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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진삼님의 본인 글의 반론에 답을 하면서 사실 글을 올려야하는지가 답을 쓰는 것 보다도 더 고민스러웠습니다.
이건 a-z까지 온통 ......
더더구나 아래의 서적속에서도 예산 해복혈로 이곳 귀곡리 수조리를 운운하는 자에 대한 저자의 통탄 대상자가
이진삼님이 속한 도선국사......는 아니겠지만 어쩌튼 저자의 괴랄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듯은 분명해 보이네요.
본인 역시도 위의 저자의 마음처럼 썩 답글 글쓰기가 내키지 않아 주저케 합니다.
위의 책 5페이지 끝에는 이곳 예산 해복혈과 관련해
"몇 년 전에 심성이 고약한 몇 사람이 찾아와 묻기에 수조리라 하였다. 그러자 바로 그 곳에 묘를 쓰고
자랑하면서 지금도 후학들을 데리고 와 수조리가 해복이라고 하고 다니더라" 라고 쓰어져 있습니다.
부탁컨대 추후에도 필경 본인 글에 이진삼님의 답글은 아주 널널한 시간이 있어 맘이 닿을 때나 할 성 싶고
해서 장구하게 느릴터이니 그리 아시고
어연간하시면 저의 글에 더는 답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이 답변도 곧이어 쓰게될 태인 군신봉조혈에 앞서 그래도 답 정도는 해줘야할 성 싶어 쓰는 글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이진삼님의 반론에 총괄적 답변을 먼저 하고 님이 개진했던 글에는 각주의 형식으로 답하겠습니다.
총괄답변1
이진삼님는 토론 토론 토론 이야기하지만 님의 토론에 대한 개념 정립부터가 아쉽네요.
토론은 상호 객관성이 확보된 진행자가 양쪽 패널들의 주장을 공정하게 개진토록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이번 건은 님의 학회 주도로 진행된 님의 개인적 소견 발표에 가깝습니다.
또한 현장 현장 이야기 하는데 적어도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 한 온라인 상에서 하셔도 그리 문제될 것 없습니다.
어쩌면 옛적에는 할 수 없었던 온라인에서 충분한 토론 후 현장 확인하는 것이 더 실사구시 입니다.
총괄답변2
님이 토론하자는 장소와 혈장은 도대체 어디인가요?
님이 예산 해복혈이라고 주장한 곳은 귀곡리 산97-4 입니다. 아래의 화살표 빨간 마름모꼴 내 어디이겠죠?
하지만 님이 현장 토론을 한곳은 아래의 귀곡리산99-1 일원 입니다.
님의 학회에서 예산 해복혈로 오랫동안 간산해 온 곳 입니다.
이것 또한 뭐라 시치미 떼며 변명을 할지 모를 일 이긴 하네요.
또한 님은 혈장을 제외하고 토론을 하자는데는 무슨말을 더 해야할지 지금까지도 말문이 막혀있습니다.
도대체가 막역한 덕담도 아니고 해복혈은 혈장을 중심축으로 만곡의 청룡백호가 물형의 핵심일지언데
핵심이 빠진 토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데는......
더더구나 현장 토론장소 조차도 자신이 주장하는 귀곡리 산97-4번지 가 아닌 다른곳에서 ......
님은 본인에게 자꾸 엉뚱한 소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엉뚱을 한참 넘어선 상식무지의 어처구니 없는 촌극입니다.
어쩌튼 그곳 일대는 혈장이 어디에 있든간에 내 청룡백호가 완벽하게 관세되어 있어 적어도 해복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곳 입니다.
토론을 제의 하기전에 해복혈의 대표적인 곳 적어도 옥천조씨 조원길 묘소 정도를 한번이라도 간산해 보았는지도
자못 궁금합니다.
총괄답변3
이진삼님은 풍수 기초자들도 익히 알고있을 라성 과
안의 개념조차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함에도 본인 글에 허당질하는 처사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입니다.
님이 말하는 곳은 적어도 라성의 개념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김두규의 풍수학사전에서의 사전적 의미
그리고 설심부와 인자수지에서의 여러 뜻들과 부합될 요소가 하나도 존재해 있지 않습니다.
라성은 수구사입니다.
또한 인자수지에서는 하나의 라성으로 만산을 떠 바친다 했고 1리 내의 것이다 라고 하고 있습니다.
님이 말하는 라성는 귀곡리 산97-4의 수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더더구나 라성의 모습도 아닙니다.
님은 라성과는 전혀 관련없는 것을 가르켜 라성이라며 전혀 부끄럼없이 우기는 배짱은 가히 가관입니다.
라성에 관한 글을 좀더 이어본다면 羅星對案留라 했으니 적어도
인자수지 뜻이라면 수구사인 라성이 혈장 정면으로 수구를 막고 있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설심부라면 관창 공읍되어 있어야 합니다.
