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용궁사
범어사
통도사
삼사三寺 성지순례
승헌
오늘은 신도들을 인솔해서 부산에 있는 해동용궁사와 범어사, 그리고 통도사로 정월 삼사三寺 성지순례를 떠나는 날이다.
올해는 윤달이 있어서 연중행사인 정월달 성지순례가 좀 늦어진 편이라서 해마다 추위에 떨면서 떠났던 성지순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제 겨울도 다 가고 섬진강 강가에선 매화꽃도 피었을 텐데 설마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리며 추워지기야 하겠는가?
이번 성지순례는 거리가 멀어서 무박 2일로 정했다. 버스 한 대에 신도들을 태우고 밤 10시30분쯤 우리 절을 떠나면
아마 내일 새벽 5시쯤은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드디어 밤 10시가 되자 신도들이 법당에서 기도하기 좋게 대부분 간편한 복장이거나 또는 등산복 차림으로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 절은 어떤 행사를 하던지 신도들의 조직이 비교적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서 일이 빠른 편이다.
신도들이 먹을 음식준비며 버스 대여 및 모든 준비물과 참배하는 사찰에 협조공문을 발송하는 일까지 신도들이 알아서 하기에
나는 많이 편한 편이다. 물론 내가 최종 확인점검은 하고 있다. 행사일도 그렇고 사찰의 제반업무를 일일이 내가 관여하는 것보다
신도들 스스로가 알아서 하는 것이 우리 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그렇게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신도들의 참여의식도 높다.
성지순례에 동참한 신도들의 인원파악을 끝내고 시흥을 빠져 나온 버스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다.
밤이 깊어서인지 고속도로의 차량은 그다지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고속도로의 차량불빛들을 뒤로
버스는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고 밤이 깊었는지 어느새 신도들은 좁은 의자에서 잠이 들은 것 같았다. 사실 무박여행은 피곤하다.
그러나 성지순례라는 것은 편하게 바람이나 쐬고 여행가는 것이 아니다. 이 성지순례를 통하여 우주법계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의 성지를 둘러보고 신심을 키우며 전통사찰의 향기 속에 자신의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면 불자로서 큰 성과가 아니겠는가?
내일을 생각해서 나도 좀 눈을 붙여야 하는데 영 잠이 오지 않아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 듯 부산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30분이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푸른 파도가 출렁이는 해운대, 다대포, 송도바다, 그리고 학창시절의 젊음이 숨 쉬던 광복동, 또 자갈치 시장 아낙네들의
거친 말씨가 문득문득 그립던 내 고향 부산이...
부산 인터체인지에서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남동생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동생은 오늘 우리가 찾아갈
삼사(해동용궁사, 범어사, 통도사)를 안내하기 위해 차를 갖고 나와 있었다. 내가 부산이 고향이라 해도
워낙 길이 많이 변해 있을 것 같고 사찰을 찾아가는 길도 잘 모르는데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신 새벽일 것 같아서
한 달 전부터 동생에게 우리가 성지순례 할 곳을 미리 사전답사해서 우리가 도착 하거든 안내를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성지순례를 이렇게 빈틈없이 준비하지 않으면 많은 인원을 인솔해가면서 우왕좌왕 하기 마련이다. 내 성격이 어떤 일이든
그냥 대충하지 않은 꼼꼼한 면도 있지만 내 개인의 일도 아니고 신도들을 가느리고 하는 행사는 무엇이던 체계적 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해운대를 지나 기장 바닷가에 있는 해동용궁사는 듣던 대로 아름답고 공기가 좋았다. 푸른 바닷물이 절 도량 앞까지
넘실대는 이 절은 절경과 명당이 함께 어우러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왕사였던
나옹화상이 여기다 보문사라는 절을 창건 하였고 그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 중창을 거쳐 1974년 지금의
해동용궁사로 이름을 바꿔서 부르게 된 절이다. 해동용궁사 도량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12지상의 조형물과 춘원 이광수의
시비가 눈에 들어온다. 이광수가 이곳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다음과 같이 시로 썼다고 한다.
바다도 좋아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하나 곳에 뫼단말가
하물며 청풍명월이 있으니
여기가 선경인가 하노라.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러 참배를 하고 있는걸 봐도 신심이 절로 나는 기도처인가보다. 용궁사로 걸어 들어가면서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출을 봤는데 그야말로 장관 이었다. 일 년 365일중 일출은 구경할 수 있는 건 60일밖에 안된다고
하는데 우리가 운이 좋은 모양이다. 이렇게 선명한 일출을 보았으니....
언제 가 봐도 고요하고 깔끔한 도량 범어사梵魚寺는 신라 문무왕 18년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 10찰의 하나인 대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 14교구 본사 절이다. 해발 796m의 그리 높지 않은 곳, 금정산에 위치해 있으면서 불심이라면 우리나라에서
첫째가는 부산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사찰로 버티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범어사에는 근대 선지식인 경허선사를 비롯, 청담스님과
더불어 불교정화운동을 일으킨 동산스님께서 주석했던 선지식들의 도량이다.
