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로티], 2013
꿈은 어떻게 생기는가?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공감共感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같은 경험이 있거나, 비슷한 체험을 했을 때 공감은 극대화된다. 예컨대 실연의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친구의 술주정이 밉지 않다. 이제 막 이별을 통보 받고서 찾아온 친구와 함께 기꺼이 울어줄 수가 있다. 추운 겨울날 물동이를 날라본 사람은 손등이 쩍쩍 갈라지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안다. 서러운 이등병 시절 그렇게 물동이를 나르고 또 나르고 했으니 말이다.
영화 [파파로티]에 공감하는 사람은 대개 두 부류의 관객일 것이다.
먼저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이제 자신의 일을 찾아 묵묵히 정진하고 있는 사람이 한 부류이고, 학창 시절 은사로부터 '넌 이런 소질이 있으니 한 번 노력해봐' 라는 말로 지금의 업業을 삼고 있는 사람이 다음 부류일 것이다.
조폭에 몸 담고 있는 이장호(이제훈 분)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와 살다 이제는 고아가 된 신세다. 그러던 자신을 지금의 조직이 식구로 맞아들였고, 장호는 조폭들이 가족이다. 그런데 장호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성악가가 되는 것이다. 조폭과 성악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어릴 적 교회에서 노래를 부르면 꼭 상을 타고, 듣는 사람마다 노래를 잘 한다고 했다. 장호가 제일 잘 하는 것이 노래 부르는 일, 그것도 성악이었다. 카세트와 CD 플레이어를 통해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를 들을 때 제일 행복했었다. 듣고 또 듣고. 성악을 듣는 것이 장호에게 유일한 낙이었다.
한 때는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주연급으로 꼽혔던 성악가 상진(한석규 분)은 불의의 후두 종양으로 성악을 포기했다. 지금은 시골 촌구석 김천예고의 음악과장이다. 그렇고 그런 애들을 가르치는 음악선생. 그런데 그의 앞에 깡패새끼가 성악을 배운 답시고 찾아왔다.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장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꿈이 되살아 났다. 자신의 눈 앞에 천재가 서 있는 것이었다.
[파파로티]는 코믹하다. 가볍다. 그렇기에 관객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주지는 못한다. 차라리 도제徒弟수업을 받는 것으로 각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희(강소라 분)와의 어설픈 로맨스도 빼고, 교장(오달수 분)의 코믹성도 빼고, 조연들의 웃음기도 빼고, 다만 조폭의 넘버 2 창수(조진웅 분)의 역할 정도만 살렸다면 좋았을 것을.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카세트를 통해 들은 성악가의 노래를 통째로 외워 부르는 장호가 혹독한 스승 상진을 만나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그렸으면 좋았을 걸.
이미 우리는 오래 전에 이러한 영화들을 접했기에 식상할 수도 있다. [서편제]에서 명창을 만들기위해 눈을 멀게 하는 비정한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묵묵히 받아들인 그 딸.
조폭 두목을 찾아가 '밥은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까 손목은 못 내놓고, 발목을 끊어가고 장호를 보내달라'는 상진의 마음이 그런 아버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호세 카레라스,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칭송 받았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네슨 도르마 Nessun Dorma>가 전율을 느끼게 했던 건 이러한 스승과 제자가 만들어낸 화음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파파로티]의 결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그런 결말도 바꾸어 놓았다면, 관객이 쉽게 예측하는 그런 결말이 아니라, 스승과 마찬가지로 좌절한 체 돌아왔지만 인생의 쓴맛을 본 장호가 스승과 함께 또다른 시작을 준비한다는 그런 결말로 바꾸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