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205.6km)

[한필희]

2013년 4월6일 토요일 비와 강풍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우려는 그대로 현실이다.

예보대로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일단 가는데까지 가보고 정말 무리가 되면 중간에 접더라도 도전은 하는거다.

어제저녁 잠을 못이루다 간신히 살포시 잠이 들었는가 했는데 운영진 둘이서 한 잔 걸치고 들어와 부시럭 거리는 통에 잠이 깨고, 그 이후 코고는 소리와 기상악화로 인한 걱정 등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감기 몸살도 재대로 나아지지 않은 상황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온갖 좋지 못한 조건은 다 갗추고 있는 셈이다.

일단 아침을 든든이 먹어야 하기에 한 그릇을 억지로라도 다 비웠다.

타이레놀 두 알을 먹고, 이후로는 약을 필요로 하지 않기를 바랬지만 그래도 모르니 네 알을 더 챙겨 넣어갔다.

식당앞에서 셔틀을 타고 탑동 출발지로 향했다.

모두들 비장한 각오들이어서 이 악천후라해도 누구도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시내라 바람이 센줄 몰랐는데 해안가로 나오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바람을 막아주는 방향에서 출발을 기다리며 부느 바람을 원망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게 내 복이려니 하고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하필이면 이날이람 하는 생각이 든다.

천만 다행인지 일단 출발지점에서는 등바람이다.

제주의 바람은 일정한 방향이 아니고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이건 안심 할 사항이 아니고, 동그란 제주도를 도는데는 반드시 맞바람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두들 의기충천 완주를 다짐하며 출발선에 섰다.

나는 최대한 바람막이 앞에 있다 출발후 곧바로 치고 나갔다.

너무 빨리 가도 안되지만 너무 느리게 가도 안되기에 최소 6분주는 유지하는 전략을 짰다.

처음 출발은 비가와서 불편하기도 하고, 우비가 거추장스럽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땀도 덜나고 괜찮다.

채비는 반바지에 긴팔 하나 그리고 우비이다.

처음에는 주자들이 조심하느라 그러는지 앞서가지 않지만 난 그래도 어느정도 페이스는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호 해수욕장을 지나 10km지점 첫 간식대 가기전 장순동씨가 앞에서 가는데 평소보다 느리게 가고 있다.

울트라에서는 항상 선두주자인데 오늘은 편하게 간다고 하면서 나에게 너무 빨리 간다고 한다.

그러나 10km지점에서 보니 58분정도 나오는 걸로 봐서 6분주가 맞다.

숙소에서 일어나 큰거 해결하고 나왔지만 벌써 또 신호가 온다.

마침 주유소가 눈에 띄어 들어가 시원하게 해결하고 나오고 가던길을 재촉한다.

몸도 풀리고, 해결할 것도 하고, 바람도 밀어주니 속도가 더 나는 느낌이어 페이스를 조절하려 애쓴다.

17km지점 UFO를 닮은 레스토랑이 보이고, 곧 이어 동양콘도가 보인다.

이 콘도는 내가 강선에서 재직할 때 2번이나 제주도 수학여행 인솔하고 오면 묵는 숙소이기 때문에 익숙한 곳이다.

여기서 협재쪽으로는 수학여행 인솔하고 와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린 코스여서 더 낯이 익는 곳이다.

2011년도 초여름에 여기 길을 달리면서 주로에 U200이라는 글을 보고 여기가 울트라 200코스인줄 알고, 꼭 신청하여 와서 달리려고 생각해 두었던 곳이기도 하여 더 기억이 생생이 떠오른다.

더구나 내가 2008년 제주 감귤마라톤대회에서 첫 풀을 했을때도 초반코스는 좀 다르지만 이 부근은 같은 코스이다.

이 때만 하더라도 내가 제주 울트라 200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안했을텐데...

가는 길에 유채꽃이 만발하여 보기가 참 좋을텐데 강풍에 비가 내려 감상할 여유가 없어 안타깝다.

