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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현숙(호주/ 브리즈번 기자)
호주 브리즈번에는 지금 자카란다 꽃비가 은은한 향내를 풍기며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꽃비는 태양의 도시를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봄이 깊어져 가는 신호를 보내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가을비를 맞으며 어스름 불빛 아래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었는데. 단지 10시간의 시차를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계절이 한 공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이롭기만 하다. 지금은 서울에 다녀온 일이 마치 오래 된 추억처럼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필자가 최근에 서울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정부 투자 회사인 서울 관광 마케팅(주)에서 2010년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서 재외동포 고국 초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인 언론인들을 선정해서 서울 관광을 해외에 홍보하는 목적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동아일보의 칼럼니스트인 필자는 운 좋게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초청을 받게 되었다. 또한 서울시로부터 서울관광 리포터(취재기자)로 임명을 받아서 9월27일부터 30일까지 3박 4일 동안 서울의 멋을 찾아서 취재를 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테마를 정하고 계획을 미리 세워서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숨겨진 서울의 멋과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경복궁을 찾아서 ~~
나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예술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런 연유로 취재를 위한 나의 첫 발길도 자연스럽게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짐작해볼 수 있는 경복궁으로 향하게 되었다. 경복궁은 지하철 3호선을 이용해서 경복궁역 5번 출구로 나가면 경복궁 입구 마당과 편리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사적 117호로 지정된 경복궁은 넓은 터 자리만큼이나 많은 사연들을 안은 채 지난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경복궁 내에는 여러 건축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연결되어 있는데 근정전(국보 223호), 경회루(국보 224호), 자경전(보물809호), 자경전 십장생굴뚝(보물810호), 아미산 굴뚝(보물811호),근정전 및 행각(보물 812호) 그리고 풍기대(보물847호) 등을 대표 건축물로 들 수 있다.
광화문을 정문으로 하는 경복궁은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건립했으며 법궁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근정전은 본채로서 왕과 신하들의 공식적인 만남의 장소로 정해져 있는 곳이다. 천장에는 금색을 입힌 두 마리의 용이 7개의 발톱을 세우고 둥글게 조각되어있는데 강력한 왕권의 상징이라고 한다. 발톱의 수가 많을수록 더욱 강력한 왕권 통치를 나타낸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다시 한 번 눈길을 보내게 된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인 권력통치의 막강한 힘을 입증하듯 용의 문양이 선명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근정전 외곽 지붕의 한 귀퉁이에 원숭이 조각들이 한 줄로 나열해 있는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사악한 힘이 궁내로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디언의 상징이라고 한다. 근정전(1867년 중창) - (왕이 고위직 신하와 일상 업무를 보던 곳)― 을 둘러보았으며, 용마루가 없는 전각인 강녕전(임금이 일상생활을 하는 장소)에서 본 임금의 목제 침상의 길이가 짧아보여서 임금의 키가 작지 않았나하는 짐작을 해보았다. 반듯한 마루를 중심으로 침실과 식사를 하는 방이 마주 하고 있었으며 일상의 간단한 식사차림을 재현해 놓았다. 밥과 국 등 몇 가지의 기본 반찬만으로 차려진 검소한 상차림이 임금의 마음가짐을 나타내주는 듯하다.
발길을 교태전으로 옮기면서 대궐 지붕들을 바라보며 열심히 카메라의 스위치를 눌러댔다. 한국의 미는 날아갈 듯 섬세함이 드러나는 선의 예술이라는 말을 내 눈으로 실감하는 순간이다. 지붕과 지붕 그리고 건물 사이로 드러나는 공백과 살짝 엿보이는 파란하늘, 그 공간은 미묘한 멋을 풍기는 자태를 나타낸다. 한국 전통예술의 진정한 매력이 지붕의 휘어지는 곡선에서 제대로 표현되고 있음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실로서 숲이 바로 앞에 위치해있고 수많은 전각들이 나열해 있는 북악산 앞자락에 위치해 있다. 조선왕조의 왕비들은 내명부의 최고 서열로서 권력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역사기록을 보면 여자로서 갖는 삶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짐작을 해본다. 권력 쟁탈과 내분이 심한 대궐 안에서 평생의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사는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교태전에는 왕비의 아픔이 배여 있을 것만 같다.