더더구나 留는 머무르다 라는 본래의 뜻과 또다른 쓰임으로는
화살이 과녁의 아래를 맞힌 것을 이르던 말 인 바
기실 이곳에서는 그러한 뜻으로 쓰여 羅星對案留에서 이미 對案이 마주해 머물러있는 뜻이기에
혈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라성이 안으로 마주하고 있다 라는 정도의 뜻 입니다.
아래는 님의 본인 글에 대한 반론으로 주장한 글과 사진 입니다.
위의 님이 반론으로 제시하고 주장했던 사진 속에는 님이 주장했던 사실 내용과는
100% 다르게 눈뜬 봉사 이든 아님 라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식자 외에는 확연히 구분할 수 있겠끔
엄연히 수구쪽으로 앞서 언급했 듯 혈처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 까지도
두사충선사가 보았을 당시의 모습과는 하천공사등으로 다소 변했을런지는 몰라도 분명하게
라성이 안으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좌측 구석의 라성의 표시는 님의 자료에 본인이 했습니다.
그곳이 라성입니다.
님이 해복이라 주장하는 귀곡리 산97-4 수구에는 위와 같은 모습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더구나 甲開丁一口에서 천문의 향도 완전히 틀림니다.
아래는 김두규저 풍수학사전에서 말하는 라성 입니다.
님이 주장하고자 하는 라성은 위의 내용 근거 대로 또는 설심부 인자수지 내용처럼 수구와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래 사진은 님이 A지점이 라성이며 안산이라 주장했던 자료입니다.
혈처가 님이 말하는 귀곡리 산97-4 번지내 그 어디에 있다 할지라도
님이 해복이라 주장하는 귀곡리 산97-4번지의 수구하고 님이 라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A 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수구사 입니다.
또한 對案이라했으니적어도 고개를 돌려서 봐야 볼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된 對案이 아닙니다.
더더구나 님이 주장하고 있는 A는 고개를 돌리는 것 조차도 더해 라성의 실효성이 상실되는 1리가 훨씬 넘은 저 멀리서
앞산에 가려 희미하게 보일똥 말똥하고 있습니다.
물의 흐름조차도 전혀 맞지 않은 엉뚱한 곳 입니다.
그럼에도 님은 라성의 모습도 전혀아니며 귀곡리 산97-4 번지의 수구사도 전혀 아닌 다른 곳의 독산을
귀곡리 산97-4 번지의 수구사 라성 이라고 하고 있으니 그 한심함을 뭐라 더 말을 하오리까입니다.
이 정도면 님는 분명 라성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며 안의 개념 또한 잘 모르고서
라성과 안을 운운하고 있는 것 입니다.
아울러 님이 말하는 먹이감이라 하는 바위는 통상으로는 바위가 아닌 또 다른 혈을 의미할 개연성이 더 높습니다.
공부 더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총괄답변4
이진삼님은 한문의 독해에 심한 난독증이 있든지 아님 이해의 폭이 넓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아래는 님이 해독한 결록 내용입니다.
먼저 甲開丁一口 에서 님은 開가 의미하는 진정한 뜻을 모르고 있습니다.
님은 呑吐浮沈에서 呑吐의 쓰임에 따른 그 은유를 모르고 있듯이 開와 得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더더구나 아래는 본인의 虎呑佳字縮에 대한 님의 반론 글입니다.
어처구니 없음에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 입니다.
呑은 솟아 오른 곳에 삼킨 듯한 모습을 의미하는 장법입니다.
해서 호랑이가 음식을 삼켜 배가 부른 듯 볼록한 모습으로
字縮은 字의 아이를 배다 와 縮의 감싸다 의 뜻을 합해 아이를 배어(임산부 배 모습의 혈장을 감싸 안고
있는 형상)감싸고 있는 듯 에서 감싸다의 의미를 분명하게 말했음에도
엉뚱하게 전혀 관련없는 蓄자를 운운하니 이를 또 어찌하오리까요 입니다.
아이를 배면 배가 부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 배를 아래의 縮의 2번째 의미
오그라뜨리다,적게하다 에서 이 뜻을 아우리는 말로써 감싸다 도 그 한 표현입니다.
해서 아이를 밴 여인의 배를 손으로 감싸다 의 의미를 쉽게 배를 감싸다로 표현한 것 입니다.
실제의 모습도 볼록한 배를 손으로 감싸 안은 모습니다.
아래 사진 중앙의 볼록한 부분이 혈장으로 위의 본인의 설명한 결록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지만 귀곡리 산97-4 에는 이와 유사한 어떤 모습도 없습니다.
