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칼(박준규)은 구마적(이원종)에게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기로 결심한다. 구마적의 괴력을 익히 알고 있는 김영태(박영록)는 다시 생각하라고 만류한다. 그러나 쌍칼은 오래 전부터 구마적을 한 번 꺾고 싶었다며 만약 자신이 잘못되면 조직을 두한(안재모)에게 맡기라고 부탁한다. 쌍칼이 결투를 신청해올 것을 예견하고 있던 구마적은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결투를 하루 앞둔 밤, 신마적(최철호)은 쌍칼에게 구마적의 박치기만 피하면 된다고 충고한다. 또 신마적은 구마적을 이기는 게 일본인을 이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귀띔한다.
결투 당일 우미관 앞에는 구마적과 쌍칼의 결투를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침내 결투가 시작되자 구마적은 불구자로 만들어 주겠다며 후회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질세라 쌍칼도 조심하라고 팽팽히 맞선다. 순간 두 사람은 날카로운 눈빛을 교환하고 쌍칼이 먼저 빠른 돌려차기로 구마적의 턱을 강타한다. 순간 휘청거리는 구마적,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고 구마적은 괴성을 지르며 쌍칼을 낚아채는데….
.. # 1 쌍칼의 사무실 외경(밤)
쌍칼 (E)더 이상 참는 것은 비겁한 것이야.
# 2 동 안
쌍칼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김영태를 비롯해, 두한, 문영철, 김무옥, 삼수 등 모든 쌍칼패들이 모여 있다.
쌍칼 그 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 구마적에게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겠다.
모두들 ...........
쌍칼 사내란 자존심을 먹고사는 존재들이야. 자존심 말이다. 지금 나는 그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더 이상 구마적의 눈치나 보면서 적당히 넘어 갈 수는 없다. 왜놈들에게 빌붙는 꼴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단 말이다.
모두들 ...........
쌍칼 그래, 모두들 생각하는 것처럼 구마적은 무섭지. 구마적의 힘은 무서워. 지금까지 아무도 이긴 사람이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게 한계에 왔다. 싫든 좋든 싸워야 한다. 오래 전부터 구마적은 우리 조직을 눈에 가시처럼 보고 있었어. 내가 제 앞에서 땅바닥을 무릎으로 기면서 개처럼 먹이를 달라고 애원을 하지 않는 이상 이젠 싸우는 것뿐이다.
김영태 형님, 다시 한 번만 생각하십시오. 다시 한 번.....
쌍칼 무옥아,
김무옥 야, 형님
쌍칼 날이 밝거든 우미관에 가서 전해라. 이 쌍칼이 싸움을 원한다고.. 시원하게 맞짱 한 번 뜨자고 말이다.
김영태 형님........?
쌍칼 알았나?
김무옥 (긴장된다) 야, 형님
두한 저도 싸우겠습니다.
쌍칼 허허허허허......그건 안돼. 진정한 오야붕을 가리는 싸움이다.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
두한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저도 가겠습니다.
쌍칼 이번 일 때문이 아니야.. 실은 이 곳에 오면서부터 구마적을 한 번 꺾고 싶었다. 오래 별러왔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꼭 꺾고 싶었어. 꼭....
그러면서 쌍칼은 들고 있던 두 개의 단검을 던진다. 그것은 정확히 벽에 붙어 있던 허수아비 그림의 두 눈에 정확히 가서 꽂힌다. 그렇게 살기 어린 쌍칼의 표정에서...
# 3 종로 회관
구마적이 뭉치, 상하이, 평양박, 제비, 셔츠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뭉치 큰형님, 왜 쌍칼을 그냥 보내셨습니까? 제 발로 기어들어 왔을 때 아주 요절을 내 버리시지요.
구마적 그건 아니야.. 비록 쌍칼이 내 말을 안 듣고 있지만 그 놈은 이 조선 땅에 몇 안 되는 진짜 건달이야.. 그런 녀석을 그렇게 보내는 건 예의가 아니지...
상하이 그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저대로 내버려두시지는 않겠죠?
구마적 제 발로 나를 찾아올 거라 하지 않았냐? 조만간 뭔가 소식이 올 게야. 명예롭게 이 종로를 떠날 기회를 주겠다는 거야.
제비 과연 조선 최고의 오야붕다운 아량이십니다.
뭉치 그 김두한이라는 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희들이 데려다 손을 좀 볼까요?
구마적 내버려 둬.. 따지고 보면 그 두한이란 아이가 잘못한 게 뭐가 있겠냐?
뭉치 예?
구마적 자세한 내막을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어. 쌍칼이 말한 것처럼 칭찬이라도 해줘야 할 일이었어. 대단하기도 하지.. 나도 예전에는 그런 패기와 용기가 있었는데 말이야..
