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성한교회/낮-20211219<대림4>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미5:2-9
세상에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미팅. 그렇게 얘기합니다. 미팅. 또 온전하지 못한 예배는 하나님은 와 계시는 데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경우가 있고, 또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그러한 예배도 있습니다.
성탄절 예배. 장소를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나님을 만나는. 이러한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예배를 우리가 좀 전문적인 용어로 엔 카운터. 그렇게 얘기합니다.
엔 카운터. 미팅이 아니고 하나님과 인간의 진정한 1대1의 만남. 진정한 만남. 이것을 엔 카운터. 그렇게 얘기하는데. 우리 모두에게 엔 카운터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미가서입니다. 미가서. 미가서의 말씀은 오실 메시아. 오실 메시아의 종합적인 묘사입니다. 메시아는 이런 분이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 보면 많은 말씀이 메시아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의 이사야 같은 데는 메사아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고, 그 중에서 이사야 53장에 보게 되면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모습이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다른 모든 구약성경의 말씀은 메시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성품이나, 장소나 사역이나 탄생이나. 이런 것들이 부분적으로 쓰여 있는데 이 미가서의 말씀은 메사아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쓰여져 있는 말씀이 미가서입니다.
이번 성탄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섬기는. 부분적으로 아는 그런 성탄절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분을 만나고, 그분께 경배하는 그러한 성탄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첫 번째 메시야의 베들레헴 탄생을 예언
본문 2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베들레헴 에브라다. 베들레헴과 에브라다는 같은 동네입니다. 베들레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에브라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에브라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에브라다 그러면 아는데. 신세대 사람들은 에브라다 그러면 잘 몰라요. 그래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그랬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그랬어요. 그래서 벳세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큰 기적을.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던.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다. 그런 뜻과 에브라다는 풍성한 결실. 한 두가지가 아닌 다양한. 과일과 모든 곡식의 풍성한 결실.
그래서 요 두가지를 합하게 되면 ‘풍성한 떡집.’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떡을 먹고, 영원한 떡을 먹고, 하나님 나라까지 우리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영육간에 배부르게 하신다. 풍부하게 하신다. 이러한 뜻이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작을지라도’.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입니다. 그런데 그 마을이 작지만 유명한 것은 다윗이 그곳에서 태어났어요.
이스라엘의 성군. 이스라엘의 성군이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 후에 메시아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베들레헴에 태어나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다윗이 출생했고, 메시아가 출생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베들레헴을 ‘작다’ 그렇게 얘기할 수 없는 ‘최고의 마을’이 되었다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기 700년 전에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그 마을에 메시아가 탄생하실 것이다. 그렇게 예언했는데 실제로 700년 후에 베들레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하러 고향으로 가라 명령함으로 마리아와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가서 예수님이 탄생하게 되었고, 호적하는. 이런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도 정치, 경제, 코로나. 모든 면에 있어서 전문가들이 많이 있지만. 그런 전문가들도 내일 일을 몰라요. 열흘 후의 일도 모릅니다. 몇 년 후의 일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미래를 알아 맞히는 전문가가 없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가르켜 주면 모릅니다.
그러나 미가 선지자는 700년 후에.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하나님의 시간에. 카이로스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도 빈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하시는 것이 그대로 이루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중세 시대 철학자이고, 신학자였던 성 안셀무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안셀무스. 이분이 “Cur Deus Homo?”(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는가?) 그런 글을 썼습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이 되셨는가?’
여기에 대해서 그분은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요한복음3장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사.’ 세상은 사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탄의 노예가 되어서 질질질 끌려 다니고, 불행하게 살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용납하실 수 없으셔서, 마지막 방법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마다 다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거. 이것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사회의 조직 속에서 보면 직급이 있잖습니까? 회사든. 관공서든. 군데든. 어디든 직급, 계급이 있습니다. 높은 계급에 있던 사람이 가장 낮은 계급으로 떨어뜨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주 천한 말단 직으로 좌천을 당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이렇게 되다니.’ 그러면서 화가나고, 분노하고.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을 속으로 저주하겠지요. 우리는 잘 살다가 못사는 거. 이거 힘든 겁니다. 직급이 내려 앉는다는 거. 모든 권세와 실세에서부터 내려앉는다는 거. 또 사람들로부터 잊혀진다는 거. 이거 참 견디기 어렵습니다.
