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일 오후 1시30분, 춘천역 구내, 전동차가 출발하자
시승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1939년 7월 25일 경춘선 열차의 첫 기적 소리에도 오늘의 박수소리와 같은
마음 설렘이 담겨 있었으리라.
전동차가 남춘천역을 지나갈 무렵 시승객 한 사람이 휴대폰 통화를 한다.
“이봐, 나 지금 전철 타고 서울 가고 있어.”
기차 타던 시골 사람이 이제까지 대도시 사람들만 이용하던 전철을 타고 서울 가는,
감회 어린 목소리였다.
71년 동안 낭만과 동경의 키워드 경춘선 열차시대가 끝나면서
빠르고 편리한 경춘 전철 시대가 열렸다.
단선 철길이 복선전철로 바뀐 이 사건은 무엇보다 먼저
그 동안 낙후와 소외 그리고 분단 접경지라는 안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강원도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터.
361304호 전동차에 오른 시승객들이 상기된 얼굴로 실내를 둘러본다.
객차 바닥의 전통무늬에다 꽃그림이 있는 녹색의 의자 커버는 물론
그 높이가 다르게 매달린 손잡이에다 객실 중앙에 걸린 LCD모니터 등
최신형 전동차 내부 디자인에 눈길이 끌린다.
철로 이음매로 인한 객차 덜커덩거림과 디젤기관차의 그 굉음이
청색과 백색으로 조화를 이룬 말쑥한 전동차 등장과 함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제 우리도 ‘기차 탄 인생’이 아닌 진동과 소음이 적은
‘전철을 이용하는 수도권 사람’이란 생각으로 시승객들의 어깨에 지그시 힘이 주어진다.
춘천역에서부터 신상봉역까지 20개 역사(驛舍)는 기와집 구조의 김유정역이나
물결의 형태적 이미지를 살린 지붕의, 북한강변 백양리역 등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일제 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모든 역의
그 획일적 모습을 벗어나고 있음이 인상적이었다.
81.4㎞ 경춘선 복선전철은 경춘고속도로가 그러하듯
모두 스물세 개의 크고 작은 터널이 많아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재미는
옛 기찻길보다 한결 못했다.
그런대로 대성리역부터 청평역까지, 그리고 굴봉역이나 백양리역에서 내려다보는
북한강 강변 풍광은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아무튼 71년 동안 낭만과 동경의 키워드 경춘선 열차시대가 끝나면서
빠르고 편리한 경춘 전철 시대가 열렸다.
내 것과 네 것이, 대도시적 삶과 작은 도시의 소박한 것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경계를 허물고 뒤섞여 혼재하는 시대의 열림 속에
지역이 무섭게 변화할 것이 분명하다.
전철 개통과 더불어 잘 사는 세월에 대한 덧셈 기대만큼
우리가 가진 것이 가치를 잃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뺄셈 우려도 없지 않다.
변화는 좋으나 우리의 좋은 것이 큰 것에 의해 사라져서는 안 된다.
경춘선 전철 개통을 통해 비록 작지만 가치 있는 우리 것을
그 어느 때보다 소중히 생각해 지켜내는 우리의 정체성 찾기가 시급하다는 뜻이다.
또한 경춘고속도로와 이제 막 개통될 전철을 통해 몰려올
대도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우리 고장 관광 명소는 물론
각종 문화시설들이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한 프로그램 개발로
그곳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체험하면서 즐기는 가운데
뭔가 느끼고 가게 하는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
80㎞부터 110㎞까지 속도를 조절하며 무정차로 달린 전동차는
1시간 10분만인 2시 40분에 신상봉역에 도착했다.
당장은 도심권 접근에 어려움이 크겠지만 내년 말부터 운행된다는
급행열차(주요 역에만 정차)나 좌석형 급행고속열차(180㎞로 신상봉역을 거쳐
용산역까지 1시간) 에 대한 기대로 아쉬운 마음을 달랜다.
오후 3시5분 신상봉역, 코레일 임직원들의 절도 있는 시승열차 출발보고식에 이어
춘천 가는 전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10초씩 백양리역과 김유정역 등 몇 군데 역에 멈춰 섰던 전동차가
춘천역에 도착하니 이 지역 코레일 직원 백여명이 시승 자축 행사를 위해
역 광장에 도열해 있었다.
흩어지는 시승객들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전철 전철 입에 달고 살다 얼마 전 죽은 내 친구 생각나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