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매화초옥도
매화
우리집 근방에서 들떼놓고 ‘부잣집’이라고 하면 우리집 옆집을 두고 하는 말인 줄을 조무래기들도 다 안다.
집도 집이지만 등이 굽은 소나무, 링거주사 병을 수두룩이 달고 있는 수령이 백 년도 넘었다는 모과나무, 본래 제자리인 양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는 그러나 지조를 굽힌 기암괴석, 오종종한 감들이 쪽빛 하늘을 이고 얼굴을 붉히는 고비늙은 감나무, 그 가지에 앉아 연방 꽁지를 치키며 깍깍거리는 까치, 산죽에 가려진 바위 밑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이것만 해도 부잣집이라는 택호가 붙을 만하지만 부잣집인 까닭은 그밖에도 많이 있다.
난숙한 삼십대 여인들의 농염한 자태가 어우러졌다고 할까. 금잔화․은대화․파초․벽오동․만향․부용․살구꽃․복사꽃․오얏꽃․동백꽃․라일락, 그리고 담 너머로 남의 집 안뜰을 훔쳐보는 해바라기…. 이름 모를 온갖 꽃들이 한철을 다투다가 그대로 눌러 앉아 한세상 영화를 누린다. 이런 꽃들과 같이하기가 부끄러웠는지 보이지 않는 꽃이 한 가지 있다.
대원군의 주위에 조면호(趙冕鎬)라는 지조 높은 선비가 있었는데, 매화를 혹애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이 매우 구차하여 월동에 필요한 매실(梅室)이 따로 없었던 모양이다. “安得梅花不凍乎 어떻게 매화를 얼지 않게 할까. 今年又見梅花凍 올해도 매화가 어는 걸 또 보겠구나!”라는 그의 시가 대원군의 눈에 띄게 되었다. 대원군이 이 사람을 돕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이 사람의 결기 있는 성미를 전일에 겪어 봐서 익히 아는 터이라 섣불리 돈을 보냈다간 물리칠 게 번해서, 궁리 끝에 ‘호매전’(護梅錢)이란 명목으로 삼천 냥을 주었다고 한다.
호매전 이야기를 옆집 주인에게 한 번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 집 정원에 동방제일지(東方第一枝)라는 매화가 빠진 건 마치 첫 획을 빠뜨린 명필같이 느껴졌기에, 필순(筆順)은 이미 틀려 버렸으나 늦게나마 그 첫 획을 긋듯 매화 한 가지를 더하면 작히나 좋을까 싶어서 호매전을 아느냐고 에둘러 말하려 했던 거였다. 하지만, 담장에 바짝 붙어 있는 이 집 측백나무가 남의 집의 하나뿐인 숨구멍 같은 창문을 사철 틀어막다시피 하는데도 본체만체하는 걸 보면, 청빈한 선비에게 아무런 바라는 것도 없이 큰돈을 희사한 통 큰 얘기를 해봤댔자 쇠귀에 경 읽기가 될 것 같아 그만뒀던 거다.
또 널리 알려진, 임화정(林和靖 : 名 林逋)의 「산원소매(山園小梅)」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어 보려다가 그것도 그만뒀다.
많은 꽃은 떨어졌어도 홀로 왁자하게 피어서
풍정은 작은 정원을 다 차지했다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는 물 맑고 옅은데
어둠 속 향기 떠돌고 달은 아슴푸레하다
衆芳搖落獨喧姸
占盡風情向小園
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
― 연작 2수의 첫 번째 수
이 시의 후반부 두 구는, 이보다 앞선 오대(五代) 때 건주(建州)의 시인 강위(江爲)의 잔구(殘句)로 알려져 있는 “죽영횡사수청천(竹影橫斜水淸淺) 계향부동월황혼(桂香浮動月黃昏)”이라는 시구와 글자 두 자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표절의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죽(竹)’을 ‘소(疎)’로 ‘계(桂)’를 ‘암(暗)’으로 바꿈으로써 “쇠를 점용(占用)하여 황금을 이루었다.”(占鐵成金)라고 극찬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말에 냉소를 짓는 나는 자연스레 말이 많아질 것이고 보면, 그 사품에 임화정의 신변에 관한 얘기가 툭 튀어나오면 어쩌나 싶어 이 시에 대한 얘기 또한 그만뒀던 거다.
임화정은 부패한 정치가 싫어 처음부터 환로(宦路)에 뜻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신불취(終身不娶), 떠꺼머리총각으로 생을 마친 사람이었다. 항저우(抗州)의 서호(西湖) 가운데 있는 고산(孤山)에 오두막을 짓고 이십여 년 간 성시(城市)에 나가지 않았는데 집 주변에 360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어 놓고 매화에 붙어살다시피 했다. 가솔이라고는 고작 백학과 사슴 한 마리를 두었을 뿐인데, 손님이 오면 학이 공중에서 울어 누가 온 줄을 알고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술을 사러 보내기도 했다. 이 고고한 기인을 가리켜 당시의 사람들은 이르길,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사슴을 가솔로 삼았다.”(梅妻鶴子鹿家人)라고 했다.(『宋史新編』『東都史略』『隆平集』『名臣碑傳琬琰集』) 탈속한 이런 얘기 또한 그의 귀에 들리겠는가?
“학은 솔가지에만 두루 둥지를 틀고 사람은 사립문에 찾아오는 일이 드물다.”(鶴巢松樹遍 人訪嵌門稀 ―王維, 「山居卽事詩」)던데 어찌하여 매화는 이 쓸쓸한 노야의 서재 앞에서 이리도 청향이 표일한가. 황감하고 부끄럽고 불안하다. 얼음과 눈에 묻혀 어둡고, 겨울의 끝자락 봄의 들머리여서 어둡고, 첫새벽에 달이 몽롱하여 어둡고, 불우한 은사의 집 돌담 옆이어서 어두운 그런 때 그런 곳에서라야 향기가 한결 더 높아진다는 꽃이 매화가 아니던가. 석숭(石崇)이나 도주의돈(陶朱猗頓) 같은 부자도 부럽지 않을 옆집.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그 천자만홍이 다투어 교성이 자지러지건만, 해바라기 따위가 남의 집 내정(內庭)을 도도히 넘어다보건만 홀로 자적한 우리 집 매화. 그 침묵은 누구를 위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