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는 국기게양이 애국심의 전부인줄 알았다. 그 후 내 생각은?
2015.8.15.
1. 2015년 8.15 광복절 해방 70주년을 맞이해서 느낀 내 생각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후 7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 당시 국내외 정세와 역사에 관해 신문에서는 며칠 전부터 자세하게 보도가 되고 있다.
히틀러를 비롯한 2차 세계대전 종말 승‧패자들의 주역들과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한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여러 위인들 그리고 요동치는 그 시절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서다.
그 때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서 잘 알 수 없지만, 새 나라의 탄생은 무릇 고통스러운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신문내용이나 책을 통해 잘 알 수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태어난 나는 그 당시 상황을 간접적으로 알게 되지만, 그 후 50~60년대의 격동기는 직접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어려웠던 지난 세월을 通察 할 수 있었다.
6.25. 4.19. 5.16의 유소년시대와 한일회담 월남전 나의 군대생활 그 후 5.18등 민주화의 소용돌이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토록 발전한 나라를 보면 조국이 자랑스럽고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탄생의 영광과 세계 10위 경제 강국은 어느 나라 국민들보다 크나큰 진통의 과정을 거쳤기에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많은 국난 중에서도 국가를 이끌어 가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과 큰 혼란기에서도 나라 발전을 위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며 부유한 강국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대통령 시절 나는 학창시절이었는데 그 때는 언제나 대통령을 미워하며 데모를 했었다.
소위 뭐 알지도 못하면서이고 선배들이 하니까 따라했었는데, 혈기 왕성했던 젊은 시절에는 정의감이라는 핑계로 미래를 생각 못한 고집불통의 현실 비판론자였으니까.
현실을 무조건 비판하던 사춘기 고교생은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때 수성 천변에서 열변을 토하던 윤보선 김대중 김영삼 전직대통령들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세분 대통령들을 그때 무척 존경하게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가 있었기에 민주주의가 발전되면서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로 발전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알지 못하고 그저 박정희 대통령이 하는 일은 뭐든지 반대만하는 생각에서다.
70년대 고속도로 건설 때는 고향산천이 도로로 편입되니 향수를 잃을까봐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경제 혁명을 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엄청 비판 하곤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면서 점점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면서 두 분 대통령의 위대한 통치력을 경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나라가 짧은 세월에 부국 강국의 엄청난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걸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국가를 튼튼히 하고 성공적인 경제 개발로 나라를 부흥시킨 두 분 대통령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신 그 이후의 대통령 들 모두가 단지 통치 철학이 달랐을 뿐 대한민국 번영과 국가 발전을 위해 성심성의껏 노력한 대통령들이 아닌가!
나는⌜모든 일이 신이 하는 일이 아닌 이상 功과 過失은 있기 마련인데 우리들은 오늘의 세계 10위 강국 대한민국을 놓고 누구에게 더 위대한 통치자로 순서를 매겨야 할 것인가는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는 전쟁과 혼란기와 가난을 겪으면서 살아온 50대 이후 세대들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안정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50대 이후의 자녀세대들은 그 이후 민주화 시대의 대통령을 위대하다고 한다.50대 이후 세대들은 대부분 3.1운동 2차 대전까지의 식민지시대와 6.25전쟁 4.19. 5.16. 6.3사태 월남전참전까지 국난과 가난 속에 살아오면서 경제 개발 현장에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어 살아온 분 들이다. 본인들보다 오로지 나라와 부모형제와 가족을 위해 헌신을 한 분들이다. 그럴 진데 고생 없이 자라난 후세들이 어찌 부모님 세대들을 이해할 수 있으랴! 노인들은 젊은 세대들 이야기에 냉소적이고 젊은 세대들은 노인들 이야기에 귀를 막고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무관심의 풍조야말로 사랑과 이해심은 싹틀 수 없고 적개심만 남을 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부터도 20~30여 년 동안 나라에 큰 일 들이 계속 일어날 때마다 보고 겪으면서 오늘날까지 살아온 나는 세월이 지나면서 이해하고 수용하며 남 의견 경청하고 현재 일을 중요시하는 현실주의자로 바뀌니까 내 과거 역사는 내가 뒤집게 된다.