모두들 ..........?
구마적 두한이 일은 없던 걸로 해.. 하야시도 그 정도는 이해를 할거야.
평양박 잘 생각하셨습니다, 큰형님.. 두한이를 형님께서 나무라셨다면 여러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했을 겁니다.
구마적 쌍칼한테 그런 부하가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생각도 드는구만..
구마적이 술을 든다. 그 모습에서..
# 4 어느 선술집
이 곳에서도 두한과 김무옥, 문영철이 술을 마시고 있다.
문영철 잘 된 거야.. 어차피 한번은 부딪쳐야만 했어.
김무옥 근디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심난하다냐? 만약 쌍칼 형님이 지기라도 허면..
두한 ............
문영철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마라.. 쌍칼 형님은 꼭 이기실 거야. 난 그렇게 믿어..
두한 둘 중에서 지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냐?
김무옥 종로를 떠야 되는 거여. 이기는 사람은 우미관을 차지하는 것이고.. 그게 이 세계의 법이여..
# 4-1 거지촌 공터
신출내기 거지 아이들이 모닥불 주위로 둘러앉아 장타령을 배우고 있다.
# 4-2 동 움막 안
양코가 거지 아이들의 동냥 그릇을 점검하고 있다. 돈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식은 밥덩어리 뿐이다. 계속 확인하던 양코의 얼굴이 점점 찌그러진다.
양코 아 임마.... 누가 이 따위 것들 가져오래? 오까네를 구걸하라고 했잖아. 지금 돈을 모아놔야 추운 겨울을 편히 날 수 있어. 니들 겨울에 동냥 나서서 고생하고 싶어.
아이1 우리도 한다고 한 거예요. 양코 대장이 하도 그래서 오늘은 종로 바닥을 열 번도 넘게 돌았다구요.
양코 (때릴 듯) 이게 누구 앞에서 구라를 칠라 그래?
아이1 정말이에요. 종로바닥이 큰 것 같아두 돌아다녀 보면 손바닥만하다구요.
아이2 삽살이 말이 맞아요. 돈을 구걸할 수 있는 장소도 뻔하잖아요. 대장도 다 알면서...
양코는 콧구름을 후벼파며 뭔가를 생각한다.
양코 이대로 가다간 정말 딱 굶어죽기 좋아. 거지가 굶어죽는 것처럼 쪽팔린 것두 없는데....(사이, 뭔가 결심한 듯) 안되겠어... 다 들어오라구 그래. (일어서며) 아냐... 아냐... 내가 나가야지. 니들도 다 나와.
아이들 .............?
# 4-3 동 밖
양코와 거지아이들 나오면 밖에 있던 거지 아이들 노래를 멈춘다.
양코 다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우리는 내일부터 나와바리 확장에 나선다.
아이들 (웅성거린다)..........
양코 조용히들 해..
아이3 근데 대장.... 나와바리가 뭐야?
양코 임마, 그것도 몰라. 그러니까....(생각해보니 자신도 정확한 뜻은 모르겠다) 저 새끼가 별 거 다 묻고 지랄이야. 좌우간 우리 땅을 넓히자 이거야.. 알겠어? (사이) 왜 대답들이 없어.
아이들 예......
양코 땅이 넓어야 동냥도 많이 들어올 거 아니야? 내가 듣기로 요새 남대문 쪽이 수입이 좋다더라.... 갈치, 내일부터 아이들 반쪽 쪼개서 그 쪽으로 가.
갈치 하지만.... 그쪽 거지패들이 가만 안 있을 텐데? 염천교 애들 말이야.
양코 원래 거긴 임자가 없는 곳이야. 그리고 있다구 해도 상관없어. 우리 뒤에는 두한 대장이 있으니까.
아이들 ..........?
양코 너희들 두한 대장 알지? 두한이는 이제 종로... 아니 경성을 주름잡는 주먹이 됐단 말이야. 구마적이나 신마적도 두한인 무시 못해. 그러니까 무서워할 것들 없어.
갈치 정말 두한 대장이 막아줄까?
양코 이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두한이하고 난 동무야. 잔말 말고 내일부터 그쪽으로 가. 알았어?
갈치 으.....응.
양코는 득의양양한 듯 어깨를 활짝 펼친다.
# 5 종로 쌍칼의 사무실 외경(낮)
# 6 동 사무실 안
쌍칼과 김영태가 앉아 있다. 쌍칼은 단검의 칼날을 만지며 생각이 많다. 김영태가 눈치를 보다가 말한다.
김영태 형님, 좀 전에 무옥이와 영철이가 갔습니다.
쌍칼 ............
