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시 농암면에 위치한 ‘해보라’ 학교
‘해보라’ 는 해를 바라보라는 뜻도 있고,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해보라는 의미도 있다. 해보라는 지난 2007년 폐교한 문경 청암중고교를 무상 임대해 지난 3월 2일 개교한 비인가 대안학교다. 파독(派獨)광부출신으로 한국청소년개발원장을 역임한 한국교원대 권이종(70) 명예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고1(여기서는 10학년이라고 부른다.) 학생 3명이 과학 수업을 듣고 있다. 이선경 교사가 고기압과 저기압을 설명 중이다.
“태풍은 초기에 편동풍인 무역풍의 영향을 받다 북서쪽으로 휘어져 이동하다가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방향을 바꾸게 돼요”
이교사가 말하자 “모래나 흙 같은 물질도 태풍의 속성에 포함되나요?”, “태풍 가운데는 안전하다고 하는데 왜 그럴까요?” 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이들이 배우는 단원은 고1학생이 2학기 중반쯤에 배우는 대기의 순환이다. 그녀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단원부터 먼저 가르친다.”고 귀띔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자, 학생들이 바람과 관련한 대기 순환을 배우고 싶어 했고, 이 교사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장유동(16)군이 쓴 과학숙제를 얼핏 보았다. 계절과 관련해 단편소설을 써왔다. 과학숙제가 소설습작이라니..., 소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저는 바다에서 사는 수증기입니다. 물들이 수증기고 잘 변화하지 않지만 가끔 수증이가 돼 위로 올라갑니다. 저는 언제나 이런 애들이 부러워요. 그런데 기분이 이상해요. 막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아요. 어, 어, 제가 뜨고 있어요...(생략)’
경기 분당에서 온 장군은 포스텍 진학이 목표다. 장차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다. “공부만 시키는 분당의 학업 분위기가 싫었다. 엄마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해서 대안학교를 택했다” 고 했다.
행복 하고 싶어 왔다.
경기 의왕에서 온 이○○(16)군은 실업계고를 다니다 자퇴했다. 꿈은 가수나 레크레이션 강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돼 이곳으로 왔다” 며 “이곳에서 행복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온 정다솔(15)양은 9학년(중3)과정을 배우고 있다. “제도권 교육의 틀이 싫었다.”고 했다. ‘꿈이 뭐냐’고 묻자 한참을 생각한 뒤 “아직 정하지 않았다. 찾기 위해 노력 하겠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정수연(15)양은 디자이너가 꿈이다. 그녀는 “자연 속에서 자연의 감성을 배우면 디자이너의 꿈도 제대로 여물 수 있다고 믿었다.” 며 대안학교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점심때가 됐다. 선생님들이 큰 양푼에 봄나물을 넣어 고추장과 참기름을 두른 비빔밥을 손수 만들었다. 약간 매웠는데 학생들이 군말 없이 잘 먹었다. “반찬 투정하는 학생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김정현 교사는(농사담당)는 ‘세끼 외에 하루 두 번 간식을 먹는다“고 웃었다.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갔더니 김호빈(16)군과 김정빈(14)군이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다. 봄볕 탓인지 얼굴이 탔다. 대전에서 온 호빈군은 “매일 학원가고 야자 하는 게 싫었다. 학교가 즐거운 배움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빈군은 “학원 다니기 싫었고 부모님도 기숙학교에 다니길 희망하셨다. 건축설계사가 되기 위해선 자연을 알아야 하고 자연 속에서 생각을 키우고 싶었다.”고 다부지게 얘기했다.
학생들은 이른바 ‘자퇴생’ 신분이다. 인가도 받지 않은 자율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기운을 못 펴 움츠린 모습은 아니었다. 여느 또래들과 다름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머리가 좀 길고 여학생은 귀걸이를 했다는 정도다.
사회를 가르치는 최정묵(37) 고사는 “학교나 교사가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규제를 정하도록 했다, 두발은 자유롭게 하되 염색을 하지 않고 옷매무새 역시 무절제하게 입지 않도록 했다” 고 귀뜸했다. 이윤정(30) 국어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시간을 즐긴다. 경직되지 않고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모습이 도시 학생들과 다르다면 다르다” “입학한지 한달 남짓 지났는데 아직 부모를 그리워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달라진 점은 ‘싫어요.’라고 말하지 않는 점
명은주(39) 교장은 “16명 학생 모두 전국에서 왔다. 직접 대중교통을 타게 해 집으로 돌려보낸다.”며 “한 달 동안 교육실험에서 아이들이 달라진 것이라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싫어요.’ ‘안 돼요.’ 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점” 이라고 했다, 그녀는 “해보라 학교의 교육목표는 인성과 교과, 생활지도의 삼위일체를 실현하는 데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