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사시나무떨 듯 떨고있었다. 조만간 피바람이 불겠구나 생각하며 제 몸을 사리기에 급급해지는 것이었다. 왕이 미쳐버린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그 소문은 이미 뱀파이어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전해저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개중엔 드디어 왕이 레토에게서 헤어나와 정신을 차렸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고, 더러는 잘못된 소문이 아니냐며 의심부터 앞세우는 이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의 관심사는 한가지였다. 제 3의 레토가 나타날 것인가? 혹은 이미 어둠속으로 사라져 잊혀져버린 제 2의 레토인 레 루드니 레토의 영향력에 변화가 생길 것인가? 돌변한 왕의 행동은 그 귀족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을 깨달은 노블레스들은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왕과 레토가 귀환한지 여드레만에 생긴 일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요즘 좀 소란스러운 듯 한데.”
켈리안이 활시위를 있는 힘껏 끌어당기며 과녁에 조준했다. 시위에 눌린 입술이 조금은 심술맞게 보였고, 또 조금은 즐거운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쟁쟁했다.
“그게..”
“아니, 넌 닥쳐라. 세인 네가 대답해.”
침묵을 고수하며 그 자리에 서있던 다른 뱀파이어의 이름을 부른다. 켈리안의 전속 시중을 들고있던 루노스가 입을 다물고 머리를 조아렸다. “세인님..?” 세인이 한참을 말이 없자 입을 다물었던 시종이 당혹스러운지 그를 채근했다. 쉬익- 피슝. 화살이 시위를 떠나 공기를 찢는 소릴 내며 과녁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그 소리가 대단했던것과는 다르게 화살은 애초 목적에서 현저히 빗나가 박혔다. 과녁의 왼쪽 끝부분에 드르르 소릴 내며 울리는 화살을 바라보던 시종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왕이 세칼라의 척결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위즈발트를 중심으로 해서 엄청난 수사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이번에 암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내린 명령에 성 안에 있던 이들이 꽤나 바빠보이더군요. 그리고 옥에 갇혀있던 다넬 자작이 다시 풀려났습니다.”
무표정하게 말하는 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잠시 눈을 흘기던 켈리안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들며 말했다.
“세칼라의 척결이라. 결국 그 노인네들은 들켰다던가? 의외로군, 보안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암암리에 들리는 소문으론 위즈발트쪽에서 세칼라를 밀고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비라 평의원들이 왕께 그 사안을 올리자마자 재검도없이 척살명령이 떨어진걸 보면 저희가 모르는 일이 또 많은 듯 합니다. 그 때, 세칼라의 손을 잡지 않은건 현명한 선택이셨습니다. 주군.”
켈리안이 피식 웃었다. 입에 발린 아부처럼 들리는 그 목소리가 밉지만, 자신은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할것이라 호언장담하던 그것들이 몰락하는 걸 보니 즐겁기보다도 안쓰럽군. 세칼라라면 이 제국의 내노라 하는 거대가문중 하나였는데 베놀 후작이 과욕을 부린거지. 몰락이라...”
“러그라는 것은 애초에 금기시된 돌연변이었습니다. 그걸 이용하려 들었으니, 어쩌면 당연한것이겠지요.”
“당연하다..?”
세인의 담담한 말에 켈리안이 피식 웃었다. 당연하다. 그래, 당연한 것이였다. 켈리안은 그것을 내다보았고, 그리하여 그들이 도움을 주십사 요청했을 때 그것을 매몰차게 거부했었다. 그들의 꿈은 허황되었고, 켈리안에게 뜬구름같은 야망을 일깨우기엔 그 사안이 가지고 있는 리스크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세인의 말처럼 그 몰락은 정해진 길을 따라 차근차근 쌓아올린 모래석의 밑바닥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놀란 것은 너무나도 일찍 발각되었다는 것. 10년조차 되지 않아 발각된 음모론이란건, 술안주거리도 되지 못하는 한심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위즈발트도 한통속 아니었나?”
“글쎄요. 여태까지 그렇게 알아왔지만, 이번 일로인해 사태가 조금 복잡해질 것 같습니다.”
“다른 협력가문들의 속이 새까맣게 타고있겠군.”
다른 이의 불행이 마치 자신의 행복인양 켈리안이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피융- 하는 소릴 내며 과녁에 정 중앙에 박힌 화살이 그 꼬리를 떨었다.
“훌륭하십니다.”
“이번에는 네 차례다. 네가 쏘아봐라.”
“예?”
“오랜만에 보고싶으니 말이지.”
켈리안이 그에게 무겁고 큰 활대를 넘기며 그렇게 말했다. 세인은 잠시 얼떨떨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다가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중들던 루노스는 곧 화살통을 가지고 세인의 곁에 다가와 섰다. 세인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활대를 붙잡고, 화살통에서 기다란 화살을 하나 꺼내들었다. 켈리안은 그의 그 동작 하나하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곧 과녁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두고보지.”
“켈리안님, 전 원래 활에 약하다는 것을 잊으셨습니다. 짓궂으십니다.”
