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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 여성 재즈 보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아이콘들이다. 하지만 나윤선의 목소리와 창법은 이들과 많이 다르다. 그의 노래는 날개를 단 듯 가볍고 높다. 깊은 산속 샘물처럼 맑고 투명하다. 동양인으로서 세계적인 재즈 디바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다름’에 있다.
“1995년 스물여섯 나이에 뭣도 모르고 재즈 공부하겠다고 프랑스로 날아갔어요. 공부하다 내 목소리가 재즈와 너무 안 맞는 것 같아 그만 두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교수님이 미국 정통 스타일과 다른 유럽 여성 재즈 보컬을 들려줬어요. ‘이런 것도 재즈인가요?’ 물었더니 ‘네 목소리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었죠. 이후 할 수 있는 대로 맘대로 했어요. 재즈에 무지했던 게 오히려 도움이 된 거죠.”
2001년 프랑스에서 1집 앨범을 발표한 이후 유럽 재즈계의 눈길을 한몸에 받아온 그는 2008년 독일의 세계적인 재즈 레이블 ACT와 계약을 맺고 6집 [Voyage]를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ACT에서의 두번째 앨범인 7집 [Same Girl]로 돌아왔다. 9월 24일 독일, 프랑스 등 30개 나라에서 동시발매하기에 앞서 국내 팬들에게 먼저 선보인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장기인 스캣(목소리를 악기 삼아 즉흥연주를 하듯이 흥얼거리는 창법)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중동 음악의 선율을 흥얼거리는 ‘Breakfast In Baghdad’와 헤비메탈 밴드 메탈리카의 곡을 재해석한 ‘Enter Sandman’이 대표적이다. 특히 ‘Enter Sandman’의 후반부에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그의 음색은 신들린 듯하다.
“두 곡 모두 단 한번에 녹음을 마쳤어요. 심지어 ‘Breakfast In Baghdad’는 아침에 처음 악보를 받고 오후에 바로 녹음했어요. ‘Enter Sandman’을 두고 뜻밖의 선곡이라며 놀라는 분이 많은데, 사연이 있죠. 스페인 공연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쉬는 시간에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가 이 곡을 치고 있더라고요. 마침 나도 잘 아는 곡이어서 흥얼거리며 따라불렀더니 그가 놀라면서 ‘이 곡을 알아? 영화 속 장면에서 연주하기로 해서 연습하는 건데, 우리 이거 한번 녹음해볼까?’ 하는 거예요. 처음엔 농담이었는데 어쩌다가 정말로 녹음하게 된 거죠.”
이처럼 그의 음악세계에는 정해진 틀이란 게 없다. ‘엄지 피아노’라 불리는 아프리카 민속악기 칼림바를 직접 연주하며 부른 영화 [Sound Of Music] 삽입곡 ‘My Favorite Things’,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깊은 울림을 자아내는 ‘강원도 아리랑’,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재탄생시킨 포크 가수 잭슨 프랭크의 명곡 ‘My Name Is Carnival’ 등을 들으면 그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진다. 그에게 있어 재즈는 울타리를 자유로이 넘나들며 맘껏 뛰노는 놀이터와도 같다.
나윤선은 전세계를 다니며 공연을 한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이고 지난 6월에는 세계 3대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캐나다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도 진출했다. 1년 중 3분의 1만 한국에서 머물고 3분의 2를 외국에서 보내는 ‘유목민’이다.
“늘 어디와 어디의 중간에 있는 ‘온 더 로드’ 상태가 그냥 삶이 됐어요. 하루에 비행기를 세번이나 탄 적도 있는 걸요? 지금이 몇시며 여기가 어디인지 헷갈릴 때도 있죠. 그렇게 많은 곳을 다녀도 관광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어요. 그래도 무대 위에 설 때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늘 새로운 관객을 만난다는 건 정말 벅찬 일이죠.”
그는 “다른 어떤 나라 관객보다도 뜨겁고 열정적인 한국 관객들과 만나는 걸 특히 좋아한다”며 “한국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폭발적인 반응을 경험하거나 전해들은 외국 음악 동료들이 한국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올 정도”라고 귀띔했다.
그는 요새 월드뮤직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칼림바, 셰이커, 퍼커션 등 아프리카·라틴 민속악기는 물론 인도 전통음악과 리듬에 푹 빠져 유튜브 동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다. 기회가 되면 우리 국악도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고 했다.
“한동안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갈길이 아직 멀어서요. 이제 41살이 됐는데, 80대가 돼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쉴라 조던처럼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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