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뚜버기들의 (코리아둘레길+동서트레일) 5,350km 도전기. 그 40번째 이야기
해파랑길 25코스
● 일시: 2024.9.1. (일), 맑음
● 경로: 금호정∼촛대바위∼무릉교∼망양휴게소∼대게공원∼망양정옛터∼사동항∼기성면
※ 스탬프 함: 울진군 기성면 기성로 659 부근
● 거리: 20.3km
꽃병과 약병 사이에서
10여 년부터 척추관협착증을 앓고 있다. 등산은 삼가야 한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1, 2km 정도 걷고 나면 통증이 사라지기에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까지 1 대간 9 정맥을 위시하여 점 산행 등으로 약 6,000km 이상을 걸었다. 내 병은 걸어서 고친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말이지.
그러나 얼마 전부터 오래 앉아 있거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면 통증이 심해 걷기조차 힘이 든다. 전에는 십 분 정도만 뭉그적거리고 나면 통증이 가라앉았는데 지금은 30분 이상 노력해도 통증이 잘 가시지 않는다. 통증을 다스리고 나면, 오래 앉거나 눕지만 않는다면 걷는데는 별 이상이 없으니 신기하단 말이야. 이제는 척추관을 확장하는 시술이나 수술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오늘도 참석을 고민했으나, 모처럼 친구의 고향땅을 지나는 길이기도 해서, 다는 못 걷는다 해도 대원들과 같이하는 게 도리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참석을 결심했어. 중간에 통증이 풀리면 조금이라고 걸을 수 있겠지만, 최악의 경우는 주차망양 해야 할 것만 같은데 어쩌지?
"아, 내가 팔십이라니, 세월 한 번 참 빠르구먼. 언제 이렇게 흘러버렸는지." 엊그제까지만 해도 까까머리 꼬맹이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머리엔 흰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 온갖 감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짙푸른 동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해본다. 문득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어릴 적엔 동네 친구들이랑 뒹굴며 놀았고, 청춘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때는 그저 시간이 많을 줄 알았어.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구먼. 한때는 저 왕피천 강물처럼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어느덧 강물 끝에 다다른 느낌이야,
흐르는 물은 내 세월 같고, 부는 바람은 내 마음 같고, 저무는 해는 내 모습과 같으니 어찌 나이 들어 보지 않고 늙음을 알겠는가? 육신이 칠팔십이 되면 무엇인들 성하리오. 둥근 돌이 우연일 리 없고, 오랜 나무가 공연할 리 없고, 지는 낙엽이 온전할 리 있겠어.
사람 나이 팔십이면,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지. 겉으로는 늙고 쇠약해 보일지 몰라도, 마음만은 아직 청춘인 걸 어쩌겠나. 어릴 적 벚나무 아래서 놀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꽃잎이 떨어지는 게 그렇게 아쉬웠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벚꽃이 지니까 다음 해에도 피고, 또 그다음 해에도 피는 것 아니겠나. 모든 게 변치 않고 그대로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사람도 그렇지. 젊은 날엔 온 세상을 품에 안을 것처럼 기세가 등등했는데, 나이 들어 몸 이곳저곳 탈이나 성한 데가 없다 보니 그저 건강히 하루를 사는 게 큰 복이더라. 나이가 드니까 눈앞의 것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귀해. 젊었을 때는 미처 몰랐지. 사랑하는 가족, 오래된 친구, 가끔 생각나는 첫사랑. 다 지나가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깨닫게 되더라고. 팔십 평생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봤지만, 진짜 가슴 따뜻한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말이야.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고 좋아했던 친구·선배들, 나보다 먼저 떠난 그들이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지 모르겠어.