근데 최고의 낮아짐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가장 높은 하늘 보좌에 계신 그 하나님이 가장 낮고 천한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신 거. 이거 가장 낮아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거. 도성인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신 거. 인카네이션. 이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것은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게 하셨고, 그 사랑이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세상을 사랑하시고, 또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 가정과 우리 교회를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성탄주일, 성탄절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많이 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잘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가운데 성탄주일과 성탄절을 잘 보내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메시야의 고난을 예언
본문 3절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이 세상에는 고난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거. 또 직장 생활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 사업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정말 모든 면에서 어렵습니다.
또 신앙생활이 어렵습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직장에서 ‘교회가지 마라.’ 그런 데도 있고. 교회 가는 사람을 체크하는. 그래서 교회 다니는 사람을 괜히 가까이 하기를 꺼려하는. 그래서 교회 다니기가 참 어려운. 신앙생활 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런 저런 많은 고통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해산의 고통이 가장 힘들다고 그럽니다. 해산의 고통. 애기를 낳다가 죽는 경우도 있잖아요? 해산의 고통이 그 어떤 고통보다 힘들다 성경은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갈라디아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은 해산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너희들은 보통이 아니다. 이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은 해산의 고통을 통해서 이루어진 생명과 같기 때문에 너희들은 너무너무 소중한데, 왜 이단과 거짓 교사들을 따라다니느냐.’ 그렇게 책망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나라들로부터 고생을 했습니다. 제일 힘든 고난은 앗수르. 바벨론. 그래서 앗수르 바벨론 그러면 다 머리를 휘젖습니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받았지만, 특별히 일본에 36년 동안 식민지생활. 그러면 다 고개를 흔듭니다. 너무 고생했다고. 또 6.25사건. 공산당 때문에 너무너무 많이 고생했잖습니까?
오천년 역사 가운데 많은 고생을 했지만. 일제로부터. 공산당으로부터 너무 많이 고생했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시기까지는 말로다할 수 없는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당할 필요가 없는데도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 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승리하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의 고난. 그리고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완성한 것을 성경은 얘기하기를 ‘해산의 고통’. ‘해산하기까지’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로부터 고생을 많이 해서 오늘 이스라엘이 되었던 것처럼 메시아가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셔서 사역하시고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고생이 너무 많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해산의 고통 이후에 큰 기쁨이 있었다 그랬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너무 크지만 해산 이후의 기쁨은 더 큽니다. 고통보다 더 큰 거. 이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런 저런 아픔과 상처가 많이 있지만 우리 주님께서 해산의 고통보다 더 큰 기쁨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어떤 분이 시골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참기름을 짜는데 이렇게 보니까. 서울에서 참기를 짜고 나서 남은 깻묵에 다른 것을 집어 넣어서 한 번 더 짜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참기름은 값이 싼데 서울에서는 가짜인데도 값이 더 비싸요.
그래서 시골에서 오신 분이 ‘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직접 시골에 가서 참기름을 짜 가지고 왔어요. 시골에서 짠 참기름은 값이 싸요. 그리고 순수한 것입니다.
근데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그 참기름을 안 사요. ‘너무 싸다’ 그래서 안 사고, 그리고 ‘이것은 우리 입에 맞지 않는다. 이 냄새도, 맛도 우리 입에 안 맞는다.’ 그래서 그 참기름이 팔리지 않았다. 그런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고, 33년 동안 고난과 고생을 많이 당하셨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그리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고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당하셨어요. 그리고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는 거예요.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너무 귀하기 때문에 그저 주시는 겁니다. 너무 귀하기 때문에 거저 주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독교가 ‘너무 쉽다. 너무 싸다.’ 그래서 시시하게 생각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영접하지 않는 일들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다 사이비와 이단에 빠진 사람들은 더 많은 값을 지불합니다. 학교도 그만 두고. 직장도 그만 두고. 살림도 그만 두고. 가정도 그만 두고. 다 그들이 있는 곳에 모입니다.
