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시작 신간 보도자료]
[천년의詩 015]박재연 시집
『쾌락의 뒷면』
수벌거리는 시
경험의 층과 결과 속에 대한 남김없는 누설-
환각에 기댄 듯한, 수줍은 향락에 기댄 듯한 ‘수벌거림’을 노래한 박재연 시인의 첫 시집!
시인은 병 없이 앓는다. 이 시집의 주인도 병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태(胎)를 가졌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출발점이 거기 있다면 나는 무심코 동의하겠다. 시인의 얼굴에서 시작되는 저 ‘세계의 밤’을 드로잉한 듯한 무정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수벌수벌’은 사전에 없는 비표준적인 어휘다. 세상은 이런 언어군을 방언이라 부른다. 그러나 수벌수벌은 자신이 방언인 줄 모르는 방언이다. 이미 방언이 아니라는 뜻이 아닐까. 시가 자신이 시인지조차 모르면서 존재하듯이 말이다. 나는 박재연의 시적 말하기 방식이 이 ‘수벌거림’의 자기 방언을 껴입고 있다고 본다.
자신의 부스럭거림을 딛고 있는 듯, 환각에 기댄 듯, 수줍은 향락에 기댄 듯한 수벌거림을 통해 시인이 불러온 시적 주체는 다름 아닌 시인 자신이 아니었던가. 부러워라. 자신의 몸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견딜 수 없는 시적 본능은 은근한 질투를 자아낸다.
■ 시인의 말
시를 쓰기 전에는 내가 나를 몰라
내 탓을 남의 탓으로 돌리며 우왕좌왕 살았다
내 안의 나는 만나보니 낯설고 반가워라
지금부터 사귀자
겨우 19살에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일갈한 랭보보다는
‘시 쓰는 것은 여러 해 기다려 오랜 세월 깊이와 향기를 모아서 써야 한다’는
릴케를 내 편으로 삼아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물어 같이 흘러가겠다
두 오빠에게,
희망이 많아서 미안하다
■ 약력
강원도 인제 출생. 상지영서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방송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강원작가』 등단.
국선도 사범.
[차례]
I
부론강 ──── 13
산 하나가 ──── 14
도화, 바람나다 ──── 15
이니스프리는 멀다 ──── 16
방부제 ──── 18
쾌락의 뒷면 ──── 19
호상 ──── 20
수국 ──── 21
내 안의 칼 ──── 22
우산동 블루스 ──── 23
시는 ──── 24
빈집 ──── 26
얼큰이 칼국수 ──── 27
전봇대 아래 ──── 28
웅어 ──── 29
불혹 ──── 30
세상이 낯설다 ──── 32
II
비비추 ──── 37
수목한계선 ──── 38
시인은 그런 거야 ──── 40
빗소리 ──── 42
삼합리에서 ──── 44
시의 얼굴 ──── 45
가을 간다 ──── 46
외로운 날은 물구나무를 선다 ──── 48
돌 깨는 남자 ──── 50
숫스러움을 놓치다 ──── 52
너를 기다리는 동안 ──── 54
석경묵집에 는개 내릴 때 ──── 56
장미 ──── 57
가뭄 ──── 58
고인돌 ──── 60
송화 ──── 61
子夜歌 ──── 62
III
그날 ──── 67
봄눈 ──── 68
물방울이 닿는다 ──── 70
돼지머리 ──── 71
천장화 ──── 72
입관 ──── 74
봄비 ──── 76
가을비 ──── 77
비스듬히 ──── 78
봉천네 ──── 79
개복숭아 술빛을 보다가 ──── 80
공터 ──── 82
한 달에 한 번 ──── 84
반곡역 ──── 86
독서 ──── 88
니체 최후의 고백 ──── 90
화류항사 ──── 92
숨어 살기 좋은 ──── 94
심검당을 놓치고 ──── 96
IV
궂은비 내리는 날 ──── 99
흥야리 야담 ──── 100
야외수업 ──── 102
대학시절 ──── 103
우리는 좀 참아야 한다 ──── 104
돈 ──── 105
가수 ──── 106
화장 ──── 108
매지호에서 ──── 110
천렵 ──── 112
빗방울인 척 ──── 113
박물관 뜰 앞에서 ──── 114
시가 뭐길래 ──── 115
절정 ──── 116
달팽이의 전언 ──── 117
기차가 자미원역을 지나갈 때 ──── 118
나는 누구인가 ──── 120
[해설] 수벌거리는 시 | 박세현 시인 ──── 121
■ 추천글
요즘 시들은 말이 한 짐이고 개미굴처럼 복잡해서 잘못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박재연의 시편들이 보여주는 절제와 그 자연스러움은 거의 체질적이다. 냇물 같다. 박재연에게 넓게는 그가 발붙이고 사는 자연과 세상, 더 들어가면 삶의 무대인 원주 일대가 시의 공단이고 공장이다. 그는 거기서 “우산공단 한일전자 정문으로/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이쁜 아줌마들/퇴근길에 싱싱하게 피어나/꽃처럼 웃으며 택시를 탄다”(「우산동 블루스」)에 나오는 ‘이쁜 아줌마’ 같은 시를 생산해 세상에 내놓는다.
누군가 시의 바깥에는 세상이 있고 안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일 없는 삶과 생이지만 그것에서 조금 비켜나 그것들을 바라보는 여유와 함께, 마치 천연염료로 물들인 듯한 부드럽고 담백한 언어들과 행간의 음악성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시를 한결 돋보이게 한다. 누구나 노래를 좋아한다. 그러나 무엇을 불러도 노래가 된다면 이 또한 득음의 경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상국(시인)
박재연의 시는 ‘물의 마음’을 읽고 싶어 한다. 이 혼탁한 세속에서 ‘물의 마음’을 읽는 일이 가능할까. 시인은 이 질문을 반복해 던지며 ‘수면의 얼굴’과 ‘물의 표정’을 살피고, 때로는 스스로 ‘강물 같은 꿈’이 되어 ‘강물의 연가’를 부른다.
물의 마음을 읽는 일은 ‘까무룩한 기다림’을 동반한다. 하지만 시인은 “산 하나를 허물어 만화 같은 생을 부여”하는 세속의 한복판에서 “산을 향한 경배”를 멈추지 않는다. 늘 말보다 미소가 먼저인 시인은 이번 첫 시집을 통해 물의 마음을 읽는 길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이홍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