이랄까,
그때는 그저 혼돈이라고만 했다네.
그 혼돈의 우주에 기(氣)가 생겼다네.
그래서 그 기의 맑고 밝은 성격을 따라서
하늘이나타나고,
흐리고 무거운 기는 아래로 뭉쳐 땅이되었네.
자, 이 때 나타난 기, 그것은 도대체무엇인가?
닭이 계란을 품는 것을 보자면 암탉이 계란을 품기전에는,
계란은 그저 계란일 뿐이지.
그러나 암탉이가슴에 알을 안고 따뜻하게 데우기 시작하면
스무하루만에 그 계란을 깨고 병아리가 나온다네.
바로 세계가형성된 거라네.
그러면 계란을 병아리로 변화시켜준기는 무엇인가?
바로 어미의 따뜻한 기운이라네."
"그러면 따뜻한 게 기입니까?"
한 학인이 물었다.
"아니지. 따뜻하고 차가운 걸 나누지 말고
그저그런 것을 다 일컬어 기라고 부르세.
그것을 가리켜 온도라고 부르지 않는가.
만물은 봄이 되면 저절로 생육되는데
그것은 왜그런가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네.
그 비밀은 겨울의수기(水氣)와 봄의 온기(溫氣)에 있다네.
마르고 습한수기와 차고 더운 온기가 적절하게
씨앗이나 뿌리를문질러주면 생명이 깨어난다는 걸세.
바로 기(氣)가생명을 여는 열쇠라는 것일세.
그러므로 닭이 계란을 품어 병아리로 깨어나게 하는것은
오직 계란에 내재해 있던 수기와
어미닭이불어넣어주는
따뜻한 기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아니네
.어미닭이 차고 더운 기운을 스무하루 동안
적절하게 쏘여주어서 얻은 것이니,
봄이 되어 만물이일어나는 것도 같은 이치라네.
겨울을 나지 않은씨앗은 따뜻한 봄의 기운을 받아도
싹을 틔우지못하는 이치,
봄이 되어서도 어떤 씨앗은 이르게,
어떤 씨앗은 늦게 싹을 틔우는 것이
다 이런 이치가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온도의 조화가 곧 기이고, 기가 곧태극입니까?"
"온도의 조화가 기라는 말은 일단 수긍하세.
그러나 기가 곧 태극이라는 말에는 다른 의견이 있네.
노자도덕경에 이르기를
'도(道)에서 하나인 기(氣)가나오고,
그 하나인 기가 다시 둘로 나뉘어져
음(陰)과양(陽)이 생긴다'고 했네.
그런 다음에 어떤 형상이이루어져
비로소 만물이 생성된다는 말이지만,
난 일단 도에서 기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네.
기야말로 이 천지 우주간에 가득 차서 없어지지도않고
더 생겨나지도 않으면서 순환하는 것이니
어떤실체를 들어 규정해버릴 수 없다네."
"그럼 이름 붙일 수도 없습니까?"
"이름이야 붙이든 떼든 인간의 소치이고,
자연의이치에는 닿지 못하는 것이지."
"공기 같은 거 아닌가요?"
"공기야 움직이면 바람이 되니 실체가 없다고 할수는 없다네.
이 기(氣)에 이(理)를 다시 부쳐 논쟁을붙힌사람이 있으니
바로 주자(朱子)라네.
그가이기론(理氣論)을 어떻게 폈느냐 하면,
'한 기(氣)가움직여 회전하기를 되풀이 하는 동안에,
맑고 가벼운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이되었으며,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되었다'는 것인데
이렇게 기가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그것이 바로 이(理)의 작용이라고 한 거지.
<회남자>에 하늘은 기를 토한다고 적혀 있는데,
기는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니,
그것을 나누어주는것이 이(理)라고
굳이 내세울 것은 없는데 이게 그만
시끄러운 실마리를 내준 꼴이 되고 말았지.
우리는 일단 이(理)는 접어두고 기(氣)만이야기하세.
기가 하늘에 닿아 빚어낸 것이천간(天干) 열 가지요,
땅에 닿아 빚어낸 것이지지(地支) 열두 가지라네.
하늘의 열 가지 기운과
땅의 열두 가지 기운을 조절하는 큰 기운이 다섯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오행(五行)이라고 부르네.
여기에서 천문(天文)과 지리(地理)가 생기고
사주추명학(四柱推命學)이 나온 것일세.
그래서 천간에 따라 숫자는 열을 단위로 세는것이고,
계절은 열둘로 나눈 것이네.
그래서 이 모든기의 움직임을 운기(運氣)라 이르고,
이운기법(運氣法)에서 모든 학문이 유래하는 것일세.
