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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배경
성경 인물 중에 많은 이들이 고난과 역경 속에서 연단을 받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 야곱의 인생 스토리를 보면 참으로 험한 인생 여정을 살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야곱을 통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의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그가 애굽으로 내려 갔을 때 바로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백 삼십년 산 자기의 인생을 나그네의 길의 세월이라고 고백합니다.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으로 도망 간 이후 실로 오래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나그네처럼 떠돌아 다녔습니다.
야곱의 인생 노정은 브엘라헤로이부터 시작하여 죽어서 헤브론 막벨라 굴에 묻힐 때까지 잠시 머문 여정까지 포함하면 17장소를 옮겨 다녔습니다.
저도 참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제가 초본을 보니까 주소를 옮긴 횟수가 38번입니다. 실제로 다 이사를 다닌 것은 아니지만 야곱 못지 않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이동하면서 장막을 친 횟수가 41회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저도 모두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요셉도 자기는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잇고(출 18:3), 베드로도 믿는 자들을 “나그네”라고 불렀습니다 (벧전 1:7, 2:11)
오늘날 우리 모두는 가나안 땅인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나그네의 삶은 필연적으로 고달픈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한마디로 바로에게 “나그네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도 야곱의 그 험악한 세월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그가 험악한 세월을 보낸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야곱(히,야아코브)의 뜻은 ”속이는 자, 발꿈치를 잡은 자, 대신 들어 앉은 자(찬탈자)“의 뜻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대로 이것이 야곱의 모습인 것입니다.
[창세기 27:36]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기까지 험악한 세월을 보내게 하는 것입니다.
※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하나님과 더불어 힘을 얻어 강하게 된자, 하나님이 통치하신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기꾼, 속이는 자 야곱에서 변화되어 이스라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오늘날 변화되어야 할 야곱의 모습이 우리 가운데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나그네와 같이 여기 저기 다니면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야곱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에게 어려움이 다가 왔는지를 알아보기 원합니다.
2.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야곱
야곱은 에서를 피해 밧단아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하며 20년을 보냈습니다 (창 31:40).
그리고 네 명의 아내와 11명의 자식, 그리고 많은 노비들과 함께 두 떼나 되는 수많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옵니다.
라반의 추격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유프라테스 강을 건널 수 있었고, 에서의 위험도 얍복강가에서 씨름과 같은 생명을 거는 기도를 통하여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숙곳에 잠시 머물러 있다가 세겜에 도착한 것입니다 (창 33:18).
세겜은 먼 훗날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 되었고, 도피성이 있는 곳이며,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묻힌 곳이기도 합니다(수 20:7, 24:32)
야곱은 세겜에서 세겜의 아버지 하몰로부터 장막을 칠 땅도 삽니다 (창 33:17-19)
세겜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할 때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이 있습니다. 그가 벧엘까지 올라가지 않고 세겜 머물며 정착하고자 한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 땅에 머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그가 세겜 땅에 머무는 동안에 엄청난 일들이 벌아집니다.
하나밖에 없는 자기의 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 세겜에 의해서 강간을 당합니다 (창 34:2)
이에 대한 분노로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땅 남자들을 다 할례받게 해 놓고서 아파할 때에 성읍을 기습하여 칼로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맙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내들과 자녀들을 사로잡아 오고, 가축을 포함하여 모든 물건을 노략하여 오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창 34:24-29). .
엄청난 큰 일이 터지고 만 것입니다. 이 사건의 소식을 듣고 야곱이 고백한 것을 보면, 야곱의 집이 멸망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창 35:1). 야곱이 문제를 깨닫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야곱은 벧엘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올라가야 하는 벧엘은 야곱에 있어서 어떤 곳 입니까? 어떤 의미가 있는 땅이기에 야곱이 벧엘까지 가야하는 것입니까?
3.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을 쌓게 하시는 하나님
창 28:10-22절을 보면,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을 짧게 정리해 보면,
야곱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 날이 저물자 벧엘에서 돌을 베게 삼아 노숙을 하게 됩니다. 야곱의 고생이 시작된 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338장,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2절에 보면 ”내 고생 하는 것 옛 야곱이 돌 베게 베고 잠 같습니다“ 야곱의 고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야곱이 베게한 이 돌은 또 다른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돌은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돌입니다.
그의 고생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돌 베게 하고 잠을 자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51절을 보면, 이 사닥다리가 또한 인자되시는 예수님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야곱이 고생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천사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실로 오늘날 우리들의 인생 여정, 고생 가운데 우리 예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사들을 보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들이 교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벧엘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 꼭대기 위에 서 계신 하나님을 보았고 그 음성을 듣습니다. 요약해 보면,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서쪽, 동쪽, 북쪽, 남쪽으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래서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지키겠다.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① 그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약속을 벧엘에서 받은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벧엘은 야곱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장소이기도 합니다.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 이제 야곱의 하나님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을 그동안 귀로 들어왔는데 이제는 자신이 직접 만난 것입니다.
야곱이 잠에서 깨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그리고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창 28:17)
그리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게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벧엘”이라 부릅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서원합니다.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③ 야곱에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께 서원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야곱이 20년 전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축복을 약속 받고, 자기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서원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세겜에 머물 것이 아니라 빨리 벧엘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 먼저, 그는 하나님께 한 서원을 갚아야 합니다.
야곱은 세겜까지는 왔습니다. 그러므로 벧엘까지 가는데 2% 부족한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진보가 있었다면 벧엘까지 올라갔을텐데 말입니다.
우리들도 가야할 그 길이 눈 앞에 있습니다. 여기서 주저 앉으면 안됩니다.
세겜은 “어깨”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머리, 정상,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깨까지 온 것입니다.
