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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박은영
S#0. 어둠, 거리 / 밤
누군가의 거친 호흡소리.
화면 차차 밝아지고 아픈 다리를 절며 뛰고 있는 영구의 얼굴 드러난다.
걱정을 넘어 두려움, 공포가 느껴지는 얼굴, 거리의 사람들과 부딪혀도 아무 느낌 없는 듯하다.
거친 호흡 위로 ‘안 돼... 안 돼... 제발...’ 낮게 읊조리는 듯한 영구의 목소리.
‘제발...’ 영구의 눈 질끈 감고 울듯이 달리는 얼굴. F.O.
S#1. 시장 부근 / 낮
비라도 쏟아질 듯 어두운 오후다.
시장통 전봇대에 한 쪽 귀퉁이가 떨어져 너덜거리는 오래된 전단지가 붙어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 누렇게 변색됐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 그 옆을 중국집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전단지가 바람에 날린다.
S#2. 카센터 / 낮
영구, 경호, 카센터 직원 정도 앉아 있는 사무실. 통유리로 바깥이 다 보인다.
20대 초반의 자장면 배달원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자장면 한 그릇, 단무지 하나, 젓가락 하나를 내려놓는다.
테이블엔 쓰다 만 로또 용지들. 테이블엔 영구 발명품 안전모 (미니 선풍기, 등 정도 달린) 놓여 있다.
거기에 정성스레 새겨서 색칠까지 한 4자리 번호.
영구 : 너 요즘에도 밤에 애들이랑 뿅카 뛴다며. (껄렁하게) 살살 다녀라, 그러다 까지면 연고 값 많이 든다~
자장면 : (원망스레 중얼중얼) 가까운 데서 좀 드세요.. 형님 때매 낮에도 폭주예요.
영구 : (이게! 보는)
자장면 : (꾸벅하고 돌아나가며 혼잣말) 늦으면 늦는다고 지랄이고.
경호 : (OL 로또용지 만지며) 이래서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영구 : (나무젓가락으로 자장면 가운데 푹 찔러 비닐 죽 찢고 쓱쓱 비빈다) 돈 있는 데서 돈 나는 거야. 버스 번호 백날 적어봐야
약발 안 선다. 3500cc 이상은 돼야..
경호(E) : (OL) (지잉 지잉 안전모 작동되는 소리) 어... 좋다,
경호 : (안전모 시원함 제대로 느끼는) 오~ 다기능 머리 지압기~! 김사장이 만들어 준대냐? 4년 만에 물건 돼 나오는 거야?
영구 먹으며 자연스럽게 경호 머리 툭 치며 벗으라는, 그럼 경호 마지못해 벗는다.
그때 카센터 안으로 죽이는 스타일의 검정색 세단 미끄러지듯 들어오자 직원 ‘어써 오쎄요’ 하며 나가고
영구 외제차 본다. 차에서 명품으로 쫙 빼입은 만재 내린다.
경호 : 어, (눈치보며) 저 자식이... 여길 왜 와...
영구 : (만재 노려보는)
만재 : (들어오며) 어이~ 여깄었네, 영구~
영구 : (노려보다) 넌 간땡이가 분 게 아니라 간이 읍는 거라고 본다, 나는.
경호 : (만재 보고 빨리 나가라고 난리 고갯짓인데)
만재 :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단무지 집어 먹으며 깐죽거리는) 에이, 왜 그러냐~ 다 지난 일로. (로또용지 보고) 요즘도 차번호로 로또 하냐? 우리 영구, 그 나이 드셨으면 이젠 자릴 잡아야 되는데.. 엄마가 걱정 마~이 하시지...?
영구가 더 못 있겠다 싶어 입 손등으로 닦으며 일어나 “간다” 하며 곱게 나가던 영구
무섭게 뛰어 다시 뛰어 들어와 자장면 만재 얼굴에 비벼 버린다.
영구 : (헤드락 걸고 자장면 얼굴에 비비며) 많이 처먹어라, 이 새끼야~!!!
만재 버둥거리고 경호 ‘영구야, 죽겠다~!’ 오버해 말리는 약간의 소동.
S#3. 시장 슈퍼 앞 / 낮
만만치 않은 인상의 순남 옆엔 뚜껑 딴 드링크 한 병 놓여 있다.
가게 근처 어슬렁거리는 모자 쓴 사내 일당 잡부처럼 점퍼 차림에 낡은 배낭 메고 있다.
순남 : 그거 사람 구실 하긴 틀렸어... 내가 병신만 둘 낳았지. (음료수 값 450원 정확하게 챙겨 놓으며)
수퍼 : 그냥 가세요. 영구 꺼나 갚아주시던가.
순남 : (“뭐야!” 빤히 보다 성질) 내가 일전 한 푼 들 받고, 더 주는 것 봤어? 일수 떼는 주제에 인심 헤프기도...
그 화상 나 믿고 외상 줬단 거야?
수퍼 : (괜한 소릴 했다 싶은) 아이고, 아니에요. 주겠죠.
순남 : 행여 나중에 딴소리 말어. 나한테 그 눔 외상값 갚으란 말 한 번 더 하면...
수퍼 : (OL) 네~ 그럼요.
순남 : (뒤돌아 간다)
슈퍼댁 : (뒷모습 보며 혼잣말처럼) 노인네...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거야.
사내(E) : (OL) 담배 한 갑 주세요.
부드럽지만 어딘가 냉소적인 표정의 철수 담배 거꾸로 탁탁 두들기며 섰다.
철수 : (무심하게) 이 동네 인심 어때요?
슈퍼 : (정리하다 쓱 한번 보고) 인심? 머..요즘 인심이랄 게 있나. 다들 각자 사는 거지.
철수 : (조소 섞어) 그렇죠... 각자 사는 거죠. (순남 뒷모습 보는)
S#4. 시장 / 낮
지물포 사내가 인사하는데 얼굴만 쳐다보고 그냥 가는 순남.
태수 사내 똥 씹은 표정으로 순남 보고 섰고 지물포가 태수 맘 안다는 듯 옆으로 온다. 태수 가슴엔 상장 달려 있다.
태수 : (분노와 경멸 섞여 노려보며) 카악~ 퉤! (침 뱉는)
S#5. 영구 집
이상하고 조잡한 발명품들과 각종 발명대회에서 탄 트로피 서너 개 진열돼 있는 영구 방.
안전모에 붙어 있는 프로펠라, 변형된 인라인 스케이트, 전기 파리채 따위.
바닥엔 로또 종이들 수십 장 흩어져 있고 영구 누운 채 로또 번호 체크하고 있다.
로또 체크카드 C.U. (cut to)
떡진 머리 벅벅 긁으며 냉장고 열면 당근 한 개 눈에 들어온다. 집안 구석구석 뒤지는 영구.
안방 벽에 걸린 미리 찍어둔 순남의 사진(미리 찍은 영정사진 정도)이 그런 영구 노려보고 있는 듯하다.
영구 : (당근 씹으며) 갈수록 숨기는 기술만 느는구만.
약장문 열면 작은 약국처럼 각종 약들 가득하고 영구 심드렁하게 하나하나 확인해 본다.
영구 : 비타민, 요건 글루코사민, 또 비타민, 노화방지, 천식약, (병원 조제약 들고) 기타 등등.
욕먹으면 오래 산다니까. 오래 사슈, 오~래~
- 안방에 있는 크고 깊은 항아리 안에 어깨까지 손 넣자 화색 돈다.
- 비단 보자기에 싸인 찬합 들고 나오며 껄렁하게 춤추며 노래 흥얼거린다.
영구 : ‘그대 없으면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정색) 아니지. (사진 향해 손짓까지 해가며) ‘망구 때문에 못살아,
망구 없어야 잘 살아.’ (하다가 홱 돌며 의뭉스럽게) 그것도 어디... 있을 텐데?
S#6. 연희 집 오르막 길 / 낮
어디론가 가고 있는 순남. 숨이 차다. 어질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잡는.
순남 : (고개 돌려 보는)
철수 : (모자 쓴) 괜찮으세요?
순남 : 나, 저기까지만... (연희 집 보이는 자리 가리킨다)
대문 열리면 연희가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나온다. 몸이 무겁다.
연희 쪽에선 순남 쪽 보이지 않고 순남 익숙하게 자리 잡고 지켜본다.
연희가 들어가는 것 끝까지 보고 그제야 스-읍 천식약 들이키는 순남. (cut to)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찬합 보자기. 보면 오르막 오르는 영구가 찬합 보자기를 있는 대로 흔들고 있다.
연희야 목청 높여 부르는데 연희 밖에 나와 빨래 널면서도 듣지 못한다.
영구 : 연희야~ 연희야~ 노올자~ 누나야~ 노올자~ (담장 안 엿보려고 까치 발로 점프하다가 히죽거리며 고물 휴대폰 꺼내
문자 보낸다. ‘문 여시오. 오빠가 왔음’)
연희 : (진동 느끼고 휴대폰 보자 반가워서 화색 돌고 얼른 대문 연다)
영구 : (문 열리면 방긋 웃는) 잘 있었어?
멀리서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시선.
S#7. 연희 집 안
단출한 세간. 연희 귀퉁이가 깨진 상 위에 찻잔 올려놓고 깨진 귀퉁이 자기 앞으로 돌려놓는다.
영구 짠하지만 웃으며 비단 보자기 펼치면, 부서지고 섞인 건과류 강정 들었다.
연희는 수화.
영구 : 몸은 좀 어때?
연희 : (좋아)
영구 : (떨떠름하게) 그 새낀... (하다가 수화 같이) 잘 해줘?
연희 : (미소, 잘 해준다는 수화)
영구 : (못 믿겠고) 진짜야? 아닌 것 같은데? (살림살이 둘러본다)
연희 아픈 듯 배 만지는데 영구는 못 본다. 영구 연희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는다.
문 발로 차는 소리 (E)
용만 : (취했고) 야! 이 년아, 서방님이 들어오면 버선발로 뛰어나와야지. 에이 씨...
영구 먼저 봤고, 연희 뒤늦게 본다. 연희 화급히 나가 용만 부축하면서 영구 있다는 눈치 준다.
용만 영구 보고 갑자기 자세 똑바로 갖춘다.
용만 : (어려워하며) 오, 오셨어요.
영구 : (웃으며) 매형 오셨네.
S#8. 연희 집 밖 / 밤
가로등 아래 영구와 용만 서 있다. 영구 껄렁한 깡패처럼 벽 짚고 섰고 용만 코너에 몰린 듯 벽에 바짝 붙어 있다.
불붙은 담배꽁초 떨어지고 슬리퍼 신은 발로 건달스럽게 비벼 끄는 영구.
영구 : 우리 집이 옛날에 방앗간을 했거든. 오래 된 일이야. 아버지 살아 계실 때니까.
용만 : ...아, 예.
영구 : 햐~, 그때 기술 좋단 얘기 많이 들었지. 구씨 방앗간 ‘곱게 가는 늦둥이’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용만 보는)
용만 : (주눅 들어 있다)
영구 : 왠 줄 알어?