자, 그러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인데
사람은무엇인가.
사람은 기 하고 아무 상관도 없는가.
하늘은 천문이요, 땅은 지리인데 인간이라고 없을수 있는가.
바로 의(醫)라네.
그래서 천문을 일러점성술이라 부르고,
리를 일러 풍수지리라고 하듯이
의도 의술(醫術)이 되었다네.
좌전(左傳)>에서 의화(醫和)는 '하늘에 기가있는데
그것이 다섯 가지 맛과 색깔과 소리를빚어낸다.
그런데 그 절도를 잃으면
바로 여섯 가지병이 생기는 것'이라고 하여
의술 자체가 바로기술(技術)로 시작되었다네.
<장자(莊子)> 달생편(達生篇)에도
'기가 흩어져서돌아오지 못하면
생기(生氣)가 부족하게 된다.
그기가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않으면 성을 잘 내게 된다.
반대로 기가 내려갔다가 올라오지 못하면 건망증이심해진다.
그리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면
그것이 바로 병으로 화한다'고 했네.
그후 도가(道家)에서 아주 중히 여기는
<황제내경(皇帝內經)>이 출현하였는데,
이때 침술이나타났네.
침이란 체내에 흐르는 기를 잘 흐르도록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네.
사람의 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름이 있는가살펴보세.
내경(內經)에는 기명(氣名)이 예순일곱가지나 나온다네.
형기(形氣) 혈기(血氣) 진기(眞氣) 정기(正氣)
정기(精氣) 대기(大氣) 거기(巨氣) 경기(經氣)
신기(神氣) 생기(生氣) 온기(溫氣) 상기(上氣)
중기(中氣) 하기(下氣) 곡기(穀氣) 식기(食氣)
청기(淸氣) 탁기(濁氣) 인기(人氣) 동기(動氣)
피기(皮氣) 근막지기(筋膜之氣) 혈맥지기(血脈之氣)
기육지기(肌肉之氣) 골수지기(骨髓之氣)
흉중지기(胸中之氣) 두각지기(頭角之氣) 오기(五氣)
복기(腹氣) 부기(浮氣) 백기(白氣) 한기(悍氣)
삼백육십오절기(三百六十五節氣) 이십칠기(二十七氣)
기도(氣道) 기문(氣門) 기혈(氣血) 기맥(氣脈)
기골(氣骨) 종기(宗氣) 영기(營氣) 위기(衛氣)
내기(內氣) 외기(外氣) 표기(表氣) 이기(裏氣)
원기(遠氣) 근기(近氣) 객기(客氣) 동기(同氣)
산기(散氣) 취기(聚氣) 유기(兪氣) 맥기(脈氣) 낙기
천기(天氣) 지기(地氣) 천지지기(天地之氣)
오행지기(五行之氣) 장기(藏氣) 분기(分氣)
분간기(分間氣) 수기(水氣) 화기(火氣) 원기(元氣)
원기(原氣) 왕기(王氣)
이런 가운데 몸 안에서 기가 돌아다니는 길을찾아냈는데,
경혈(經穴)이 바로 그것이네.
침을 놓는침자리인 것이지.
그 수가 일년 365일처럼 365개나
366개라고 씌어 있다네.
그래서 종아리 바깥쪽의 무릎아래 세 마디쯤 되는
족삼리(足三里)라는 침자리에침을 놓으면
밥통이 꿈틀거리게 되고,
엉덩이에 난치질을 치료하려면
머리의 침자리에 쇠바늘을 꽂게되는 것일세.
이러한 까닭에 옛날의 대의원들은 내경(內徑)을독파하고
도인들은 기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고,
산중선비들이 다 그렇게 단전호흡을 한다,
내공을 한다하는 것이네.
양생법(養生法)도 따지고 보면 다 기를 다루는운동이었다네.
그러나 양생법에 으뜸가는 것은
해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 지면 잠 자는 것이니
봄에봄일을 하고, 여름에 여름일을 하고, 가을에 가을일을하고
겨울에 겨울일을 하는 것이 바로 양생법일세.
그래서 얻는 것은 장생(長生), 연명(延命),불로(不老)라.
그리하여 도가(道家)에서는 밥을 먹지 않고 기를먹는다고 한다네.
그러다 보니 환단(丸丹)이 나오고,
단전호흡, 체조 같은 술법이 출현하였다네."
]
화담의 강의는 북창의 강의만큼이나 열기가대단했다.
학인들의 질문도 뜨거웠고, 화담의 강의역시 뜨거웠다.
