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토막 성당, 필리핀 성 로렌조 루이즈 본당
태풍으로 성당 반 이상 날아가… 미사 중 비 맞기도 가난한 신자 공동체라 보수 공사 기금 마련 역부족
"공항에 내리는 순간 거대한 냉동고 문이 열린 줄 알았어요. 아, 너무 추워요." 열대지방인 필리핀 빈민촌에서 사목하는 얼굴이 까무잡잡한 신부가 두꺼운 잠바를 입고 성당 건립기금을 구하러 한국에 왔다. 깔로칸교구 성 로렌조 루이즈 본당의 알란 로페즈(Allan V. Lopez, 성 도미니코수도회) 신부다.
필리핀의 대표적 빈민촌인 나보타스에 있는 이 성당은 3년째 '반토막 성당'으로 남아있다. 목재로 지은 성당은 태풍으로 반 이상 날아갔다. 보수공사를 시작했으나 기금이 없어 하루에 고작 벽돌 몇 장 올리는 게 전부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주변 강물이 넘쳐 흘러 신자들은 빗물에 발을 담근 채 미사를 봉헌한다. 한때는 폭우가 심하게 쏟아져 쪽배를 타고 이동해야 했을 정도로 빈민촌 배수시설은 엉망이다.
주일마다 신자들은 천장이 뚫린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아열대 지방의 불볕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가 수시로 쏟아져 미사에 참례하다가도 비를 맞는 일이 허다하다. 어린이들은 보수공사에 쓰이는 벽돌과 시멘트 가루가 쌓인 공터에서 공을 차며 뛰논다. 모래바람은 수시로 성당에 들이친다.
본당에는 1만 명에 가까운 신자가 있지만 평소 주일헌금은 1400페소(3만5000원). 특히 우기에는 신자들이 거의 성당에 나오지 못해 건립기금은커녕 40개가 넘는 소공동체를 꾸려갈 생활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로페즈 신부는 "이 속도로 성당을 지으면 50년은 걸릴 것 같다"면서 "가난한 이들이 가난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하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평소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아이들은 주말이 되면 반쪽짜리 성당으로 몰려와 고해성사를 본다. 맨발로 달려오는 아이들 얼굴엔 땟물이 주르르 흐르지만 표정만큼은 밝다. 로페즈 신부는 나보타스 항구를 배회하며 둥둥 떠다니는 생선을 주워가는 어린이들을 보면 성당이 따뜻한 집이 돼주질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로페즈 신부는 "우리 신자들에게 하느님은 '가난'에 가려 너무 멀게 느껴진다"며 "하느님께 받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본당 신자들이 한국에 온 걸 아느냐고 묻자, "다들 기대에 찬 눈빛을 보이길래 그냥 휴가차 가는 거라고 손사래 치고 비행기에 올랐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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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토막이 난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나보타스 신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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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당 성전 건립기금을 구하러 한국에 온 알란 로페즈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