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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호(1997). 『학문과 교육(상): 학문이란 무엇인가』.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제 2장 학문의 제 양상
2.2. 학문의 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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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학문의 내재성
2.2.1.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
각 세계는 그것에 접근하는 두 가지 통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세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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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관심과 범주를 동원하여 그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이며, 다른 하나는 그 세계 자체가 아닌 다른 관심과 범주를 끌어들이고 관련성을 따지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이다. 그 세계 내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의 방법만으로도 세계에 대한 이해는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세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후자의 우회적인 이해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학문의 세계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언제나 두 관점 간의 대립이 있어 왔다. 대부분의 일반사람들은 학문을 그 자체로서 파악하지 않고 그들이 비교적 친숙하게 느끼는 학문 이외의 세계, 우리의 앞선 분류에 의하면 세속계나 혹은 다른 수도계와의 관련성을 부각시키면서 학문이 여타의 세계를 위한 수단의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로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우회적인 접근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학문은 학문 외적인 목적에 대하여 수단이 된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도 남는 고유한 관심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학문적 활동의 순수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부터 두 가지 관점을 주로 동기와 가치의 양면에서 비교하면서 학문계가 내재적인 입장에서 이해되어야만 할 별다른 이유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형성해 보자.
캠벨(N. Campbell)은 그의 오래된 저서 <과학이란 무엇인가?(1921)>의 첫 장 첫 절에서 바로 이 문제를 제기한다.
과학에서 두 가지 형태 혹은 국면이라는 것이 있다. 첫째, 과학은 일단의 유용하고 실제적인 지식과 그 지식을 얻는 방법이다. 이러한 형태의 과학은 과거에 전쟁이라는 파괴의 와중에서 큰 몫을 했으며, 또한 평화에로의 인정어린 회복에도 동일한 정도의 큰 몫을 한 것으로 주장된다. 만약 실제적인 과학이 독가스전을 가능하게 했다면, 그것은 또한 그 공포를 중화시키는 수단이었다. 만약 그것이 산업혁명의 사악함을 가져온 주범이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노동과 시간을 줄임으로써 그 많은 상처를 치유해 온 것도 사실이다. 과학의 두 번째 형태나 국면에서 보자면, 과학은 실제적인 생활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영향을 준다면, 그것은 대단히 간접적인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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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것이며, 그것조차도 선용과 악용의 어느 쪽이나 가능한 것이다. 이런 형태의 과학은 순수한 의미의 지적인 탐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공예라기보다는 회화, 조각 혹은 문학과 같은 순수예술에 가깝다. 그 주된 목적은 정신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며, 육체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과학은 오로지 인류가 지닌 “이해관계를 떠난 호기심(the disinterested curiosity)”에 호소할 뿐이다(p.1).
어떤 구체적인 학문을 두고 그것을 순수학문이나 응용학문 가운데 어느 하나로 고정시키기는 어렵다. 어느 학문이나 캠벨의 말대로 두 가지 국면을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응용학문 [각주 5: 이것은 제 4장의 주제이다.] 이라고 말하는 학문에도 자세히 보면 순수한 태도로 그 학문에 임하는 학자들이 있으며, 순수학문이라는 학문에도 학문 외적인 동기와 태도를 가지고 학문활동을 하는 학자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바로 그 태도에 있다. 우리는 이 태도에 있어서 크게 대조를 보인 두 명의 역사적인 인물로서 유클리드(Euclid)와 베이컨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 가운데 독자는 어느 편에 동조하는가?
평면기하학을 체계화한 유클리드는 기원전 3세기 무렵의 수학자로서 시대적으로는 베이컨보다 훨씬 앞선 사람이지만, 그의 주된 관심과 흥미는 고대 희랍적인 전통을 이어받아 학문의 응용보다는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기 시작한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정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스승에게 물었다. “도대체 이러한 것을 배워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자 유클리드는 자기 노예에게 소리쳤다. “이 사람에게 3펜스를 주게. 무슨 이득을 위해 이 사람은 배우는 모양일세.” 주지하다시피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널리 응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을 응용하기 위해서 탐구한 것이 아니라 의문스러워서 탐구했으며, 그것이 진실에 가까우니까 그만큼 응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가 응용을 먼저 의식했다면 기하학을 당대에 그렇게 훌륭하게 정립할 수 있었을는지는 지극히 의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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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으로 베이컨은 앞서 지적했듯이 근대철학의 개척자로서 인간의 지성을 신학적인 테두리 속에 포함시켰던 중세적인 사조로부터 자연과학을 분리시키려고 애를 쓴 인물이다. 그의 업적으로서 중요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신과 자연 사이의 엄격한 분리원칙을 빌려 신학적 제약을 받지 않고 실험적 방법에 의해 후자의 영역을 자유로이 탐구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그는 당시 우리가 지금도 널리 인용하는 유명한 말, “지식은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scientia’란 경험과학적 지식을 의미하며, ‘potentia’란 현상이 진로를 예견하고, 가능하다면 이것을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는 능력을 뜻한다. 베이컨은 단지 예견하기 위하여 알고자 하였을 뿐이며, 예견하고자 하였던 것은 단지 그러한 예견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권능을 증진시키는 한에서였다. 위대한 발견과 발명의 시대는 효용의 관념과 더불어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힘과 자유의 관념과 가치에 의해서 고무되었다. 이 주장은 당시 자연과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대중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본질적으로 실제적인 것이었으며, 그가 지향하는 방향은 오늘날 순수과학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 쪽이었다. 그 자신은 사실상 순수과학과 기술의 차이를 몰랐다. [각주 6: Bacon은 귀납법의 창시자로서도 널리 알려지고 있지만, 그 자신이 과학적인 생활을 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세속의 정치가로서 활동하다가 나중에 수뢰지로 실각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그는 유클리드와는 달리 학문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재적 가치보다는 그것이 가져올 일상생활에서의 기술적 개선에 관심을 가졌고, 그러한 외재적 관심이 일반인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이 학문은 내재적인 측면과 외재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태도 가운데 어느 것이 그르다는 판단을 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학문을 그들이 원하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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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또한 그들의 한계이기도 하다. 학문계에 정통하지 않으면 학문계를 그 내부에서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나 학문을 피상적인 외부의 관점으로만 이해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그 관점은 균형을 취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학문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 특히 학자들조차도 지나치게 베이컨의 편에 서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인식태도에는 적어도 학문의 입장에서는 경계해야 할 일면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지식은 힘이다”라는 베이컨의 말이 틀려서가 아니다. 지식의 확대에 따른 인간생활의 개선은 그의 말을 실감나게 입증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여 전기 · 전화 · 페니실린 · 각종 운송수단 · 전자매체 등의 공학이 발전했고, 이들이 인간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는 사실은 역사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학, 그리고 넓게는 학문을 오로지 생활의 편의를 위한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학문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이 세상에는 생활의 편의라는 면에서 보면 에디슨이 발명한 전등에 못 미치는 학문적인 업적이 허다하다. 진정 학문을 사랑하는 학자들은 그들의 별다른 생활과 그에 따른 업적을 그 나름으로 평가해 줄 별도의 가치기준을 원한다. 오늘날 우리들의 기술적인 이득을 위해서 이용되는 여러 가지 발견들도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학자들이 단순한 발견의 기쁨을 위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제 4장에서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에 관해서 더 자세하게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학문을 학문답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문이 그 자체의 고유한 속성을 통하여 학문 이외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주는 힘을 지니는 것도 그 활동의 목표를 지식 자체의 추구에 둘 때 가능한 것이다. 지식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학자들에게는 더욱 실제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베이컨이 말하는 지식의 힘은 학문활동의 과정보다는 학문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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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용한다고 할 때 먼저 응용되어야 할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하다. 학문을 하든 아니면 다른 일을 하든 간에 자기가 진심으로 그 일의 내재성에 충실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 아닌가는 실제로 그 세계 내에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체험에 비추어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진정 지식이라는 것을 만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효용에 관계되는 관심이나 동기가 연구의 수행과정과 결과를 좌우하는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 점이 학문의 결과만을 강조한 베이컨과 결과상의 관심보다는 학문의 과정 자체의 가치를 강조한 유클리드간의 학문적인 체험수준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오늘날에도 유클리드 기하학은 생활에 널리 활용된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그의 기하학은 생활에의 활용도라는 관심에 의해서 밝혀졌거나 그 진리성이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한다.
학자들이 외재적인 보상에 쉽게 동요하지 않고 학문의 내재성을 지킬 수 있게 하는 동인은 한마디로 지적인 만족과 유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유희는 어떤 목적에 대한 수단의 관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자기충족성을 지니고 있다. 지적인 만족 이외의 어떠한 다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미리 선정된 수단을 엄격하게 적용해 나가야만 하는 정신활동을 학자들은 생리상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대신 그들은 바로 지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나는 학자의 이런 면모를 흔히 지식의 효용성과 응용성을 강조한 것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철학자인 듀이(J. Dewey: 1859~1952)의 말을 빌려 역설적으로 드러내고자 한다.