용만 : (쫄아서) 네? 그.., 글쎄요.
영구 : (무섭게 돌변해 오버 아님) 난 우리 누나 놀리는 새끼, 찝쩍대는 새끼, 때리는 새끼! 갈아 마시거든.
(멱살잡는다) 갈아서 미숫가루에 타먹어. 그래서 내가 친구가 없거든.
용만 : (공포에 질려 빌며) 혀, 형님...
영구 : (헛웃음) 형님은, 형님이 형님이지.
용만 : (말도 못 잇고 얼었다)
영구 : 내가 지금은 가진 게 없고 운 때도 안 좋아서 노인네 가는 날만 기다려... 그때 까지만... (풀어주고 매무새 다듬어 주는)
잘 지내보자, 매형. 응?
영구가 용만 어깨 짚으려 하면 용만 때릴까봐 막는데, 어깨 토닥 토닥.
S#9. 영구 집 / 밤
순남 집에 들어왔는데 개판이다. 싸인 설거지에 너저분한 밥상. 으레 그런 듯 혀 끌끌 차며 인상 쓰는 순남.
그러다 안방이 헤집어져 있는 것 보고 놀라 장롱 뒤지는데 장롱 안 쪽에 붙여 놓은 뭔가 확인하고 안도한다.
(jump)
약장에서 병원 처방 약 꺼내 먹는 순남.
영구 노래 흥얼거리면서 슬리퍼 끌고 들어오다 마당에서 우스꽝스럽게 넘어진다.
그 모습 마루 끝에서 한심하게 보고 섰는 순남.
영구 : 아! 아~ (무릎만지며) 이씨! 이게 왜 여깄어. (세숫대야 걷어찬다)
순남 : (한심하게 보며 퉁명스럽게) 죽어.
영구 : 배고파~ 밥 좀 볶아줘~ 김치랑 참기름 넣고. 계란도 하나 탁 까서...
순남 : (째려본다)
영구 : 아이고... 그냥 해 봤어요.
순남 : 안 보믄 낫겠다. 벌어먹든 빌어먹든.
영구 : (마당에서 바가지에 든 물 벌컥벌컥 마시고) 만재, 빌딩 올렸다는데.. 들으셨어?
순남 : (끙 하며 모른 채)
영구 : (바짝 다가와 앉으며 슬쩍) 아쉬운 대로 5천만... 좀 어떻게 안 될까.. 응?
순남 : (못 들은 척)
영구 : 선이자 떼고 5부로 갚으께. 엄마 딸라 이자 좋아하잖어. 엉?
순남 : 먹구 죽을래도 없으니까 용빼는 재주 있음 해봐. (보다 혀 끌끌차며 혼잣말처럼) 서방복 읍는 년한테 자식복이 가당키나...
영구 : 누군 부모복이고?!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 낳아준 거 밖에 더 있냐!
순남 : 화상... (하며 들어가려는데)
영구 : (OL) 누난 뭐냐? 식도 못 올리고 배불러 그러고 있는데, 좀 가보고, 맛있는 것도 해주고, 그러는 거 아냐?
순남 : (입술 지그시 깨물면서도) 박서방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 니가 거길 왜 들락거려?
기어코 지 누날 소박데기 만들어야지.
영구 : (기막히고) 소박데기? 말 못하는 게 뭐 그렇게 큰 죄냐? 누나한테 몹쓸 짓한 놈한테 떠넘기고 맘이 편해?
(다시 생각해도 돌겠는) 그건 결혼을 시키는 게 아니라 경찰에 신고하는 거야... 어!!
순남 : 못 듣는 등신, 사지 멀쩡한 물건이랑 짝지우기가 쉬운 줄 알어? (말은 그래도 눈물 맺히는)
니 인생이나 추슬러. 어디서 주제야? (들어간다)
영구 : (받쳐서 뒤에다 대고) 일수나 떼다 죽어! 제삿밥 얻어먹을 일 없으니까 맛있는 거 숨겨뒀다 많이많이 처 드시구려.
순남 : (바가지 따위 들고 나와 살벌하게 영구 때리기 시작한다)
영구 : (도망 다니며 맞는) 아, 엄마, 엄마! 엄마!
순남 : 나가! 이 화상! 내가 제삿밥 얻어먹는 호살 누릴 것 같으면 널 낳았겠다! (바가지 박살난다)
영구 : (외마디 비명) 악! 왜 때리구 난리야!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도망가며) 제삿 밥은커녕 객살 해도
난 모른 척 할 테니까. 자업자득이야! 이씨! (세숫대야 한 번 더 차고 씩씩대며 나간다)
S#10. 동 영구 집 / 아침
- 순남 일어나 마루에서 호두 까고 있다. 호두알 그릇에 모아 놓는다. 손이 둔하다.
- 약장에서 약 꺼내 먹는 순남.
-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는 영구. 한쪽 손엔 만화책 들고 전화 받고 있다.
경호(E) : 만재가 한턱 쏜다고 나오라는데?
영구 : (끙.. 힘주고) 염병... 똥 싸고 있네.
경호(E) : 사실 니가 특허다 어쩐다 하면서 떠들고 다닐 땐 그냥 등신 깝친다 그랬는데... 그게 진짜 특허가 날 줄 누가 알았냐.
그걸로 만재만 횡재 할 줄 누가 알았냐고. 나쁜 새끼... 어떻게 지가 너한테...
영구 : (생각하기도 싫고) 됐어, 그만해. 아침부터 신소리할거면 너도 다시 전화하지 마, 새끼야. (끊으려는데)
경호(E) : 잊어버려, 인마. 그때 니네 엄마가 쫌만 밀어만 줬어도...
영구 : (OL 가뜩이나 열 받는데) 그 새끼가 얼마 쥐어주고 나 끌어내라 그러디?
경호(E) : 미친눔.
영구 : (열받고) 가서 돈 내 놓으라 그래. 내 돈~! 그거 아님 나랑 볼 일 없는 거고! (끊으려다) 니가 더 나빠, 이 박쥐같은 놈아!
(전화 끊고 씩씩 거리다, 이내 뒤가 찜찜한 표정) 이씨... 끊겼네...
순남(E) : (화난) 호두강정 어쨌냐!
영구 : (큰 소리로 삐딱하게) 지금 똥 돼서 나오는 중인데 왜!
- 순남 씩씩거리며 마당으로 나가 뭐 던질 것 없나 두리번거린다.
- 힘쓰고 있는 영구.
- 문 열리고 영구 머리 위로 세숫대야 물벼락 쏟아진다.
영구 : 이씨~! 허푸~!
순남 : 하다, 하다, 에미 약을 처먹냐! (문 쾅 닫고 나가는)
영구 :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악쓰는) 그게 약이면 내 똥도 된장이다~!
- 밖에서 소리 들린다. 순남 영구 방에서 영구가 발명한 조잡한 것들 마당에 던지고 있다.
순남(E) : 집안이 쓰레기장인지 백수 소굴인지. 오늘 내가 이것들을 싸지르고 만다.
영구 : (닦지도 못한 채 바지 찝찝하게 추켜올리고) 이씨~~~
(JUMP)
물에 푹 젖어 양치질하고 있는 영구. 목욕탕엔 간신히 목숨을 보존한 아까 그 물건들이 쌓여 있다. 그리고 세면대 위엔 천식 약.
영구 : (양칫물 뱉고 천식약 보며) 어으... 어으, 어으...!!
마루 끝에 앉아 신발 신고 있는 순남.
아침 햇살 청량하다. 나무 한 그루 있고 나름 푸근한 정조 느껴지는 영구의 한옥집.
신발 끈 묶으려는데 잘 안 된다. 자꾸 손이 어긋나고 매는 방법을 모르겠다.
무기력한 양손 늘어뜨리고 보는 순남. 하늘 보고 먹먹해져 한 숨 쉬는.
(시간경과)
순남 나가고 난 마루엔 소박하지만 밥상 차려져 있다.
볶은(혹은 다지게 썰어놓은) 김치, 대접에 밥, 참기름 병, 생 달걀, 동치미 한 그릇.
S#11. 연희 집 근처 / 낮
태수 어디론가 배달 가는 듯 오토바이 타고 과일박스 실었는데, 앞에 순남이 힘겹게 걸어가고 있다.
연희 집 가는 오르막 시작되는 길 앞 도로. 유난히 사람이 없다.
태수 : (보고 인상 구겨지는) 뭐야, 여기까지?
순남 숨찬지 구부리고 서 있다 가방에서 천식 약 꺼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푹 고꾸라진다.
태수 그 모습 보고 잠시 망설이다 독하게 그대로 오토바이 출발시킨다. 백미러에 길바닥에 쓰러진 채 멀어지는 순남.
(시간경과)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 들어가던 연희, 순남이 전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던 곳 본다.
약간 힘들어 보인다. 현기증 이는 듯 머리에 손 짚는. 순남 서있던 곳 아무도 없자 이래저래 살핀다. F.O.
S#12. 공원 / 낮
F.I. 공원벤치에 팔자 좋게 누워 이 쑤시고 있는 영구. 옆에 벤치에는 음식 싸온 봉지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경호 앉아있다.
경호 : 개업식 안 온다고 지랄하더니, 잘만 처먹네.
영구 : (트림하고) 굶어 그런다... 만재 새끼가 나주라고 싸준 거면 토하고.
경호 : 쥐뿔도 읍는 게 존심은. 왜 굶냐. 라면이라도 끓여 먹지.
영구 : 노인네가 있어야... 잔돈푼이라도 건지지.
경호 : (놀라) 없다니?
영구 : 한 보름 됐나... 온천을 갔는지... 씨..
경호 : 온천을 무슨 보름씩이나..?
영구 : 류마티스 관절염이라 망구가 온천이라면 환장을.. (돌아누우며) 아, 몰라 몰라.
경호 : (걱정스레)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영구 : (괜히 더) 왜? 미쳤냐? 안 보니까 살 만하구만. (갑자기 걱정스러워지는)
경호 : (어이없고) 이 미친놈아, 엄마가 연락도 없이 안 들어오는데 잠이 오냐? 천식까지 있는 양반을?
영구 : 무소식이 희소식이야. 점쟁이한테 물어보니까 우리 노인넨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산다드라. (말하면서도 찝찝하고)
경호 : (뭐 저런 게 있나 보다, 무심하게) 그럼 내내 일수도 못 찍었겠네.
영구 : (! 벌떡 일어나는)
S#13. 시장 앞 찻길가 / 낮
신호등 앞에 검은 세단 서 있다. 그걸 보고 있는 영구 통화중이다.
영구 : 거기도 안 갔어요?
여자목소리(F) : 안 오셨는데. 이번엔 혼자 가셨나. 우리 어머니한테도 연락 없었다는데... 웬일이래...
2838번. 일수장부 겉장에 받아 적는 영구.
앞에 ‘경축 만재 빌딩’ 유치한 플래카드 붙은 건물 있다. 영구 찡그리듯 건물 올려다본다.