현재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을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에 인맥이나 능력으로도 막강한 범어사 문중이 있으니...
오늘 우리가 성지순례를 하게 된 범어사나 통도사는 수계계단이 있어 그동안 많은 조계종 출가자들이 사미, 사미니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범어사 도량에 들어서면 신심이 절로 일어날 정도로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낀다. 하늘을 찌를 듯 쭉 뻗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어 세상사에 지친 중생의 번뇌를 씻어내고 맑은 산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다.
범어사가 있는 동래(동래구)는 부산서도 유서 깊은 고장이다. 동래 온천장을 중심으로 토박이들도 많이 살고 옛날에는
부자들도 많이 살아서 오래된 큰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동래하면 호국의 얼이 스며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로 쳐들어온 왜군이 ‘싸울 테면 싸우고, 싸우고 싶지 않거든 명나라를 치기위한 길을 터 달라’ 고 요청하니
동래부사 송상현이 답하길 ‘싸워 죽기는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라며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송상현을 포함한
천명이 넘는 관군이 목숨을 바친 곳이라고 한다.
내가 청소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집도 바로 이곳, 동래고등학교 옆에 아직도 그대로 있다. 나무와 꽃가꾸기를 좋아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동네에서도 우리 집은 늘 푸른 초원의집으로 불리어지곤 했다. 이제 부모님은 두 분 다 떠나셨고 형제 중
한명이 이 집을 지키고 있다.
오늘따라 날씨도 포근하고 햇살도 좋아서 신도들은 더없이 좋아한다. 오늘 성지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불보사찰 통도사를
가기위해 버스는 경남 양산군 하북면 신평에 도착했다. 이곳은 지금 내 본적지이기도 하다.
아버지께서 통도사에서 설립한 종립 B중고등학교의 교장으로 발령을 받아 전근하시는 바람에 나도 아버지를 따라가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이 마을마다 돌면서 천막을 치고 상영하던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이다. 물론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는 학생입장가 였지만 도시에서 자란 나는 처음 보는 천막극장이 어찌나 신기 하던지...
낮부터 작은 1톤 화물트럭에는 밤에 상영 하게 될 영화 속 남녀 주인공 배우의 인물이 그려진(대부분 사진속의 얼굴과
맞지 않게 그려져 있다) 대형 간판과 스피커를 싣고 다니면서 온 마을이 울리도록 목청을 뽑아대던 영화선전 광고와 흘러간
유행가의 노래 소리... 그 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나는 영화가 보고 싶어서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옛날, 통도사 사하촌에서 보냈던 학창시절의 추억들을 생각하며 매표소를 통과한 뒤 통도사 일주문을 지나 통도팔경 중 하나인
무풍송림無風松林의 정취를 느껴본다. 그동안 많은 사찰을 참배해봤지만 일주문을 지나 절로 가는 길이 통도사만큼 아름다운
곳도 드문 것 같다. 해발 1050m의 영취산 정기를 받아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불보사찰답게 위풍 당당히 버티고 앉은
천년고찰 통도사...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서 번져 나오는 소나무 향기에 취해 있는 가 했더니 어느새 유서 깊은 천년고찰이며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의 대가람 통도사 도량에 도착했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를 살펴보면 상로전에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명부전, 나한전등의 당우가 있고 중로전에는 자장율사의
영정을 모신 해장보각과 관음전, 용화전 등의 당우가 있다. 그리고 하로전에는 일주문부터 시작하여 영산전까지 만세루와
범종각 등이 있다.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 걸어오다 천왕문에 이르기 전에 성보박물관이 있어 여러 가지 성보聖寶와 불교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통도사가 다른 사찰과 다른 점은 대웅전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처님이 봉안되어야할 그 자리에
큰 유리창이 있고 그 뒤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 처음 여기 통도사의 구룡지 못을 메우기 위해 아홉 마리의
용중에서 여덟 마리는 교화승천 시키고 한 마리를 남겨 금강계단을 수호케 한 자장율사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 아니던가?
또한 금강계단은 불법에 대한 중생의 귀의처요 출가자에게는 호법과 지계에 대한 굳센 의지를 다져주는 곳이기에 스님으로서의
첫걸음을 위한 수계를 이 계단에서 수지受持하는 것이다.
오늘 삼월의 첫 날씨도 좋았지만 우리 절로서는 드물게 멀리 남쪽으로 성지순례를 온 탓에 행여 신도들이 힘이 들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전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얼굴이 환하게 웃음을 머금은걸 보니 나도 마음이 흐뭇했다.
우리가 탄 버스가 신평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경부고속도로를 막 들어서는데 누군가 한마디 한다.
‘스님, 다음에 또 와요. 너무 좋아요...‘
2007 . 2 . 28
통도사 도량에서 신도들이 점심공양을 해야하기 때문에 공양장소 및 준비를 점검 하느라 통도사 사진은 몇장 밖에 못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