전문가에게 개념적인 의미는 그 자체의 주제가 된다. 실제의 생활에 대한 직접적, 혹은 궁극적인 응용에 전혀 개의함이 없이 그들 간의 논리적인 관계나 함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인은 지적인 만족 때문이다. 예컨대, 숙달된 수학자에게는 개념들 간의 관계를 추적하고, 그들 간의 예상되지 않은 관계를 발견함으로써 하나의 조화로운 체제 속에 그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더 열광적인 것은 없다. 그러한 사색 자체가 엄청난 심미적인 만족을 준다. 여기서 관념을 가지고 유희한다는 일이 성립한다. 이런 형태의 스포츠는 실제의 사물을 가지고 노는 게임보다 훨씬 더 우리를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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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킬 수 있다. 관념들 간의 관계 그 자체에 몰두하지 않거나 그것에 흥미를 갖지 않은 사람이 어느 과학의 영역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하나의 사상가로서 이름을 떨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1933, pp.182-183).
흔히 우리는 학문적 판단이 실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을 할 때 實用主義를 연상한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우리가 여기서 논하는 인식론적인 범주보다는 더 폭이 넓은 주제를 다루는 철학의 한 조류로서 그것이 학문적 판단의 근거가 되고 있는지는 검토의 여지가 있다. 실용주의의 대표자처럼 알려지고 있는 듀이의 경우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부분적으로 오해되고 있다는 사실이 지적되고 있다(Bernstein, 1971, pp.216-217). 듀이는 세상에 대한 주장을 담은 이론적 판단(theoretical judgment)과 어떤 특수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수행되어야 할 제안을 담고 있는 실제적인 판단(practical judgment)을 구분하였다. 그리고 그는 전자가 ‘실제적인’ 목표들에 봉사하는 정도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거부하였다. 그에 따르면 이론적 탐구는 그것이 직접적인 존재적 상황의 요구로부터 추상화되는 정도에 있어서만 그것의 설명력을 얻는다. 이론적인 탐구를 그 자체의 목적을 갖는 것으로 보고, “이해관계를 떠난 호기심”을 지니고 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론이 갖는 체계적인 설명력을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학문계의 역사는 학문을 여타의 세계에 대한 수단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그 자체로서 사랑하면서 생활한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풍부하게 담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야의 중요한 발전은 내재적 가치에 충실한 삶을 고수한 사람들에 의해서 성취되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역사상 학문계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캠벨이 지적한 바 있는 “이해관계를 떠난 호기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에게 지식의 연마는 보상받아야 할 어떤 도구가 아니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인간성 실현의 과정이었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는 단순한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그는 천문학을 응용해서 생활을 꾸리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의 취미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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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중심설을 창안한 것이다. 그의 뒤를 이은 케플러는 점성술적 달력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천문학을 했으며, 그가 발견한 법칙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는 토대가 되었다. 듀이 역시 그가 말하는 훌륭한 사상가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는 가끔 지식의 효용성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삶의 내재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만 허용되는 것이었다. 앞에서 인용한 듀이의 글은 바로 그러한 생각을 할 때 듀이 자신의 내면에 흐르고 있던 학문에 대한 내재적인 체험을 담고 있는 듯하다. 학자들은 관념의 유희 그 자체에 매력을 느끼는 특수한 집단의 구성원인 것이다.
어느 분야이든지 간에 그 분야의 발전은 외재적인 관심보다는 내재적인 관심을 가진 일군의 동호인들에 의해서 추진되어 왔다. 그 분야가 내재적인 동기와 가치를 떠날 때, 그리고 외재적인 동기와 가치에 의해서 압도되거나 지배될 때 그 본연의 속성을 잃기 쉽다. 우리는 그 이유를 적어도 세 자기 측면에서 검토할 수 있다. 가령 A와 B가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갖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첫째, A의 가치는 B라는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소멸하게 된다. 그것이 활동이라면 그 활동은 종료될 것이다. 둘째, B라는 목적을 달성시키는 수단은 반드시 A만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수단들이 더욱 효과적일 때, A의 가치는 그만큼 약화된다. 셋째, 실제로는 A가 B의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단지 B의 수단으로서만 그 중요성이 인정될 때, 그것이 가진 다른 중요한 특징이 드러나기 어렵다. 이 경우 A는 B의 무게로 인하여 그 본질조차 왜곡된다. 따라서 A를 발전시키려면 그 중요성을 B에 부수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A의 고유한 범주와 목적을 확보하고 그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
학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학문을 추구할 때는 그것 자체로서 추구되어야 한다. 그것의 존재는 그것 아닌 것과의 독립성에 의존한다. 특히 그것은 세속계적인 것과 독립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학문의 발전사를 보면 그것이 자체의 고유한 내재성을 지키려는 개인 혹은 집단의 강렬한 열정과 노력에 힘입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의 역설은 학문의 순수성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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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을 지원하거나 보상하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많은 경우에 외부의 영향을 억제하거나 억압하는 조건에 의해서 유지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학문이 만약 베이컨 식의 효용성에 의해서 추진되었다면 그것이 지니는 잠재력은 외부의 정세에 따라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일시적인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엄청난 발전이나 창조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점은 학문의 성과와 효용성만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풍조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학문은 그것의 봉사적 기능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서 충분히 가치 있는 세계이다. 따라서 학문은 자체로서 가치 있는 세계추구라는 고유한 내재성을 지킴으로써만 그 속성을 지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내재성을 지켜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상 학문은 발전해 왔다. 학문을 진정으로 발견시켜 온 사람들에게 학문은 그것의 용도와는 별개로 존재의 이유를 지니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내재적 가치를 알고 그것을 추구했기 때문에 학문의 진정한 가치를 위협하는 외부적 세력에 대항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학문이 다른 여타의 동기나 가치에 의해서 억압받는 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멸되지 않고 이어져 온 것이다.
2.2.2. 동기와 가치
학문의 순수한 동기는 많은 심리학자들의 관심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최근에 마슬로우(A. H. Maslow, 1970)가 제시하는 동기론이 그 특질을 잘 드러내 준다. 앞서의 듀이가 그러했듯이, 그 자신 가장 모범적인 학문생활을 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는 마슬로우는 그의 이론에서 동기를 크게 결핍동기(deficiency motivation)와 성장동기(growth motivation)로 나눈다. 전자의 부류로는 물질적 혹은 생존적인 욕구 · 안전의 욕구 · 소속 및 애정의 욕구 · 사회적인 인정의 욕구 등이 있으며, 후자의 부류로는 자아실현의 욕구 · 인지적인 욕구 · 심미적인 욕구 등이 있다. 우리의 세계구분을 여기에 적용해 본다면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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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동기는 다분히 세속계적인 것이며, 성장동기는 수도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핍동기와 성장동기의 차이를 그는 우세성의 위계, 동기의 만족 이후의 상태, 그리고 그들이 개인의 지각 · 인지 · 행동에 주는 영향으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결핍동기는 우세성의 위계로 보면 상위에 속하지만 인간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는 성장동기보다 저차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이 동기들이 만족되었을 때, 그 강도가 결핍동기의 경우 약화되는 데 반해 성장동기의 경우에는 오히려 증대되고 고조된다. 마지막으로 결핍동기의 지배하에 있는 사람은 그 동기의 간섭을 받아 정상적인 지각과 인지를 방해받는다. 그러나 성장동기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 동기 자체가 그의 인지내용을 간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가 자기 자신과 주위의 세계를 불안감 없이 수용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탐색하도록 돕는다.
마슬로우는 그의 저서인 <과학의 심리학(1966)>에서도 시종 이러한 동기의 특성을 들어 오늘날의 과학이 성장동기보다는 결핍동기에 의해서 추구되고 있음을 우려했다. 그는 이른바 ‘결핍인지(D-cognition)’와 ‘성장인지(B-cognition)’를 구분하고, 오늘날의 과학자들을 비판한 바 있다. 결핍인지로부터 성장인지를 구분하려는 것은 인지활동의 결과보다는 인지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순수한 형태로 이끄는 힘을 지닌 동기를 중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만약 인지활동을 하는 동기가 그가 말하는 결핍동기(물질에 대한 욕구, 안전, 소속과 애정, 인정 등의 욕구)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것들이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에서는 인지의 어떠한 측면이 무시되거나 혹은 왜곡되어 버린다. 이에 비해서 성장인지는 외재적인 동기의 만족이나 좌절과는 무관하게 인지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이루어지는 형태이다.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학문활동을 하는 사람은 설사 외부적인 압력과 위협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하며, 그 결과로서 자신을 좀더 성숙한 존재로 고양시킨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일부의 과학자들이 보이는 예측과 통제에 대한 집착, 사회적 인정이나 불인정에 대한 민감한 반응, 실용성에 대한 강조 등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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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다.
