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은 웬지 처량하다. 부산영화제의 마지막 날인 오늘, 부산은 웬지 처량해 보인다. 옛 도시의 폐허의 황량함과 비견될만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축제의 마지막 날인 부산은 웬지 쓸쓸하다. 그 쓸쓸함의 끝자락을 묵묵히 밟으며 메가박스를 향했다.
오늘의 첫 프로는 <월드단편>이다. <월드단편>은 부산영화제 때 빼놓지 않고 본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뮤즈 강으로의 행진>, <터널>, <이 매력있는 남자>, <크랙커 백>, <침묵의 목소리>, <달려라 토끼야>, <미겔리나>. 모두 괜찮은 영화들이다. <이 매력있는 남자>는 오래간만에 본 로맨틱 코미디인거 같다. <터널>은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암소의 출산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가슴찡한 영화이다. <크랙커 백>은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한 소녀의 애틋한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부산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시아애니>이다. <가라쿠타>와 <인터스텔라5555>의 두 편이 상영되었다. 둘 모두 대사가 없는 애니메이션이지만 감동은 충분히 전해진다. <가라쿠타>는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와 피아노 치는 여자의 사랑이야기를 아주 코믹하게 전해주는 3D 그래픽 애니메이션이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표정과 행동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인터스텔라5555>는 지금까지 지구의 뮤지션들이 모두 외계인이었다는 황당한 소재의 애니메이션으로 뛰어난 상상력이 돋보인다.
부산영화제 홈페이지의 자료에 의하면, 올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일반관객은 165,103명이며, 좌석점유율은 83.0%으로 7회 대비 2.3% 상승했다고 한다. 관객수는 작년보다 조금 줄었다 하지만, 영화매니아들의 인원은 더 늘어난거 같다. 전박(영화제 기간 내내 있는 것)을 하는 사람도 꽤 되고,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도 많이 왔다. 또한 Guest ID Card를 소지한 사람도 많았다. 점점 관객의 질이 높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나의 개인적인 부산영화제 정리는 다음과 같다. 내가 본 영화들을 중심으로 나열해 보았다.
최고의 선택 - <엘리펀트> <몽상가들> <월드단편>
최악의 선택 - <아야야> <늑대의 시간>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 - <미국의 광채>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 - <늑대의 시간>
가장 많이 잔 영화 - <머나먼> <한국단편>
가장 웃겼던 영화 - <자토이치>
가장 슬펐던 영화 - <마트부루미> <라자>
극장에서 개봉하면 흥행에 성공할 거 같은 영화 - <자토이치> <잼필름즈2>
보았으면 좋았을 영화 - <미국의 광채>, <햇빛 찬란한 월요일>, <광산에 내리는 짓눈개비>, <불견>
참고 : 영화제에서 한 영화들은 다시 볼 수 있다. 요트경기장의 시네마테크에서 미리 신청하고 볼 수 있는데, 사실 나도 한번도 안 해 봤다. 언제 한번 해봐야겠다. (http://www.piff.org/cinema 에 가면 자세한 안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