김영태 지금쯤 우미관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쌍칼 두한이는 가지 않았겠지?
김영태 예, 형님... 어차피 단 둘이 대결하는 싸움입니다. 힘이 달리면 그걸 쓰십시오.
쌍칼 ..........이거?
김영태 예, 형님, 형님은 별호가 쌍칼이십니다. 형님께서 좋아하시는 걸 가지고 싸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쌍칼 (단검을 발 아래에 차며)... 애들이 도착을 했을 거라구 했나?
김영태 예, 시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쌍칼 그 두한이 말이야.
김영태 예, 형님.
쌍칼 걸물이야. 내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아. 똑 같아.
김영태 예?
쌍칼 내가 만약에 잘못되면 이 조직을 그 아이에게 맡기게.
김영태 형님, 그게 무슨...?
쌍칼 싹을 보면 훗날을 알 수가 있다고 했어.
김영태 하지만 형님, 그 아이가 이 세계에서 얼마나 됐다고....?
쌍칼 얼마 됐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관록은 차차 쌓아나가면 되는 거야.. 영태가 도와주면 그 아이는 아주 큰 일을 할 수 있는 재목이야.
김영태 왜 자꾸 그 아이 이야기를 하십니까?
쌍칼 글쎄, 나도 모르겠어.
김영태 형님...?
쌍칼 어쨌든 그 놈을 믿고 싶어. 내 다음 일을 말이야.
김영태 ...........?
# 7 우미관 앞
김무옥과 문영철이 오고 있다. 앞에 이르러 잠시 주변을 돌아보는 그들. 그 앞에는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곳과 별도로 출입구가 보인다. 그들 심호흡을 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구마적의 수하 하나가 막는다.
수하 너희들은 쌍칼 형님애들 아니냐? 어떻게 왔어?
문영철 형님의 심부름을 왔습니다.
수하 그래? 들어가 봐.
그들이 안으로 들어간다.
# 8 동 사무실 안
구마적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무옥과 영철을 보고 있다. 뭉치와 상하이, 제비들도 긴장해서 보고 있다.
구마적 쌍칼이 나와 겨루자?
문영철 예, 오야붕.
구마적 핫하하하하하하.....그럴 줄 알고 있었다. 올 줄 알았어.
모두들 ...........?
구마적 시간과 장소는 나보고 정하라...?
문영철 예, 오야붕.
구마적 좋다. 뭐 질질 끌게 있나? 내일 정오에 이 앞에서 보자고 해라. 여기가 늘 그런 곳이니까. 내일 정오야, 알겠나?
문영철 예, 오야붕.
뭉치 쌍칼 놈이 드디어 반란을 하겠다 하는 모양인데, 죽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아예 관짝을 짜 갖고 오라고 해라.
문영철들 ....(굳어 있고)
뭉치 내 말을 못 들었나? 야, 문영철 임마?
문영철 .........?
뭉치 이 새끼가 귀가 먹었나? .....(다가오면)
김무옥 보시쇼, 뭉치 형님. 우리는 사자로 온 것이여라우.
상하이 뭐 사자? 이것들이 근데......
구마적 그만들 보내라. 그 말은 맞다. 심부름을 왔으면 그게 사자야. 사자를 때리는 법은 없지.
상하이 .........
구마적 아참 그 두한이라는 녀석 말이야. 너희들하고는 어떻게 되는 거냐? 너희들 아우냐?
문영철 아닙니다. 저희들 동뭅니다. 언젠가 술집에서 형님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구마적 ....? (뭔가 생각) 아 그래.. 그 아이였구만... 허허.. 그 녀석이었어.
김무옥 .........?
구마적 그 아이한테 가서 이제 숨어 지낼 것 없다고 전해라. 그 아이에 대한 벌은 쌍칼이 대신 받게 될 테니까. 알았냐?
그들 .........
구마적 그럼 그만들 돌아가거라. 내일 정오 오포(싸이렌)가 울리거든 시작을 하자고 전해라.
문영철들 예, 오야붕.
그들은 그렇게 돌아선다.
구마적 내일 주변 청소나 잘 해놔라.
그들 예, 큰형님.
# 9 길거리
무옥과 영철이 가고 있다. 그들 표정도 모두 무겁다.
문영철 아무래도 주먹 대 주먹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김무옥 그게 뭔 말이여?
문영철 쌍칼 형님도 일본과 만주 일대를 돌아다닌 분이지만, 구마적도 그래. 그 힘이 얼마나 센지 또 다른 별명이 김덕경이다.
김무옥 김덕경?
문영철 조선시대의 유명한 힘장사인데 황소를 번쩍 들어서 백발을 걸어갔다는 사람이야.
김무옥 ............?