학자들에 대한 외부적인 보상과 포상은 커다란 정신적 격려이며, 다른 사람들의 존경과 신임의 표현은 그의 연구를 더욱 고무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상과 포상은 연구의 부수적인 목표이며 본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만약 외재적인 보상과 포상이 주된 목표라면, 그것을 받는 순간 그의 학문활동은 정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라는 신분이 주어지거나 혹은 學位를 인정받자마자 연구를 포기하거나, 혹은 그것을 발판으로 다른 세속적 야심을 충족시킬 기회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학문에 대한 그들의 내재적 동기가 처음부터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보상과 존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마슬로우가 주장한 내용에 전폭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그가 제시한 동기의 우세성에 있어서의 위계에 관한 가설에는 회의를 가지고 있다. 앞서 과학자들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지만 학문의 동기는 그가 말하는 결핍동기, 즉 우리의 개념에 의하면 세속적인 동기가 충족된 뒤에 나타나기보다는 그 충족과는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듯하다. 오히려 학문활동은 세속적인 동기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나 혹은 그것들을 극복하는 상태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학자들의 학문하는 동기는 외부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들은 개인적인 안녕이나 물질적 보상을 개의치 않고, 진리를 추구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들은 그 점에서 삶의 보람과 자부심을 갖는다. 진정 학문 자체를 사랑하면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활동에 어떠한 외부적인 보상이 주어지기 이전에 이미 그 자체로서 보상을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연구가 잘 되고 자신의 연구에 깊이 몰두하며 기뻐하는 학자는 그러한 즐거움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엾게 생각한다. 이러한 특수한 동기와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적인 기대나 존경을 초월해서 학문계의 발전에 매진할 수 있다. 세속적인 동기가 충분히 만족되면 성장동기가 생긴다는 가설도 믿기 어렵다. 부귀영화는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에 대한 욕구를 증가시킨다. 따라서 학자들이 결핍동기를 극복하는 현상은 동기의 수준보다는 가치의 차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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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가치성향과 단순한 욕구성향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이 문제는 긴 설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본 논의에 필요한 정도로만 극히 직관적인 편법에 의존하여 다루기로 하자. 가치성향과 욕구성향의 한 가지 차이는 전자는 후천적인 陶冶(Bildung)와 修鍊(cultivation)의 과정을 거쳐야만 형성된다는 점이다. 보통 우리가 어떠한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그 가치를 감식해야 할 상황이 있다고 할 때, 거기에 누구나 참여시키지는 않는다. 우리는 대개 그 분야의 전문가의 안목을 동원한다. 왜냐하면 가치관은 그 대상과의 실천적 상호작용을 거쳐서 형성된 다양한 양태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가치의 심도를 선별하는 안목으로서 후천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쓴 약을 달게 먹는다”는 말을 듣는다. 이 말은 그야말로 동기와 가치의 역설적인 관계를 한마디의 간결한 문장으로 요약하고 있다. 동기의 수준에서 볼 때 분명히 약은 쓰다. 그러나 약의 가치를 체득한 사람에게는 그 약은 조금의 과장도 없이 한 알의 사탕보다 훨씬 달게 느껴진다. 이처럼 가치는 수련에 의해서 개발된 인간의 목적의식이기 때문에 단순히 동기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면모를 갖는다. 고귀한 가치일수록 고귀한 수련을 쌓아야만 그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삶이 진정 무엇인지를 공감할 수 있다. 학문의 내재적인 가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가치 있고 당연한 것을 추구하는 데 별도의 물질적인 보상이나 칭찬이 필요하겠는가?
뒤에 더 자세한 내력과 그것을 둘러싼 오해를 다룰 예정이지만, 흔히 학문의 ‘가치중립성(value neutrality)’ 문제가 자주 거론됨을 본다. 또한 철학에서 한때 사실과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 때 그 가치는 주로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을 의미했다. 이 논의나 용어가 학문은 가치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어떤 인간사라거나 혹은 학문은 전혀 가치추구를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그 인상을 교정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문은 분명히 가치추구의 세계라는 사실이다. 학문은 제반 가치와 관련을 맺고 수행된다. 과학자들의 학문활동이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 연구를 위한 문제의 선택에서부터, 그리고 과학이 추구하는 이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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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회발전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이미 가치판단은 이루어지고 있다. 학문은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어떠한 것도 학문을 하는 이유가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가치관련성은 비단 학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사에 해당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점에서 학문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학문이 가치추구의 세계이고 그 활동도 그런 가치의 규제를 받으면서 진행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어차피 가치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그렇다면 학문을 평가할 가치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가치의 다원성이라는 측면에서 우선 고려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가 있다. 그 모든 가치에 비추어 학문을 평가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가치는 각각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또한 가치들 간의 조화가 어려운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위주로 하느냐 하는 문제를 또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학문활동은 기준 X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지만, Y에 비추어 보면 보잘 것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이 때 우리는 이른바 “내재적 가치(intrinsic value)”와 “외재적 가치(extrinsic value)”라는 가치분류를 필요로 하게 된다. 만약 수도계적인 가치를 외재적인 가치와 보상에 의해서 강화한다면, 그것은 단지 외재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될 것이다. 모든 수도계적인 가치는 세속적인 인정과는 별개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세속계적으로 제약된 사고습관에 의해서 평가될 때 그 고유성은 망실된다. 가령, 학문적인 지식을 정치적 가치에 의해서 평가하고, 예술품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 평가하고, 도덕적 행위의 가치를 사회적인 비난과 인정에 의해서 평가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수도계적인 무제약적인 가치는 소멸되고 만다. 수도계적인 가치는 결국 그 세계에 입문한 사람들이 오랜 전통을 통해서 발전시킨 기준에 의해서 평가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의 다양성에 독자적인 공헌을 할 수 있게 된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학문이 어떠한 가치를 따르고 있느냐 하는 것과 그 자체의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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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학문은 내재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의 이유는 학문의 내재적 가치는 오직 학문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치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학문의 외재적 가치는 한두 가지가 아니며, 그 종류에 있어서 너무도 많고 다양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여기서 정식으로 고려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학문의 내재적 가치는 진리탐구이다. 답이 주어지기 전에 물음이 주어지고, 그 물음은 세계에 대한 인식적 관심의 표명으로서 이미 진리라는 가치에 의해서 교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서 사실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의 작업을 수행할 때, 이미 진리라는 가치평가가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제대로 된 연구라고 하면, 그 연구의 수행은 그것이 얻고자 하는 지식이 진리를 대표할 수 있는 방식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내규 속에서 진행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여기서 가장 평범하게 그리고 널리 쓰이면서도 실제로는 그 말의 본뜻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말을 다시 확인하기로 하자. 학문계는 나름의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며, 그 특수한 목적의식에 의해서 여타의 세계와 특징 있게 구분되는 세계이다. 이 경우 그 가치는 도덕적 · 윤리적인 것이 아닌 인식적 가치이다. 그 가치를 우리는 오랫동안 ‘진리’라는 말로 대변해 왔다. 학문은 분명히 진리라고 하는 가치의 추구를 전제로 하여 성립한다. 물론 어떤 것이 진리이고, 또 진리를 판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남아 있다. 그 문제는 후(2.5.)에 다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은 다른 수도계적인 가치, 즉 예술계가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도덕계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학문은 그 구성원에게 진리에 대한 영원한 구애자가 되기를 요구한다. 학문계에서는 사실이 사실로서 판명될 수 있는 방식으로 처신하고, 또 아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공개하고 모르는 사실은 주저함이 없이 알려고 해야 한다. 학자들은 진리탐구라는 규제이념에 충실한 작업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그 목적과 더불어 생활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만약 진리가치가 다른 어떤 가치 및 기타 개인적으로 얻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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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와 상충할 때, 전자의 것을 지상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정과 책임과 참여와 투지를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진리의 가치는 자립된 고유의 존재이며, 밖으로부터 그에게 부과된 모든 이용가치와는 독립된 별개의 것이다. 지식의 타당성은 고유한 절차와 가치관에 의해서 확보되어야 한다. 평가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이 그 기준의 독자성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무수하게 이질적인 세계가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는 모두 다르다. 우리가 학문적인 지식의 가치를 판단할 때, 그러한 무수한 가치들이 모두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가치기준이나 무분별하게 적용한다면, 학문은 그 기준을 차용해 온 세계로 환원되고 만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이 무엇이며, 진리에 복종하는 삶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점이 진리라는 말이 풍성하게 거론되지만 대중에게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주된 이유가 된다. 그 난점의 하나는 진리에 대한 감각은 마치 고상한 취미활동이 그러하듯이 오랫동안의 도야와 수련에 의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말장난 같지만 학문의 내재적 가치를 학문을 내재적으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이것은 마치 김치의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맛을 입증하는 일이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에서이다. 후자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전자의 문제가 단지 말장난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난점의 하나는 그 어느 누구도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는 없고 단지 그 진리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이 후자의 난점은 더러는 회의론자들에게 학문의 무정부성을 부각시키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극복되어야 할 난점이지 그로 인해서 학문을 포기해야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우리는 산의 정상에 오르지 않고도 우리가 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어두운 동굴 속에서 그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서도 좀더 밝아지는 방향을 확인하면서 출구를 향해 끈질기게 전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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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마찬가지로 진리라는 개념이나 내용이 어느 시점에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진리는 그것을 탐구하는 무수한 역사적인 인물에 의해서 재정의되고 재체험되어 왔다.