내가 지나온 과거를 잠시 회상해 보며 내 생각을 피력해 본다면?!
초등학생 때인 50년대 이후는 전쟁과 그 후유증으로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세월 속에서 법이 정착되지 않는 사회의 무질서로 피폐된 나라의 실정 그대로였다.
그 혼란기에 이승만 대통령은 교육과 여러 가지 제도의 개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면서 반일과 반공을 기치로 내걸고 민주국가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새마을운동 농촌벼베기- -구미 상모동 박정희대통령생가-
60년대 중등학교 까지는 계속되는 국민들의 가난과 질병 과도기의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부문이 불안한 시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혁명을 통해 국민들에게 勤勉 自助 協同의 3대 정신운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부지런하고 협동하는 국민정신교육을 심어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원동력이 되어 국가기반을 공고히 다져 나갔다.
즉 두 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튼튼하게 하고 그 기틀에서 경제발전을 이룩한 오늘날 세계10위의 강국이 된 위대한 지도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는 해방과 더불어 6.25전쟁과 전쟁 후 미국을 우방으로 통치체제를 이룩한 과거를 회상해 볼 때, 왕조정치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불행을 가져다주는지 조선시대와 지금의 북한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1899년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혁신 내각을 조직해 근대국가를 이룩하려다 실패해서 사형선고를 받은 이승만대통령은 그 후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나라 독립을 위해 국제적으로 활약을 하게 된다.
또한 5.16 군사혁명을 일으켜 제3공화국을 수립해 경제와 국력을 공고히 한 박정희대통령 등 두 분 대통령을 보면 한 인간의 힘은 神과 같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토와 국민들 생활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한 개인의 발전도 한그루 나무도 튼튼한 뿌리와 기둥에서 풍요로운 결실이 이루어지는 법!
우리들 해방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마치 고대 근대 현대와 미래를 살아가는 미이라의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5년 전 교직을 정년퇴직해 농사를 지으며 고향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금호강 낙동강을 지나고 산천을 따라 매일을 오가는 대구와 성주 사이는 이제 주택과 공장들이 점령해가면서 정겨운 시골 농촌 정서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들한 느낌을 준다.
시골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은 찾아볼 수 없고 점점 식어가는 고향에 대한 정을 이제는 옛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그 맥을 이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2. 초등학교 시절의 교육은 정말 중요하다.
한 인간의 정신적 성장 발달에 있어 초등학교 시절의 교육 영향은 참으로 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 때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들은 투철한 반공정신과 애국심으로 교육을 받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았다.
설사 약간의 거짓 과오 시행착오는 있어도 나라를 위한 큰 틀에서 충성심은 변함이 없었다. 마음과 몸을 튼튼히 하면서 학교교육활동을 통해 꿈과 희망을 꽃피우며 열심히 노력했다.
-1958년 선남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기마전-
운동장에서 군가를 부르며 용맹심을 키우고 글짓기나 웅변 등 각종 행사 때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태극기를 존중하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뿌듯함을 느끼면서 의기양양하게 나라의 역군이 되고자 맹세 하였다.
그런 영향인지 1950년대 초등학교시절부터 일흔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나는 국경일이 되면 손수 태극기를 게양한다.
국기를 게양할 때는 어린 시절 국기를 흔들며 군에 가던 아저씨들 모습이랑 운동회 등 각종 행사 때 마다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에서 희망과 용기가 치솟던 추억이 그리워진다.
학교 중앙에 언제나 휘날리는 태극기는 애국애족의 존엄을 상징하고 어디에 가서도 학교를 보면 고향 같은 따뜻한 정이 가슴에서 울어 나온다.
학교는 엄마와 누나와 고향 같은 情을 느끼게 하고, 학교가 어느 곳에 있어도 마르지 않고 싱그럽게 솟아나는 희망의 샘터다.