이러함에도 어떠한 방법으로 해석을 해도 배가 부른다,볼록하다는 해석이 될 수 없습니다 라는 님의 반론은
님의 開와 得의 의미 그리고 싸다와 쌓다의 간단한 뜻 조차도 구별 못하고 있는 것 처럼 배가 부른다,볼록하다의
연유를 추론해 낼 기초적 소양조차 부족해 보입니다.
앞서 님의 엉터리 결록 해석에 더 지적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글이 너무 늘어져 생략합니다.
총괄답변5
아래는 상호 주장하는 곳 수구쪽에서 찍은 사진으로 산도와 확연히 비교구별이 되며 위의 사진이 산도의 모습입니다.
윗쪽 사진은 본인이 주장하는 혈장 사진이며 산도 아래 사진은 귀곡리 산97-4 번지 수구를 정면으로 찍은 것입니다.
아래 사진은 빗장친 횡축이 없는등 산도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름니다.
님의 위의 사진에 대한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해서 아래의 사진을 제시했습니다.
했더니만
라며 이곳은 자신이 주장하는 해복이 아닙니다 라고 하는 참으로 엉뚱을 넘어선
쌩뚱맞은 이야기와 함께 자신이 주장하는 해복의 위치는 떠나서... 라고 괴상한 변명을 합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해복은 혈장을 중심축으로 청룡백호의 모습이 만곡의 게 집게발 모양으로 아우러져 있어야 하는
물형입니다.
해서 공개토론까지 하자고 한마당에 자신이 주장하는 곳이 해복이 맞다면 그곳 사진을 제시하고 아니라고
반론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공개토론을 마쳤음에도 해복 물형을 갖춘 현장사진 한장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산도에서 말하는 해복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단의 귀곡교회 옆 빨간점 표식이 위의 비석이 있는 묘소입니다.
그리고 위의 사진들을 본인이 이곳에서 수구방향으로 찍은 것입니다.
아래 사진 좌측은 도선국사....학회에서 님 포함해서 간산했던 사진자료들 입니다.
우측은 본인이 님에게 제시한 사진입니다.
좌우측은 같은 장소입니다.
그럼에도 님은 이곳을 처음보는 장소로 알지 못하며 자신이 주장하는 해복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더구나 이곳은 길 옆에 인접해있고 수구쪽으로 혈장 출입구가 있어 별 복잡한 지형도 아닌 뻔한 장소입니다.
비석이 세워진 특이한 묘소가 커브길에 있어 누구라도 쉽게 눈에 띠는 묘소로써 같은 장소임을
어럽지않게 확인할 수 있는 곳 입니다.
님은 적어도 여러번 이곳을 왔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실을 부정하고 현장토론 어쩌고 합니다.
이는 시치미 떼기 극치로 기가막히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대목입니다.
굳이 시치미 떼기가 아니라면 님은 양심을 속이고 있다는 의심을 주기에도 충분하다 할 것입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해복혈 물형 판단은 최우선적으로 혈장의 중심축으로 아우려진 만곡의 청룡 백호입니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이곳은 혈장이 어느곳에 있다고하더라도 만곡의 청룡백호가 함께 아우려져 해복이라 할 수 있는
물형이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총괄답변5) 아래쪽의 비교사진에서도 확연히 귀곡리산97-4번지는 해복이 될 수 없음이 판별되었습니다.
따라서 위의 라성등을 포함 여러 반론과 함께 이 정도만으로도 귀곡리산97-4번지는
예산 해복혈이 될 수가 없는 충분한 반증입니다.
아래는 다른 카페에서의 본인 글로 예산 해복혈에 관한 종결의 글로 올립니다.
이곳은 백두대간 금북정맥의 소간룡 척상에 있는 혈이다.
때문에 여러 간룡에서 분지된 지룡에서의 맥진처,용진처 결혈과는 차원이 다른 곳으로
인자수지에서는
간룡의 대지는 귀신이 맡은 바 있기에 진실로 음덕이 없으면 가히 엿볼 수 없는 자리다 라고 한다.
해서 그간 의견이 다다분분할 수 있는 혈의 대소에서 감히 이유붙임 없이
충청 제일지지로 일켜러 온 이유가 그러한 연유이다.
또한 인자수지에서는 룡의 지간을 분변하는 것은 지리학에서 첫째의 관건이니 이를 알지 못하면
대본은 이미 잃은 것이라 했다.따라서 룡의 출신을 따지는 것은 대사였다.
따라서 작금에 까지도 혈을 설명할 때 우선해서 그러한 룡의 출신을 먼저 기술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은 도고산으로부터 개장중출한 간맥이 용발용위하고 양방의 띠 같은 지각이 충만첩장하여
서로 이끌어 연행하고 있으며 양균송이 말하는 천억만화가 취중하고 있는
대범간룡행진처(大凡幹龍 行盡處)로 곡안수(曲岸水)가 그 용두(龍頭)를 안아주고 있다.