위의 난점은 비단 학문의 세계에 국한된 것은 아니고, 우리가 앞서 하나의 큰 부류의 세계로 규정한 이른바 ‘수도계’의 어느 하위세계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모종의 가치를 추구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추구’라는 말이다. 이는 각각의 세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각 수준에서 그 세계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경합하거나 기준 자체를 재정의해 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학문계에서 진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계속 쇄신되어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 이외의 수도계에 속하는 세계, 예컨대, 미를 추구하는 예술계, 선을 추구하는 도덕계 등도 고유한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을 지속적으로 쇄신해 왔다. 그리고 ‘道’ · ‘德’ · ‘仁’ · ‘善’ 등의 말로 대변되는 동양적인 수도계들도 이 점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가 유념하여 논의해야 할 것은 가치의 수준이 아니라 가치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수도계는 모두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모종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들이지만, 그들은 서로 다른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될 고유한 자율성과 내재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단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보아서는 그들로부터 학문이 추구하는 특수한 가치를 분리해낼 수 없다. 이 역시 각 세계내의 체험에 의해서만 구분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여기서 한 무더기의 말의 성찬을 가지고 그들을 구분해내려는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학문에서 말하는 ‘진리’라는 가치기준의 내용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말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자가 이 말에서 어떤 의미를 연상하게 되는가는 어쩔 수 없이 가치에 대한 여러분의 체험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우리는 그 체험수준을 논의할 여유가 없다. 다만 여기서는 그것의 의미가 체험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자. 그러나 개념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각종의 가치들이 동일시되어 좋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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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것은 다른 것으로서 분리시키는 것이 고유한 속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들을 분별하는 결정적인 방법은 체험이기 때문에, 그 동안 이른바 ‘가치론’의 이름으로 시도된 무수한 이론적인 노력들이 큰 성공을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학문계와 여타의 수도계의 차이를 간과하거나 그들의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환원시키는 오류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수도계가 그 나름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아직도 많은 혼란이 있는 듯하다. 따라서 그 혼란의 영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세계로 간주되어야 하는지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역사적으로 학문의 내재성과 외재성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의 분류에 연원을 두고 있다. ‘theoria’와 ‘praxis’의 구분은 최초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에게 있어서 전자는 앎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과 활동을 의미하며, 후자는 비록 자유인의 생활방식이기는 하지만 윤리적인 생활이나 정치적인 생활에 특징적으로 들어 있는 것을 다루는 다양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구분은 지금까지도 철학의 한 전통으로 남아 있다(Bernstein, 1971). 우리나라에서도 전자를 ‘이론’, 그리고 후자를 ‘실제’라고 번역함으로써 전자가 지니는 특수한 목적의 내재성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본 저서에서는 그러한 구분을 지양하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유독 학문만이 그 자체로서 내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은 철학자로서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학문 · 예술 · 도덕 등을 포함하는 모든 수도계가 엄격한 실천적인 도야와 수행을 요구하고 있으며, 또한 그 나름의 고유한 내재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점에서 이론과 실제를 헤겔의 관점에서 통일하여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철학적 입장을 지양하려는 번슈타인(Bernstein, 1971)의 다음과 같은 관점에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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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실천(practice)을 교도하지 않으며, 또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사고 속에서 이해된 것(apprehended in thoughts)”의 능동적 작용이다. 철학의 고유한 과제는 능동적인 작용(the actual)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능동적인 작용이란 무엇인가? ‘정신(Geist)’에 관한 우리의 논의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능동적인 작용이 세계 속에서 자체를 능동적으로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능동적인 작용은 정적인 실재가 아니라 자체가 다양한 형태로 현현하는 활동의 과정이다. 활동 자체로서의 ‘정신’은 ‘praxis’이다. 철학으로서 그 순수한 형태에 있어서 ‘theoria’는 ‘praxis’에 내재된 합리성의 명확한 표현에 불과하다(p.34).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영역을 크게 이론학 · 실천학 · 제작학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이론학은 여타의 것과는 달리 내재성을 갖는 것으로 보았다. 이 세 분야들이 모두 학문이라고 불리는 것은 이 작업들이 인간의 지적인 능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세 경우 모두 어떠한 종류의 규칙이 있고 이것을 파악하는 데에서 성립하는 작업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류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 내재적인 것으로서 앎 자체를 위한 앎에 해당하는 이론적인 앎만을 인정했다. 앎 자체를 위한 앎이라는 이론적 앎의 이념은 우리에게, 특히 학문을 학문 밖에서 바라보는 일반인의 눈에 상당히 낯선 느낌을 줄 것이다. 동양에서는 학문은 항상 쓸모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아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낯설음은 동양인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학문의 내재적 가치는 서양 학문사의 진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왔다. 앎 자체를 위한 앎이라는 이념은 앎의 기준을 앎의 체계 안에 내재화시킴으로써 종교나 정치권력과 같은 학문 외적인 여러 요인들이 강력히 간섭하는 가운데서도 학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 동력이 되어 온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해야 한다. 하나는 이론적인 삶이 내재적이고 실천적인 삶은 외재적이라는 도식이다. 앞서 번슈타인의 글에서도 명백히 지적되었듯이, 철학이라는 이론적인 탐구활동도 실천적인 삶의 하나이다. 학문의 순수한 목표, 즉 그것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목표는 인간이 세계와 자신에 대한 생각을 좀더 진실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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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개선은 실천을 요한다. 학문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학문계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천적인 활동, 즉 지식을 생산하는 훌륭한 활동의 가치를 다른 여타의 세계의 가치와는 별개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문은 지식을 그 자체로서 개선한다는 의미에서 가치를 부여받을 수도 있고, 그 지식이 다른 여타의 세계를 위한 수단이 된다는 의미에서 가치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전자를 학문의 내재적 가치라고 할 수 있으며, 후자는 학문의 외재적 가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좋은 삶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모두 환영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이른바 실천학과 제작학은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데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분류에 동의할 수 없다. 특정한 세계는 내재적 가치를 추구하고 다른 특정한 세계는 외재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식의 생각은 온당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다원성을 인정했고, 그 전제 위에 각각의 세계가 그 세계 내에서 볼 때 내재성을 띠고 그것을 외부로부터 볼 때 외재성을 띠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론적인 앎을 추구하는 학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실천학과 제작학은 외재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실천학과 제작학의 입장에서 볼 때 이제는 이론적인 앎을 추구하는 학문이 외재적인 것이 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學問本位 [각주 7: 本位라는 개념은 앞(1.2.5.)에서 정의한 바 있다. 본 저서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학문을 본위론 한다는 점에서 Aristoteles의 관점과 같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 저서는 예술본위 혹은 도덕본위를 따로 인정하며, 그들의 관점에서는 학문이 외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Aristoteles의 관점과 차이가 있다. Aristoteles의 학문본위의 입장은 그의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자기의 이성에 따라 활동하고 그 이성을 가꾸고 자라게 하는 사람은 최선의 정신상태에 있으며, 또한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만일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들이 인간의 여러 가지 일을 조금이라도 살펴준다면, 가장 좋은 그리고 가장 그들을 닮은 것(즉, 이성)을 그들이 기뻐하며, 가장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보답해 준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사람이 신들에게 소중한 일에 마음을 쓰고, 또 옳게 그리고 고귀하게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속성을 누구보다도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철학자는 신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철학자는 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최명관 역, 1984, p.306).] 의 편향적인 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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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견지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학과 제작학은 오늘날 각각 윤리와 예술이라는 독자적인 세계로 발전하였다. 우리의 분류에 의하면, 학문이나 윤리나 예술은 각각 그들 나름의 내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동등한 의미의 수도계들이다. 이들은 서로 독립적인 세계들이다. 이 말은 그 중 어떠한 것을 다른 것에 개념적으로 종속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논점이탈의 오류를 지적한 바 있다. 학문을 말할 때 예술을 말한다거나 혹은 예술을 논할 때 학문을 개입시키는 것은 양자의 내재적인 특성을 추구하는 데 방해가 된다.