세단 출발해 영구 앞을 지나간다.
영구 : (씁쓸하게 세단 보는) 씨... 나도 대박... 좀 나보자..
S#14. 시장 안 / 낮
- 경쾌하게 일수 찍으러다니는 영구. 순남이 들렀던 가게 차례로 돌아다니며 순남 도장 찍어댄다.
- 전집에서 전 주워 먹고 떡집에서 떡 집어 먹는다.
- 그런 영구 주의 깊게 보는 태수.
S#15. 경찰서 / 낮
50대 순경 앞에 뻘쭘하게 앉아 눈 껌뻑거리고 있는 영구.
이경사 : 그러니까... 15일 만에, 신고를 하신다?
영구 : (산만하게 책상 위의 이것저것 건드리고 있다) 뭐.. 그게 어쩌다보니, 현대인들이 바쁘고 (뭉개는)
우리가 또 OECD 국가다보니까. 국제적으루다 신경 쓸 것도 많고..
이경사 : 모친께서 가출하실 만한 이유라도?
영구 : 우리 모친이 특별히... 그럴 이유는 없는데...
이경사 : 그럼 어디 특별히 가 계실 데라도?
영구 : 우리 모친이 대인관계가 그다지 좋질 않아가지고요... 뭐 갈덴 없다고 봐야 되는데...
이경사 : (어이없는 얼굴)
영구 : (딴전 하는)
S#16. 포장마차 / 밤
혼자 앉아 소주 마시는 영구. 뒤에서 보면 머리 감싸 쥐고 우는가 싶지만, 지갑 열어보면서 큭큭 웃고 있는 중이다.
이때 누군가가 와서 툭 치자 지갑 떨어진다.
철수 : (얼굴 안 나오고) 죄송합니다. 제가 주워드릴게요.
영구 : 됐어요. (얼른 줍는다)
말끔한 양복 차림의 철수 자기 자리에 돌아와 앉고 뒤에 영구 의식하면 소주 마신다. 그러다 소주와 안주 들고 영구 쪽으로 간다.
철수 : 혼자 오신 것 같은데... 같이 한 잔 하시죠.
DIS (시간경과)
거나하게 취한 두 사람. 뭐가 잘 맞는 듯 화기애애하다.
영구 : (철수 손 보며) 근데, 손이 참 예쁘시다. 손가락이 기신 게... 피아노 치시나?
철수 : (고개 흔들고)
영구 : 그럼 의사신가? (흐흐 웃고)
철수 : (웃고) 손가락이 길면 게으르기나 하죠. 사내라면 그쪽처럼 단단한 맛이 있어야지.
영구 : 크크큭. 형씨가 유머감각이 있으시네. 현대인들에겐 유머가 능력이라고, 경호 그 미친눔이 그러던데. (낄낄 웃고)
나보다 위신 것 같으니까 형 이라고 부르까? 형!
철수 : 나같이 무능한 사람을 잘 봐주니 고맙네요. (같이 웃고) 영구씨도 능력 있잖아.
영구 : (이상하고)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아실까.
철수 : 구영구를 모르면 쓰나.
영구 : 저 아세요?
철수 : 어머니가 집 나가셨죠?
영구 : 소문이 났구나... (술 마시고) 실은 내가 요즘 그래서... 살 만합니다. 불효자? 히히... 나 불효자지,
근데 그냥반이야... 사막에서도 오아시스, 아니 일수를 놓으실 양반이니까. (낄낄대는)
철수 : (OL) 내가 납치했어요.
영구 : (불콰해서 껌뻑껌뻑 뭔 말인가 보고)
철수 : (소주 따르며) 내가 납치했다고~
영구 : (눈치보다 장난이지 싶어) 에이~ 장난치지 마.
철수 : (품속에서 신형 전화기 꺼낸다) 선물~!
영구 : (뭔가 보다 혀 완전 꼬이고) 어~ 이거 진짜 비싼건데...
철수 : 중요한 거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벨 울리면 꼭 받으라고, 동생.
영구 : (휴대폰 보다 취해서 앞으로 푹 고꾸라진다)
철수 : (보며 소주잔 털어 넣는다)
S#17. 영구 집 / 아침
윗옷 벗고 바지도 한 쪽만 벗은 채 쓰러져 자고 있는 영구. ‘그대 없인 못 살아’ 같은 방정맞은 벨소리 울린다.
그냥 시끄럽게만 생각하다, 주머니 속에 휴대폰 있는 것 발견하고 눈 감은 채로 받는다.
영구 : (목 잠긴) 누구세요.
철수(F) : 나, 유괴범.
영구 : (잠결에) 누구? 잘못 거셨어요.
끊고 다시 자는데 다시 벨소리 울린다. 베게 속에 얼굴 묻고 난리치다 전화 받는다.
영구 : (짜증 섞인) 저, 전화기 주인 아니거든요. 나중에 다시 거세요.
철수(F) : 구영구! 나, 니 엄마 유괴한 유괴범.
영구 : (실눈 뜨고) 뭐?
철수(F) : 어제 얘기했잖아. 우리~ (또박또박) 포.장.마.차!
영구 : (벌떡 일어나) 근데, 뭘 어쨌다고?
철수(F) : 내가 니 엄마 데리고 있다고...!
영구 : (혼자 중얼거리듯) 이게 무슨 개소리야.
철수(F) : 천식 환자들은 약 넉넉히 갖고 다니는데 이상하게 빈 통이더라.
영구 : (눈 제대로 뜨려고 하고)
철수(F) : 그게 처방전이 있어야 되는 거라. 고생 좀 했어. 어떡해, 납치는 했어도 일단은 살려 놓고 봐야지.
영구 : (정신 확 들고) 너... 왜 이런 장난치는 거야?
철수(F) : 형이 전화하면 바로 받어. 또 전화할게. (끊는 음)
영구 : (전화 닫고 멍해서 있다 머리 헝클며) 에이... 술 덜 깼다.
S#18. 거리, 육교 / 낮
거리 걷다 나름 운치 있는 육교로 올라가는 영구. 이 때 전화 벨소리.
철수(F) : 경찰에 신고 안 했어?
영구 : (비딱해서) 너 왜 그러니? 나 성질 드런 놈이야. 3년간 무직에, 노인네 한테 하도 맞살아서 맺힌 게 많다고.
건드려서 좋을 게 없거든.
철수(F) : 유괴범한테 얘기할 땐 ‘왜 그러니?’가 아니고 ‘원하는 게 뭐냐?’ 이렇게 물어야지.
영구 : 나 돈 없거든. 알아봤으면 알겠지만, 우리 망구 쟁여 논 돈이 얼만지 아는 바도 없고...
(분한 듯) 젠장, 노인네가 안 밀어줘서 내가 만든 물건으로 남 좋은 일만 시켰거든.
철수(F) : 난 너한테 관심 있어.
영구 : 그러세요? 난 남자한텐 관심 없는데 어쩌나.
철수(F) : 너희 엄마가 아니라, 너, 너 때문이라고.
영구 : (뭔 소린가 싶은)
철수(F) : (의미심장하게 웃고) 거래는 간단해. 여섯 살짜리 여자애를 데려오면, 엄마를 돌려 보내 줄 거야. 곱게.
영구 : (기막혀 큭 웃고) 미친 놈... 까고 있네, 끊어... (끊으려는데)
철수(F) : (OL) 시간이 많지가 않아. 벤텔록이라든가? 칙칙... 천식약. 아, 베르텔!
영구 : (!)
철수(F) : 베르텔 15밀리 최대 사용 횟수는 300회! 이미 100회 이상 사용하신 것 같고... 그게 얼마나 버텨 줄지. 그게 관건인데...
영구 : 날 잘 모르는구나... 나 그 노인네랑 무지하게 사이 안 좋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신경 곤두서는)
철수(F) : 그래서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고...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끊는)
영구 : 야, 야! 이 새끼 전활 끊어~!!! (전화 재발신 눌러보지만 발신제한표시다) 이씨~!
씩씩대고 한편으로는 난감한 영구 모습. 육교 위로.
S#19. 빌딩 옥상 / 낮
아찔하게 높은 빌딩의 옥상. 전화기 든 철수다.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딘지 공허하고 비웃는 듯한 표정.
철수 : (전화하는) 제가 말씀드린 거 준비하고 계시죠? 그렇게만 해주세요.
S#20. 경찰서 실내 / 낮
영구 쭈뼛쭈뼛 복도를 서성거리다 이경사 만난다. 이경사는 서류 보는 척 쓱 외면하고 지나쳐 버린다.
영구 : (따라가며) 뭐 소식 없나 해서요.
이경사 : 소식이 있으면 가겠죠? 연락이.
영구 : (떠보는) 요즘 노인 유괴가 많고... 그래요~?
이경사 : 허, 노인 유괴? 유괴가 아니라 유기겠죠. 갖다 버리는 거. (의심의 눈길로 보는)
영구 : (뻘쭘한)
S#21. 거리 / 낮
걷고 있는 영구 운동화가 불편한지 고쳐 신는데, 전화벨 울린다.
철수(F) : 왜 신골 안 했을까?
영구 : 이 전화 명의 남성휴게텔 앞으로 돼 있더라? 지저분한 새끼... 발신지 추적해서 전화했더니 섹시한 언니가 받더라고.
너 이번 달에 요금 좀 나올 거다.
철수(F) : 흐흐... 얘기하지. 왜 그냥 나왔어?
영구 : 미친놈 될 것 같아서 안 했다, 왜.
철수(F) : 신발이 불편한가 봐?
영구 : (당황해 주위 둘러보며)
철수(F) : 흐흐... 사업 얘기부터 하지.
영구 : (경계 늦추지 않고) 스토킹이 취미셔?
철수(F) : 내가 몇 년 전에 여자 애를 하나 유괴했어. 원래 내가 노인납치 전문은 아니야... 아무래도.. 애들이 쏠쏠하겠지?
근데... (기분 나쁘게 웃고) 완전히 잘못 짚은 거야. 애 부모가 별 볼일 없었다... 이거지.
영구 주위 둘러본다. 압도적으로 영구 내려다보고 있는 위세 등등한 빌딩들 주위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철수(F) : 근데... 걔 아버지가 얼마 전에 복권에 맞은 거야. 제대로, 아주 크게...
옛날엔 돈이 안 될 일이었는데 지금은 부가가치가 높아졌겠지?
영구 : (‘되는 놈도 있구나’ 잠시 부럽고, 비웃으며) 그래서? ... 그 애가 지금 어디 있는데?
철수(F) : 알면 너한테 부탁을 하겠어? 그때 군산 애들한테 앵벌이로 넘겼는데...
지금은 고아원에 있단 얘기도 있고... 아직 앵벌이로 있단 얘기도 있고...
영구 : 부탁? (비웃고) 내가 그 미친 짓을 할 거라고 생각하냐?
철수(F) : 하긴... 고민되겠어. 모처럼 돈 써가며 더없이 좋은 세월인데, 그치? 찾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누나만 아니면... 엄마야 뭐..