화담은 역시 지함이 생각지도 못했던 세계를열어보였다.
대과의 장원급제라는 것이 얼마나부질없고,
무지한 소치인가를 지함은 확연히 알 수있었다.
장원급제, 그것은 이런 대학자들에게는
한낱웃음거리밖에 될 게 없었다.
그러나 지함에게는 여전히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돌탑을 쌓아야 했다.
그래야만 산방으로 들어가
정식으로 그의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의를 엿듣는 동안에도 돌탑은 조금씩 올라갔다.
돌을 씻기 시작한 지 나흘이 지나
다시 돌탑이 제모습을 갖추었다.
지함이 다 쌓았음을 아뢰자 화담이 나와서 돌탑을보았다.
모양이 좋지 않네. 자네, 이런 돌탑을 본 적이있는가."
처음 쌓는 돌탑이라서 예쁘게 올라가지 않았던것이다.
정성이 부족해. 다시 쌓아보게."
화담은 지팡이를 지함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자네가 무너뜨리게.
잘못된 것은 제 손으로무너뜨리는 게 좋지."
화담의 지팡이를 받아든 지함의 손이 머뭇거리고있었다.
화담이 매서운 눈으로 지함을 쏘아보았다.
지함은 지팡이로 돌탑을 힘껏 밀쳤다.
돌탑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지함의 가슴이 벌떡벌떡 뛰었다.
숨도 거칠어졌다.
화담은 지함의 그런 변화쯤은 모르는 척하고
산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왜 내가 돌탑을 쌓아야 한단 말인가.
돌 따위가 학문하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지함은 뜨겁게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꾹꾹 누르고
다시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기단을 튼튼히 해야 돌탑이 높게 올라갈 수 있었다.
지함은 냇가에서 큰 돌을 들어다가 받침돌로 썼다.
그리고는 그 위에 차례차례 돌을 쌓았다.
방향을바꾸어서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아가며
동그랗게모양이 나도록 세심히 애를 썼다.
다시 쌓기 시작한 지 사흘 만에 돌탑이 완성되었다.
화담이 또 나왔다.
"모양은 되었네. 그런데 이 돌은 무언가?"
"예, 받침돌입니다."
"어디서 가져왔는가?"
"냇가에서..."
"내가 뭐라고 했는가?
마당에서만 캐어 쓰라고 하지않았는가?
자네, 개울에 있는 돌까지 전부 뽑아오고싶던가?"
"......"
"이 받침돌을 빼내게."
화담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산방으로 들어갔다.
아득했다.
받침돌을 빼내라는 것은 다시 허물라는말과 같았다.
지함은 더 이상 화가 치밀지도 않았다.
허무하기도했으나 마음은 묘하게 편해졌다.
체념이었던 것이다.
지함은 다시 돌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다시 사흘.
지함이 돌탑을 또 쌓았을 때 화담은
지함의 입실을허락했다.
"이걸 읽어보게."
화담과 지함, 단 둘이 마주앉았을 때였다.
화담은허엽이 써준 서찰을 내밀었다.
"선생님,
유능한 젊은이가 있어 학인으로 천거합니다.
성명은 이지함으로, 대과에서 장원 급제한수재입니다.
그 해에 있었던 사초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정혼했던 약혼녀를 잃었습니다.
양주 봉선사에서 어떤사람을 만나
도가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본시 영명하니 스승님께서
바로 이끌어주시기를 간절히청하옵니다.-"
"이젠 내 뜻을 알겠는가?"
"짐작할 만 하옵니다."
"자네가 비록 북창이라는 사람에게서
도가를 배워아픈 과거를 잊었다 하나,
자네 머리에서만 지워졌을뿐
가슴속에는 깊은 원한의 덩어리가
여지껏 풀리지않고 뭉쳐 있었네.
내 말이 틀린가?"
"맞긴 하오나 어떻게 북창의 이름을 아시옵니까?"
허엽의 서찰에는 분명 북창의 이름이 없었다.
"북창이 사신으로 중국에 드나들 때
두어 번 만난적이 있었네.
그 사람이 자네를 큰그릇으로키워놓았네
.나는 그저 다 만들어진 그릇에
채워넣기만 하면 되니
어디까지나 그이가 자네스승일세."
화담은 지함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자네 마음 속 미망을 캐어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여겨주게."
지함은 화담에게 큰절을 올렸다.
첫댓글 오늘도 즐독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
다음편이 기다려 지네요.
옛날 이야기속 선인들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이게도 하는데
글이라서인지 더 신비한 느낌입니다
빠져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자꾸 읽다보면 빠져들게 되더라구요
요즘 바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