문영철 맨주먹으로는 어려울지라도 모르겠어.. 칼을 쓰셔야 할 텐데... 그러면 구마적을 이길 수 있을 텐데 말이야...
김무옥은 끄덕인다. 그때 , 헌병과 경찰들이 몰려가는 것이 보인다. 달리는 헌병차도 보이고, 거기 문영달과 형사1,2도 보인다. 그렇게 그들 곁을 지나쳐 가면, 행인들이 무슨 일인가 보고 있다. 그들도 의아하게 본다.
# 10 결
# 11 카페 비너스 앞
카페 주인 김이수와 의사 친구 임동호가 그렇게 몰려가는 헌병과 경찰들을 보고 있다.
김이수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네.
임동호 일도 아주 큰 일이 생겼단다.
김이수 큰 일? 아, 무슨 일?
임동호 조선 사람은 경사가 난 날이고, 일본 놈들은 망신살이 뻗친 날이지.
김이수 무슨 소리야, 그게?
임동호 바로 이거야.
임동호가 신문을 준다. 거기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살 사진이 보인다. 월계관을 쓴 손기정 선수 사진에 일장기가 없는 것이다.
임동호 동아일보에서 나온 신문인데, 우리 조선의 손기정 선수가 시상대에 선 사진이 실렸데.
김이수 그래?
임동호 그런데, 동아일보가 가슴에 일장기를 지워버렸거든. 하하하. 이렇게 생겼어. 보라고. 하하하......
김이수 ..............?
# 12 옛 동아일보 사옥
헌병과 경찰들로 인산인해다. 기자들의 후레쉬가 터지고 있고, 거기 최동열도 취재 중이다. 뭔가를 적으며 계속 이리저리 분주하다. 수갑을 채운 기자들을 밖으로 데려가고 있는 경찰들....미와와 오무라의 모습이 보인다.
미와 다 끌어내라. 불령선인들이다. 이것들이 기자는 무슨 기자냐? 반역자들이다. 모두 끌어내라. 끌어 내.
그들을 보는 최동열의 표정위로....
(해설)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살 사건. 1936년 8월 25일에 있었던 일로 김두한이 종로통의 건달 세계로 진입했던 바로 그 무렵에 있었던 큰 사건이다. 동아일보는 같은 해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기록 필름을 입수, 그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고 신문에 게재함으로써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려 시도했다. 그 일로 당시 사회부장 현진건, 사진부장 신낙균 그리고 사진을 수정한 이상범 화가들이 체포되었고 곧이어 동아일보는 발간이래 네 번째로 무기정간을 당한다.
# 12-1 어느 대갓집 외경
오씨 (E)발길을 끊으라니요?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 12-2 동 안방
그 집의 안방 마님이 조금은 거만스럽게 외면하고 앉아 있다. 오씨는 애처로운 눈빛이다.
오씨 저희가 해 드린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마님 일 솜씨를 탓하자는 것이 아니오.
오씨 ....그런데 왜...?
마님 그 이유를 모른단 말이오?
오씨 ......?
마님 어제 형사가 다녀갔소. 당신이 불령선인 김좌진의 집안이라고 하더군.
그제서야 오씨는 이유를 안 듯 싸늘하게 안색이 굳는다.
마님 우리 집 양반은 총독부에서 일하고 있소. 그런데.... (종이에 싼 돈을 내 놓으며) 지금까지 준 것보다 넉넉하게 넣었으니 가져가시오.
오씨 .....좋습니다. 그 때문이라면 나 역시 더 이상 이 집안의 일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마님 ...........?
오씨 이 돈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말씀드리리다. 우리 집 양반께서는 이 나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으신 분이시오. 그러니 불령선인이라는 말 따위는 함부로 내뱉지 마시오.
마님 뭐....뭐라....?
오씨 그것은 왜놈들이나 하는 말이지 같은 조선 사람에게 들을 말은 아니외다.
오씨는 기가 질려 아무 말도 못하는 여자를 뒤로하고 돌아선다. 그 모습에서...
# 12-2 삼청동
오씨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조모는 의아할 뿐이다.
조모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오씨 ............
조모 말을 해야 알 것 아니냐> 왜 빈손으로 돌아온 게야?
오씨 제 불찰입니다.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일감을 받아온 게 잘못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돈으로 지금껏 입고 먹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뿐입니다.
조모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오씨 죄송합니다, 어머님.. 제가 너무도 아둔한 나머지 잠시나마 아범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조모 .......무슨 일인지 짐작이 가는구나. 알았다.
오씨 .........
조모 그래.. 끼니를 자존심과 바꿀 수는 없는 것이지. 아범의 이름과는 더더욱 그렇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건 너무 괘념치 말거라. 나는 너를 믿는다.