서양에서 이처럼 독자적인 수도계의 영역을 인정한 것은 칸트(Kant) 이후이다. 칸트는 하나의 이성이 아니라 다수의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각주 8: 본 저서에서 소개되는 Kant의 사상 전반에 관한 논의는 주로 Doring(1964)과 Coupleston(1962)에 의존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분류에 따르면 학문 · 도덕 · 예술에 해당하는 상이한 세계들을 가정하고, 각 세계들에 해당하는 다양한 문장들 혹은 언술행위들이 만족시켜야 하는 선험적인 조건들이 서로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그의 세 저서인, <순수이성비판(1781)>, <실천이성비판(1788)> 그리고 <판단력비판(1790)>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하였다. 이들은 칸트에게 있어서 자기고유의 규칙체계를 따르는 상이한 담론을 요구하는 세계로 인식되었다. 이 상이한 영역, 혹은 세계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행한다거나 혹은 그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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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순수이성비판(/1995a)>은 모든 과학적 인식의 선험적인 가능증거를 탐구하는 이론이성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순수이성은 자연과 직접 접촉하는 감성의 직관과 오성의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탐구한다. 이에 반하여 <실천이성비판(/1995b)>은 인간의지의 선악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인간 자유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마지막으로 칸트는 자연의 감성계와 도덕의 초감성계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판단력비판(/1996)>을 다루었다. 그 가운데 특수만 주어져있는 상황에서 보편을 발견해야 하는 이른바 “반성적 판단”은 자연을 예술로 간주하고 거기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러한 미적 판단을 야기시키는 쾌감은 어떤 이해관계를 동반하지 않는 공평무사함을 지닌다. 이러한 방식으로 칸트는 학문의 세계, 도덕의 세계, 예술의 세계가 각각 구분되어야 할 경계영역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다시 말하면 어떤 외적인 이익이나 기능적 목적 혹은 용도와는 별개로 추구되어야 할 세계로 보았다. 그는 인식적 · 윤리적 · 미학적 능력을 구분하고 이들 간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 중의 하나는 다른 하나로부터 연역될 수 없다. 예컨대, 윤리능력은 인과성에 의해 규제되는 것도 아니며 경험의 요소도 아니다. 따라서 도덕법칙은 그것 자체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처럼 도덕법칙은 경험의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인 것처럼 확고하게 설정된다. 도덕법칙은 확실한 것이지만 이성이나 경험으로부터 연역되거나 확정될 수 없다. 즉, 도덕법칙은 인식능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이다.
각각의 세계는 이론적으로 이해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칸트의 논리를 우리가 따른다고 해서 그 세계내의 가치를 느낄 수는 없다. 본 저서에서 누차에 걸쳐 강조하였듯이 수도계의 내재적 가치는 각각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자신을 연마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당화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확인의 과정이 없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 세계들의 차이를 인식시키는 것이 그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을 위해 선행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각종 수도계의 자율성에 대한 칸트의 이러한 직관은 그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카시러(E. Cassirer, 1944)의 간명한 말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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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science)은 우리에게 사고에 있어서의 질서를 주고, 도덕(morality)은 우리에게 행위에 있어서의 질서를 주며, 예술(art)은 우리에게 볼 수 있고 만져 볼 수 있고 또 들을 수 있는 현상들의 파악에 있어서의 질서를 준다(p.168).
우리는 희랍의 미분화된 시대와는 다른 다원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다원주의적인 세계관에 맞도록 우리가 논의하는 세계 이외의 세계들이 지니는 독자성과 가치도 인정해 주는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 학문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또 학문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세계는 외재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논의를 보편적인 세계규정의 방식으로 간주하여 우리의 논의를 편향적인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학문 · 예술 · 도덕은 모두 수도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인간의 서로 다른 역량을 실현시키는 수도계들로서, 이들 영역들 간에는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 활동 · 산물에 있어서 불가공약적인 이질성이 있다. 학문은 진과 위를, 도덕은 선과 악을, 그리고 예술은 미와 추를 그 기준으로 삼는다. 학자는 학문적인 이론을 구성해내고, 예술가는 작품을 생산해 내며, 도덕가는 훌륭한 행실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경쟁과 갈등이 아니라 조화와 공존이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계, 선을 추구하는 윤리계, 그리고 미를 추구하는 예술계를 들고 있지만, 그 여타의 어떤 다른 수도계도 상호 독립적인 상이한 정신적 형식들의 연관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논리적인 범주나 도덕적인 범주에 따라서 예술을 판단하려 하고, 유용성의 기준을 예술에 대해서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일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에는 정신의 형식으로서의 예술의 독자성이 다른 종류의 정신의 형식들에 종속됨으로써 소실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수도계는 서로 다른 정신의 형식들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것들은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세계로 여겨져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정신적 형식을 가진 영역들을 정신의 다른 형식에서 유래하는 범주들로써 판단하거나 그 중 하나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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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것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거부되어야 한다.
2.2.3. 학문계와 세속계
현실 속의 학문은 언제나 비학문의 세계와 더불어 존재한다. 사람들은 주로 세속계적인 관점에서 학문을 규정하고자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들은 학문 자체의 속성을 도외시한 채 그것이 오직 세속계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측면에만 관심을 보인다. 그 때문에 그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련성이라는 역동성을 배제하는 학문론은 세속계 중심의 사람들에게 마치 가공적인 사실처럼 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구분을 일단 인정해야 하고, 그 이후에 그들 사이의 관계를 따지는 순서를 따라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 자체의 독자성이 드러날 수 없으며, 학문이 여타의 세계의 시녀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학문은 필연적으로 내적인 과정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문은 진리들을 생산하는 특수한 세계이며, 그 과정의 행위자들로서 학자는 과정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 물론 여기에는 세속적인 지원이 필요할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실천의 내적인 조건들에게 종속되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진리로운 지식이 생산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외적인 조건 자체가 과학적인 개념과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학문의 내재적 규범들을 거부하면, 우리는 그 즉시로 학문계의 외부로 밀려나게 된다. 그 점에서 학문계는 세속계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금욕적인 도정을 밟는 학자들에 의해서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창조적인 대가들이 당대에 대가로서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았을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예술가 · 학자 · 성인 등 창조적인 수도인들은 그 시대의 정신을 훨씬 앞서 가고 있었기 때문에 한때 대중들로부터 추방되거나 놀림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역사적으로 인정을 받는 시점은 대중들의 정신적인 수준이 그들 혹은 그들을 추종하는 제자들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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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충분하게 고양된 이후에나 일어난다.
세속계에는 상식이 있고, 학문계는 그 상식을 초월하려고 한다. 평균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면 우리는 학문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이로부터 일반인들과 학자들의 긴장관계가 불가피해진다. 일반인들은 흔히 학자들의 높은 수준의 지혜를 자신들의 수준에서 판단하고 조롱한다. 그들의 인식수준에서 한 단계만 더 높은 것도 그들에게는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적이거나 혹은 공상적인 것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학문의 본질은 학문하기 자체를 사랑하고 그것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지고 확장되어 왔다. 외재적이며 보상적인 욕구는 학문의 특정한 성향이나 방향에 영향을 주지만 학문계 자체의 창조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여론의 시선을 끌기 위하여 혹은 편안하고 독립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하여 수행하는 연구가 중요한 발견에 이르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원래 학문활동이라는 것은 지적인 평화를 교란시키는 작업이다. 이 때문에 학문계와 세속계는 충돌할 때가 많았다. 학자는 당대에 인정받고 있는 ‘사실들’이나 교조들에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아무런 반성도 없이 받아들이는 일치와 합의는 많은 경우에 의사소통에 내재해 있는 제도적 강제와 체계적 왜곡에 의한 기만적 합의일 우려가 있다. 일상적 상호작용 속에서는 사회적 요구들에 적응하는 일이 중요하며, 기존의 인식들을 별다른 의문의 여지가 없이 당연한 것으로 수용하도록 조건화된다. 학자들은 일상의 경험과 전통과 권위에 의해 충분히 지지를 받고 있는 기존의 체제에 저항한다. 학문이 대상으로 삼는 단순한 실재조차 그것이 상식적으로 지각되는 경험의 복잡성과 너무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대중은 대개 학자들을 몰상식한 것으로 본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전의 디딤돌이 된 학자들의 저서 가운데 대부분의 것이 당시에는 금서의 목록에 속해 있었다. 당시의 권력층이나 일반 사람들은 그들 학자를 흔히 매도하였고, 그 반대편에서 학자들은 그들을 비웃고 헐뜯는 사회나 일반대중에 대해 모멸감과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상식을 거역한 창조적인 학자가 역사적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는 경우는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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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근래에 푸코(P. K. Foucault)가 여러 형태의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천되어 왔는가를 탐구하는 일련의 연구들을 통해서 얻은 하나의 결론은 “아무리 훌륭한 학문적인 연구라고 하더라도 만약 그것이 당대의 제도나 권력의 의견과 일치하지 못한다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Foucault, 1972; Dreyfus & Rabinov, 1983). 상식과 일반인들이 믿고 있는 교리에 어긋나는 학설을 가지고 그것을 발표할 때 학자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어 병원에 감금되거나 혹은 감시와 처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들의 새로운 착상이 기존의 전통이나 신성시되어 온 문헌, 그리고 당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다를 때 대중들은 그들에게 가끔 신성모독과 이단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씌웠다.