날이 밝아 오면서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그래도 아직은 초반이라 주자들의 의지는 꺽이지 않는 것 같다.

제주 감귤마라톤 풀코스 반환점이 있었던 언덕을 오르면서 그 때는 저 언덕이 왜 이리 경사가 심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지금보니 그다지 경사가 심하지 않은 보통언덕인데...

조금 지나 20km지점에 1시간 57분으로 페이스는 그대로 좋다.

이번에는 이온음료와 쵸코렛으로 영양보충하고 2개를 더 집어 가면서 먹어준다.

여전히 페이스는 6분주로 이제 몸에 익혀진 것 같다.

약 3~4km정도 더 가다 애월쪽에서 국도쪽으로 접어드니 파도와 바람이 조금은 덜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국도변을 달리다 다시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정말 해안도로는 죽음이다.

비바람에 해수까지 죽여주는 코스이기때문이다.

그래도 30km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이 도착한다.

역시 2시간 58분으로 정확하다.

일부러 그렇게 맞추려고 한 것도 아니지만 몸이 자동으로 맞춰주는 것 같다.

아직은 모든게 정상이고, 걱정했던것이 우려라는 건방진 생각까지도 들었다.

정말 다행이지만 일부 몇 구간만 빼고는 맞바람이 아니고, 밀어주기에 이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40km를 지나서 부터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여기까지도 4시간이 채 되지 않게 끊고 지나갔지만 이제 서서이 힘도 떨어지는 상황이 온다.

거리표지가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느낌상으로 6분주는 이미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가끔 바다바람의 방향도 바뀌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가운데 제발 바람이 등쪽으로 가기만을 기대하지만 상활에 따라 다르다.

그런데 이건 약과...

약6~7km정도를 지나서부터는 차귀도방향인데 대박...

해안도로로 접어들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지금까지의 등바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통이 따른다.

바람도 바람도 이렇게 세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앞으로 나가지 못할 지경이다.

설상가상 비가 바람과 합세하여 얼굴에 닿는게 침으로 꽂는 느낌이다.

이어서 강풍으로 인한 추위와 함께 해수의 짠맛까지 얼굴을 강타하니 완전 죽을 맛이다.

50km지점이 나올만도 한데 나오지 않은 가운데 출발한지 5시간을 훌쩍 넘기고, 여기서는 물도 한 잔 안주고 통과시킨다.

50km주자만 여기서 골인시키고, 나머지는 그냥 통과다.

따로 물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해안도로를 벗어났어도 여전히 바람은 정면에서 우리를 맛좀 보라는 듯이 계속 불어댄다.

54km지점에서 차귀도방향에 용을 쓰며 악착같이 앞으로 나가려하지만 강한 바람으로 앞으로 나가기가 힘든 가운데 모자가 훌렁 날라가 이거 주으러 가느라 10여m를 애쓰고 온 곳을 거슬러 가니 억울해 죽겠다.

이 때 마침 식당에서 운영진이 나오면서 여기 지나면 식사하기 곤란하니 여기서 꼭 먹고 가라고 한다.

마침 큰게 또 소식이 오던차에 잘 되었다 싶어 해물뚝배기 하나 시켜놓고, 화장실가서 해결하고 잠시 쉬고 있자니 해물 뚝배기가 나왔다. 역시 해물이라 국물이 시원하고 무엇보다도 따뜻한 것을 먹으니 참 좋았다.

밖에서는 요란한 바람소리와 함께 다시 또 저기를 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정말 꿈만 같다.

그래도 어쩌랴?

갈건 가야지...

12시 30분쯤 여기를 나와 다시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고군분투한다.

제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주기를 바라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헤쳐나간다.

황금 휴일이지만 이 날씨에 제주를 찾는 사람은 없는지 온통 사람구경하기가 힘들다.

날 만 좋으면 유채꽃 관광객들이 많은 시기이겠지만 하나도 보이지가 않는다.