교태전 뒤 쪽 향원정으로 가는 길 중간에 풍기대가 설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기상 관측기기였던 풍기대(보물 847)는 옛 사람들의 과학적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솥같이 생긴 화강석 대 위에 팔각형 기둥을 세운 모양이며 그 위에 기를 꽂아서 풍향을 측정했던 기구라는 설명이 옆에 세워져있다. 몸통 부분에는 구름 문양이 새겨져 있고 하단부에는 용머리 모양의 그림이 조각되어서 솥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팔각형 기둥 맨 위의 중앙에는 깃대를 꼽는 구멍이 있고 그 아래 기둥 옆으로는 물이 고이지 않도록 배수구멍을 뚫어 놓았다. 경복궁 풍기대는 창덕궁 풍기대와 함께 조선시대에 바람을 측정했다는 실증적 자료로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증명하는 선구자적인 기구로 기록되고 있다. 풍기대 바로 앞에 넓은 나무 평상이 두 개 있어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지만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단체 관광객들 때문에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경복궁 내부는 생각보다 넓어서 전각들을 돌아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취재노트에도 세심하게 기록을 해야만 했다.
경복궁 내에는 중국인,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서양인 관광객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경복궁내에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의 안내자가 시간별로 몇 차례 있어서 경복궁의 역사를 설명하는 통역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다.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역사적인 관광장소에는 전문지식을 가진 안내자가 있어서 취재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했다.
다음날에 한국전 참전 군인들의(?) 퍼레이드행사가 근정전 마당에서 있다면서 뜰에서는 무술과 무용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 탓에 정문 출입문을 통제하니 밖으로 다시 나가기가 불편해졌다. 텐트 밑에 앉아있는 경찰에게 무슨 행사가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니(기자 정신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여기 있으면 안돼요. 빨리 지나가요." 라는 말만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낯선 이에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는 민중의 지팡이를 만났더라면 기분이 좋아졌을 텐데....
정문 출입문까지 통제하면서 무술연습과 행사를 근정전 뜰에서 진행해야 하는지 마음이 불편해졌다.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경복궁은 우리 후손들이 오랜 시간 지켜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 국립 민속 박물관 안에는 ~~
경복궁의 넓은 뜰을 지나서 샛길을 따라가니 국립 민속박물관이라고 써 붙인 팻말이 보이고 기와지붕을 올린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국립 민속 박물관을 들어가려면 경복궁 입장권(3000원)으로 가능해서 새로 티켓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가게가 있는 입구 쪽에는 많은 관람객들로 인해서 혼잡했으며 초등학생들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서 정신이 없었다. 학생들을 인솔해서 조상들이 남겨준 훌륭한 문화유산과 그 정신을 설명해 주어야 할 지도교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1972년에 건립되었고 1993년에 새롭게 개원한 국립 민속박물관의 설립 목적은 우리 민족의 전통생활을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문화와 교육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민속 박물관은 한민족 생활사(제 1전시관), 한국인의 일상(제2 전시관), 한국인의 일생(제3전사관), 어린이 박물관 그리고 야외 전시에서는 마을 공동체의 신앙물인 장승, 돌탑, 솟대, 돌하르방 등을 볼 수 있으며 60-70년대의 추억의 골목 풍경도 재현해 놓았다. 각 전시실의 주제에 따라서 초가집, 기와집, 너와나무집, 서당, 침술 방, 혼인과 장례행렬, 양반가의 안방, 음식 상차림, 민화 등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 조상들의 지난 흔적을 세밀하게 정리하고 잘 구분해 놓아서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게 했다. 역사란 한 시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후세에 평가되는 삶의 중요한 산물이라고 여겨진다.