학문에 충실하기 위해서 활동한 것이 대중의 조소와 미움을 초래하여 결국 대역죄로 사형까지 당하게 된 최초의 인물로서 소크라테스가 있다. 갈릴레이(Galilei: 1564~1642)가 달 표면의 검은 점들이 태양광선의 그림자라고 주장했을 때, 당대의 사람들은 그가 천상의 물질을 모독하고 있다고 단죄하였다. 다윈(Darwin: 1731~1802)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주장을 개진하려고 했을 때, 그는 주위사람들의 비난을 의식해야만 하였다. 프로이트(Freud: 1856~1939)가 성충동으로 정신현상을 설명하려 할 때에도 주위의 풍속적인 도덕관이나 편견과 충돌해야 했다. 학문은 이처럼 엄청난 기반을 가지고 있는 기존의 세속적 신념체계를 극복하고 지양하는 과정에서 그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 학문적인 지식은 몰상식하고 또 그래야만 된다. 학문적인 지식이 상식을 따른다면 학문이라는 것이 따로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역사상 진정으로 학문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당대의 상식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일상적인 경험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의문을 가졌다. 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자세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세속적인 생활과 거리를 두고 생활했다. 실제로 그들에게는 세속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시간이 없었다. 그들은 권력 · 명예 · 재물을 얻는 방식으로는 지식을 얻을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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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할 만큼 현명했다. [각주 9: 예컨대, 서양 사상사에서 “근대철학의 아버지”로서 인정받고 있는 Descartes는 분명히 학문의 내재적 가치를 알고 일생을 산 사람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최명관 역, 1983). 그는 모든 경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인간들이 하는 일의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일체의 세속적인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진리의 탐구를 위해서 일생을 바친 사람의 하나이다. 학문하고자 하는 결의는 그의 일생에 있어 처음부터 확고한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철학함이 없이 산다는 것은 눈을 감고 한 번도 떠보려고 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우리 시야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서 사유하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인간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요, 즐거움이요, 보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Descartes는 그의 <방법서설(1637)>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행동에 있어서 분명하게 보고,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확신을 가지고 걸어가기 위하여, 참된 것을 거짓된 것으로부터 가려낼 줄 알았으면 하는 극도의 열의를 늘 가지고 있었다”(최명관 역, 1983, p.15).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물론 나는 수학에서 그것이 내 정신으로 하여금 진리에 기뻐하고 그릇된 추리에 결코 만족하지 않는 습관을 얻게 한다고 하는 것밖에는 다른 아무 효용도 바라지 않는다”(p.21). 이런 내재적인 학문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Descartes는 모든 사회적 명예를 버리고 오로지 철학연구에 일생을 바칠 수 있었다. 그는 수학의 논리성과 명석성을 모든 학문이 기초해야 할 원칙이라 보고, 모든 학문이 이 원칙에 의해서 통일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류의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확실한 지식의 기초를 찾아 나선 전형적인 학자의 노력에 의해서 확립된 진리탐구의 방법과 체계는 지금까지도 학문의 발전에 초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성공적으로 학문을 하는 것은 권세를 얻는 방식, 물질적인 부를 얻는 방식 혹은 사회적 지위나 존경을 얻는 방식과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학문의 생활방식을 택하고 세속계적인 것을 포기하였다.
학문은 모두가 자유롭게 말을 하고 여기서 주장되는 것들 가운데 진리의 기준에 맞는 것이 가장 우위를 차지하는 공공성의 기반이 있을 때 번창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 · 금력 · 사회적 지위 · 혈통 등이 지배원리가 되는 곳에서는 그 본질이 훼손되기 쉽다. 또한 심리적으로 억압적인 동기나 자기기만의 성향에 지배되어서도 안 된다. 학문의 참가자는 학문 외적인 지배와 통제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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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상식에서 명성을 얻고 있을 때 그 상식을 거역하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수했다. 남다른 학적 업적을 남긴 창의적인 학자는 남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거나 남들이 무턱대고 칭찬해 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았다. 대중적인 찬사나 인정이라는 것이 근거가 없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학자들은 오히려 대중들의 갈채를 받을 때 자신이 실수를 하지 않았나 염려했다. 이러한 탈속적 자세로부터 얻는 자유로운 정신 때문에 그들은 주위의 비난과 몰이해에 쉽게 상심하지 않고, 미지의 높은 세계를 탐구하는 모험을 하는 데 항상 부수하게 마련인 원초적인 회의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학문은 학문 이외의 세계와 병립하여 생활세계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체의 속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속계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학문의 역사는 학자가 학문의 내재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적인 야심, 경제적인 이득, 사회적인 명예 등 세속계적인 이해관계를 앞세울 때 얼마나 학문 자체를 훼손시키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무수하게 갖고 있다. 최근에 브로드와 웨이드(Broad & Wade, 1983)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과학자들이 세속적인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혹은 자신들의 직업적인 지위를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료의 날조와 취사선택, 실험결과의 조작, 예단, 논문의 표절과 도용 등 진리탐구와는 가장 거리가 먼 속임수를 저질러 왔음을 폭로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학자는 세속계의 존재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관심이 학문활동을 지체시키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학문이 세속계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해야 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면모를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더 나아가 만약 학문이 세속계를 위한 수단이라고 하더라도 진정 수단이 되는 데에 필요한 나름대로의 지적인 자산과 역량을 확보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세속계를 위해서라도 학문계는 세속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여타의 다른 수도계와 마찬가지로 학문계가 존속하려면 구성원은 그 나름의 고된 시험을 거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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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안 된다. 여기에는 무조건적인 헌신, 극도의 시련, 희생에 대한 각오, 물질적 생활의 곤궁함을 감수하고 또 그것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자세 등이 요구된다. 연구는 피를 말리고 뼈를 깎는 고된 일이다. 그러한 일을 수행하는 데 오직 하나의 강력한 정신적 지주는 최전선에서 前代未聞의 지식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학문의 내재성이다. 물론 그 연구가 언젠가는 다른 목적을 달성시켜 주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관련성을 따지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학자들이 몰두하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또 지나치게 불확실하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학문 자체를 위해 학문하는 태도는 학자들의 생활에 불가결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학자들은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일, 즉 학문하는 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봉사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탐구에 대한 학문 외적인 저항이나 간섭은 오늘날에도 지식인이란 부류의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그들은 학문을 위해 정치적인 검열, 도덕적인 검열, 경제적인 핍박을 감내해야만 한다(Coser, 1965). 학자 [각주 10: 여기서 Coser가 말하는 지식인은 학자보다 더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는 학문 외적인 권위가 그의 탐구를 방해할 때 그 권위 자체를 거부하며, 바로 그러한 태도에 의해서 학문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었다. 학자는 원래부터가 실제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활동과는 거리가 먼 수도계적인 사람들의 한 유형이다. 그는 세속계적인 관심보다는 자신을 가꾸어 진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바로 그러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내 왕국은 현세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지식과 학문에 대한 열망은 세속적인 야망을 앞선다.
사람들은 흔히 지식인들이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공헌할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학자와 세속은 근본적으로 서로 상응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세속계적인 개입은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은 가져오지는 못했다(Coser, 1965; Wilkinson,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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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코저는 역사적으로 지식인이라는 신분과 세속계의 권력 간의 관계가 어떠하였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 자코뱅당이나 초기 볼셰비키처럼 지식인이 권력을 장악하는 경우도 있고, 페이비언주의자나 브레인 트러스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지식인이 권력자를 지도하고 조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지식인이 나폴레옹 치하의 이데올로그들처럼 권력자에게 사상의 정당화를 제공하기도 하며, 권력의 비판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는 늘 불안정했으며, 권력자와 지식인은 상호 불가해한 척도로 서로를 보아 왔다. 보편적 · 추상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과 정해진 관례를 따라 매일매일 타협과 조정에 부심하고 있는 권력자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세속인들은 흔히 학자들을 순전히 그들의 목적에 맞게 타락시키는 방법도 알고 있다. 학문적인 활동의 기준을 망각하거나 혹은 그 기준의 부재 속에서 학문활동이 얼마나 세속적인 목적에 공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그 기준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정치적 권력은 학자들의 주장을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데 이용하고자 한다. 만약 학자들의 주장이 정권을 위협할 때에는 정치는 그들의 활동을 감시하고 검열하고 금지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경제적 세력은 정치적 권력보다도 더욱 은밀한 방식으로 학자들을 타락시킨다. 진리의 기준이 부재하는 가운데 경제적 이윤에 따라 혹은 능률적인 수행성의 기준에 따라 학문적인 지식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은밀하게 진행된다. 혹은 학문적인 지식이 얼마나 시대정신을 반영함으로써 당대의 대중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학문을 이질적인 세계의 논리에 따라 평가하고 포섭하는 관행은 결국 학문을 살해하고 그것을 세속계적인 것으로 환원시키고 만다. 개인적으로 권세 · 물질 · 사회적 지위의 획득을 우선시하는 학자들은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학문을 세속적인 것으로 타락시키는 데에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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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학문계와 예술계
학문을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그것과 예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학문과 대비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학문계와 예술계가 각각의 가치추구의 도상에서 생산해내는 산물은 현저하게 다르다. 학문계에서 만들어내는 산물은 이론적인 지식이다. 이는 예술계에서 창안해 내는 작품과는 뚜렷하게 대조를 이룬다. 학문은 추상적 형식을 통해서 세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방법은 모든 추상적 형식이 그렇듯이 엄연히 존재하는 구체적인 사물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상실한다. 예술의 기능은 학문에 의해서 간과되는 구체적인 사물들의 세계를 회복함에 있다. 예술은 한 대상의 예술성을 경험하는 방법이며, 그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더 사실적인 것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와 별개의 영역이다. 심미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는 비심미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언어와 의미상의 차이가 있다(Phenix, 1964, pp.177-185). 따라서 예술적인 것을 학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범주착오라고 할 수 있다.