어찌 어찌 60km지점을 지난다.

원래 번호 앞자리가 1로 시작하면 100, 2로 시작하면 200km인데 오늘따라 왜이리 1자가 부러운지...

그러나 한편으로 제주까지 와서 반토막만 하고 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가 않을 일이다.

그래도 끝이없는 해안도로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6km정도를 더 가서 해안도로를 벗어나면서 모슬포 방향으로 접어든다.

한참을 가다보니 앞에 시커먼 산이 덩그러니 모습을 나타내고 여기가 바로 산방산이다.

이어 70kmCP에서 다시 몸을 추스린다음 남은 여정을 재촉하는데 오후가 될 수록 기온이 더 떨어진다.

아마 속도도 떨어지고, 기온도 내려간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이제는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는 수 밖에...

한참을 가다보니 다시 해안도로가 나온다.

정말 싫은데...바다물이 부서져 바람과 함께 몸에 달라붙으니 이건 정말 좋지 않다.

바닥에 표지를 보지 못했을까? 직진하는데 뒤에서 부른는데 보니까 좌회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올라가서 보니 80CP가 있었고, 먼저 온 주자들이 쉬고 있는데 모두가 추위에 덜덜 떨고 있다.

선풍기형 난로를 쬐고 있었지만 한기가 들었는지 도저히 여기서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한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해도 도저히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바나나 1개와 쵸코렛 2개를 먹고 따뜻한 꿀차 한잔 마시고 약 5분이상을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사계리 정류장을 지나 서귀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방향을 전환하여 간다.

나도 조금 춥기는 하지만 아직 한기가 들 정도는 아니었기에 묵묵히 앞만 보고 달린다.

걸으면 춥기에 아직은 힘도 남아있어 악착같이 달려서 가지만 이제 힘도 많이 빠졌다.

안덕계곡 삼거리 지나 창천 삼거리에서 중문방향으로 계속 가다보니 90km CP가 보인다.

이제 서귀포까지는 약 10여km 여기가 100km주자들의 목적지이고 우리는 중간지점이자 바꿈터이다.

다행이 비는 이제 내리지 않으면서 훨씬 편하다.

그래도 우의를 벗으면 춥기 때문에 보온을 위해 끝까지 입고 있어야 한다.

중문초교를 지나 가는데 운동장이 인조잔디이다.

그런데 제주도 학교는 대부분 운동장을 인조잔디로 꾸민것 같다.

오면서 몇 군데 봤는데 지금까지 본 것은 다 그렇다.

그게 좋은건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바람많은 곳에서 먼지는 날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가다보니 앞에 느리게 열심히 가고 있는 사람이 있어 가까이 가보니 바로 강북지맹의 김영진이다.

전라도 출신 치과 의사인데 말이 참 구수하고 성격이 참 좋은 사람이다.

옆에가서 아는 척을 하고 같이 가자고 할까 하다가 그냥 편한대로 가게 두었다.

이제부터 나는 뛰다 걷다 쉬다를 반복하는데 영진씨는 꾸준하게 느린 조깅으로 가고 있다.

좀 쉬었다가 가자고 하여도 그러면 근육이 굳어져서 안된다고 그냥 그대로 간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결국은 월드컵 경기장에 같이 도착했다.

그 큰 구조물이 어찌나 반가운지...

도착은 6시 20분쯤 되었으니 예상보다 꽤 많이 지체된 것이다.

경기장 내가 아니라 광장에 쉼터를 마련하고, 100km주자들의 골인점을 여기에 설치하고 테이프를 준비했다.

우리는 바로 바꿈터로 가라 해서 가방찾아 옷 갈아입고 저녁을 먹었다.

근데 하필이면 화장실을 이용하여 식당을 차렸다.

바람을 막을 수 있어 좋긴 하지만 밥을 화장실에서 먹다니...

국수를 주는데 용을 쓰고 달려서 그런지 입맛이 없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밀어넣었다.