~~인사동 골목길에서...~~
경복궁에서 옆길로 빠져 나오니 인사동 가는 팻말이 보였다. 예스러운 멋이 배어있는 인사동 골목길을 기대하며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골동품가게가 줄지어 늘어선 인사동 거리를 상상하며 들어섰는데 너무나 혼란스럽게 변해있었다.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꾼들, 똑 같은 선물용 잡화를 진열한 가게들, 수많은 식당들이 있는 거리는 일상적인 도시의 뒷골목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정통 한정식 식당에 들어갔다가 한사람에게는 상을 차려줄 수 없다는 황당한 수모를 겪기도 했다.
예전에 서울에서 살 때에 자주 들리며 그림을 감상하던 많은 아트 갤러리들은 몇 개만 생존해 있고 없어졌다. 동호회 회원들과 작품 전시회를 준비하던 친구를 만나서 인사동 갤러리의 변한 모습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L 여가수가 불렀던 아~~옛날이여 하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허름했지만 옛 풍취가 넘쳐나던 인사동 거리가 그리워졌다. 외국인들에게 가장 고풍스런 한국의 전통 문화를 보여주던 골목길이 잡화점거리로 변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 되었다. 모시 한복을 입고 부채를 한 손에 든 채 손님맞이를 하던 골동품 가게의 주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경인미술관의 뜰에 앉아서 대추차를 주문하며 싸늘하게 식어가는 오후의 햇살을 바라보았다. 혀에 닿는 씁쓸한 대추차의 맛이 내 마음을 그대로 전해 주는 듯했다.
새로운 외국문화는 재빨리 받아들이면서 우리의 것은 왜 쉽게 잊혀지고 버려져 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 관광 한국이 높은 자리 매김을 하려면 양보다는 질로서 승부를 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외국에서 살면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애착이나 사랑이 많이 커지게 된다.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은 인사동 연가라도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 동이 촬영현장을 스케치하면서...~~
역사물 드라마 "동이" 촬영현장을 스케치하기 위해서 밤늦은 시간에 일산에 있는 MBC 드림센타를 찾아갔다. 바쁜 스태프들 틈에 끼어서 56회분 촬영을 지켜보았다. 배우들과 개인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초상권문제도 있고 매니저와 소속사를 통해야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촬영 현장만을 스케치하기로 했다. 배우들과 복도에서 스쳐지나 가는데 드라마를 통해서 친숙해진 얼굴들이라서 마치 잘 아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숙종 역을 맡은 인기배우 지진희씨를 복도에서 만나게 되어 "안녕하세요." 하며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배우들은 계속 대사를 웅얼거리고 외우면서 카메라 앞에 서지만 조감독의 큐싸인이 들어가면 자주 NG를 내었다. 세트장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촬영 세트의 대부분을 카메라에 담았다. 숙종 임금의 시대로 돌아간 촬영장의 분위기는 진지하고 흥미로웠다. 복도에서 자기 촬영 차례를 기다리던 세자 역의 윤 찬(15세)군을 만나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는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드라마의 제작과정을 지켜보면서 한 작품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이 담겨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봉은사와 길상사를 가다.~
서울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봉은사와 길상사를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불교문화와 철학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국에 올 때마다 기회가 닿는 대로 해인사나 통도사 같은 큰절도 찾지만 작은 산사도 찾아가서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종교의 분파를 따지기 이전에
정적과 고요함이 감도는 곳에서 인생의 깊이를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도심 속에 자리한 두 사찰을 방문해서 산사와의 차이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침 친한 선배언니가 불교신자라서 같이 동행을 해주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봉은사는 강남 삼성동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시대 고승 연회국사가 원성왕 10년(794년)에 창건하여 12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라고 한다. 절대불변의 진리를 찾아간다는 뜻을 지닌 진여문을 통과하면 사찰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미륵대불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신도들이 미륵불 앞에서 절을 올리며 소원성취를 비는 모습이 진지하고 간절해 보였다. 속리산에 있는 은진미륵을 닮은 모습이다. 캐나다에서 왔다는 젊은 친구와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도심 속에 위치한 절의 아름다운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산속에 와있는 듯 조용함이 감도는 봉은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절의 외양이 신자수가 많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대웅전 앞에는 신발들이 가지런하게 놓여있고 아미타불을 외며 목탁을 두들기는 스님의 뒷모습이 경건하게 보였다. 바닥에 꿇어 엎드려서 삼배를 올리는 선배언니를 보니 중생의 업보를 생각하게 만든다.