영구 : (정말 화났고, 억누르며) 너... 어디서 우리 누날 들먹여..
철수(F) : 이렇게 약점을 드러내면 쓰나.
영구 : (분노 억누르는) 누날 건드리는 날엔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죽여버릴 테니까...
철수(F) : 전적으로 너 하기에 달린 거야.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하면 난 그냥 조용히 사라져줄게.
너희 엄마 장례도 섭섭지 않게 곱게 치러드리고. 세상 누구한테도 이 얘기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잠자코 그냥 살면...
니가 세상에 둘도 없는 개새끼, 호로 새끼라는 건, 아무도 모르겠죠?
영구 : (장례 얘기에 곤두선다) 이.. 새끼가...
철수(F) : 그러나 엄마를 찾아야 되는 이유는 있어야지, 그치? 어머니가 통장 말씀하시던데... 장롱 어디... 있다는 것 같아?
일만 잘 되면.. 그걸 두 배로 만들어 줄게. (끊는)
영구 : (전화기 든 채로 주변 훑어본다)
S#22. 영구 집
- 장롱 보다 ‘에이 미친놈’ 하며 가는.
- 안전모 등으로 장롱 안쪽 비춰보고 있는 영구. 안쪽에 장롱색과 비슷한 색지가 발라져 있는데 귀퉁이가 살짝 말려 있다.
죽 뜯어내면 통장이 딸려 나온다. 조심스레 통장 펼쳐보고 놀라는 영구.
영구 : (소리 크게 안 나오고) 이, 이게 얼마야? ..십, 십, 십어~억?!
S#23. 은행 현금인출기 앞 / 낮
영구 조심스럽고 불안한 모습으로 인출기 앞에 줄을 기다리고 있다.
철에 맞지 않는 바바리코트 입고 괜히 어색해서 남들 시선 의식하고 있다.
현금서비스 누르고 인출기 안에 통장 넣는다.
멘트(E) : 비밀번호 네 자리를 눌러주세요.
영구 : (고민하고 네 자리 누른다)
멘트(E) : 잘못 누르셨습니다. 다음에 다시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구 : 돈을 찾고 싶은데요... 비밀번홀 몰라서...
직원 : (cut to 은행창구다, 통장과 도장 받고) 본인이세요?
영구 : 본인은 아니고... 그러니까 가족, 가족 꺼죠...
직원 : 본인하고 같이 오시든가 대리인 위임장, 인감증명 가지고 오세요. 이 상품은 당일에 못 찾으십니다. 사나흘 걸려요.
(다음 번호 눌러버 린다)
영구 : (말 한 마디 못하고 섰는)
S#24. 영구 집
영구 방 밥상 위에 쓰다가 구겨버린 종이들 있다. 옆엔 순남의 통장과 도장.
‘대리인 위임장, 나 양순남은 구영구에게...’ 써진 종이 펼쳐져 있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종이 노려보고 있는 영구.
경호(E) : 영구야, 형이 족발 사왔다!
영구 : (통장이랑 숨기기에 바빠지는) 왜 하필 이런 때 오구 지랄이야.
경호 : (마루에서 화장실 쪽 보면서) 또 싸냐? (신문지 펼치고 족발 놓는다) 크아~ (하며 소주 꺼내는)
경호 마루 한쪽에 놓인 철제 통 열어 순남이 까 모아둔 호두 꺼내 먹는다.
영구 방에서 나오고
영구 : (아무 일 없는 척, 그러나 어색한) 닦고 조이고 기름이나 치지, 뭣 하러 왔냐?
경호 : (먹으며 쯔쯔 안됐게 보고) 금형하는 김사장한테 5천 이달 내로 해간다 그랬다매?
아무리 물건을 만들고 싶어 환장했대도 그렇지, 니가, 지금 5천이 어딨냐. 5천원도 없는 판에.
영구 : (소주 한잔 들이킨다, 복잡하고, 호두 먹는 것도 거슬린다)
경호 : (소주 안주로 계속 호두 집어먹으며) 이게 그렇게 치매에 좋다네. 욕심을 버려, 인마.
인생 별 거 없다. 적당히 벌어서 맛있는 거 사먹고 가끔 예쁜 언니들 만나서 너 혜진이라고 알지? 걔가 너...
영구 : (OL 통 확 빼앗으며) 고만 좀 처먹어!
경호 : (황당해)
S#25. 놀이터 / 낮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영구와 연희. 연희가 유모차 좋아서 만지작거리는데 약간 쓸쓸함 묻어 있다.
(연희 수화, 영구 섞어서)
영구 : 뭐가 보고 싶냐? 한번 찾아오지도 않는데...
연희 : (배 만지며 수화로,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온천 간 거 맞지?)
영구 : 응... 그, 그럼. 온천 갔다니까. (말 돌리며) 우리 조카 태어나면... 누나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내가 삼촌도 하고 아빠도 하고.. 암튼 다 한다.
연희 : (미소)
영구 : 삼선교 살 때... 내가 애들이랑 누나한테 짱돌 던져서... 그때 머리 깨졌잖아. 여기.. (지머리 가리키고)
연희 : (웃고, 기억도 않나. 괜찮아)
영구 : 기억이 안 나긴? 흉터도 있잖아~ (연희 정수리 들추려 드는)
연희 : (손잡고 괜찮아, 안 아파)
영구 : 누난 나한테 한번도 못한 적 없는데... 참 철이 없었다 내가. (벤치에 연희 다리 베고 눕는) 이젠... 아프게 안 한다, 내가.
연희 : (의미 있게 보다, 영구야 부탁 하나만 해)
영구 : 무슨 부탁?
연희 : (배 만지고, ‘애기 낳을 때 옆에 있어 줄래?’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몸짓과 수화)
영구 : (일어나는) 그걸 부탁이라고 하냐? 좀 쎈 걸 하라니까. 내가 대박만 나면... (하다) 알았어... 옆에 있을게..
연희 : (자기 상태 조금 걱정스럽지만 미소)
영구 : (연희 보고 해맑게 웃는, 그러나 순남 생각에 초조함 스친다)
S#26. 시장 / 낮
- 영구 일수 찍으러 나왔지만 이전과 달리 의기소침하다.
- 전화 받고 있는 영구.
금형사장(E) : 대박이고 소박이고 우리도 좀 살자. 만재가 물건 찍자고 들고 왔는데, 우리가 영구만 기다릴 수 있어?
일주일 줄 테니까 그 안에 어떻게 좀 해봐.
- 태수가 나와 과일 상자 정리하고 있다.
영구 : (끊고, 심경 복잡하지만 반갑고 여전한 껄렁끼) 형, 진짜 오랜만이다. 나 요새 일수 찍으러 다니는데...
어떻게 형을 못 봤냐?
태수 : (보다가 냉랭하게 돌아선다) 너희 식구랑 말 섞고 싶지 않다.
영구 : 에이, 노인네는 노인네고,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지. 형제같이 자랐는데...
태수 : (조소하는) 형~제?
영구 : (당황스런 그러나 웃으며) 왜 그래... 형.
태수 : 울엄마 수술비 없어서 발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너 뭐했냐? 만재랑 주먹 질하고 있었지?
(울분 터지고 이내 영구 멱살 잡는다) 그 새끼한테 돈 꾸러 갔다 너랑 알고 지낸다는 이유 하나로 말 한마디 못 꺼내고
쫓겨 났어. 무릎까지 꿇었는데도 개 끌려나오듯 쫓겨났다고, 알아? 일찍 돈 구했으면 우리 엄마 안 죽었어.
너희 모자 때문이라고! 알겠냐, 이 자식아? (주먹 날린다)
길바닥에 나동그라진 영구. 입에 묻은 피 닦으며 원망으로 바라본다.
상인들 그 주변으로 모여 수군거린다.
태수 : (숨 고르고) 아줌마가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지는 들어서 알거다.
영구 : (일어나며 씁쓸하게) 난 몰랐어, 정말이야...
태수 : (그래도 분 안 풀리고)
영구 : (진심이고) 그래도 형... 우리 아버지 사고 났을 때도 형.. 옆에 붙어 있고 그랬잖아.
태수 : (돌아서서 다시 과일 상자 나르고) 가라.
영구 : (그 모습 보다 발길 돌린다)
태수 : (뒤에서) 아줌마 그렇게 되신 건 안됐다.
영구 : (잠시 멈췄다 무심하게 듣고 간다)
S#27. 영구 집 / 낮
영구 순남 신발 끈 매던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다. 마당엔 전에 순남이 때린 깨진 바가지. 물끄러미 보는.
영구(E) :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S#28. 거리 / 밤
도로에 화려한 자동차 불빛.
철수(F) : 이제 말이 통하네. (사이) 게임.
영구 : (전화하며 거리 걷는) 좋아. 당신이 미친놈이든 개자식이든, 홰까닥 돌아서 정신병원을 뛰쳐나왔든 상관 안 하겠어.
그래도 먼저 우리 노인네가 무사하다는 건 알아야지.
철수(F) : 흐흐... 아주 솔직한 편은 아니네.
영구 : 만나게 해 줘.
철수(F) : 그건 어렵지 않겠어? 그래도 나, 유괴범인데...
영구 : ...
철수(F) : 흐흐... (전화 바꾸는)
순남(F) : (유순하고 조심스런) ... 영구냐?
영구 : 엄...마?
순남(F) : 내가, 집엘 가야 되는데... 여기가 당최 어딘질 모르겠다.
영구 : 조금만 있어. 내가 데리러 갈게.
순남(F) :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럼.
영구 : (조심스레 좀 뭉개듯) 엄마 근데... 비밀번호... 있잖아. 그거 뭐야? 응? (끊은 것 알고) 아유... 진짜...!
S#29. 우성카센터 앞 횡단보도 / 낮
그 앞 배회하고 있는 영구, 햇빛 때문인지 찡그리고 있다. 뒤로 ‘목격자를 찾습니다’ 플래카드 걸려 있다.
자세히 보면 뺑소니 사고 현장 목격자를 찾는 플래카드로, 신고하면 사례하겠다고 적혀 있다.
철수(E) : 첫 번째 힌트. 2003년 4월 21일. 우성카센터 앞, 횡단보도. 거기서 모든 일이 시작된 거야.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봐야겠지?
S#30. 경찰서 / 낮
영구 피로회복제 상자 책상에 놓고 뚜껑 따서 내민다.
영구 : 드시고 하세요.
이경사 : (달갑잖고) 민주 경찰은 뇌물 안 받습니다.
영구 : (눈치 보며 들러붙는) 저기.. 옛날 사건기록 같은 거 어디서 볼 수 있어요?
이를 테면 2000년 6월 27일, 우성카센터 앞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사고 같은 거... 라든가.
이경사 : (어이없는 표정 OL) 갓김치 알아요? 그게 전라도 음식인데 젓갈 많이 넣고 한 사 나흘 익히면 기가 막혀.
뜨신 밥에 쭉 찢어서 올리면... 크... 그만이거든.
영구 : (?)