어느 학교에서나 중앙에 펄럭이는 대한민국 태극기를 보면 국가와 국민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지게 한다.
10여 년 전 금강산 여행을 했을 때 상팔담(나뭇군과 선녀의 전설이 있던 곳)에서 김일성 뺏지를 가슴에 달고 우리들을 살피던 북한 안전요원에게 말을 건넸다.
장군님 뺏지 옆에 북조선국가의 태극기를 함께 달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하니 30대로 보이던 그 총각은 아무 말 없이 식 웃기만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태극기를 보면 위대한 대한의 국민임을 연상하게 하고 뭔가가 마음이 뿌듯해짐을 느낀다.
-1958년 선남초등학교 운동회-
우리 어릴 적엔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태극기를 게양 할 때는 뭔가가 긍지와 자긍심을 느끼면서 꿈과 희망과 이상을 심어갔다.
-2010년 6월 구미여자고등학교 전체조례-
3. 태극기를 다는 것과 나라사랑하는 마음도 貧富(빈부)에 따라 다르다?
해방70주년이 된 오늘 아침 국기를 게양하고 시골인 성주를 향해 대구를 출발했다.
거리에는 어저께부터 온통 태극기의 물결이다.
시골 농촌인 우리 마을(약 40여호)에도 집집마다 하루 전부터 모두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그런데 도시 아파트와 주택에 국기를 게양한 집은 극히 소수의 몇 집만 보인다.
내가 사는 대구 K고교 뒤 33坪아파트 10동(1동에는 평균 100세대가 살고 있는데)중 1동에 6~7집만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조금 건너편40~60坪 H 롯데아파트는 우리보다 더 많은 세대가 살고 있는데 1동 100세대 중 국기를 게양한 집은 2~3집에 불과 했다.
가정에 국기를 게양하는 것도 빈부의 정도와 비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5.8.15일 대구 Y아파트 국기게양 모습-
그렇다.
나라사랑과 애국심은 가난과 부유한 자 학력의 높고 낮음(배움의 정도) 국가관 등 관점에 따라 서로 상반된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알 수 있었다.
잘되면 내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 우리 속담이 있지 않은가?
잘되면 내가 잘해서라고 생각하지 나라와 조상과 부모와 선생님등 주변의 감사함은 모른다.
내가 잘 못되면 정 반대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독재국가에서는 그래서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고 바보로 만드는구나!
가축에게 먹이를 조금씩 주어 주인에게 절대복종하도록 하듯이 국민들에게 배급을 조금씩 주면서 나라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하면서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는 등 어정쩡한 인간으로 만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나도 점점 늙어가는 인생이다.
왠지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을 그리고 오늘을 즐기면서 내일을 창조하고 싶어진다.
지금에서 가까운 지난날보다 오래된 과거가 더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그 시절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살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그 때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처럼 좋아하는 등 반대로 생각하며 살았더라면 나는 어찌 되었을까?
인간사 세상살이에 대해 과거를 돌아보며 분석이나 비평은 하되 스트레스는 받지 말자고 다짐을 해 본다.
인생이란?
해와 달은 밤낮으로 매일을 뜨고 지고하면서 영원을 거듭하며 만물을 보호하고 지켜 가는데 알고 보면 나(我)는 한 순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밤하늘의 별똥별이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내 생애는 하루를 살든 1년을 살든 백년을 살든 천년을 살든 億劫(억겁)에 비하면 刹那(찰나)에 지날 뿐이다.
오늘 하루도 후회스런 일 하지 말고 만들지도 말자!
아름다운 꿈만 꾸고 즐겁게 일하면서 행복한 저녁을 맞이하자!
조그마한 일에 충실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삶에 의미를 찾아 뜻있게 살아가자.
이를테면 국기를 게양할 때도 옛날을 그리워하며 잃어버린 어릴 적 꿈과 희망과 용기를 다시 찾아서 시들어 가는 삶의 의욕에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마음으로 국기를 게양하자.
바람이 부는 한 태극기는 휘날리면서 대한민국을 영원히 지켜 줄 것이니까!
2015.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