오씨 .............
# 13 혼마찌(충무로)/인서트
# 14 그 중 어느 건물
현대식 건물이다. 충무로 일대가 이 당시 모두 일본인의 거리이다. 화려한 건물들과 현대식 빌딩들이 보인다. 카메라 그 어느 쪽에 보면 하야시의 다방 건물로 들어간다.
# 15 동 건물 안
조선의 다방들과는 그 실내장식과 분위기가 다르다. 상당히 고급스럽고 서구적이다. 그 한쪽 테이블에서 고노에가 무거운 신음을 삼키며 신문을 내려놓고 있다. 하야시와 그의 처 사야꼬, 처제 나미꼬가 함께 해 있다.
고노에 비극적인 일이야. 이 손기정 선수 사건 말이야.
하야시 총독부에서 동아일보의 기자들을 체포하고 무기정간을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고노에 그것 또한 바보 같은 짓이란 말이야.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 주는 것이 얼마나 대일본국다운가?
하야시 하지만, 이것은 일본의 국기를 흔드는 일입니다, 장인어른. 분명히 손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습니다. 그런데, 동아일보에서 그것을 지워 버렸습니다. 벌을 받아야지요.
고노에 그게 바로 소인배들이 하는 짓이야. 이미 사진은 신문에 실렸고 시중에 유통이 왰어. 동아일보 사람들을 처벌할수록 조선인들의 반일감정은 더욱 거세진단 말이야.
나미꼬 그건 그래요. 뭐 이런 걸 가지고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니요?
사야꼬 그래도, 사람들 관심이 많은 일이 아니냐?
고노에 우리 일본인들이 조선에 대해서 좀 더 대범할 필요가 있어 따지고 보면 이 조선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야. 장구한 역사가 있고 문화적으로 대단한 민족이야.
나미꼬 호호호, 아버지는 마치 조선을 대변하러 오신 분 같네요.
고노에 사실이 그렇단다. 우리들의 영원한 오야붕이신 대부 두산만 어른도 그러셨다. 조선에는 인물들이 많다. 절대로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하고 말이야.
하야시 그 어른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고노에 암, 그러셨지. 두산만 어른이 누구신가? 일본의 야쿠자를 설립하시고 무사도를 펴신 분이야. 총리대신과 내각의 대신들이 바뀌면 먼저 그 어른에게 인사를 가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하야시 어찌 모르겠습니까, 장인어른? 그야말로 대부가 아니라 국부로 불리시는 분이십니다.
고노에 그래, 허허허. 그분께서는 나를 만날 때마다 늘 해주신 이야기가 있었다. 많은 조선인들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김옥균이라는 사람이 가장 존경스러웠다고.
하야시 그렇습니까? 김옥균은 누굽니까?
고노에 허허허, 자네들은 조선의 역사를 잘 모를 거야. 김옥균이라는 사람은 조선의 혁명가지. 사상가이기도 하고. 두산만 어른의 영원한 친구이시기도 하고.
나미꼬 어머, 정말 그래요, 아버지?
고노에 (끄덕이며) 김옥균이라는 사람은 일본의 여러 정계 인사들과도 친했는데, 유독 두산만 어른과 가까웠어. 훗날 그 사람이 중국 상해에서 암살을 당했는데, 어른께서는 친히 사람을 보내 그 옷자락을 구해오게 하셔서 무덤까지 만들어 주셨어.
하야시 들을수록 흥미롭습니다, 장인어른.
고노에 암, 그러니까 사람을 편애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자네도 이 혼마찌 일대를 다스리는 오야붕이 아닌가? 모쪼록 가슴을 크게 하고 살게.
하야시 예, 장인어른.
고노에 참, 우리 나미꼬가 여기서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였던가?
하야시 예, 마침 새로 문을 연지가 얼마 안 되는데 관리할 적임자가 없어서 말입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제과점과 음식점, 바들을 모두 처제가 좀 맡아주었으면 합니다.
나미꼬 고마워요, 형부.
사야꼬 고맙기는... 힘이 많이 들 거다.
하야시 기본적인 일들은 우리 아이들이 다 해줄 겁니다. 너무 부담 가질 것은 없어요. 하하하...이제 종로까지 사업이 넓어질 것입니다. 그때 는 더 바쁜 일을 처제에게 맡겨야겠습니다. 처제야말로 남자가 아닙니까? 하하하...
# 15-1 남대문 거리
염천교 거지들이 갈치들을 뒤쫓는다. 갈치들이 죽어라 도망치지만 그 중 한 거지가 넘어진다.
거지1 가, 갈치형..?