봉은사에서는 일반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한국민족의 전통과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고 외국인들에게는 부처님의 말씀과 한국을 알리는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 한국을 다시 방문한다면 "내 안의 나를 찾는 체험"을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봉은사 방문 기념으로 선배 언니에게서 예쁜 색깔의 구슬염주를 선물로 받았다.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 마신 후에 택시를 타고 길상사로 갔다.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스님이 1995년에 설립한 길상사는 서울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는 대중사찰이다. 유신정권 시절에 권력의 뒷거래가 이루어지던 안방 정치의 요정(대원각)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라고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주인이 법정스님께 기부를 해서 사찰로 비꼈으며 길상사가 설립된 유래다.
길상사는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 도량 길상사" 라고 이름을 바꾸고 대중 속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는 전교를 펼쳤다. 법정스님은 단 한 번도 주지 직을 맡지 않고 회주스님으로서 대중들을 위한 설법만을 간혹 행하였다. 무소유를 몸소 실천하며 대중들이 스스로 불법을 깨우치기를 바랐던 수행자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대웅전을 끼고 오른편을 바라보면 합장하고 있는 작은 보살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신비로워 보이는 모습과 아름다운 얼굴은 성모마리아의 자태를 닮아있어서 우아하게 보였다.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와 고풍스런 모양의 정자는 깊은 산속에 와있는 듯 한 아늑한 정취를 드러낸다. 도심 한 가운데에 길상사와 같은 운치 있는 사찰이 있다는 것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복된 일이라 여겨진다. 세속에 찌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바로 우리 곁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이 향불처럼 오랫동안 좋은 향기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기도에 담아 본다. 길상사 정문 앞에는 한복 연구가이며 자연으로 상을 차린다고 알려진 이효재씨의 한복 연구소가 있다. 사람들은 닫힌 유리문 너머로 집을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청계천은 공원이다 ~~
몸은 피곤했지만 저녁시간에 틈을 내어서 새롭게 단장된 청계천에도 가보았다.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청계천의 변화는 서울시의 이미지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도심 속에서 자연친화적인 공원을 찾고 싶은 시민들에게 서울시가 휴식 장소를 제공해준 것 같다. 화려한 조명과 작은 폭포가 모양새를 갖추고는 있지만 여유를 누리기에는 무언가 2퍼센트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록색이 두드러지는 나무와 꽃이 더 심어졌으면 좋을 듯하고 주변 상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나무의 조명에 신경을 써서 아늑한 분위기로 변화를 준다면 분명히 멋들어진 청계천 공원이 될 것이다. 서울 시민들에게 진정한 휴식처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이 자연 친화적인 곳으로 바뀌기를 바란다.
~~한국전통 뮤지컬 미소를 보고~~
시청역 부근 정동 길에 있는 정동극장에서 한국전통 뮤지컬(Original Korean Musical) "미소(Smile)" 를 관람했다. 가을비가 흩날리는 밤에 가로등이 길게 이어진 덕수궁 돌담길을 혼자서 걸어보는 낭만적인 시간을 가졌다. 비록 내 곁에서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줄 다정한 연인은 없었지만 ... .
미소의 의미는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을 무대에 올려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의 가슴에 사랑과 신명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한다. 이 뮤지컬로서 세상이 좀더 행복한 미소로 채워질 수 있도록 하는 정동극장의 마음을 담았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이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미소는 춘향전을 각색하여 춘향, 이 도령 그리고 변학도의 삼각관계 사랑을 뮤지컬로 만든 공연이었다. 창, 무당춤, 칼춤, 북춤, 신명나는 사물놀이 한마당 등... .