재산 다 팔아서 던집니다. 일생을 막 그들에게 던집니다. 신천지가 그렇지 않습니까? 집단 생활하면서. 가정을 버리고, 재산을 다 갖다바치고. 그렇게 많은 값을 치러야 자기네들이 144,000에 들어간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바싸지만 가짜입니다. 값을 많이 치뤘지만 그것은 가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값없이 구원받는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쌉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주님께서 다 값을 치루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겁니다. 예수 믿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어려운, 혼란한 가운데서도 예수님 이름을 꽉 붙들고. 예수님 십자가 꽉 붙들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하여 공격하고. ‘너희는 가짜다. 너희는 배타적이다’ 수많은 공격을 한다할지라도 예수님 이름 꼭 붙들고. 이미 예수님께서 해산의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은혜를 거저 다 받은 것입니다.
끝까지 신앙생활 잘 하는 신앙생활 잘 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 메시야의 승리를 예언
본문 4-6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메시아는 결국 승리한다. 그런 얘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베들레헴 초라한 곳에 오셨고. 또 마태복음2장23절에 보게 디면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가난하고, 거칠고 무식한 나사렛 동네에서 30년을 사셨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사셨고, 목수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공생애. 12제자들을 선택하시고, 교육하시고, 또 공동생활을 하셨습니다.
열 두 제자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다 시원찮아요. 그 중에 가룟 유다는 결국 은 30에 배반하는.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말씀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든지. 아니면 로마병정을 쓰러뜨리든지. 이런 놀라운 권세를 보여주셔야 되는데.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내가 목마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그러시고는 숨을 거두시는. 이러한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를 볼 때에 많은 사람들이 ‘저분은 메시아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메시아는 강한 메시아. 승리하는 메시아. 로마정부를 쓰러뜨리고. 정말 강한 메시아의 모습을 보기를 원했는데, 고향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가족들도 그렇고, 사역도 그렇고, 또 죽을 때의 모습도 그렇고, 제자들에게 팔려서 배신당하는 그 모습을 볼 때 저분은 메시아로서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오늘 5장5절에 보게 되면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 되셨다’ 그랬습니다. 일곱 목자. 7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수이고, 여덟 군왕. 8이라고 하는 수는 완전 수 이상의 수. 7은 완전수, 8은 완전 이상의 수.
예수님은 한 목자가 아니고 일곱 목자가 되셨고, 예수님은 한 군왕이 아니라 여덟 군왕이 되셨습니다. 30년 동안, 혹은 5년 동안 짧게 짧게 왕 노릇하다 끝나는 그런 왕이 아니라 예수님은 여덟 군왕이 되셨다 그렇게 미가서5장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일곱 목자, 여덟 군왕이 되셨다. 그분의 통치는 완전하다. 그분의 통치는 영원하다. 그런 얘깁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의 시각과 사람들의 경험으로 볼 때 ‘저분은 실패한 메시아다’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 되어서 모든 인류를 완전하게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들에게 참된 평강을 주시고. 세상에 참된 평강은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평강은 누구도 줄 수 없습니다.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참된 평화, 평강는 영원하고, 그 평강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까지도 이어지는 영원한 평강.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 되시는 완전한 메시아. 그분을 통해서 우리가 승리를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성도들은 찬송을 많이 부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운데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부르기가 좀 곤란한 찬송도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내가 뭐 십자가를 질 수 있겠는가?
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부귀와 영화와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아이구. 나는 아직도 세상적인 것이 더 좋은데.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고,
또 우리가 헌금할 때. 찬송 부르잖아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주님 나는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아직도 아까운 것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고.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주님. 나는 이 세상에 잠시 사는 것이 아니라 오래 동안.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제가 몇 가지 찬송가를 들었지만. 이게 다 부르기가 곤란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함과 뜨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충만할 때는 ‘내게 있는 모든 것 다 드립니다. 십자가. 내가 지겠습니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 없습니다. 잠시 세상에 살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겠습니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겠습니다.’