간신히 한 그릇을 비우고, 누가 같이 갈 사람을 물색하는게 다음 순서이다.

일단 짐 맡기고 보니 마땅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영진씨가 짐을 한참 꾸리고 있다.

내가 같이 가자고 하니 먼저 가라고 한다.

그런데 밤에 혼자 간다는 것은 정말 죽음이다.

누군가 이야기 상대가 있어야 서로 의지하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린다고 천천히 채비하라고 했더니 다시 생각하더니 이내 그러자고 하였다.

됐다.

어찌되었던 동지가 있어야 한다.

그 긴 거리를 밤새 가는데 혼자 가는 건 정말 힘들고, 다리보다 마음적으로 위안을 삼지 않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밤에는 주로 많이 걸을것 같아 채비를 단단하게 했다.

아래는 반바지에 긴 쫄바지 그리고 그 위에 면 추리닝 하나 더 입었고, 위에는 긴팔에 바람막이 입고, 춘마에서 준 쉐타 덧입고 우비를 입었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 조금만 뛰어도 금새 땀이 난다.

출발은 7시 30분쯤 주로로 나섰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한 사람도 상당히 많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아 우리 앞에는 10명도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바꿈터에서는 소식이 없더니 불과 1km도 안갔는데 큰게 또 마렵더니 급속도로 진행된다.

어슴츠레 한 곳을 찾아도 마땅한 곳이 없어 그냥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하니 사용하라고 하여 가서 시원하게 해결...

100km를 달려와서 조금 쉬었다고는 하나 다리는 천근 만근이어 속도는 포기하고, 꾸준한 느린 조깅과 걷기를 반복하기로 했다.

초반에는 6분주였지만 지금은 달릴때는 7~8분주, 그리고 걷기의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외돌개 입구를 지나 이제는 내륙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 같다.

그렇게 첫 CP 112km지점에 약 2시간이 약간 되지 않아 도착했다.

평균 가는 거리를 통박으로 재어보니 1시간에 약 6km는 조금 더 가는 수준인 것 같다.

종종 뒤에서 한 두명이 추월해가지만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것 같다.

밤이라서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고통속에 계속 달리다 걷다를 반복하면서 학교표지판만 눈에 들어오는데 중간쯤 위미초교를 지나고 한참가서야 120CP가 나온다.

왼쪽 발목 윗부분이 약간 불편하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고, 대략 출발한지 3시간을 좀 넘어가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원초교를 지나가는 걸로 봐서 여기가 남원읍이라는 것을 알겠고, 시내를 관통해 올라가는 길이 계속된다.

바람도 내륙이어 그런건지 아니면 잦아들었는지 훨씬 덜하여 달리기에는 편하지만 이게 내일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

약 1~2km달리다 500m걷고 하는 전략으로 갔지만 이도 여의치 않아 125km지점에서는 1km달리고, 500m걷고를 반복해본다.

그래도 영진씨랑 같이 가니 훨씬 좋다.

이 지루한 국도길을 혼자 가려면 엄청 힘들텐데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나와는 달리는 타입이 조금 달라 나는 좀 빠르게 달려가서 앉아있으면 따라오고 같이 갈때는 이야기하면서 걷고 하는 타입으로 갔다.

125km바닥표시를 보면서 시간을 보니 대충 4시간가량 지난것 같아 이 속도면 150CP에 후반 체력저하로 1시간을 더 잡아도 5시간인데 그 때 시각이 11시 30분쯤이었으니 4시쯤이면 도착할 것 같다.

이렇게 제주도 주로에서 첫날을 보내면서 앞만바라보면서 가고 있다.

2013년 4월 7일 일요일 흐린후 맑다 흐리다 반복

국도를 계속 따라 가면서 가마초 입구쯤에 130CP가 마련되어 있다.

벌써 차수를 넘기고 2일차로 들어선 시각에 도착한 것이다.