그가 왜, 세겜 땅에 주저 앉고자 했을까요?
그는 세겜 땅이 좋아보였던 것입니다. 하몰과 그의 아들 추장 세겜의 삶이 좋게 보였던 것입니다. 마치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던 이유처럼 (창 34:1) 그들의 삶이 좋게 보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세겜 땅은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의 중추적인 통로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만을 예배하고 바라보고 나아가서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해야 할 영적 족장의 사명,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잊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망갈 때 벧엘에서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고백했던 그 고백이 점차 세상의 것으로 대체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벧엘이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세겜 땅에 제단을 쌓고 “엘엘로헤이스라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겜 땅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영적 시즌에서는 벧엘에 제단을 쌓기를 원하시고 벧엘이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서원한 십일조도 드려야 합니다. 그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소유한 재물을 통하여 십일조를 드려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데 그것도 잊은 것입니다.
당시 오늘날처럼 교회가 없어 어떻게 십일조를 누구에게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겠지만, 그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하면 된다고 봅니다. 제단을 쌓는 것, 제물을 드리는 것 다 십일조로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밧단아람에서 6년 동안 엄청난 재물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가 그의 형 에서의 노여움을 풀기 위하여 보낸 예물을 보면 지금 시대에서도 엄청 큰 재산입니다 (창 32:13-15).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십일조를 구분하는 것은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② 두 번째로 벧엘에서 제단을 쌓기 위하여 땅에 묻어야 할 이방신상들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에게 다가온 환란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베게로 삼았던 돌 위에 기름을 부은 행동은 영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거룩함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겠다는 헌신의 결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창 35장 2,4절을 보니까 자기 집안 사람들과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이방 신상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달고 다닌 귀고리를 땅에 묻은 것으로 보아 이방 신들과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그들의 옷이 더렵혀져 있었습니다.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무엇을 땅에 묻어야 하는지를 야곱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갈아 입으라고 야곱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더라도 이런 영적인 더러운 것들을 떼어 버리고 제단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가 세겜에서 제단을 쌓을 때에는 이런 정결함을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제단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쌓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이런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고 실제적으로 나의 우상된 것들을 버리고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너무 많은 우상을 달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나의 우상이 무엇인지 도 모르고 잇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닫고 영적으로 더러운 이방 신상을, 귀고리를 떼어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비싸도 땅에 묻어 장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죽음을 가져 옵니다.
▶ 라헬이 밧단아람에서 나올 때 그의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쳐 나왔습니다 (창 31:19)
[창세기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훔친 도둑질도 나쁘지만 그것에 더하여 이방 신상을 훔쳐 온 것입니다.
드라빔은 작게 들고 다닐 수도 있는 “가족 수호신”입니다. 라반이 드라빔을 잊어버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어찌 내 신을 도둑질 하느냐” (창 31:30), 드라빔은 라반의 가족 신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사기 시대에 미가의 집에도 가족 신으로 드라빔이 있었습니다(삿 17:5).
우상입니다. 요시야 왕 때에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와 점쟁이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거했다고 했습니다 (왕하 23:214)
드라빔을 신접한 자, 점쟁이, 우상과 가증한 모든 것과 같이 보는 것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드라빔을 “허탄한 것을 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슥 10:2). 가짜인 것입니다.
라헬의 아버지 라반이 드라빔을 찾을 때 그는 드라빔을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낙타 안장 아래 깔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드라빔을 숨겼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다 보시고 계십니다.
[창세기 31: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창세기 31: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그래서 거짓된 생리로 변명을 했기에 그가 베냐민을 출산할 때에 그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는 야곱이 모든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했을 때 드라빔을 버려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라반의 드라빔을 꺼내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드라빔으로 난리를 쳤는데 차마 그가 가져 있다고 말 못했을 것입니다. 죄는 죄를 낳게 됩니다. 마치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죄를 감추기 위하여 우리아를 죽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회개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라반이 받을 저주를 그가 받게 되어 죽은 것입니다. 드라빔이 라헬의 죽음을 가져 왔습니다. 그는 조상 열조들이 들어가는 막벨라 굴에 묻히지도 못하고 에브랏 길에서 죽고 그 길에 장사됩니다.
여러분 우리들의 드라빔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죽음입니다. 즉시 회개하고 우리의 우상을 내다 버리고 땅에 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개인 수호신 드라빔을 즉시 버리고 예배의 장소 벧엘로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맺는 말>
야곱이 벧엘로 올라가니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세겜의 큰 사건으로 야곱에게 다가올 화가 이제 복으로 바뀌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면 고을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하여 야곱을 추격하지 못하게 합니다. 엄청난 보호입니다.
[창세기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창 35:9)
[창세기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이제야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야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다시 이스라엘로 불러주시는 것입니다(창 35:10). 이제 진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된 것입니다.
세겜에 계속 있으면 이런 축복이 다가오지 않습니다.
야곱이 벧엘로 돌아오니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야곱에게서 나오고 왕들이 야곱의 허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다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창 35:9-13).
야곱은 드디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붓고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참 예배가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기둥은 예수님이십니다 (아 5:15, 딤전 3:15)
포도주의 전제물도 피를 흘리신 예수님입니다. 기름은 성령님이십니다.
오늘날 예수님과 성령님과 함께 하는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 4:23-24)
비록 큰 환란 가운데 있었지만 하나님을 처음 만난 벧엘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니 하나님과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고 야곱이 큰 축복을 다시 약속 받는 것처럼, 우리들도 처음 만난 하나님을 다시 찾아 벧엘의 신앙을 회복하고, 나의 우상을 버린 성결함을 가지고, 각자의 벧엘로 올라가므로 야곱이 받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