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부지런한 집은 어느 집이나 집안도 깔끔하고 아이들의 표정도 환하고 남편의 일도 잘된다. 그러나 여자가 게으른 집은 모든 것이 칙칙하고, 여자가 늦잠을 자면 집안 식구 모두가 늦잠을 자게 된다. 그러므로 한집안의 분위기는 여자에게 책임이 있다. 물론 남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든 환경을 만드는 데는 여성의 정신이 더 많은 작용을 한다.” 최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경우를 보면 ‘어머니로서의 여성’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태준, 태수, 선희 3남매의 ‘엄마’(정애리 역)는 남편이 사망한후 세 남매를 키워내며 집안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그의 이름은 드라마 어디에도 없지만 억척스러운 ‘엄마’로 인해 두 아들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이 드라마는 가족해체 시대에 복고적인 가족주의를 ‘설교’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가문경영’의 측면에서는 많은 시사점을 주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수많은 명문가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가문의 토대를 쌓는 이른바 ‘가문주식회사의 CEO’의 존재 여부다. 가부장적 신분사회에서 대부분 명문가의 경우 그 역할을 남성이 맡았다. 하지만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도 수많은 여성들이 주역 못지않은 조연 역할을 했다. 이용태 삼보 창업주의 선조인 재령 이씨 운악 이함(영해파) 가문은 석계 이시명(1590~1674)이라는 학자를 배출하면서 명문가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석계는 운악의 셋째 아들로 퇴계의 정통 학맥을 이은 인물인데, 병자호란 때 나라가 치욕을 당하자 경북 영양 석보에 은거하며 살았다. 이 가문은 석계와 그의 아들 갈암 이현일, 갈암의 아들 밀암 이재 등 3대에 걸쳐 퇴계 학맥을 잇는 학자를 배출하면서 영남의 명가로 우뚝 서게 된다. 여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석계의 부인인 정부인 장씨(1598~1680·아들인 갈암 이현일이 이조판서를 지내 정부인의 품계를 받음)다. 계모로 들어온 안동 장씨는 효행, 학문, 예술 등을 고루 갖춰 신사임당에 버금가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장씨는 퇴계 학맥을 이은 경당 장흥효의 외동딸로 아버지에게 <소학> 등을 배워 시문과 경사에 능했다. 그렇지만 여성으로 벼슬길에 나갈 수 없었던 장씨는 집안에서 그 역할을 찾았다. 특히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고 있던 석계에게 후진양성에 힘쓸 것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장씨는 은둔생활을 하던 석계에게 “공께서 세상을 버리고 숨으셨으니 마땅히 시와 예로써 자손들을 가르치셔야 할 것입니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자칫 산촌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낼 수 있었던 석계는 부인의 내조에 힘입어 학자로서 거듭났을 뿐 아니라 자녀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결국 7남3녀의 자녀 중 존재 이휘일, 갈암 이현일, 항재 이숭일 등은 퇴계 학맥을 잇는 학자가 됐다. 장씨는 아버지와 남편, 아들과 손자 등 4대에 걸쳐 정통 퇴계 학맥을 잇게 한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바로 석계의 넷째 아들인 항재 이숭일의 12대손이다. 그는 소설 <선택>에서 장씨를 주인공으로 그리고 있다. 장씨는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여중군자’(女中君子) 소리를 들었던 여성이다. 당시 사대부들이 이름도 불려주지 않았던 여성에게 그들의 이상형인 군자 칭호를 부여한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가문경영에 일가를 이룬 장씨를 현대 기업경영에서 보자면 최고의 인재를 키워낸 뛰어난 ‘인재전략 컨설팅’으로 금녀의 벽을 뛰어넘은 최초의 여성 CE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남자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하더라도 그 남자는 다름 아닌 여성(어머니나 아내)이 지배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요즘은 세상도 남자도 모두 여자가 지배하고 있는 추세지만…. |
출처: 최효찬의 자녀경영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로마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