이경사 : 내가 갓김치를 되게 좋아했는데 이젠 안 먹어요. (영구 한번 노려보고)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김치만 보면 피눈물이 나. 그래서 못 먹는다고.
영구 : 아, 네... 근데요..
이경사 : (OL 박카스 박스 도로 내밀며) 그러니까 가시라고. 가서 어머니 찾는 전단이나 한 장 더 돌리시라고!
경찰서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영구. 원망 섞여 돌아본다.
S#31. PC방
스타, 리니지, 고스톱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 가운데 테이프로 감은 부러진 뿔테 안경 걸쳐 쓰고 옛날 신문 기록 검색하는 영구.
영구 앞에 다 먹은 컵라면 용기 3개 놓여 있고 다크 서클에 수염이 까칠하다.
영구 : (중얼거리듯) 2003년 4월 20일. 100미리 안팎 호우.. 남북회담 진행 합의... 사건사고 별다른 게 없고, 4월 21일...사건사고...
할머니 대학에 거액 기부, 4월 22일.. (쭉 넘기고) 씨... 석달 치 신문을 뒤져도 별 게 없는데... 뭘 찾으라는 거야.
S#32. 경찰서 앞 / 밤
사복으로 갈아입은 이경사 나온다.
뒤를 따라 가는 시선이 있다. 뒷덜미를 잡아채려는 손, 이경사 갑자기 뒤돌아 손 주인 팔 꺾어 제압한다.
영구 : (비명) 악! 이경사님, 저예요, 저, 구영구!
S#33. 포장마차 / 밤
뚱한 표정으로 이해 못하겠다는 이경사 얼굴. (영구 슬랩스틱 느낌)
이경사 : 그게 이 시점에, 특별히, 궁금한 이유가 뭔데?
영구 : (국수 후루룩거리며 눈치) 별건 아니고요. 그냥 좀... 그냥 무슨 일이 있었나만 알면 되는데...
이경사 : (한심하게 보다 뭔가 생각난 듯) 가만.. 언제라고?
영구 : (우동 들이키며) 2003년... 4월.. 21일. 아 뜨거... (먹던 국수 뱉어낸다)
이경사 : 우성 카센타면... 시장 앞 큰길가? 그래... (알겠다는 듯) 여아 유괴사건이 맞을 거야.
거 이상하네. 얼마 전에도 누가 찾아와서 그걸 묻더니.
영구 : (보는)
이경사 : 기억이 나. 젊은 부부였는데 참 안 됐었지...
영구 : 그 애가 어떻게 됐는지도 아세요? (아까 혓바닥 뜨겁고) 이런... 씨... (발음 좀 부정확한) 아줌마 물~!
이경사 : 아마... 애를 못 찾았지? (무심하게) 목격자가 있었는데 오기로 한 날 안 나타나서. 그런 사건들이 그렇지 뭐.
영구 : 그래도, 범인이 유괴를 했으면 협박전화 같은 걸 했을 거 아닙니까? 돈을 얼마 내놓으라든지.
이경사 : (씁쓸해 소주 마신다) 그게 잘못 짚은 거야. 애가 입성이 반듯하고 귀티가 나니까 유괴는 했는데,
부모 형편이 넉넉지도 않았고.
# 회상
철수 : (더 비열하게 웃고) 내가 여자 애를 하나 유괴했거든. 여섯 살짜리. 흐흐. 잘못 짚었지. 걔 부모가... 별 볼일 없더라고...
영구 : (진짜 개새끼네... 싶고)
이경사 : (못 들었고) 애가 하나 더 있었다는 것 같은데... 암튼 나머지 가족들도 교통사고로 잘못됐다는 것 같아.
영구 : 아버지는 살아있습니다, 부자로~ (암튼) 그 애 소식은 전혀 모르세요?
이경사 : (얘가 왜 이러지 하면서도) 앵벌이 하는 걸 봤다는 제보도 있었고, 어디 고아원에 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결국 못 찾았으니까.
영구 옆에 물그릇 놓고 가는 포차 주인.
영구 : (뭔가 생각하다) 혹시... 그 사건 물으러 왔단 사람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걔 사진이랑요, 그때 전단지도요.
(물 무심하게 들이마시는데 더 난리난다) 아줌마, 누가 국물~, 아, 진짜... (일어나 뜨겁다고 방정) 물~ 찬물~!!!
S#34. 놀이터 / 밤
어두운 놀이터 전경. 불쾌할 정도로 삐거덕거리는 그네 소리 들린다.
따라가면 요란하게 타고 있는 영구. 자연스럽지가 않고 어쩐지 전투적이고 어색하다.
영구 : (전화 붙들고 헉헉대며) 그래, 니 말대로 놀이터에 와서 그네 타고 있다. 한밤중에 돈 놈처럼.
철수(F) :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니 좋지 뭘 그래?
영구 : 그날이 니가 애 유괴한 날이라는 거 알려주려고 걸었냐?
철수(F) : 그것만 알아냈어?
영구 : (화나는) 뭐가, 또?
철수(F) : 됐어. 흐흐.
영구 : 우리 엄만... 잘 있냐?
철수(F) : 갑자기 효자인 척 하는 거야?
영구 : 이왕에 데꾸 있는 거 호도 많이 멕여라. 그거 엄청 좋아해서, 나 똥 싸다가... 암튼.
철수(F) : 니가 재밌는 게 뭔 줄 알아? 넌 니가 가진 게 뭔질 모르는 놈이야. 어떤 복을 가졌고 어떤 죄를 지었는지.
영구 : 헛, (웃고) ... 자빠진다...
철수(F) : 나도 그렇게 살았었지, 결혼하기 전까진.
영구 : 결혼도 하셨어? 애는 없나.
철수(F) : 있지. 딸 하나.
영구 : (그네에서 내려온다) 니가 인간이냐. 딸 키우는 놈이 여자앨 유괴해?
철수(F) : 인생이 어디 뜻대로만 돼?
영구 : (분노 치밀어 오르지만 진정하고) 근데 왜 나냐.
철수(F) : 흐흐...
영구 : 왜 나냐고?
철수(F) : 게을러서.
영구 : 뭐?
철수(F) : 넌 원래 착한 놈인데... 게을러서 죄를 지어.
영구 : (어이없고) 미친놈한테 이유가 어딨냐. 물어본 내가 미친놈이지. 그래, 어떻게 찾으란 거야?
철수(F) : 게임이 시작됐네.
S#35. 한적한 거리 / 밤
어디서 한바탕하고 온 듯한 덩치. 멍도 제법 들었고, 궁시렁궁시렁 툭툭 털며 걸어오는 중이다.
양복 차림의 철수 모범택시에서 내린다. 영구에게 전화하려는 듯 전화기 폴더 여는데, 덩치 지나가다 철수와 툭 부딪다.
덩치 가뜩이나 기분 나쁜데.
철수 : (고개 까딱하고 지나가는)
깡패 : (시비조) 어이, 형씨. 사람이 이렇게 예의가 집밖으로 나가셨어?
철수 : (돌아보는) 미안합니다. (가려는데)
깡패 : (잡고 돌려 세우는) 하..요즘엔 개나소나 다 미안하데 다.
(철수 넥타이 비뚤게 만드는) 어떡해.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아주 별론데.
철수 : (손보며) 놓으시죠. (냉하게) 길... 막지 마.
깡패 : 어쭈~! (검지손가락 철수의 이마에 대고 미는, 모욕적이다) 여기가 니 길이세요? 막지~ 마? (가소롭고)
철수 차분히 휴대폰 폴더 닫고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상대의 목 제압해서 벽(교통신호제어기 정도)에 밀어 붙인다.
무서울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덩치의 머리를 찧기 시작한다. 철수 표정변화 없다.
넥타이 바로잡을 생각도 않고 머리 감싸 쥐고 무너진 덩치 내려다본다.
철수 : (숨도 안 흐트러졌고) 내가... 막지 말라고... 그랬잖아.
S#36. 고깃집 / 밤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는 갈비. 허겁지겁 정신없이 먹고 있는 경호.
경호 :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너한테 갈비를 얻어먹다니. 누가 믿겠냐. (생각난 듯) 이거 찍어놔야 돼.
(휴대폰 꺼내 방정 떨며 셀카 찍는다)
영구 : 내가 며칠 어딜 갔다 올 거야. (뭔가 말하려다 경호 방정에 마는) 됐다...
경호 : (먹으며) 그래, 잘 생각했다. 엄말 찾아야 니가 인간인 거지.
영구 : 응... 암튼 그동안 우리 누나 좀 봐줘. 용만이 그 자식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니가 매일 들여다봐라.
(걱정되는) 말은 안 하는데 몸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
경호 : (알았다는 건지 어쨌다는 건지 상추쌈에 볼이 미어진다)
S#37. 기차 안 / 낮
큰 가방에 모자 눌러쓰고 창가에 앉은 영구. 자못 진지한 표정이다.
곱게 접혀진 종이 펼치는데 ‘김예슬을 찾습니다’라는 전단지다. 천진한 아이 얼굴 C.U. 그 위로.
철수(E) : 군산에 있는 천사의 집을 찾아. 앵벌이로 있다 거길 갔다는 것 같아.
영구 : 이 할망구... 그래... 씨... 20억이다, 20억!
S#38. OO 천사의 집 / 낮
안경 쓴 원장이 전단지 들여다보고 있다.
원장 : 글쎄요.. 우리 원생 출신은 거의 다 기억을 하는데...
영구 : 혹시, 입양기록이라도 볼 수 없을까요?
원장 : (난처한) 그건... 좀...
영구 : 그러시면요. (가방에서 복사한 전단지 꺼낸다. 적혀 있는 전화번호 네임펜으로 줄그어 지우고 자기 번호 적는다)
혹시 생각나시거나, 자료를 보게 되시면요. 이리 연락 주세요. 제가 꼭 찾아야 되거든요.
철수(F) : 문제는... 고아원에 갔다는 게 정확하질 않다는 거야.
S#39. 기차마을 / 낮
터덜터덜 선로 옆을 걷고 있는 영구. 선로 위에 돌멩이 하나 차려다 크게 헛발질한다.
영구 가는 뒤로 ‘기적’ 팻말 걸린다. 철로 위를 아슬아슬하게 건너며 놀고 있는 아이들.
영구 그 아이들 얼굴 유심히 보고 전단지와 대조해 본다.
철수(F) : 군산 어디쯤 있을 텐데... 어디 있을까...? 일단 해망동 쪽으로 가. 거기서 봤다는 사람이 있어.
영구 : 똥개 훈련시킨다 이거지? (분한)
착하게 생긴 진돗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영구를 보고 있다.
묶여 있는 개가 남 같지 않아 고개 삐딱하게 하고 보는 영구. 눈빛에서 뭔가 독기가 피어오른다. 그 위로.
이경사(E) : 근데 왜 자꾸 이 사건을 묻는 거야?
S#40. 포장마차 / 밤 (회상)
34씬과 동 장소.
이경사 : 아는 애야?
영구 : (소주 들이키고) 꿩 먹고 알 먹고..., 어쩌면 이게... 로또가 될 지도 모르거든요.