지루한 국도길이지만 그래도 바람이 훨씬 덜해서 참 좋기는 하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이 되자 마을도 조용하고 주로에는 거의 우리들만 달리고 간간이 차가 오갈 뿐이다.

이 지루한 밤길을 혼자간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이후 140CP까지는 정말 큰 길을 따라 가는데 거의 차도 없는데다 주변 마을도 보이지 않아 더 더욱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140CP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없고, 대회 차량만 덩그러니 있고, 물좀 달라고 하니 손짓만 한다.

우회전하여 불빛이 있어 가보니 이런 CP가 아니네...

조금 더 가다보니 천막이 쳐져있고 그래서 저기다 하고 가보니 속은 완전히 비워져 있고, 윷놀이 판과 맥주병만 나뒹굴고 있었다.

아마 동네사람들이 놀다가 불도 안끄고 그냥 갔나보다.

정말 목은 마른데 물도 없고 다리는 아프고 하여 잠깐좀 쉬었다가 가자고 하여 길 가 턱에 걸터앉아 있다가 갔다.

120km지난 지점부터 헛구역질이 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그 정도가 더 잦아진다.

이건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들은바로는 간에 무리가 가서 그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130km지점에 컵라면이 있어도 먹지 않고 왔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CP가 보인다.

꿀물에 바나나를 하나 들고 베어무니 헛구역질이 나더지 급기야 토가 나온다.

바닥에 조금 흘리고 얼른 종이컵으로 바쳐서 받아냈다.

먹은게 없으니 물만 나온다.

그래도 억지로 바나나 하나를 밀어넣는다.

먹지 않으면 못간다는 것을 알기에 억지로라도 밀어넣으면 소량이라도 흡수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한 사람이 포기한다고 하였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까우니 그냥 참고 가자고 하니 더 이상은 도저히 못가겠다고 하면서 과감히 접는다고 하였다.

오죽하면 중간에 접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건 아니다 싶다.

CP를 나서면서 해안가 도로를 가는데 이제는 달릴 힘이 없다.

좀 빠른 걸음으로 가자고 하면서 가는데 성산 10km표지판이 나온다.

정말 혼자라면 절대 못 걸어갈 거리이지만 둘이기에 서로 의지하면서 가니 정말 위안이 된다.

대략 시간 계산을 해보니 5시정도 도착할 것 같다.

애초 150km인줄 알았는데 154.3km지점이라고 한다.

5시 도착하여 식사하고, 눈좀 붙이고 6시쯤 출발하자는 전략을 이야기하면서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여 가다보니 다음 표지판에서 성산 7km지점이 보이고 여기까지 오는데 2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여기서도 너무 빨리가다보면 퍼질지도 모르니 속도를 좀 늦춰 가자고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하면서 길고 긴 해안도로를 간다.

적막강산인 가운데 간간이 개 짖는 소리가 우리가 있다는 존재감을 알리고, 그 소리가 왠지 싫지는 않다.

물이 빠져서 인지 바람이 잦아서인지 여기쪽은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멀리 불빛이 보이면서 저기가 성산쪽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길이 꼬불꼬불하여 거기까지 가는데 왜 이리도 멀고 지루한지 모르겠고 성산쪽으로 들어서니 바람이 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150CP에 도착하니 먼저 온사람들과 운영진들이 식당에서 밥먹는 사람 누워자는 사람들이 꽤 많다.

먼저 한 숨 자고 밥 먹으려고 하니 그냥 밥 먼저 먹자고 한다.

헛구역질을 참으면서 성계 미역국을 꾸역 꾸역 밀어 넣는다.

안먹으면 도저히 갈 수 없는 거리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밀어넣고 바로 식탁 아래로 몸을 뉘였다.

잠깐동안 비몽사몽간에 잤는지 안잤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6시 10분전에 일어나 갈 채비를 했다.

역시 영진씨와 같이 가자고 하여 같이 나가는데 도희형도 지금 간다고 하였다.

식당을 나온 순간 바람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5시에 들어올 때는 이리 심하지 않았는데 그새 바람이 엄청 세어진 것 같다.