또한 간룡과 지룡의 구별은 간룡이면 나가서 쉬지 아니하고, 지룡이면 일찍 끝난다 했으니
아래의 지도에서 그러한 모습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부터는 글이 너무 늘어져 있어 이진삼님의 저의 글에 대한 반론에 왜곡된 점만
간단한 각주 형식으로 답하도록 하겠습니다.
ㅎㅎ 이 산도가 가짜라니요?
자신감이 너무 앞서갔습니다. 님의 사고의 공간확보력에 참 아쉬움이 많습니다.
진혈처에 가서 보면 그래도 이 분은 허당짚지 않고 혈장 만큼은 제대로 찾으신 분입니다.
이 분은 왈(曰)자를 연거푸 한것을 보면 다른 산도를 보지않고 결록만 가지고서 혈장을 정확히 찾아
그곳의 산도를 자신이 그렸기에 가짜가 아닙니다.
가짜의 의미는 진짜처럼 보이려고 꾸미거나 만들어 낸 것 을 말합니다.
그림 쏨씨가 좀 아쉬워서 그렇지 국세를 나름 비슷하게 표현했습니다.
작위적이든 무지이든 현재 논의되고있는 위의 해복혈에서 결록의 여려 대목 중 한 대목의 글자 2개 틀린 것이
혈의 유무를 결정지를 결정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게 해자에 대한 여러 속자도 연구해 보시기 바람니다.
동면이란 이를테면 *1면,*2면, *내면,*외면 등으로 분리된 면들은 다른 약칭으로 총칭되는 경우도 있음에
대흥은 넓은 현이고해서 그 동쪽을 총칭하는 경우로 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님은 작도법 또한 기본도 모르고 있습니다.
위의 부분이 서운함이 있어 바로 아래에 다음과 같이 보충으로 D모습을 제시했습니다.
이것을 어거지로 짜 맞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계속적인 어처구니 없음을 뭐라고 해야 할지......
앞선 반론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앞선 반론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고현내가 무슨 뜻인지 지명 공부를 더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수조리의 답이 있습니다.
수조리는 면과 함께 리가 나눠저 없어진 지명이며 그 지명 또한 삽교에서 바닷물이 이곳 신양 일대까지
들어와서 생긴 이 지역의 총칭입니다.
그 잔재로 남은 현재의 수조리를 가지고서 마치 발까락 하나 닮았으니 몸통 전체가 닮았다고 주장해서는 안될 일 입니다.
앞서 설명했 듯 한심한 어처구니 없음입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잘 못 기재된 지명의 경우가 허다합니다.
잘못 전해진 사유로 인해 현재에 이르려서는 그 지명이 고착된 경우 또한 허다합니다.
다음에 논 할 태인 군신봉조혈에서 홍문이며 배례밭도 그 한 예입니다.
더불어 본인도 인정했다하는데 인정한 부분은 출신 용맥입니다.
아래 본인 글을 다시금 주의 깊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님의 산도는 위에서 이야기 하 듯 출신룡맥과 혈장의 모습이 위성사진과 다를바가 없다 뿐이며 그외는 다름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님의 산도 모순된 이야기를 할라치면 지금껏 써내러 온 글 보다 더 사연이 많아 보입니다.
본인 판단으로는 분명한 것은 두사충 원본이 아닐 여러 사실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필사 및 복사 과정에서
그들의 작의 부분이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일부의 문제점은 아래에 7번에서 제시했습니다.
물론 출신룡맥 및 혈장 만큼은 변질되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옛적 거리의 개념은 지금처럼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래는 두사충때보다도 200여년이 지난 조선후기 지도입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명으로 대흥을 말해놓고 그 대흥현 뒷산 유명한 임존성이 있어 가장 대표적으로
누구나 확인될 수 있는 봉수산의 위치조차도 틀립니다.
이곳 산도에서는 도고산과 봉수산이 가장 우선적으로 정확히 배치되어야 할 산입니다.
그러함에도 엉뚱한 곳으로 표시했습니다.
오서산 역시도 한문 이름 조차 틀리며 방향 역시도 현격하게 틀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 신양면의 물길 그리고 대술면 물길등 모두가 틀립니다.
또한 세필붓이 아닌 싸인펜일 가능성도 있어보이고요 틀리는 것들이 너무 많아 더는 생략합니다.
이러함인데도 불구하고 지금의 엄격한 자로 그 거리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 불일치입니다.
ㅎㅎ 본인이 하고픈 모든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네요..... 하지만 고맙다고 할 수도 없으니 마지막 조차까지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본인의 결론으로 모 카페에서 님에 대한 댓글로 마무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