S#41. 해망동 / 어스름
길가다 만난 사람에게 예슬 전단지 보여 주며 해망동 계단 올라가는 영구의 모습.
몽타주.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해망동 저녁. 아름답다.
전단지 예슬 얼굴 보는 영구.
영구 : (혼잣말) 일단 찾아야 돼... 그놈보다 먼저... 찾기만 하면 돼...
S#42. 밥집 / 아침
국밥 말아 먹고 있는 영구. 한손으론 전화 받고 있다.
순남(E) : 밥은 먹었냐?
영구 : (좀 감동이고) 허... 그 소릴 얼마 만에 들어보는 거야.
순남(E) : 영구야, 나 집에 가야 된다. 내가 집에 가야 돼....
영구 : (밥 못 먹고 숟가락 내려놓는다) 그냥 편하게 있어. 스트레스 받으면 좋을 것 없으니까.
순남(E) : (조심스레) 느이 누나...
영구 : (뭔 소릴 하려고?)
순남(E) : 애기를 저기 일성 병원 원장한테 보여야 된다. 그 병원 원장이 우리 나라서 귀를 젤 잘 본다더라. 병원비는 내가...
영구 : (OL 눈물나는데 괜히 큰 소리로) 내 조칸 괜찮어. 그게 유전도 아니고, 괜찮다고!!
순남(E) : (차분하게) 돈이 없어 그랬어... 니 누나 땐. 너무 읍었다, 그땐 너무 없었어.
S#43. 모 처 사무실 / 낮
사무실인 듯한 공간에서 전화 받고 있는 철수. 평상복 차림 정도.
철수 : 어머니가 치매시네.. 알츠하이머라고 들어 봤지?
옆에 순남의 뇌 CT 촬영한 사진 라이트박스에 걸려 있다.
영구(F) : 허, 레파토리도 참 다양하세요.. 치매..? 울 엄마가요?
핸드폰에 달린 하트 장식품 만지작거리는 철수. 팬던트나 가운데 열리는 액자 같은 느낌.
철수 : 요즘 착하게 구는 것 같아서 알려 주는 거야. 약을 오래 드신 것 같은데... 몰랐어?
S#44. 거리, 군산여고 근처(상관없음) / 낮
오래된 일본식 건물들 있는 이국적인 거리, 전화 받고 있는 영구.
영구 : (표정 굳었고)
철수(F) : 믿든가 말든가지만 말야... 그래도, 만약에 사실이라면... 엄말 빨리 찾아야겠지?
혹시 비밀번호라도 잊어버리시면 어떡해. 우린 피차.. 시간이 얼마 없고.. 그치?
영구 : (화 참지 못하고 벽에 주먹질 발길질 해댄다)
S#45. 군산 시내 거리(역 앞도 상관없음) / 낮
벤치에 앉아 있는 영구. 옆에 호두과자 봉지. 오른손으론 먹지는 않고 호두과자 알 손가락으로 굴리고 있다.
눈빛 더 날카로워졌다. 피 터진 주먹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회상씬) s# 10의 순남 일어나 마루에서 호두 까고 있는 모습.
순남 : 에미 약 쓰려고 둔 걸 잘도 처먹었다! (문 쾅 닫고 나가는)
s# 10의 순남 약 먹는 모습.
상인(E) : 그래 잘 했다. 어머니가 깜빡깜빡하시니까 아들이 대신 나왔구만.
종이에 적힌 번호로 어디론가 전화 걸고 있는 영구. 눈에 독기 들었다.
영구 : 예슬이 찾는 분이시죠? (DIS) 지금 데리고 있는 건 아니고요. 제가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DIS)
(돈 얘기 꺼내려는 듯한) 근데... 저... 사례금이... (DIS) (엄청난 액수 들었고 표정 좀 밝아지는)
아, 예... 그럼요, 금방 찾을 겁니다.
같은 장소 앉아 있는 영구. 눈빛 빛난다.
영구 : (전화기 없고 서늘하게) 게임은... 이렇게 하는 거야.
S#46. 군산 시내 / 낮
사람들에게 전단지 나눠주는 영구 아주 열심이다. 주먹엔 붕대.
영구의 표정에서 집념이 보인다.
영구 : (전화 받는) 애만 찾으면... 바로 보내주는 거지?
철수(F) : 흐흐흐흐.. 난... 너처럼 거짓말 안 해.
영구 : 그거... 알아. 난 참 머리가 좋아.
철수 : (무심히) 그래?
S#47. 슈퍼 앞 / 어스름
영구 수퍼에서 빵이랑 우유 사고 있는데, 옆에서 행색이 남루한 아이(7세 가량)가 과자류 지켜보고 서 있다.
영구 : (아이 측은하게 보다 빵이며 과자 더 사서 계산대에 올린다) 얼마죠?
영구 걸터앉을 만한 곳 찾아 불량스러운 포즈로 앉았는데,
아이는 서서 먹고 있다. 양손엔 우유와 빵, 겨드랑이엔 과자봉지 끼었다.
영구 : 앉아. 인마.
아이 : (먹는 채로 쪼그려 앉는)
영구 : 자식. 여기, 이리로 앉으라고. (옆에 앉을 자리 마련해준다)
아이 : (앉고)
영구 : 맛있냐.
아이 : (끄덕끄덕)
영구 : (생각난 듯 전단지 꺼낸다) 너 혹시 이렇게 생긴 누나 본 적 없어? 이때는 어렸는데 지금은 너보다 누나거든. 열 살.
아이 : (살펴보다 고개 젓는)
영구 : (머리 쓰다듬는 척 슬쩍슬쩍 때리는) 그러지 말고, 좀 성의 있게 봐봐.
아이 : (전단지 들고 영구 눈치 보다)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영구 : 응? 어디서? 얘랑 비슷한 누나 본 적 있어?
아이 : (끄덕 끄덕)
S#48. 거리 / 밤
아이를 따라 외진 길로 들어가는 영구. 어째 분위기가 음습하다.
영구 : (지쳤고) 얼마나 더 가야 되는데?
아이 : (어두운 골목 손가락질 한다)
영구 : 어유, 가자, 가.
S#49. 골목 안 / 밤
한눈에도 깡패스러운 아이들 대여섯 명이 몰려 있다. 제법 성인처럼 큰 아이들도 한두 명 섞였다.
영구와 같이 온 아이 다른 아이들에게 뛰어간다.
영구 : 야! 누가 (전단지 들고) 얘랑 닮았다는 거야?
아이 : (우락부락한 여자애 가리킨다)
영구 : (어이없고) 너 어린애가 벌써... 약시냐? (때리려고 하는 시늉)
불량남 : 어이, 아이씨. 우리 막내를 왜 윽박지르세요. (다가가서 가방이며 툭툭 치는)
영구 : (가소롭고) 어쭈... 니들이 지금 나한테 엉기냐?
불량남 : 우리 막내를 놀래키시면 곤란하죠...
영구 : (가방 내려놓고) 니들도 인생이 괴로워 이러는 건 알겠는데... 삼촌이... 정말 성질이 드러워.
불량남 : (한껏 불량스럽게 침 뱉는다)
영구 : (헛웃음 나고) 참, 쪽팔려서 진짜... (하는데 뒤에서 퍽하는)
영구 ‘아~’ 하며 공격한 큰 녀석에게 주먹 날린다. “이것들 봐라~”하며 싸움 격해지는데,
누군가 영구 다리를 각목으로 가격한다. 영구 “아”하며 다리 잡는데, 바로 머리 후려치는. (cut to)
영구 쓰러져 있고 아이들 영구 가방 뒤지는데 별 조잡한 발명품들이 쏟아진다.
불량녀 : (껌 씹으며 영구 발명품 들춰보며) 열라 조잡하다.
불량녀2 : (전단지 보다) 어? 이거 걔 아냐?
불량남2 : (빼앗아 보는) 맞는 것 같은데?
불량남 : (빼앗고) 재수 없게... 버려.
불량녀2 : 그래도 좀 불쌍하잖아.
불량남 : (노려본다)
불량남2 : 쓸데없는 건 그냥 놔둬.
아이들이 노획물에 빠져 있는 동안 불량녀2 전단지 슬쩍 뒤로 감춘다.
S#50. 창고 안, 서울 거리 / 어둠
낮은 신음 토하며 눈 뜨는 영구. 뒷목 쪽이 뻐근하고 다리도 아프다. 얼굴에도 상처.
더럽고 어두운 창고에 가방이 풀어헤쳐져 있다.
영구 : (상황 파악하고) 어유... 쪽팔려... (가방 안에서 자기 고물 휴대폰 꺼내보는데 통화권 이탈이다) 젠장...
- 문 쪽에서 “어이 씨~, 야 이 놈들아 문 열어!!” 난리치는 영구.
- 영구 작은 쇠꼬챙이로 문 열려고 시도하고 있다. 머리에는 불 들어오는 안전모 썼다.
영구 : (이상한 꼬챙이 팽개치며) 만능키는 개뿔!
열쇠 던지고 주저앉는 영구.
영구 : 이씨... 배까지 고프네.
전화벨소리. 철수의 전화다.
철수(F) : 애를 찾으랬더니, 어디 있는 거야?
영구 : 이젠 (휴대폰 보고) 받는 것만 되냐? 치사한 새끼... (너스레) 지금... 좀 쉰다.
철수(F) : 선유도 근처에서 애를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좀 가봐야겠어.
영구 : (화내고) 이씨... 지금 쉰다니까!
(cut to) 발명품 안전모 쓰고 광부처럼 불 켠 채 누워있는 영구.
영구 : 난 아직도... 니가 왜 나한테 이러는지 이핼 못하겠다.
# 전화 받으며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는 철수.
철수 : 알잖아. 너랑 같은 이유라는 거. 니가 20억이면 나는 얼마겠어. 방앗간집 아들 머리로 계산이 안 될 걸.
영구 : (하긴... 알만하고) 됐다... 아유~ 배고프니까 우리 방앗간집 구씨... 보고 싶네.
철수 : 아버지 얘기 좀 해봐.
영구 : 미친 놈, 머리에 총 맞았냐? 이 타이밍에...
DIS
영구 : (이 상황에서 우습지만) 우리 아버지... 구형만씨. 좋은 양반이었지. 우리 방앗간 기계며 시장 안에 기계란 기계들을
죄다 고쳤는데 못 고치는 게 없었어. 전자회사에서도 못 고친다는 걸 반의 반나절이면... 고쳤다니까. 천재소릴 들었는데.
철수 : 아프셨나?
어둡고 더러운 창고의 면면, 구석에서 쥐들도 보인다.
영구 안전모 벗어 거기 새긴 번호 정성스럽게 더 세밀하고 뚜렷하게 새기고 있다.
영구 : (헛헛한 웃음) 어느 날 분쇄길 고치다 소매 끝이 기계에 말린 거야. (뼈아프게) 양 팔이... 젠장... (한숨)
그러고 1년 사셨나... (새기다 가루 나온 것 후 부는)
# 철수 낯익은 동네로 들어선다. 연희의 집 근처다.
철수 : ... 그랬군.