그러나 갈치는 무섭게 달려오는 염천 거지패들을 보고는 그대로 다시 도망친다. 결국 염천 거지패들에게 붙잡히고 마는 거지1.
염천 왕초 너 이 새끼 어디에서 왔어? 왕초가 누구야?
염천왕초는 잡아먹을 듯 내려다본다. 거지1은 완전히 겁에 질리는 표정이다.
# 15-2 거지촌 움막 안
먼저 온 거지 아이들이 우르르 동전을 쏟아낸다. 양코의 입이 귀에 걸린다.
양코 우하하하하. 이게 얼마 만에 만지는 오까네냐? (동전 한 닢씩을 나눠주며) 잘 했어. 아주 잘 했어.
아이들 고맙습니다.
양코 근데 갈치는 왜 안 와?
아이1 한 바퀴만 더 돈다고 했으니까 금방 올 거예요.
그때 밖에서 다급한 소리들이 들리며 갈치가 뛰어들어온다.
갈치 대장, 큰일났어.
양코 뭐야?
갈치 염천교 패거리들이 쫓아오고 있어.. 왕방울이 걔네들한테 붙잡혔어.
양코 뭐? 그래서 혼자 도망쳐 왔단 말이야?
갈치 그게...........
양코 (쥐어박으며) 에라 이 등신아. 애들 모두 모이라고 해.
양코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 15-3 그 밖
주변에 흩어져 있던 아이들 모두 모이는데, 멀리로 붙잡힌 아이들을 앞세우고 염천교 거지들이 몰려온다. 양코의 두 눈이 가늘게 찢어진다. 어느덧 양코들 염천교 거지들에게 둘러싸인다. 양 거지들간에 팽팽 대치전이다. 염천왕초가 앞으로 나선다.
염천 왕초 이런 마빡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감히 우리 나와바리를 넘봐? 여기 왕초가 누구야?
양코는 짐짓 거드름을 피우며 앞으로 나선다.
양코 지금 날 찾았냐?
염천 왕초 너냐.... 여기 대가리가 너야?
양코 그랴.... 나다. 내가 여기 대장 양코다. 뭐 볼 일 있어?
염천 왕초 뭐가 어째? 볼 일 있냐구? 야, 이 거지 새꺄. 거지들한테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거야. 너 혼자 잘 살겠다고 멋대로 남의 구역을 넘어와?
양코 아... 거지 주제에 더럽게 똑똑하네. (귀를 파며)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염천 왕초 빌어먹을 자식.... 긴말 할 거 없어. 니들이 오늘 걷은 동냥 다 토해 내.
양코 웃기고 자빠졌네. 내가 왜 그걸 너한테 줘?
염천 왕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양코 환장했다. 그러니까 한 번 죽여줘봐.
염천 왕초 말로 해선 안될 놈이구나. (자신의 패거리들을 향해) 애들아 조져버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패거리간에 싸움이 벌어진다. 말이 싸움이지 그야말로 개싸움이다. 물어뜯고, 할퀴고, 도망치고, 쫓고 완전히 난장판이다. 한동안 볼썽사나운 그 싸움을 지켜보던 양코와 염천왕초가 서로에게 달려든다. 다른 거지들은 대부분이 싸움을 멈추며 서로의 왕초를 응원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양코가 점점 밀린다. 급기야 서로 엉켜 붙은 채 뒹구는 양코와 염천왕초. 염천왕초가 힘으로 제압하며 양코의 몸 위로 올라타려는 순간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힘을 못쓴다. 양코가 상대의 낭심을 거세게 부여잡고 놓지 않는 것이다. 염천왕초는 계속 죽을 듯 비명을 지른다.
염천 왕초 야.... 이 치...사...한...놈아....
양코 (더욱 거세게 쥐며) 죽고 사는 싸움에 치사한 게 어딨어.
염천 왕초 (울며) 놔....놔.... 제발.... 놔줘.....하...항복....항복....
양코 (놓지 않으며) 죽어.... 죽어라...........
염천왕초가 거의 기절 직전이 되자 양코는 그제서야 뿌리치듯 손을 놓는다. 염천 거지들 쓰러진 왕초를 떠메다시피 들고 그곳을 떠난다. 양코의 거지아이들이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진영 (E)지금 뭣들 하는 거야?
보면 정진영이 무서운 눈길로 노려보고 있다. 움찔하는 양코....
# 15-4 움막 안
양코는 겸연쩍은 듯 머리만 긁는다.
정진영 ... 그래서 애들을 남대문까지 내보냈다는 거야? 너 정말 왜 그래?
양코 요새 통 돈이 안 들어와서......
정진영 그래두 그렇지. 애들을 닦달하면서까지 그러면 옛날 그 못된 왕초하고 다를 게 뭐가 있어?
양코 .........