지금까지의 바람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정말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세다.

이래가지고 제한 시간안에 들어갈까 의문이 생길 정도이다.

6시 10분쯤 출발을 했으니까 딱 10시간 남았는데 시간당 5km는 가야 한다.

평상시의 걸음으로는 충분하지만 탈진된 상태에다 앞에 맞바람 상황에서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도희 형은 울트라의 베태랑이기 때문에 저 형만 따라가면 무조건 완주한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따라가는데 영진씨가 자꾸 뒤로 쳐지더니 결국은 자기 페이스대로 가기로 한다면서 따라갈 수 있다면 먼저 가라고 한다.

어찌나 바람이 센지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겠는데 가끔 보니 점점 더 멀어진다.

나라도 악착같이 뒤에 붙어 따라가는데 우비가 펄럭이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모자위로 우비 모자를 꽉 잡고 악착같이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나가기는 하는데 정말 힘들다.

딱 여기서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간간이 왔다갔다 하는 대회 진행 차량이 마치 그만 고생하고 타라는 것 같이 느껴진다.

몇 번 접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때마다 마음을 고쳐먹는다.

'고통은 한 순간이지만 영광은 영원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온갖 긍정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면서 소리도 질러본다.

그리고 완주후의 나의 모습을 그리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것도 재차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이 와중에서도 도희형은 간간이 달려주는데 나도 뒤쳐지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달려 같이 보조를 맞춰본다.

가는 내내 맞바람이라고 하니 걱정도 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앞서가는 여성주자가 힘겹게 걸어가는데 보니 외국인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홍콩여자라고 한다.

참 여자가 대단하게도 이 바람을 이기고 가고 있는데 결국 이 여자도 완주에 성공하게 된다.

대회 진행차량이 가면서 바나나 3개를 준다. 나와 도희형 그리고 외국인 여성과 하나씩 나눠 먹으면서 가는데 한입 베어무니 헛구역질이 나면서 급기야 아침에 먹은 미역국까지 다 토해낸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렇게 토하고 나니 속이 편해지면서 더 컨디션이 회복되는 느낌이다

아침의 첫 CP는 170km지점에 있었다.

6시에 나와서 여기에서 시간을 보니 8시 40분이다.

약 15km를 왔는데도 이 시간이라면 5km당 1시간이 안걸린 셈이다.

뒤에서 어느 주자가 추월하여 가는데 이 강풍속에서도 달리다 걷다를 반복한다.

나도 해보니 되었다.

어느정도 멘탈이 회복되었는지 아니면 아까 바나나 한 쪽이 힘이 되었는지 되는대로 가보자고 생각하고 간다.

여전히 헛구역질이 나면서 또 한 번 토를 하는데 이제 속이 비어서 그런지 물만 나온다.

이제부터는 제주로 가는 도로로 접어들면서 바람이 좀 덜 하는 느낌이다.

없는게 아니라 아까처럼 세기가 덜하다는 것이고 여전히 맞바람때문에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이다.

길고 긴 제주까지의 거리를 가야 하는데 이제는 혼자다.

간간이 뒤에서 힘겹게 달려 추월하는데도 이젠 나도 힘이 다 떨어졌다.

이젠 거의 걷는 모드로 가는데 속도를 좀 빨리해서 걸어갔다.

가다보니 강진의 희주씨가 보인다.

꿀커피라고 주지만 커피를 못 먹는다고 물좀 달라했더니 물은 또 없댄다.

만장굴 입구를 지나 김녕을 지나 교회앞에 180CP가 보인다.

여기서 또 억지로 바나나를 밀어 넣고 콜라로 탄산을 섭취하여 소화를 시켜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도 속에서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바로 앉은 자리에서 죄다 토해버렸다.

안쓰러운 눈길을 뒤로 하면서 그래도 이제 남은 거리 25km인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악착같이 기어서라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앞으로의 길은 너무나도 멀다.