우리가 다 은혜 받았을 때가 있었어요. 성령으로 은혜 충만할 때에 그런 찬송을 힘 있게, 감격적으로 부를 수 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보니까 은혜가 좀 떨어졌어요. 성령충만 함이 없어졌어요. 축구공에 바람이 완전히 빠진 것처럼 되었을 때는 이 모든 찬송가 가사가 마음에 너무 힘들고 가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 많이 드신 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커피가 뭐냐 하면 ‘라떼’입니다. 라떼. ‘나 때는. 내가 젊었을 때는. 한 때에는 내가 교회에서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고, 헌금도 많이 했고, 봉사도 많이 했고, 아까운 것도 없고, 충성하고. 야. 나 때에는. 나 때에는. 내가. 내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그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커피 라떼를 먹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하도 많이 들어가지고. ‘그거 싫어. 라떼. 그거 싫어.’ 그런 얘기를 종종 합니다.
우리가 ‘나 때에는.’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지금의 상태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은 형식만 있고, 교만이 있고, 자랑, 이름과 직분만 있고, 명예, 분노, 성질, 인간적인 거. 이런 것들. 지금이 시원찮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삶과 행동이 아니라 모든 것들을 다 말로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을 잘 회복해야 됩니다. 옛날 신앙을 잘 회복해야 됩니다. 그 뜨거웠을 때. 기도 많이 했을 때. 순수했을 때.
정말 뭐든지 주님이 말씀하시면 ‘아멘’하고 순종했던 신앙으로 회복하게 되면 우리 자신이 살고, 자꾸 나 때. 나 때. 이런 얘기하지 않고, 신앙적인 모범을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면 다음 세대가 잘 되고, 우리 자신도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영어에 보면 프리젠트[Present-지금. 선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이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주 좋은 말입니다. 지금이 선물입니다. 지금이.
지금 이 순간이 선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았다는 거. 예배드린다는 거. 교회를 섬긴다는 거. 또 이 코로나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다는 거. 이게 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금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유한한 존재입니다. 풀과 같고. 안개와 같고. 꽃처럼 언젠가는 시들고, 언젠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속에서 기도하고, 봉사하고, 겸손하고 충성해야 됩니다.
지금 가족들을 사랑하고, 감사하다고 표현하고, 하나님 앞에 찬양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그리고 지금 헌신하고. 먼 훗날. 먼 훗날은 안 올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선물입니다. ‘하나님. 코로나로 인해서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지금이 선물입니다. 지금 잘 견딜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지금 이 시간에도 믿음을 지키게 은혜를 주시고, 지금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애쓰고 충성할 수 있도록 지금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넉넉히 이기는 줄 믿습니다.
어려운 시간이지만 우리가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21장8절에 보게 되면 ‘두려워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흉악한 사람. 살인하는 사람. 우상 섬기는 사람. 음행하는 사람. 거짓말 하는 사람. 또 점치는 술객. 이런 사람들은 유황과 불못에 들어가는데. 이것이 바로 둘째 사망이다.’ 그랬습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 나라에게 들어가지 못하고, 유황 불에 들어가는. 이러한 삶을 선택하는 어리석은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는 믿음을 잘 지켜야 됩니다. 지금이라도 천국 갈 수 있는 믿음을 잘 지켜야 스가랴9장16절에 믿음을 잘 지킨 사람에게는 왕관의 보석처럼. 왕관만 해도 대단한데. 왕관의 보석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성탄주일입니다. 지금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 어려운 때에 어둠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그럽니다. 우리를 사지로 몰아넣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 되시는 우리 예수님은 일곱 목자가 되시고, 여덟 군왕이 되셔서 앗수르를 몰아내시고, 바벨론을 몰아내시는. 모든 악의 세력을 짓밟고 승리하시는 메시아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한국교회를, 우리 교회를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시고, 또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과 가정을 반드시 승리하게 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그러나 일곱 목자가 되시고, 여덟 군왕이 되시는. 미가서5장5절 말씀을 우리가 꽉 붙들고 살아갈 때에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 되시는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과 가정에 반드시 승리하는 축복을 베풀어 주실 줄 믿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고, 영생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코로나가 장기화 됨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고통의 신음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 주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하시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고, 끝까지 견딤으로 축복을 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