정진영 그리고 남의 구역을 넘보는 게 잘못이란 것쯤은 너도 알잖아.
양코 어차피 거긴 임자가 없었어. 얼마 전에 걔들이 들어온 모양인데.....
정진영 어쨌거나 염천교 애들이 접수한 이상 넘보질 말았어야지.
양코 ..............
정진영 다신 이런 짓 벌이지 마. 다음엔 내가 용서 안 해. 알았어?
양코 ..............
정진영 왜 대답 안 해?
양코 아...알았어.
정진영 거지는 욕심을 부리면 안돼. 거지면 거지답게 살라구.
양코 ..............
# 16 종로 쌍칼의 사무실 외경
# 17 동 사무실 안
조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다. 쌍칼은 여전히 말이 없이 앉아 있다.
김영태 구마적이 직접 전달을 받았나?
문영철 예.
김영태 다른 오야붕들도 있던가?
문영철 뭉치와 상하이, 제비들이 보였습니다.
쌍칼 그 자들 모두 한때는 한가락들 했었지. 지금은 그렇게 별 수 없이 구마적의 졸개들이 되었지만 말이야.
김영태 내일 정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경성 주변 지역 오야붕들이 아마도 다 올 것입니다.
쌍칼 그렇겠지.
김영태 제 말대로 하십시오. 기왕에 결심을 하신 일입니다. 구마적은 사라져야 합니다. 칼을 쓰십시오.
쌍칼 .............
김영태 문제는 이기는 것입니다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래도, 쌍칼은 대답이 없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쌍칼이 미소를 지으며 두한을 본다.
쌍칼 두한아?
두한 예, 형님.
쌍칼 나는 여기 김영태에게 만약의 일을 일러 놓았다. 내가 잘못되면 한동안 너희들이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구마적은 능히 그럴 사람이야. 그걸 잘 이겨내야 한다.
김무옥 고것이 무슨 말씀이여라우. 잘못 되다니요?
모두들 ..............
쌍칼 내 말 알아들었느냐, 두한아?
두한 무슨 말씀이신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쌍칼 곧 알게 될 거다. (한숨 쉬며) 사내들이란 가끔씩 꼭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겨. 거기서 물러나면 졸장부가 되는 것이고, 이기면 영웅이 되는 것이지.
두한 형님께서는 이길 수 있으십니다. 싸움실력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정신입니다. 정신을 극복하면 다 이긴다고 배웠습니다.
쌍칼 하하하, 너는 그래서 마음에 들어. 이길 수 있다는 그 집요함 말이다.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참으로 많은 곳을 떠돌아다녔다. 이 종로에 온 지도 어느덧 십년이 됐어.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결국은 이 모양이구나. 가자, 오늘 우리 한 잔 하자꾸나. 종로 회관에 가서 한 잔 하자.
한숨 쉬는 쌍칼의 표정에서.....
# 18 종로 우미관 앞(밤)
불야성이다. 구마적의 부하들이 상인들을 몰아내고 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넓은 그 마당을 쓸고 있다. 내일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비 얘들아, 깨끗이 쓸어라. 오랜만에 오야붕께서 몸을 푸시는 날이다.
수하들 예.....
제비 상인들을 모두 멀찍이 밀어내라. 그리고, 저쪽들은 다 묻을 닫게 해. 구경꾼들이 많이 올 것이다.
그때 , 한쪽에서 인력거를 타고 오던 아이란이 보고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인력거꾼을 본다.
아이란 무슨 일이 있나보죠?
인력거 내일 여기서 싸움이 있데요. 아주 큰 싸움인 모양이에요. 종로의 주먹패들 말입니다.
아이란 그래요?
인력거 이미 소문이 쫘하니 나있습니다. 우미관 구마적하고 종로2가의 쌍칼이 싸운데요.
아이란 에...?
인력거 볼만 할 겝니다. 아주 오랜만에 큰 싸움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란 ............
인력거 난 쌍칼이 이겼으면 좋겠어. 하지만 사람들은 구마적이 다 이긴다고 해요.
아이란 이보세요, 인력거 좀 돌려주세요. 어서요.
인력거 예?
# 19 그 한쪽
뭉치와 상하이도 보고 있다.
뭉치 이봐, 상하이. 쌍칼이 독을 품기는 품은 모양이야.
상하이 그러게 말이야.
뭉치 어려운 싸움인데, 스스로 청하다니 말이야.
상하이 쌍칼이 칼을 쓸 수도 있어. 한 번 칼을 날리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쌍칼이야.
뭉치 오야붕들의 대결이야. 칼을 쓰면 그걸로 저도 매장되는 거야.