정말 다양하고 신명나는 공연이었으며 무대의 바닥을 개울물이 출렁이는 듯 꾸민 조명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관중들은 서양인 일본인 중국인들이었으며 내국인은 별로 눈에 띠지 않았다. 객석의 관중을 무대 위로 불러내어서 즉석 접시돌리기를 시킨 후에 선물로 전통 담뱃대인 장죽을 선물로 주며 함께 호흡하는 무대를 꾸민 것도 보기에 좋았다. 미소의 특별한 프로그램으로는 의상체험, 장구교실, 뒤풀이가 마련되어 있어서 더 빛이 나는 공연인 것 같았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5만원의 입장료가 별로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멋진 리듬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적절한 전통 창극으로 추천을 하고 싶다. 나는 얼~쑤 조~~오~타 하는 추임새도 넣어보고 박수장단도 맞추면서 신명나게 한바탕 놀고 왔다.
~~에너지가 폭발하는 난타공연~~
마지막 취재 날에는 살아있는 문화 공간이라고 알려진 "난타" 공연을 명동 전용극장에서 출연배우들과 인터뷰도 하고 관람을 하는 행운을 가졌다. 명동극장은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을지로 입구 역에 내려서 5번 출구로 나가면 명동 골목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유네스코 빌딩 3층에 자리하고 있다. 난타전용극장은 현재 강북 정동극장, 강남 청담동, 명동 그리고 제주 전용관까지 모두 4곳에서 9개의 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 모든 전용극장에서 하루에 입장하는 관객의 수가 약 3400명 정도 된다고 하니 난타의 유명 도를 짐작할 만하다. 목적은 현대적 퓨전 음악과 비언어로서 한국의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라고 남자배우가 설명해주었다.
난타는 한국전통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드라마화 시킨 한국최초의 비언어 공연이라고 한다. 칼과 도마 등 주방기구들을 이용해서 타악기 소리를 내며 국적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잦은 해외공연으로 한국의 현대적 퓨전 음악을 외국에 전파하고 있는 문화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해외마케팅을 담당하는 유대곤 대리와 5명의 요리사 중에서 매니저의 조카 역을 맡은 신 승학(29세)씨를 인터뷰 하게 되었다. 난타공연은 매니저, 낙하산 요리사인 조카(Nephew), 수석 요리사(Head Chef), 여자요리사(Female), 남자 요리사(Sexy Guy) 5명의 출연자로 구성이 되어있다. 인터뷰를 했던 조카 역의 신승학씨(연극전공)는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로 와서 1년간 지냈으며 결혼한 누나가 시드니에 살고 있다면서 기자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는 프랑스 리옹에서 약 100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했던 공연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해주었다.
배우가 평가하는 난타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즐거움이 넘쳐나고 유머가 있으며 전통음악을 퓨전음악으로 시도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공연 중 객석의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내어서 즉석 신랑 신부의 역할을 맡기고 같이 어우러지며 함께 웃음을 나누는 연출이 재미있었다. 여자 요리사 역을 맡은 여배우의 가냘픈 몸매에서 남자배우를 능가하는 에너지가 폭발하듯이 발산되는 게 놀랍기만 했다.
난타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에서 4명의 배우가 김치통과 설탕, 소금 통을 힘차게 두드리며 내는 사물놀이 장단의 리듬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내 안의 숨겨진 힘이 힘차게 바깥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일본 여자는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마치 무대 속으로 빨려드는 사람처럼 보였다. 숨겨진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정말 신명나는 공연이었다. 한바탕 소란을 피운 난타 잔치는 무대배우들이 객석을 향해서 공을 던지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배우와 관객들은 주운 공들을 다시 무대로 되던지면서 난타라는 이름 아래에서 하나로 뒤섞여 버렸다. 마지막 취재 날의 아쉬움을 말해주듯이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길은 가을비에 젖어 들고 있었다.
~~ 하고 싶은 말 ~~
변덕스런 가을 날씨에 취재를 하기 위한 시간 조절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는 시간을 가졌다. 3박 4일의 아쉬운 일정 속에서도 많은 것을 보고 취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서울 관광마케팅(주)에 깊은 감사를 보낸다. 그리고 서울시에서 받은 서울 관광리포터 임명장은 나의 삶의 한 부분을 풍요롭게 장식해주는 멋진 선물이 될 것이다. 또한 지난 15여 년 동안 호주 동아일보에 칼럼을 쓰면서 느꼈던 보람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지면을 통해서 호주 동아일보사에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