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31] 교황 피격소동과 아시아 주교회의
"교황, 필리핀 마닐라공항서 피격" 통신사 오보
<사진설명>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첫 아시아 주교회의 참석 직전의 한국 주교단. 장병화 마산교구장(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종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차장, 두봉 안동교구장, 박토마 춘천교구장, 비테를리 함흥교구 덕원면속구 교구장서리, 지학순 원주교구장, 정진석 청주교구장, 권 야고보 광주교구 보좌주교, 김남수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 최재선 부산교구장, 한공렬 전주교구장, 윤공희 수원교구장, 김 추기경, 나 굴리엘모 인천교구장, 황민성 대전교구장.
'<긴급> 교황 바오로 6세 필리핀 마닐라 공항에서 피격. 교황 옆에 있던 한국 김수환 추기경 가라데 무술로 괴한 막아내. 김 추기경은 부상… 마닐라=UPI'
이게 웬 뚱딴지 같은 뉴스인가.
1970년 11월27일 본의 아니게 전세계로 타전된 이 긴급 뉴스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때 세계 유수 신문방송에 '한국 김수환 추기경'이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던지 정부의 한 인사는 "추기경 덕분에 코리아가 많이 알려졌다"며 뜻밖의 홍보효과에 감탄하기까지 했다. 교황 바오로 6세가 사상 처음 열리는 아시아 주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상황은 이렇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시는 교황님을 영접하기 위해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내외와 아시아 추기경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난 최연소 추기경이었기 때문에 줄 맨끝에서 교황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황님이 추기경들과 차례대로 포옹을 하고 내 앞까지 오셨다. 나는 아시아 교회를 격려하기 위해 먼 길을 오신 교황님께 예의를 다해 인사를 올렸다.
교황님이 나를 포옹한 후 돌아서서 한걸음 떼는 순간이었다. 사진기자들 사이에서 갑자기 한 남자가 뛰쳐나오더니 십자가를 앞세우고 교황님 쪽으로 돌진했다. 그 순간 정신 이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본능적으로 어떤 방어자세를 취하기는 취한 것 같은데 워낙 눈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어떤 식으로 방어했는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옆에 있던 건장한 외국 주교가 범인의 멱살을 낚아채는 광경은 분명히 보았다.
잠시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교황님은 무사하셨다.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셨다. 그런데 내 흰 수단 팔뚝 부분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것도 대통령 영부인 이멜다 여사가 먼저 발견하고 귀띔해 주어서 알았다. '어, 이게 누구 피인가? 난 다친 데가 없는데….' 범인 옷소매에 숨겨진 비수를 빼앗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손에 상처를 입은 것 같다. 그 정도로 소동이 끝났으니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교황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마닐라 시내 대성당에 도착했더니 지학순 주교(원주교구장)가 두 눈을 부릅뜨고 "추기경님, 손을 다쳤다면서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공항 소동과 내 부상 소식이 벌써 라디오에서 방송됐다고 했다. 그래서 "아니야, 나 멀쩡해'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미사를 봉헌했다.
그런데 큰 소동은 주교단 숙소인 힐튼호텔에서 벌어졌다. 미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더니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에이피(AP), 유피아이(UPI), 로이터(Reuters) 등 세계적 통신사 기자들까지 몰려와서 그때 상황과 부상 정도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예 한쪽에 인터뷰 자리까지 마련해놓았다. 하는 수 없이 그곳으로 끌려가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난 다치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그 바람에 점심도 제대로 못먹었다.
그후 방에 들어와 좀 쉬려고 하는데 기자들이 찾아오고, 미국 엔비시(NBC)에서는 생방송 인터뷰를 연결하는 등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저녁쯤 소동이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주 필리핀 한국대사가 찾아와서는 "대통령 각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면서 찾아뵈라고 지시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나중에 확인해 보았더니 UPI 통신이 공항 소동을 급하게 타전하면서 내가 부상당했다고 오보(誤報)한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에서는 그 소식을 아예 1면 톱기사로 처리했다.
이 소동이 필리핀에서는 한동안 정치 쟁점이 되어 시끄러웠다. 수세에 몰려있던 마르코스 정부가 인기를 만회하려고 "마르코스 대통령이 가라데로 괴한을 물리치고 교황을 지켰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달쯤 지났을까, 필리핀에 사는 어떤 분이 보내준 신문을 보았더니 그때까지도 기사 제목이 '마르코스냐, 한국 김 추기경이냐'였다.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로 인해 '코리아'와 '김수환'은 전 세계에 확실하게 알린 것 같다. 한 정부인사는 식사 자리에서 "덕분에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추기경이 정말 다쳐서 입원까지 했더라면 홍보효과가 더 대단했을 것이다."라는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건 그렇고 당시 열린 첫 아시아 주교회의는 아시아 교회에 큰 의미가 있는 회의였다. 교황님의 아시아 방문을 기해 마닐라에 모인 아시아 주교들은 '아시아 사회문제와 그 해결'이라는 주제를 갖고 며칠 동안 머리를 맞댔다.
인구증가·빈곤·저개발·민주주의 등 아시아 각국의 공통 문제에 대해 교회가 어떻게 복음적으로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한국에서도 윤공희 대주교(당시 수원교구장)와 정진석 대주교(청주교구장) 등 8명이 참석했다.
당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쇄신 바람을 타고 교회 곳곳에서 진보적 목소리가 분출되었다. 주교들이 밤낮으로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회의장 밖에서 필리핀 젊은이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노골적으로 교회를 비판했다. 시위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주교 5명을 선발해 그들과 대화를 시도했던 기억이 난다.
아시아 교회 역사상 처음 열린 8일간의 주교회의는 분위기가 무척 뜨거웠다. 그때 '이런 회의를 한번만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면 어떻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 주교님들이 내 생각에 흔쾌히 동의하고 한국주교단 이름으로 그 안건을 발의하기로 했다.
그래서 의안자료를 급히 만들어 배포하고 여론 동향을 살폈다. 의견이 찬반으로 갈렸다. 특히 교황청에서 지역교회의 세(勢)가 강해지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 때문에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 때문에 나도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회의에 참석 중인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차관 피네돌리아 차관이 내게 오더니 "그 좋은 안건을 왜 빨리 상정하지 않느냐"고 채근했다. 교황청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주저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격려였다.
결국 그 안건은 절대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앞으로 아시아 주교들이 자주 모여 기쁨과 슬픔, 고민을 함께 나누게 됐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다. 그 회의기구를 기초로 몇년 후에 출범한 기구가 현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FABC)다. FABC는 지금도 아시아 교회가 형제적 사랑을 나누고, 세계교회에서 아시아의 목소리를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믿을 수 있다' '거짓말을 안 한다' '법을 잘 지킨다'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산다'는 인정을 받아야 진정한 1등 국가다.
[평화신문, 김원철 기자... 김수환 추기경님 홈피에서 가져온 글 / 출처: 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