“그럼 그동안 한번도 수련을 하지 않았다는 말인거냐?”
“그건 아니지만..”
세인의 귓가가 조금 쑥쓰러운 듯 상기되었다. 켈리안은 고갤 돌려 그를 바라보다가 곧 쓰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와 이런 시간을 가진 것이 얼마만인가 헤아릴수도 없다. 분위기가 기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세인 역시 그것을 인식한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시위를 끌어당겼다. 피잉- 하는 소릴 내며 곧 화살이 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히 켈리안의 활 오른쪽에 박혔다.
“많이 발전했군.”
“덕분입니다.”
켈리안이 가볍게 소리내어 웃었다. 덕분이라는 그 말은 의례상 한 말일테지만, 오랜만에 듣는 그 말이 그의 기분을 좋게 해준다. 자신이 세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는 것은 언제나 그를 즐겁게 해준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간에. 그 말을 세인에게서 직접 듣는다면 더욱 더 좋았다. 세인으로부터 활을 건내받으며 켈리안은 목소릴 다듬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이리도 소란스럽다는건 좀 의외인데. 왕의 잔인함을 모르는 이가 제국에 남아 있던가? 그러고보니.. 누가 방면되었다고 했지? 다넬? 그게 누구지.”
“수도 근처의 작은 봉토를 관리하는 다넬 자작입니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그...”
켈리안이 기억을 더듬는 듯 살짝 눈살을 찡그렸다. 다넬?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는데.. 잠시 고민하던 그의 얼굴에 이채가 스쳐지나간다.
“마물 토벌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봉토를 수여받은 그 말이냐?”
한번쯤 본 것 같았다. 다넬이라는 노블레스는 고지식하고, 융퉁성없는 고집쟁이었다.
“예. 맞습니다. 이번에 폐하게 그를 사면하셨습니다.”
“...................그를?”
켈리안이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듯 한참이나 침묵하다 되물었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제이드는 그를 사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풀어주었다?
“내 기억이 잘못된건가? 다넬 빈 자작은 레 다브의 면전에서, 그를 비난했고, 위협까지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그것도 폐하가 보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뚜렷해지는 기억에 켈리안은 확신했다. 그 노블레스가 맞았다. 하지만 그 기억이 뚜렷해짐과 동시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런데도 그냥 이렇게 쉽게 풀려나? 분명 그는 상을 받기 위해 성에 찾아왔지만, 그가 애쉬를 위협함에 제이드는 그를 죽이려고 했었다. 그리고 정작 그것을 막은 것은 그의 위협을 직접 체험했던 레토였다. 결국 합의되어 다넬 자작은 작위를 박탈당하고 감옥 깊은 곳에 갇혀버렸다. 어느 누구도 그가 살아서 나올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지나친 처사였지만 레토를 아끼는 왕의 성정을 알기에 어느 하나 나서서 그를 두둔하지 못한것도 사실이었다.
"왜?"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소문이지만, 폐하가 레 다브가 아닌 다른 이를 총애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그럴 리가.”
켈리안이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다. 그것은 제이드의 피의 은혜를 입어온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제이드나 레 다브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불가능하지. 다들 겪을 만큼 겪어놓고서 아직까지도 그런 희망을 품는 다던가?”
"실제로 보았다 합니다."
세인의 말에 켈리안에 활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세인을 응시했다. 허튼소릴 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놀라웠다.
“‘그’ 제이드가?”
“.......그렇다고 합니다. 대공위의 자리에 다른 소년이 앉았다는 소문도 자자합니다.”
하...하하하하! 아하하하! 잠시 어깨를 떨던 켈리안이 소리내어 웃었다. 뭐라고? 제이드가 변심했다고? 여태까지 들었던 왕에관한 이야기중 가장 우스운 이야기였다.
“종족 전쟁이 코앞인데, 대공위를 져버렸다? 정말, 우리의 왕은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용족들이 인간과 손을 잡고, 그 수급을 노리려 하는데. 곧 후회할 그런 행동을 한다고? 정말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냐. 누구보다 강하지만, 정말 그렇게 어리석은 이를 난 본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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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항상 제이드만 불쌍해지는 것 같습니다.
메달리면 메달리는 대로 불쌍하고,
저렇게 되니..
정말 다른분들 말씀처럼 뒷감당을 하려면 손이 발이되도록 빌어야 할것같다는 느낌(?)이 소록소록.
슬프지만. 안녕 제이드. 너는 끝장이구나. 애쉬의 자비가 하해와같길 빌어....
오늘 한편 더올릴 계획입니다.
첫댓글 아, 오늘도 제가 처음 댓글을 다네요. ~ㅎㅎ 카폐 들어오면 항상 들려서 그런가.ㅋㅋ 어쨌거나 오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데 켈리안도 많이 삐뚤어졌네요 ㅜㅜ 예전엔 그래도 나름 단순해서 발끈하는것도 잘했는데. 제이드는...... 음, 전 공이 불쌍한걸 좋아라 해서 ;ㅂ; 더 불쌍해져도 좋을것 같은 .......ㅎ
오늘은 좀 더 기다리다 가야겠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