영구 : 우리 엄마... 망구, 그래 할망구 됐지. 안 해 본 거 없어. 증말 일 많이 했다. 그래서 폭삭 늙었나?
철수 : 흐.. (웃는) 가난... 나도 그거 좀 알지.
영구 : (슬쩍) 당신 얘기도 좀 해봐. (다리 아픈 듯 일어나 절룩거리며 나갈 곳 있나 본다)
# 연희가 쓰레기 봉지 들고 집 밖으로 나온다. 철수 순남이 서 있던 곳에서 연희 보며 통화한다.
철수 : 넌 신이 있다고 믿어?
영구 : 신? 그런 게 어딨냐? 그런 게 있음 내 꼴이 지금 이 모양일라고. (가방 뒤져보는)
철수 : 그 부분은 나랑 생각이 같네.
영구 : 세상 불공평 한 거야. 세상에서 젤 착한 우리 누나가 왜 귀머거리가 됐겠어. 신이 있다면 어떻게 그러냐.
철수 : 니 말이 맞아. 그렇게 될 리가 없지.
영구 : 너희 아버진... 어땠냐...?
철수 : (잠시) 아버지... 난... 얼굴도 몰라.
영구 : 고아야?
철수 : (말 못 있다가 차분히) 선유도로 가. 아이 아버지가 곧 해외로 뜰 모양 이니까 빨리 찾아야 할 거야.
하긴, 가족들이 다 죽었는데 여기 있고 싶지 않겠지? 그리고 잊었을까봐 말인데...
어머니 천식약 펌프질이 영~ 신통칠 않아. 얼마 안 남았단 얘기겠지? (끊는)
영구 : (팔베개 해 누우며) 냉정한 놈.
목소리 : 거기 누구 있수~!
끼이익~ 창고 문 열리는 소리.
S#51. 연희의 집 / 밤
문 열리면 철수가 앞에 서 있다. 약간 미소. 보기에 따라 섬뜩한.
연희 의아한 얼굴로 보다, 아는 사람처럼 웃는다.
S#52. oo 천사의 집 / 낮
영구 한걸음에 달려온 듯 땀 범벅된 채 헉헉거리고 있다. DIS
원장이 기록된 서류철을 펼쳐 놓는다.
원장 : 아무래도 인상착의가 비슷한 것 같아서요. 우리 선생님이 시내서 데려왔는데... 이름이 이민희, 윤성연...
영구 : (자료 보며) 이 중에 누구예요?
원장 : 한 아이에요.
영구 : (!)
원장 : 아이가 예쁘니 본 사람마다 입양을 원했는데, 입양됐다가는 금방 파양 돼 돌아오곤 했죠.
처음엔 7개월, 그 다음엔 한 반년 쯤...
S#53. 어느 저택 앞 / 낮
초인종 인터폰 앞에 서 있는 어느 때보다도 착잡한 표정의 영구.
원장(E) : 장애아를 키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아, 참 그 아이... 말을 못 했어요.
인터폰(F) : 누구세요?
영구 : (맘 편치 않고) 천사의 집에서 왔습니다.
인터폰(F) : 더 이상 그쪽이랑 볼 일 없다시는데... 잠깐만요. (하며 열어주는)
S#54. 저택 안
으리으리한 가구들과 실내 디자인. 영구 앞에 음료수잔 놓여 있다.
강아지 두 마리 안고 계단을 내려오는 사모님.
사모님 : (약간 도도한) 어떻게...? (오셨나요)
영구 : 저, 김예슬... (종이 펴 보고) 윤성연 양 어머니 되시나요?
사모님 : 어머니란 소리, 좀... 불편하네요. 같이 살긴 했지만, 한번도 우리 아이란 느낌은 못 받았어요.
(불쾌함 위선으로 감추는) 좋은 일 한다는 게 늘 쉬운 건 아니죠...
영구 : 이 집에서 나간 뒤로 어떻게 됐는지 아시나요?
사모님 : 그렇게까지 질이 나쁜 앤 줄은 몰랐는데... 걔 앵벌이 출신인 거 아시죠?
영구 : (복합적인 감정으로 억누르며 보는)
시간경과. 침묵하고 있는 두 사람.
사모님은 빨리 이 상황을 우아하게 모면하고 싶고, 영구는 차갑다.
영구 : (미용한 개 두 마리 바라본다) 마르티슨가요?
사모님 : (자랑스럽게) 네. 왕실에서 키우던 갠데... 저희 집에 6년 째 살아요.
영구 : (혼잣말처럼) 개는 6년 키우고, 애는 6개월 키웠네.
S#55. 저택 앞 / 낮
영구 대문 밖으로 나간다. 뒤로 쿵 닫치는 문.
집을 떠나는 영구. 시선은 대문에 고정돼 있다. (cut to)
계란 들고 서 있는 영구. 대문에 계란 판 채로 집어 던진다. 분노로 서 있는 뒷모습.
S#56. 군산 역 근처 기차 건널목 / 낮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간 뒤, 건널목 열리며 드러나는 초췌하고 무거운 영구의 모습.
건널목 건너는 신호인데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영구 : (전화하는) 유괴범은 형량이 어떻게 되나요?
이경사(E) : 아동이냐 성인이냐에 따라 다른데... 무겁지.
영구 : (서늘해져서) 애 어른 다 유괴한 놈이면 무기징역 쯤 되나요?
S#57. 시장 / 어스름
정육점 앞에 모여 앉아 고기 굽고 있는 상인들 태수, 지물포, 야채, 그릇 등 네다섯 명 모였다.
웃고 떠들며 자기 무용담 늘어놓는 조금은 붕 뜬 분위기다.
그룻 : 전에 목욕탕에 세숫대야랑 대야를 납품하러 갔는데, 여자 셋이 탕에 앉았는기라. 이제 서른이나 묵었을라나.
건어물 : 암 것도 안 입고?
그릇 : 니는 목간할 때 옷 입고 하나?
태수 : (보고 씁쓸하게 웃는)
그릇 : 내가 이것 좀 놓겠습니다. 그라니끼네 이 가스나들이 ‘그러세요’ 그라는기라.
건어물 : 놀라지도 않고?
그릇 : 눈 하나 깜짝 않더라니끼네. 그러더니 (성대모사) “아저씨 바쁘지 않으면, 와서 등 좀 밀어 주세요.~” 그래서 내가...
지물포 : 예라~ 이~ 구라야. (상추로 그릇 때리며) 넌 인생이 뻥이여.
태수 : (OL 소주 원샷하고, 버티다 괴로워 꺼내는) 한 달 전쯤에... 일수 노인넬 봤어.
지물포 : 영구 엄마 말야?
태수 : 배달 가는데... 그 노인네가... 거기 그러고 있더라고.
상인들 : (듣는)
태수 : 가는데, 뒤에서 툭 사람 쓰러지는 소리가 나. 아니나 달라 기침쟁이 노인네...
(큭큭 웃고) 니들도 알겠지만, 나한테, 우리 엄마한테 그 아줌마가 어떻게 했냐..?
그릇 : 병원에 옮겼재, 니?
태수 : (좀 취했고) 내가, 왜?
일행들 : (분위기 싸해서 서로 눈치 본다)
태수 : 검정색 세단이 태워가더라... 태워가더라고...
지물포 : (말 못 꺼내다 조심스레) 혹시 번호 못 봤어?
태수 : 봤지. 봤는데...
건어물 : (OL) 태수야, 인마, 그때... 너희 엄마 병원비... 아줌마도 애썼어.
태수 : (OL 씁쓸하고 괴로워 소주 털어 넣는다) 그랬다... 내가...
S#58. 군산 역 내 벤치, 꿈 / 아침
신문지 덮고 노숙자처럼 자고 있는 영구. 밑에는 사람들이 버린 듯 김예슬 찾는 전단지가 버려져 있다.
영구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데 신문지 바짝 끌어 덮으며 돌아눕는다. 환경미화원 와서 툭툭 건드리면 그제야 눈 힘겹게 뜬다.
미화원 : 어이, 일어나. 여가 댁네 안방이여?
영구 : (다리 쑤신 듯 일어나 혼잣말) 아유... 이런 씨...
그때 더러운 옷을 입은 여자애(예슬이)가 전에 봤던 불량한 아이들과 같이 영구 옆을 지나 뛰어간다.
영구 : (벌떡 일어나) 어, 방금 그 애!!!
여자애 뛰어간 곳으로 가지만 그 곳엔 여자 아이가 없다. 저 쪽에서 철수인 듯한 남자를 따라가고 있는 여자 아이.
남자 찻길 건너자 예슬이도 그 뒤를 따라 건넌다. 이때 자동차 위험스럽게 다가온다.
영구 : (외치는) 얘! 가지마!!!! 위험해!!!
그리고 날카로운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
영구 : (외치는) 안 돼~ !!
영구 ‘헉!’하는 소리와 함께 악몽에서 깬다. 깨면 아까 그 벤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김예슬 전단지.
아직도 악몽 같은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 머리맡에 뭔가 써져 있는 전단지 놓여 있다.
영구 : (전단지 펴보며) 이게 뭐야...?
‘얘는 3년 전에 사고로 죽었어요.’ 그 때 옆을 뛰어가는 불량녀2, 영구 다리 절며 뛰어가 잡는다.
영구 : 이거.. 니가 놔 둔거야? 이게... 뭔 말이야?
불량녀2 : 죽었어요... 걔... 역 근처에서 사고로. 내가.. 봤어.
영구 : ... 거, 거짓말...
불량녀2 영구 멍한 틈 타 뿌리치고 도망치다 영구 쪽 본다.
불량녀2 : (그러다 수화로 ‘바보’ 한다)
영구 : (멍해서) 바보...? 너,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원장(E) : (이명처럼 울리는) 그 애 말을 못 했어요.
불량녀2 뛰어서 저쪽으로 사라진다.
영구 : (못 믿겠는) 죽어? 왜...? 왜 죽어? 다들... 뭐야... 다들... 까고 있네... 진짜.. 다들...
S#59. 군산 역 앞 / 낮
까칠하고 퀭하고 날카로운 모습의 영구. 언뜻 보면 광인 같기도 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전단지 나눠주는데 사람들 겨우 무심하게 받거나 거부하고 간다.
영구 그런 외면에 익숙해진 듯하다. 사람들 무심한 광장에 외롭게 서 있는 영구 모습.
S#60. 거리 / 밤
0씬의 상황. 주변 소리는 안 들리고 거친 숨소리만 들린다. 어디론가 뛰고 있는 영구, 넋 나간 사람처럼. 광기 어린 것처럼.
S#61. 병원 / 밤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온 영구.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인다.
# 수술실 들어가면서 울면서 엄마 찾는 연희 모습 (영구의 상태에 스팟처럼 끼어든다)
자신이 옆에 없었다는 괴로움에 어쩔 줄 모르는 영구. 한쪽엔 의자 밑에 주저앉아 있는 용만.
