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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시산국이 오늘날 울산의 근원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이안 태화강 엑소디움 주상복합 아파트 옥상에서 내려다본 태화강과
울산 시가지 전경.
울산이라는 지명(地名)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옛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실려 있다. 신라 제4대 이사금 탈해(석탈해) 때에 벼슬을 한 거도(居道) 장수(干) 이야기이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이웃에 있어 신라의 근심이 되었는데, 당시 변경의 관장(官長)이었던 거도가 이 두 나라를 병합할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두 나라를 동시에 병합하는 것이 어려웠던 그는 한 가지 꾀를 내었는데, 매년 한 번씩 여러 말(馬)을 들판에 모아 풀어놓고 군사들이 타고 달리면서 ‘놀게’ 했다. 처음에는 우시산국과 거칠산국 사람들이 이 놀이(馬叔)를 괴이하게 여겼으나 점차 신라의 평범한 행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도는 이때를 노렸다. 들판에서 뛰놀던 병마를 몰아 방심했던 두 나라를 쳐들어갔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입장에서 서술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삼국사기> 권 제44 열전 거도(居道)에 실린 이 이야기는 일종의 승전에 대한 기록이겠지만, 울산 사람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는 ‘비극’에 가깝다. 그때 멸망한 소읍국(小邑國) 우시산국이 ‘울산’이라는 지명의 시발(근원)이기 때문이다.
‘우(于)’와 ‘시(尸, 옛날에는 이 尸를 ‘ㄹ’로 표기했다)’를 합치면 ‘울’이 된다. 울주군 웅촌면 대대리와 검단리를 중심으로 양산시 웅상 일대까지 그 세력을 뻗쳤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라의 먼 후손의 터전이 바로 울산이다.
<삼국사기>에 실린 이 이야기의 결말은 아주 짧게 끝이 나지만, 거기에는 없는 슬픈 이야기가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하근마을에 전해 온다.
우시산국이 신라에 의해 멸망할 때, 왕비와 아홉 명의 공주만 탈출하여 지금의 기룡리 근처에 이르렀다.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고 농사와 품팔이로 연명하던 몇 달 동안 왕비는 병을 얻어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아홉의 공주들은 집 마당에 어머니의 시신을 묻었다.
이후 이웃 마을에 흩어져 살면서 매년 음력 3월 보름마다 무덤가에서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어머니의 초라한 무덤을 슬퍼하면서 치마폭에 흙을 담아 봉분을 조금씩 높이 쌓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봉분은 점차 커져갔고 아홉 공주의 효심 또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하여 그들이 살고 있던 마을의 부녀자들도 해마다 그날이 되면 왕비의 무덤가에 모여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열었다고 한다.
매년 음력 3월 진달래꽃이 필 즈음 이루어지던 이 의식이 이제는 이야기로 남아 전승되고 있다. 울산이라는 지명의 근원인 우시산국은 문명의 쇠락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어머니를 향한 딸들의 효심(孝心)은 옛사람으로부터 지금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잊히지 않는다. 먼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사람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이야기로 전한다.
한반도 동남부에 위치한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된 이후 국내에서 가장 큰 중·화학 공업단지로 성장했다. 산업의 수도라는 별칭에 어울리는 발전을 이루었으나, 외적으로 커진 도시의 규모에 비해 문화적인 성장이 더뎠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울산에서 사는 사람들조차 스스로의 삶의 터전을 탁한 공해와 냄새와 뿌연 하늘에 찌들어 있는 곳으로 말하곤 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죽음의 강으로 변해버린 태화강의 검은 물빛은 산업의 수도 이면에 숨겨져 있던 문화적인 희생을 상징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았고 또 살고 있는, 그리하여 태화강이 아니라 태홧강을 유년의 강으로 기억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필자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지금의 태화강을 두고 어렸을 적 그 강의 내음새가 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불과 십여 전만 해도 1인당 공원 면적이 시도별 최소였던 이 도시는 그 어디보다도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시민들에게 삶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울산이 기계적인 자본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산업도시에서 사람을 보듬어 끌어안고 그 속에서 자생하는 문화를 아끼면서 인간(문화·정신)과 기계(산업·자본)의 공존을 꿈꾸는 새로운 미래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적인 지평을 넓히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내적인 지평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마음과 정신에 있다.
시인 백석은 ‘국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이것은 아득한 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여기서 ‘이것’은 국수라는 평범한 사물인 동시에 아득한 옛날의 즐거웠던 세계로부터 자연의 순환을 따라 혹은 태어남과 죽음의 연속성을 따라 사람들의 의젓한 마음을 통과하면서 이어져오는 우리의 고유한 정신을 의미한다.
국수라고 하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사물 속에 수천 년의 정신이 깃들어 있듯이 울산지역의 이야기 속에는 이곳에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이 녹아 있다. 이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은 오랜 세월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승전의 기록이다.
우시산국이라는 고대국가는 울산이라는 지명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지만, 어머니를 사랑하는 딸들의 마음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따라 이야기로 구전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기획 연재는 이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그러한 설화, 인물, 상징들을 통해 산업화 이후 잊혀져 버린 울산의 옛 정신과 마음을 다시 떠올리고,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그것의 가치와 소중함을 시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총 8회로 구성되었다.
▲ 김정수 울산대학교 국어문화원 연구원 문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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