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반복적인 파지 수집을 하고 있다.
의과대학 예과시절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하루 1-2시간 짬내서 복사집에서 복사를 해주는 품을 팔거나,
노트를 정리하여 복사집에 맞겨두면 같은반 학생들이 재복사를 하여 공부하므로 필기복사 아르바이트도 했다.
댓가로 A4용지 이면지를 잔뜩 얻어 나의 학습도구로 사용되었다.
모든 강의가 영어로 되다보니 오탈자도 많아 강의를 잘듣고 노트를 정리하여 필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컴퓨터가 드물어 1-2명의 학생들이 갖고 있던 시절로 요즘 처럼 작업을 컴퓨터로 하거나 녹음을 마음대로 할 수도 없었다.
한 번은 생화학, 생리학 리포트를 20장 정도 제출하니 조교가 나를 불러 꾸짖는다.
"성의 없이 이면지를 활용하여 제출"한다고.
사정을 설명하니 더 이상 말이 없어 졸업내내 이면지 리포트를 주로 사용하였다.
물론 노트도 주로 그랬지만...
공고를 졸업하고 7년간 직장다니며 주변의 도움없이 의대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절약 정신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닐 터.
아마도 부모님에게 물려 받았으리라.
지금은 고인이 된 아버님이 징용으로 일본에서 군수물자 공장일을 경험하며 "일본을 탓하지 말라. 우리 민족이 힘이 없고 부족하여 남에게 지배를 당하는 것이다." 부국강병을 이야기하고 일본 민족의 혼과 절약 정신을 배워와 평생 실천하신 분이다.
부전자전.
병원에서 재활용 이면지 메모장, 공부하는 노트, 쪽지, 안내 전달문, 심지어는 챠트와 처방전도 이면지로 사용한다.
개인 정보가 담긴 종이를 불 태우다가 주변에서 소각한다고 하여 환경오염을 생각해 모으다 보니 파지 처리하는 과정을 알고 안심하며 마당 한 곁에 쌓아 년간 두 번 정도 트럭으로 실어 내다 판다.
주변 선전 벽보물, 길거리 버린 휴지, 약품박스, 상품박스, 신문지, 오래된 책을 모아 고물상 운영하는 환자들에게 고물처리하는 과정, 가격도 알고 판매도 맡긴다.
봄 대청소하면서 겨울내내 모은 파지 값 45,000원과 돈을 더 보태 영양수액 주사를 구입하여 점심시간 이용하여 노인정에 다녀 오고자 한다.
해마다 하는 일이지만 봄에는 특히 더 즐겁다.
노인정에 미리 연락하면 보리밥에 된장국을 준비하여 먹어라고 권하기도 하고
잠깐이나마 분위기가 들썩이며 화색이 도는 노인들을 보고 나면 나 자신도 덩달아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