상하이 너 죽고 나 죽자고 할 수도 있는 일이야. 그렇게 막 나오면 구마적 형님도 힘들게 될 걸. 다 끝장나는 거라구.
뭉치 내일이라... 이거 긴장돼서 오늘 밤 편히 자기는 다 틀렸어. 몇 년만에 벌어지는 결투인가 말이야.
# 20 동 우미관 사무실
구마적이 몰려드는 지역 오야붕들을 보고 있다. 십 여명의 오야붕들이 들끓고 있다.
사내1 오야붕, 시구문 박입니다.
구마적 음, 오랜만이야.
사내1 2정목이 쌍칼이 반기를 들었다면서요?
구마적 그래.
사내2 쌍칼도 여간내기가 아닌데...
구마적 그건 그래. 그러니까 해보자는 거지. 이봐, 서대문?
사내2 예, 오야붕.
구마적 구경을 온 건가 아니면 응원을 나온 겐가?
사내2 저야 오야붕을 위해서 사는 몸이 아닙니까? 그래서, 다 연락해 가지고 함께 왔습니다.
사내3 만약에 쌍칼이 비겁한 수라도 쓴다면 우리가 시체를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안심하고 싸우십시오.
구마적 고맙네.
사내2 시구문, 서대문, 왕십리, 동대문, 청량리, 용산, 영등포까지 모두 다 왔습니다, 형님. 소문이 아주 쫙 퍼졌습니다.
구마적 그래.
사내2 조심하십쇼. 어쨌든 그 쌍칼의 칼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구마적 알고 있어. 자, 모처럼들 왔으니 가볍게 한잔들 하지. 밖에 누가 있느냐? 청요리하고 빼갈 좀 시켜와라.
대답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그들의 모습에서 구마적도 역시 긴장했음을 알 수 있다.
# 21 권번 외경
인력거들이 몇 대 대기하고 있다.
# 22 동 안
한쪽에서는 창소리가 들려오고, 어린 동기들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선생이 고수 역할을 하며 북을 치고, 아이가 흥부전 한마당을 소리로 한다. 그러다가, 선생이 소리를 멈추게 하고 꾸중을 하는 모습도 보이고,
권번선생 아, 이것아. 여기 권번에 온 지 얼만데 아직도 그 모양이야? 그래가지고 언제 머리 얹고 손님방에 가겄냐? 다시 해봐. (북치며) 흥부 마누라가 우는 그 대목에서는 목청을 올리라고 했잖어? (선창을 해 보이며, 진양조로) 흥보 마누라 기가 막혀, 어따이놈아 야이놈아 말듣거라, 우리 형제가 있고보면, 네장가가 여태있으며, 중한가장을 굶기고, 어린자식을 벗기겠느냐, 못먹이고 못입히는, 어미간장이 다녹는다... 이렇게 말이여. 다시 해봐. 어허, 이것이 또 운다. 또 울어? 아, 어서 해봐야.
동기 아이가 울먹이며 소리를 계속 한다. 선생은 신명이 나서 북을 두드려 대고, 옳지, 옳지를 연발한다. 그 한쪽에서는 춤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이고, 또 한쪽에서는 민요를 불러대는 제법 큰 기생 학생들도 보이고.... 아이란이 급한 모습으로 주변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내부를 잘 아는 듯 어느 방 쪽으로 가면....
# 23 그 권번 안 어느 곳
몇몇 기생들이 보이고 그 한쪽에서 설향이 화장을 하고 있다. 권번의 노기 하나가 한마디하며 지나친다.
노기 설향아? 조선옥에 곧 가야 한다. 자, 옥련이도 준비하고. 밖에 인력거 와 있다.
설향들 예, 어머니.
노기 아이고, 요즘 같아서는 통 부르는 데가 없으니 이러다가 권번들 다 문 닫겠다.
그때 아이란이 눈치를 보며 다가온다.
아이란 설향아?
설향 아니,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요정에 안나갔어?
아이란 음. 가다가 다시 왔어.
설향 음... 나도 막 지금 나가려는 참인데.... 무슨 일이 있어?
아이란 저.... (주변 살피고) 일이 생긴 것 같애.
설향 무슨 일........?
아이란 우리 영철씨하고 두한씨 말이야.
설향 (반짝하며) 두한씨가 왜? 우리 서방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아이란 아이그. 여전히 그 서방님하고는.... 그게 아니고. 그 쌍칼 오야붕이 내일 구마적과 싸움을 한대.
설향 뭐라고?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아이란 영철씨하고 두한씨는 쌍칼 오야붕의 부하가 아니냐? 이 싸움에 휘말리면 큰일 난다. 구마적이 누구냐? 이 종로 전체의 오야붕이야.
설향 세상에..... 지금 우리 서방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