최소 5시간은 가야 하는데...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제는 정말 달릴 힘이 없다.

먹은게 없으니 멘탈이 떨어질 수 밖에...

그래도 걷기만 하면 더 다리가 아프기에 조금씩 달려가지만 걷는 속도보다 더 느린것 같다.

하나 둘 뒤에서 추월해가도 먼저 가시라고 할 밖에...

묵주기도를 하면서 하염없이 걷는다.

묵주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이제는 2km가다 쉬고 하던게 잦아져서 1km가다 걸터앉아 쉬었다 가곤 한다.

조천쪽으로 길을 들어서면서 면소재지 직전에 대회 운영자인듯한 분이 바나나와 꿀홍삼드링크를 주면서 남은거리 14km라고 하는데 좀 이상하였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 바나나를 토하지 않으려고 조금씩 삼키면서 한참을 들고 오면서 먹어준다.

시내를 지날때 종광이가 봉고차에서 나를 보고 '한필희 힘! 하고 외치면서 자기는 130km에서 접었다고 한다'

나중에 이상하여 코스도를 꺼내 보니 거기서 한참을 왔어도191km지점이었다.

이제 남은거리 14km인데...

조천읍에서 조천초를 지나 194km지점 조천중학교까지는 왜 그리 먼지...

입맛도 없고 들어가는 것도 없어 쵸코렛 하나만 먹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말이 재촉이지 이건 뭐 흐느적 거리는 수준이다.

이제 남은거리 약 10여 km 이고 1시가 채 못된 시각이다.

주로도에서 다음 표지가 삼향 파출소까지 2.7km인데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다.

이젠 정말 걸음도 빨리 걷지 못하고 완전히 늘어져서 힘들게 걸어가고 있다.

홍콩여자가 내가 앉아 쉬는 동아 앞서 가면서 화이팅을 하여주고 나도 엄지손가락을 들어 짱이라고 응답한다.

가는길에 제주시청에서 나왔다면서 감귤쵸코렛을 주길래 하나 받아 먹고 이 힘이라도 기대해본다.

시내를 거쳐 가는데 이 길은 엄청 멀다.

먼 것이 아니라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 발바닥도 어디가 물집이 생겻는지 불편하고 왼쪽 발목도 걸을 때 불편하다.

뭔가 근육에 무리가 간 것이 틀림없다.

화북초 버스정류장이 딱 200km지점이다.

나머지 5.6km인데 2시가 넘어간다.

이대로 걸어가도 3시 10분이면 도착하는데 아직도 한 시간을 더 걸어갈 생각을 하니 꿈만 같다.

정말 저기 다니는 차를 타고 가고 싶은 생각이 꿀떡같다.

복잡한 차도와 인도를 번갈아 타면서 제주교대를 지나 박물관을 지나 탑동쪽으로 하염없이 내려가는 도로를 타고 간다.

동문로터리 203.4km지점...

이제 나머지 약 2.2km인데 뒤에서 한철호형이 달려내려간다.

노인양반이 무슨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차량사이로 어렵게 힘들게 내려가니 간간이 박수를 쳐주는 사람이 있는데 걷고 있는 모습이 좀 쪽팔리지만 어쩔 수가 없다.

드디어 탑동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복잡한 길을 가보니 길을 잘못 갔다.

한 블럭 더 가서 내려가야 하는데...

다행이 관계되는 사람이 안내를 해주어 탑동쪽으로 가보니 저기 앞에 피니쉬라인이 보인다.

골인세레머니...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래 내가 분명 완주한 거야...

꿈만같다.

그 세찬 비바람과 싸워 내가 이긴거야

난 절대 지지 않겟다던 내 의지의 실천이 된거야....

비록 만신창이가 된 몸이지만 기분은 새털처럼 가볍다.

완주기록 32시간 58분 35초로 기록해준다.

여러 사람의 축하를 뒤로 한채 싸우나에 몸을 푹 담구니 세상이 부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