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같은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76)씨가 9년 만에 신작소설집을 냈다. 삶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를 밀도 있게 형상화한 단편 9편을 묶은 「친절한 복희씨」다.
1970년 40살 불혹의 나이에 등단, 38년째 꾸준한 문학적 성과를 내놓은 작가는 이번 창작집에서 그 열정을 삶의 황혼에 집중한다. 저물어가는 인생의 정곡을 찌르는 지혜와 재치, 해학이 빚어낸 감칠맛 나는 이야기들로, 메마른 현실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화법이 그 원숙미를 한결 끌어올린다.
표제작은 2005년에 나온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제목을 패러디한 '친절한 복희씨'다. 어르신들을 괴롭히는 중풍의 아픔을 심도 있게 그려내 2006년 '문인 100명이 선정한 가장 좋은 소설'로 뽑힌 수작이다.
또한 그이들을 괴롭히는 암을 소재로 삼은 '대범한 밥상', 노인성 치매를 다룬 '후남아, 밥 먹어라'와 '그 남자네 집', 어르신들이 달고 다니다시피하는 관절염을 파고든 '그리움을 위하여'(2001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잦은 건망증 문제를 묘사한 '거저나 마찬가지' 등 단편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그의 면모를 독자들에게 확연히 각인시킨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소설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특히 작가는 소시민적 삶의 풍속도를 자근자근 그려내 인간 갈등을 톱니바퀴처럼 이어지는 필요악으로 보는 해석력을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 전개를 통해 인간의 내밀한 속사정을 명쾌하고도 속시원하게 풀어나가는 어법이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이들 작품은 우리 근현대사 전개 과정과 겹치는 작가 자신의 체험을 글로 복원해내는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개인사의 복원에 치중한 「나목」, 중산층의 속물화된 일상을 그린 「휘청거리는 오후」,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불합리한 삶을 묘사한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전작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와 달리 한 편 한 편이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단편이라는 것은 이 소설집이 주는 미덕이다.(문학과지성사/9500원)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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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무는 인생이야기를 길어내 신작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펴낸 소설가 박완서씨. 사진=김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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