예술계는 의식적으로 미를 창조해내는 수도계이다. 예술은 구체적인 매체를 통하여 보편적인 것을 표현한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직관하고, 이것을 종이 · 채료 · 돌 · 소리 · 활자 등과 같은 물질적인 재료를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감상자가 이것에 담겨 있는 미를 직관하게 한다. 학문이 개념적 · 이론적인 것과는 달리 예술이 구체적 · 직관적인 것임은 플라톤의 미의 이데아에 관한 논의를 비롯하여 고래의 형이상학자들의 논의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헤겔(Hegel, /1996)에 의하면, 미는 절대정신의 객관적인 표현이다. 학문적인 인식은 본래 일반적인 것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므로 학문에 의해서 개성적인 것을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개성은 예술의 본질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예술의 본질과 목표는 성격상 이론적 논의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 고유의 목표를 분리해내려는 이론적 시도는 끊임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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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의 예술비평론에서 그 점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문학작품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신비평과 러시아의 형식주의는 시적 언어가 일상적 언어와 변별된다는 공통적 견해를 보여준다(이경수 외, 1991). 신비평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리차즈(I. A. Richards, 1963)의 견해에 따르면, 시적 언어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이른바 학문에서 말하는 ‘진술(statement)’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시적 언어를 ‘사이비진술(pseudostatement)’이라는 개념에 의해서 정의한다. 시적인 언어는 현실적인 사물을 지시하기보다는 시의 구조 속에서 오직 문맥에 의해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에 비시적인 언어와는 다른 의미론적 특성을 보여준다. 시적인 언어는 화가에 있어서 색채, 그리고 음악가에 있어서 소리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학문과 예술의 차이는 언어와는 다른 표현의 매개체를 사용하는 음악 · 미술 · 건축 · 무용의 경우에 더욱 분명해진다. 예술의 주제는 바로 예술 자체이다. 모든 예술작품은 오직 예술계의 내부에 진입함으로써만 정당하게 이해되고 감상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널리 사용하는 일상적인 물건도 예술의 세계에서 본다면 미적인 감상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다리미는 그 자체로서 미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기능성보다는 미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예술가는 그 밑부분에 못을 박아 조각품으로 전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 우리는 그것이 더 이상 도구나 사실이 아니라 예술적 대상임을 알게 된다.
가끔 가치추구의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진리의 체험”과 “아름다움의 체험”이 동일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를 본다. 예컨대, 우리는 학문이 실용적인 것 이상의 목적과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하여 듀이의 말을 인용했지만, 그 인용문에서 “사색의 심미적인 만족”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듀이의 이러한 경향은 그의 다른 저서인 <경험으로서의 예술(1934)>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는 아마 ‘진리’의 체험이 단순한 감정 이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문에서의 이러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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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예술에서의 심미감으로 비유하거나 동일시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것은 가치로서의 진리의 체험도 분명히 모종의 특이한 정서를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학자가 학문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가 목욕탕에서 외쳤다고 하는 그 유명한 “유레카(Eureka)의 감격”을 맛보기 위함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리란 한 체제의 합리성으로부터 좀더 향상된 다른 체제의 합리성에 도달하는 특수한 열정이나 에너지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인식대상이 탐구자의 주관적인 감정과 전혀 관계없는 상태로 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학문적인 체험 속에 감정이 포함된다는 것은 서로 모순된 사항이 아니다. 결과상의 진리는 객관적이고 비감정적일 수 있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경험은 주관적인 희열일 수 있다. 우리는 후자를 통해 전자를 찾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듀이가 말하는 심미적인 만족과는 다른 감정이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각종 수도계의 가치체험과 학문에서의 진리체험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실상 그 미묘하고 고상한 감정의 차이 때문에 다양한 수도계적인 체험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목하 우리의 논의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것이다.
2.2.5. 학문계와 도덕계
이제 학문의 내재성과 관련하여 크게 문제시되는 윤리의 세계에 눈을 돌려보기로 하자. 학문과 윤리의 관계는 일찍이 흄(Hume: 1711~1776)이 “윤리적인 규범이 객관적인 지식이 될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한 이래 많은 철학자들의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학문이 도덕적인 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가? 도덕적인 이유를 들어 학문활동을 제약하는 일이 바람직한가? 이 때 바람직하다는 말은 ‘진리’의 기준인가, 아니면 ‘선’의 기준인가? 어떻게 ‘진리’와 ‘선’이라는 이질적인 가치를 우리의 생활에서 공립시킬 수 있는가? 구체적인 논의의 내용이나 양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 많은 학자들(Mo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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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Hare, 1963; Foot, 1967)은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와 인식의 문제가 서로 같은 속성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속성이 비자연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우선 어떠한 증거에 의해서 그것을 정의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역사상 어떠한 자연과학자들도 그들의 권능으로 도덕적인 가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한 적은 없다. 오히려 문제는 과학자들에 대한 대중의 지나친 기대에 있다.
오늘날 과학적인 지식의 엄청난 위력에 압도된 대중들은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도 과학자들이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에 대한 판단과 가치에 대한 판단은 엄연히 구분되는 것이기 때문에 후자의 문제를 과학자들의 비법에 의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처럼 환상적이고 위험천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대중의 기대는 가끔 과학자로부터 철학자들로 그 대상이 옮겨간다. 이 기대는 비교적 교양을 갖춘 사람들조차도 흔히 빠지는 오류이다. 학자들 가운데서도 학문의 이름으로 특정한 윤리적 가치를 지지해 온 사람들이 있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철학자들이 그리스의 계급사회, 중세의 봉건사회, 그리고 현대의 특정 계급의 윤리를 합리화하는 일에 가담해 온 것은 사실이다. 지금도 많은 학자가 그들의 지위를 배경으로 가치논쟁에 있어서 그들이 어떠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엄격하게 따져 보면, 그들은 학문으로서 ‘선’을 규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특정한 기호, 이해관계 혹은 이데올로기를 학문의 이름으로 치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학문적인 근거에 의해서 도덕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는 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누차 강조해 왔듯이 학문의 목적은 진리탐구에 있으며, 윤리나 도덕의 목적은 선행의 실현에 있다. 만약 누군가가 학문적인 지식이 도덕적인 교화를 제공한다거나 “올바른 사리를 지탱해 준다”는 이유를 들어 그것을 선호한다면, 그는 도덕적인 태도와 학문적인 태도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도덕적 가치의 속성을 학문적으로 논의하는 것과 도덕적인 가치의 속성을 학문적으로 규정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많은 윤리학자들은 도덕적인 세계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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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대상으로 삼고 학문활동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며 도덕의 세계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윤리학자에게 “윤리학자라고 별다르게 윤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항변한다면, 그는 그 항변을 부당한 것이라고 볼지도 모른다. 물론 윤리학적인 생활과 윤리적인 생활 사이에는 긴밀한 관계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생활들을 같은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다음과 같은 라이헨바흐(H. Reichenbach, 1951)의 말은 아직도 양자의 차이를 혼동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한 충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철학자가 당신에게 다가와서 궁극적인 진리를 발견했다고 하거든 그를 믿지 마시오. [각주 11: 우리가 누누이 강조해 왔듯이 학문은 진리를 탐구하지만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했다고 믿는 것은 학문의 태도가 아니다.] 만약 그가 궁극적인 선을 알고 있다거나 그 선이 실현되어야 할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 거든 또한 그를 믿지 마시오. 왜냐하면, 그는 그의 선배들이 지난 2,000년 동안 범해 온 과오를 단지 되풀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야말로 이러한 부류의 철학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입니다(p.277).
여기서 다시 학문의 내재성이라는 본론의 문제에 들어가 보자. 학문은 진리탐구라는 목적에 의해서 수행되며, 그 결과로 얻는 것이 지식이다. 여기서 학문에 대한 이야기는 종료될 수 있다. 다음은 그 지식이 어떻게 활용되느냐 하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해서 학문 외적인 문제이다. 이를 우리는 학문에 대한 외재적인 관점이라고 했다. 학문은 생산된 지식이 어떤 동기로 혹은 어떠한 가치기준에 의해서 사용될지에 대한 해답을 내릴 수 없으며, 그 문제는 그 지식을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수중에서 해결된다. 과정으로서의 학문과 결과로서의 지식을 구분할 때, 사회적으로 발표된 과학적 지식은 그러한 지식을 창출해 낸 과학자와 독립적으로 생존을 시작한다. 그것은 엄밀하게 말한다면 누구에게나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나 쓰일 수 있다. 이것이 캠벨이 학문의 첫 번째 국면으로서 지식이 악용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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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용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학문은 분명히 인류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준 것이 사실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더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자연과학은 자연의 위협과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인간 이성의 능력, 즉 합리성을 계발하고 이를 통하여 기술과학을 발전시킴으로써 결국 자연을 정복하는 데 공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지배권력과 결탁하여 인간이 인간을 노예화하는 “도구적 이성”을 출현시킨 것도 사실이다.