경호(E) : (당혹해서 부르는) 여, 영구야...
영구 : (하얗게 질려서) 뭐,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너 이 자식! (멱살 잡는데, 손힘 풀린다)
내가 잘 부탁한다고 했지! 내가 부탁한다고 했잖아...
경호 : (말도 안 나온다) 갑자기...
영구 : (손 덜덜 떨리는) 괜찮은 거지? 살... 수 있는 거지?
경호 : 그래야지... 그럼, 임마.
영구 : 어디 있어...?
경호 : 중환자실. 곧 수술 들어간대...
S#62. 병원 실외 / 밤
전화벨소리. 불안한 듯 어쩌지 못하고 절룩절룩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는 영구.
철수(F) : 이건 반칙이지. 애도 못 찾고 서울에 있으면 어떡해?
영구 : (받친) 몰라, 이 새끼야. 난 돈도 뭣도 필요 없어. 너도 다신 전화하지 마.
철수(F) : 어머니가 섭섭해 하시겠네. 길 잃고 어두운 데서 헤맬 예슬이가 불쌍하지도 않아?
영구 : (흥분해 떠는) 그 앤... 그 애가 살든 죽든 내 알바 아냐.
철수(F) : 섭섭하네. 잘 해낼 줄 알았는데.
영구 : (들릴 듯 말 듯) 죽었대. 죽었다고...
철수 : (침묵)
영구 : (점점 더 고조되는) 그 앤 죽었대! 죽었어, 죽었다고! 이 개새끼야!!! 너 때문에 그 불쌍한 애가 죽었다고!!!
넌 세상에서 제일 개같은 놈이야... 알어?
철수(F) : 그래?
영구 : 너, 처음부터 날 엿 먹이려고 그랬지? 내가 우리 누나 옆에 있었어야 되는데, 일부러 못 있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이 새끼야! (오열하는)
철수 : (차갑게) 그럼... 가족을 한꺼번에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이제 알게 되겠네...?
영구 : (눈물범벅이고) ... 뭐?
S#63. 중환자실
혼수상태에 있는 연희. 화급을 다투는 듯하다.
철수 : (전화받는 하관 보이고 달랑거리는 장식품) 자기 손으로 가족을 살릴 수 없다는 게 어떤 고통인지...
S#64. 중환자실 대기실
초조해하는 경호 앉아 있는 중환자실 대기실 훑는 시선 돌아오면 거기 의사 가운 걸치고 전화 받고 있는 철수 있다.
철수 : 느낄 수 있는 기회라고...
S#65. 병원 실외 / 밤
영구 : 뭐...? (눈물범벅)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철수(F) : 글쎄... 왜... 그럴까.
영구 : 엄마 보내 줘, 지금 누나가 많이 아파... 우리 누나... 엄마 꼭 봐야 돼... (애원하는) 부탁이야... 제발...
내가, 우리 엄마 통장, 다 줄게. (품속에서 허공을 향해 꺼내보이고, 무릎 꿇고 오열하는) 여기, 여기 다 줄게요... 제발...
철수(F) : 영구야. 형이 얘기했잖아. 이 게임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고... 넌 참 머리가 나빠. 뭐가 먼저인지 항상 헷갈리지.
영구 : (얼굴 감싸 쥐고 우는)
철수(F) : 어떤 남자가 있었어. 어떤 여잘 만났는데... 잠시도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사랑했지. 그래서 일찍 결혼했고 아기도 낳았어.
그렇게 예쁜 앤 세상에 없을 거야. 근데 그 앨 누가 데려간 거야. 부모한테 말도 없이. (쓴웃음) 그런 걸 유괴라고 하지...
병원 건물들 공포스러운 위용으로 영구를 제압하는 듯, 철수의 목소리가 윙윙 울리는 듯하다.
철수(F) : 애 부모가 미친 듯이 찾아다니는데 아무도, 아무도 봤다는 사람이 없어.
게을러 빠진 발명가 지망생은 조악한 발명품에 애를 납치한 승용차 번호까지 적어 놓고 있었는데 말이야.
# 영구 얼굴 위로 안전모에 새기고 있는 번호 스팟처럼 점멸하고, 미친 듯이 아이를 찾는 남자 모습 오버랩 된다.
S#66. 우성카센터 앞 횡단보도 / 낮 (회상, 몽타주)
영구 시선으로 번쩍 스치는 장면들.
# 빨간 원피스 입은 아이가 승용차에 태워지는 모습.
# 영구 이상해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데, 경호가 와서 어깨동무하고 그냥 가자고 다그친다.
S#67. 공중전화 / 낮 (회상)
- 전봇대에 붙어 있는 예슬이 전단지 알아보는 영구
- 뜯은 전단지 든 채로 공중전화 거는.
영구 : (껄렁끼 약간) 내가 얘 본 것 같거든요, 차번호가 있긴 있는데, 근데 지금은 없고, 집에 있어서... 내일 전화 드리께요.
아, 네, 그러께요... 아, 그게 지금은...
태수(E) : 영구야! 만재 나왔어!!!
영구 : 씨~! 이 새끼! (전화기 던져버리고 소리 난 쪽으로 달려간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수화기. 그 안에서
예슬부(F) : (울먹이는 목소리) 선생님...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이리로 전화 한 통만 해주세요. 전화 한 통만...
가진 거 다 드릴 게요.
S#68. 거리 / 낮
# 시계 보며 초초하게 기다리고 있는 부부. 절망감에 털썩 주저앉아 우는 아내. (남자 얼굴 안 나오고)
# 그 시간 만재 사무실에서 멱살잡이 하고 난동 부리는 영구. 심하게 얻어맞고 때리고 싸운다.
철수(F) : 여자는 임신 중이었는데,
# 거리 일각에서 전단지 나눠주던 여자, 손에 피가 묻어 있다. 흰 치마엔 하혈의 흔적이 있다.
예슬모 : (손 내보이며) 여보... (길바닥에 피 흘리며 천천히 쓰러지는)
철수(F) : 간절하게... 간절하게... 너, 간절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니?
예슬부 : 여보!!!!!!!
# 멀찍이 떨어져 전단지 돌리던 예슬부 아내 쪽으로 뛰어간다. 전단지 화라락 바람에 흩날린다.
S#69. 병원 실외, 실내 / 밤
좀 냉정 찾은 영구. 진정하고.
영구 : 당..신... 누구야?
# 철수 핸드폰 장식품 뚜껑 열면 예슬의 사진 들어 있다. 천진하고 천사 같은 미소.
철수 : 여자는 애를 낳지도 못하고 죽었어. 그리고 두 번이나 파양당했던 그 아이도 길거리에서 죽는 거야. 아빠도 못 만나고...
슬픈 얘기지?
영구 : (차분하게 전화 끊는다. 손이 떨리지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진 전단지 꺼낸다.
그리고 거기 적혀 있는 원래 번호, 펜으로 직직 그어 버린 번호로 전화 건다)
신호음. 받는 소리.
철수 : (아무 말 없는)
영구 : (숨이 막힐 듯)
철수 : (그냥 전화 들고 있다) 그래 나야... 예슬이 아빠.
영구 : (눈 질끈 감는)
철수 : 너는... 알잖아... 그 맘이 어떤지...
S#70. 중환자실
연희의 상태 급박하다. 의사와 간호사 상태 확인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CPR 장비 들어가 가고 커튼 서둘러 치고 퍽! 퍽! 전기충격 주는 소리. 심폐소생술 하는 의사들.
S#71. 1인 병실 (실내)
천식기 무심하게 만지작거리는 손. 따라가면 순남이다. 환자복 입고 있다. 편안해 보인다.
S#72. 병원 실외 / 밤
체념과 복합적인 표정으로 앉아 있는 영구.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통장.
영구 담배 물려는데 입까지 가져가지도 못하고 툭 떨어뜨린다. 보는데 집을 힘도 없다.
영구(E) : ... 끝이 어떻게 되나요. 이... 게임.
S#73. 병원 실내
중환자실로 간호사들과 의사들 황급히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것을 냉하게 지켜보고 있는 철수.
철수(E) : (감정 없이) 글쎄... 해피엔딩일까?
중환자실의 화급한 풍경, 위급한 듯한 소리들 점점 작아지고 화면 전체적으로 밝아진다. 디졸브.
S#74. 판타지 (몽타주)
빨간 원피스 입은 소녀(예슬) 빈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세상은 하얗거나 햇살로 가득한 느낌이고 소녀의 빨간 원피스만 도드라진다.
한참 그네를 타고 내려온 소녀가 아장아장 예쁜 걸음걸이로 몇 발자국 떼면, 월산시장 안이다.
안에서 소녀를 향해 가식 없이 환하게 웃어주는 사람들.
우성카센터 앞 횡단보도 앞에 서는 소녀.
이때 검은 세단이 멀리서부터 소름끼치게 미끄러져 멈춰서고 문이 열리려는데,
그보다 앞서 누군가 소녀를 하늘로 번쩍 들어 안는다.
그제야 환하게 웃음 터뜨리는 소녀. 환한 미소의 영구다. (디졸브)
철수(F) : 절망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제 알겠어?
S#75. 병원 실외 / 밤
영구 가슴이 옭좨오는 듯 쥐어뜯고 있다. 전화기는 없고, 철수의 음성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
철수(E) : 그때 말해주지 그랬어. 어려운 일도 아니었잖아? 그랬으면 범인을 바로 잡았을 테고...
그럼 내 딸이, 아내가 그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영구 : (눈물로 범벅되어 비명 같은 괴성 지르는) 아, 아~ 악!!!!
철수(E) : 니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지... 넌 착한 놈인데 게을러서 죄를 지어.
영구 : (꺽꺽 울며) 너, 가만히 안 둘 거야. 죽여버릴 거야!! 아아~ 악!! 제발... 제발... 하나님... 제발.... 하나님!!!! (메아리처럼)
S#76. 수술장
수술준비하기 위해 모자와 호흡기 쓰는 연희 모습.
S#77. 수술 세면장
세면대 짚고 있는 수술복 입은 누군가의 손. 따라 올라가면 수술복 입은 철수다.
차가운 듯 슬픈 듯 언뜻 물기 보이는 것 같기도 한 철수의 얼굴. 수술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철수의 뒷모습.
S#78. 수술장
의식 잃고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연희. 마스크 쓴 철수. 연민인지 냉정인지 알 수 없는 철수의 눈.
레지던트(E) : 죄송합니다. 구연희 환자 계속 입원 권유했는데 환자가 지체하는 바람에...
철수 : 메스.
메스 잡은 철수의 손. 잠시 가만히.
철수 : 종교 있나?
레지던트 : 아...니요.
철수 : 그래도... 지금은 기도해줘.
메스 잡은 손 다가가며 엔딩.
첫댓글 내가 쓴 시나리오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놀랐다. 내꺼보다 좀 더 세련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ㅋㅋ 아무래도 난 시나리오니까 섬뜩한 게 좀 더 많지만. 어쨌든..... 내용이 슬프다. 의사는 살리겠지. 에휴.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