예전에는 식탁 위에 늘 꽃병이 있었어. 아내가 들여온 계절 꽃들이 방을 환하게 했지. 근데 지금 식탁에는 약병이 줄을 서네. 아이고, 고작 인생이라는 게 꽃병과 약병 사이를 오가는 거라니. 웃프지 않은가? 그래도 말이야, 이 나이에 친구랑 막걸릿잔 기울이며 옛날얘기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몰라. 젊을 적엔 앞날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과거가 더 소중해. 그 속에서 나를 찾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어쩌면 사라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당연한 이치인지도 몰라. 벚꽃도 지고, 시간도 흐르고, 사람도 언젠가는 떠나지. 그래도 그 모든 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 아쉬워할 필요는 없는 거야. 떠나가는 게 있다면, 뭔가 다시 채워질 테고, 남아 있는 것도 있는 법이지. 젊었을 때는 몰랐어. 늙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는 걸.
이제는 모든 게 감사할 뿐이야.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마음 나눌 친구가 있는 것도, 매일 아침 해를 볼 수 있는 것도. 다 지나간다 해도, 그 순간순간이 나에게 소중한 선물이니까. 인생이란 게 참, 고작 꽃병과 약병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같아도, 그 사이에서 피어난 추억과 우정은 내게 큰 기쁨이었어.
오늘도 해파랑길을 한 모퉁이 돌고, 친구들과 함께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지나온 세월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 본다.
"그래, 이것이 인생이지. 참 괜찮은 인생이었어."
첫댓글 ㅡ 권수문
왕초형님의 인생강의 !
정말 찐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인생이 영원히 꽂병만 옆에있기를
바라겠지만
현실은 ....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옥체보존 잘하시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후학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주시기를 바라옵니다.
ㅡ 안덕용
좋은글 멋짓고 감동입니다 몸은 괜찬으세요 15일 참석 노력 할게요.
ㅡ 최진영
팔십 인생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하루하루가마지막 보관하고 있는 시간을 도둑 맞은 기분.가슴 찡한 글 잘 읽고 갑니다.이때는 고산골 장터에서 막걸리 한 잔이 제격.
ㅡ 천인교
고문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인생무상 인가요 꽃병 약병이 함께 있네요.
그래도 대단하십니다.
컨디션 조절 잘 하시어 함께 걸어가기를 기원합니다.
매일 매일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ㅡ 김성용
굿모닝ㆍ꽃병과 약병 글 을 접해보고 가슴이 넘 찡합니다 고문님 그리고 회원님 모두모두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ㆍ오늘도 건강 내일도 건강입니다 뭘 더바라 겠습니까ㆍㅡ홧팅ㆍ
ㅡ 권종명
고문님 나이는 숫자
일뿐 아직 청춘입니다
아픈곳은 많이 써 그런것 치료하면 되는것 기대합니다
아프지마세요.
ㅡ 남상구
너무 좋은 너무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고문님의 삶을 옆에서 뵈면 향기나는 술이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향기 오랫동안 주위분들에게 나누어 주시길. 뵈면 향기 나는 술이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좋은 향기 오랫동안 주위분들에게 나누어 주시길.
ㅡ 변삼수
이고문님,
우리 인생도 가을이 되었네요. 세월의 파도에 밀려 육신의 여러 곳에서 고장이 나 약병과 친하지만 남은 세월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친구 만나 해파랑길을 마음껏 걸어 가도록 해요.
인생의 가을을 건강하게 후회없이 살아 갔으면 해요. 회원님들, 내년 1월까지 건강관리 잘 하시어 완주할 수 있도록 해용.
ㅡ 김종배
이선생님 아직 날씨가 더운
데 해파랑길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화랑산악회에서 지리산 서산대사길(신흥리~의신마을)에 왔습니다
지금 대구로 가고 있습니다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ㅡ 최숙희
그렇게 걸으셔도 고쳐지진 않는다니 안타깝습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
ㅡ 최천기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많이 걸으신것 같읍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ㅡ정규린
건강 조심 잘하시면서
남은 여생 백세까지 常樂我靜 아름다운 인생을 늘 기원하겠읍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청춘 가슴 설레는 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친구들과 함께 바닷길을 거닐 수 있다는게 너무 행복. 해파랑길 친구님들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