학문적인 지식이 도덕적인 면이나 효용의 면에서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 가치나 혹은 여타의 효용에 비추어 그것의 인식론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 학문계가 추구하는 이념인 진리가 실현되는 삶의 형태는 다른 것들과 구분된다. 이상적인 학문계의 삶은 더 나은 진리를 추구하는 동기 이외에는 어떠한 다른 동기도 갖지 않아야 한다는 보편적 원칙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그러한 동기에 의해서 생산된 지식은 일단 진리의 기준에 의해서 평가되어야 한다. 극단의 경우를 들어 보자. 예컨대, 어떠한 과학자가 인체실험이나 동물실험에서 비윤리적인 행위를 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다. 그것을 단지 “진리의 추구”라는 것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한 자연인으로 학자에게는 도덕적인 책임이 주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학문적 진리와 윤리적인 선은 인간의 삶에서 서로 혼동되거나 환원되어서는 안 될 고유한 가치기준이라는 것이다.
일단의 지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도덕적인 기준으로 판단될 수 없다. 또한 그것이 진리로 판명된 경우, 그 기준은 효용성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 특정한 지식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선용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악용될 수 있는 것인지의 여부가 함께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효용이 있을 수 있으나, 효용이 있기 때문에 진리일 수는 없다. 또한 진리이기 때문에 악용될 수 있으나, 악용되기 때문에 허위일 수는 없다. 학문은 그 결과의 효용성이나 도덕적인 결과에 상관없이 나름의 내재적인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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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다. 이 말은 학문은 그것이 도덕적이냐 혹은 비도덕적이냐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추구되고, 또 추구될 수밖에 없다는 뜻도 된다. 왜냐하면 학문적 진리는 도덕적 선만큼 바람직하고 추구되어야 할 가치에 속하기 때문이다.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학문의 내재적인 가치를 강조하는가? 이에 대한 소극적인 해답은 역사적으로 학문활동이 학문 외적인 조건과 가치기준에 의해서 억압되거나 왜곡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역사에서 과학의 발견이 우리가 여기서 거론하는 윤리나 도덕 혹은 풍속적인 신념과 충돌할 때마다 과학자들은 갖은 역경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충돌은 자연에 대한 탐구보다는 인간의 현상을 다룰 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약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독일의 사회정치학회를 무대로 펼쳐진 사회과학의 방법론 논쟁을 살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역사학파를 대표했던 슈몰러(G. Schmoller: 1837~1917)는 사람의 가치판단은 사회의 진화와 동시에 성숙하게 되며, 이 결과로 점차 공통의 객관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풍습적인 가치판단”이라고 불리는데, 역사학파는 과학적 인식은 “풍습적인 가치판단”을 따름으로써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의 국민경제의 문제를 풍습 및 법과 관련하여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멩거(C. Menger: 1840~1921)를 중심으로 한 경제학자들은 전문과학의 하나로서 경제학은 경제생활만을 일면적이고 추상적으로 이해하여 정밀법칙을 수립하는 것으로서, 그 이론은 역사나 정책 등과는 구분하여 탐구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이론적인 연구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으로서 역사적인 풍속과 혼동되지 않는 방식으로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의 방법을 둘러싼 이러한 논쟁 속에서 사회과학자로서 방대한 업적을 남긴 베버(M. Weber: 1846~1920)가 취한 입장은 지금도 사회과학의 객관성의 문제와 관련하여 널리 인용되고 있다. 그는 <사회과학의 방법론(/1949)>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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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른바 ‘가치중립성’을 표명하였다. 그의 주장은 요컨대, 과학적인 탐구의 주제나 활동이 윤리적인 이유로 배척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른바 ‘객관적인’ 가치판단의 존재와 지배를 승인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슈몰러의 가치판단론은 그 자신의 특정한 입장을 표명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 자체가 객관적으로 올바른 가치판단은 아닌 것이다. 만약 가치판단이 주체적인 결단의 문제라면, 객관적인 인식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 그의 해답은 가치중립의 개념이다. 흔히 그가 말하는 ‘가치중립’을 가치판단을 배제하거나 방기함으로써 객관적인 인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애당초 무리한 요구이며, 베버가 그러한 불가능한 것을 기초로 학문의 길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가 ‘가치중립’이라는 말로 드러내고자 한 가치는 어디까지나 풍습적인 가치판단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윤리적인 가치판단을 의미한다. 그는 당시 경제학을 포함하는 제반 학문이 봉건적인 구세력이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관료층의 가치판단에 의해서 제약받는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사회과학은 그러한 유의 가치에서 독립하여 사실의 진상을 파악하도록 노력해야만 할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의 가치중립의 개념은 과학적인 인식에 있어서 제멋대로의 가치판단을 억제하고, 동시에 정치적인 실천에 대해서는 순응하려 들지 말 것을 요구한 방법적인 태도라고 해석되어야 마땅하다. [각주 12: Weber는 그의 말년에 행한 <직업으로서의 학문(1930/1994)>이라는 강연에서 “어떤 것은 그것이 아름답지도 않고 신성하지도 않으며 선하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일 수 있다”(p.42)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수도계 속에서도 특별히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어떤 목적을 취하는지에 대한 그의 입장을 가장 함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는 학문의 입장에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태도이다. 우리가 도덕적인 이유 때문에 어떤 주제를 연구할 수 없다거나 도덕적인 결과 때문에 발견된 사실이 은폐된다면, 이는 진리의 가치를 침해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의 무지를 장려하는 것이다.
베버의 가치중립의 개념을 학문활동에서 어떤 가치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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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그의 진의를 놓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인식은 진리라는 가치의 제약 속에서 이루어진다. 베버도 바로 그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가치중립의 논의와 결부된 이른바 ‘이념형(ideal types)’이라는 인식방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식이라고 하여도 무한한 事象의 전부를 남김없이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 인식되는 것은 그 무한한 사상 가운데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유한한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서 알 만한 가치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이념형에서는 그것이 풍속적인 가치나 윤리가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진리라고 하는 학문의 내재적 가치를 말한다. 학자들은 그들 나름의 인식론적인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거나 설명하고자 하며, 알맞은 개념장치를 이용하여 그 목적을 달성한다. 그처럼 인식 자체를 위한 수단의 하나가 베버가 말하는 ‘이념형’이다. 이념형에서 말하는 ‘Ideale’이라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혹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며, 그것이 모순 없이 사고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있을 수 있는 것으로서의 개념이 단순한 이론적인 추상이어서는 현실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그것은 있는 현실을 승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있을 수 있는 것이라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베버의 ‘이념형’은 경험적 사실 속에서 다루어지는 제 요소를 논리적으로 모순 없이 조립시킨 합리적인 극한개념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베버는 진리, 즉 사물의 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베버는 진리를 추구하는 이론과 여타의 역사적인 현실을 구별하였다.
우리가 눈을 감는다고 세상의 악이 사라질 수는 없다. 또한 무지나 오해가 선의 실현에 공헌한다는 보장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학문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가치의 현명한 화해를 모색해야만 한다. 그 화해는 양 가치의 이질성과 그들 간의 갈등가능성을 전제할 때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브로노브스키(J. Bronowski)는 탁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과학과 인간의 가치(1965)>에서 과학의 고유가치로서 ‘진리’를 부각시키고, 다시 <미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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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1977)>이라는 최근의 저서에서 과학적 지식이 오용될 가능성, 그리고 과학자가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주의적인 권력체나 군사산업체와 결탁해 온 사례를 열거한다. 여기에 우리는 학문의 탐구과정에 개입될 수 있는 비도덕성을 추가시킬 수 있다(장상호, 1977a). 그러나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과학이나 더 나아가 학문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의 해결은 이러하다. 진실은 진실대로 도덕성 여부와 관련 없이 밝혀지고, 거기에 터하여 우리의 새로운 도덕이 재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은폐한 도덕이 건실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리고 학문의 소산은 공유물로서 어떠한 계급적인 주체나 특별한 자격을 가진 특권층의 판단보다는 만인의 판단에 의해서 견제되고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말은 차츰 과학의 지상주의에 빠져 들어가는 동양권의 사회에서도 큰 경종이 될 수 있다. 동양권의 사회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으로 인하여 “학자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큰 착각 속에서 다룰 우려가 있다. 그것은 공자의 “우선 행하고 남은 것이 있거든 학문을 배우라(行有餘力 則以學文)”라는 말을 따르는 옛날의 학자와 서양의 신학문을 따르는 최근의 학자를 혼동하는 오류이다. 동양의 학문은 지보다는 행을 더 강조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의 신학문을 하는 학자를 공자의 말을 따르는 구학문의 학자들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전자는 도덕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음에 비해 후자는 우리가 지금까지 밝혀 왔듯이 반드시 도덕적인 판단의 권위자는 아니다. 따라서 요즘의 학자들에게 무조건 도덕적인 처신을 기대한다거나 혹은 그들이 도덕의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탁견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브로노브스키의 말대로 계몽된 대중의 감시와 견제를 받아야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