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의 향연을 느끼게 하는 색맹 안경의 비밀
<KISTI의 과학향기> 제2950호 2017년 06월 05일
건네받은 안경을 쓴 한 젊은 남성이 아들의 그림을 보고는 눈물을 흘린다.
이어 남성은 “이렇게 다양한 색이 있는 줄 몰랐다”며 “멋진 그림”이라며 감동을 전한다.
적록색맹을 위한 색 보정 안경을 개발한 회사의 광고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색의 향연이 색각이상자에게는 그 자체가 ‘감동’일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인간에게 온전히 색을 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림 1. 색맹안경은 색채를 정확히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색맹인 사람 모두가 사진처럼 흑백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출처: Shutterstock)
인간이 눈으로 식별 할 수 있는 색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색각이상’이라고 한다. 색은 망막에 있는 원추세포가 결정한다.
원추세포는 약 700만개로 크게 적색과 녹색, 청색의 가시광선을 인식하는 3종류로 나뉜다.
3 종류의 원추세포는 마치 삼원색처럼 색을 배합하고 배합 비율에 따라 다양한 색을 인식한다.
한 종류의 원추세포는 약 100가지 정도의 농담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3 종류의 원추세포를 가진 일반인은 100의 3제곱인 100만 가지의 색을 구별할 수 있다.
색각이상은 원추세포에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난다.
기능이 약한 경우는 색약, 특정 원추세포가 없는 경우는 색맹으로 분류한다.
색맹 중 가장 흔한 경우는 녹색을 인식할 수 없는 녹색맹과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록색맹이다.
적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색맹과 청색 원추세포 이상으로 청색과 노란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황 색맹도 있다. 드물게 적색 녹색 원추세포의 기능이 약해 나타나는 청색약(보라색약)도 있다.
또 세 종류의 원추세포 모두 기능 이상으로 색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전 색각이상도 있다.
그림 2. 적록색맹을 확인하기 위한 색각테스트용지 (출처: Shutterstock)
색각이상자의 세상은 어떤 색일까.
녹색맹은 신호등에서 빨간색과 노란불을 거의 비슷하게 인식하고 녹색불은 흰색으로 인식한다.
적색맹은 빨간불의 붉은 색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빨간불과 노란불, 초록불의 색이 다르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다. 전 색각이상자는 보는 세상은 흑과 백, 회색빛이다.
■ 색 보정안경으로 녹색과 빨강색을 되찾다
색각 이상은 선천적 이상으로 유전적인 경우가 많다.
동양인 보다 서양인이 많다. 우리나라는 남성이 전체의 약 6%, 여성은 약 0.4%가 색각이상자로 추정되고 있다.
남성 비율이 높은 이유는 색을 인식하는 원추세포 유전자가 X 염색체 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X염색체는 성염색체인데, 여성은 XX, 남성은 XY다.
색맹은 열성유전으로 남성의 경우, X염색체가 열성이면 색맹이 된다.
후천성도 있다.
당뇨망막증이나 황반변성, 녹내장, 시신경유두부종, 시신경염 등으로 색맹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원인 질환의 치료 정도에 따라 증상이 호전되거나 악화된다.
선천적으로 발생한 색맹은 현재까지 치료가 불가능하다.
이에 색맹을 위한 특수 안경과 앱(APP)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미국의 엔크로마((EnChroma)가 개발한 안경이다.
이 안경은 빨강과 녹색, 파랑 등 원색 사이의 빛의 파장을 차단하는 필터를 이용해
색의 경계를 만들어 신경세포가 색을 서로 다르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색맹인 사람의 원추세포는 빛의 파장에 따른 색을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비슷한 색으로 인식하고 반응한다는 점을 이용했다. 이 안경은 적록 색맹에게 효과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는데 실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고 보라색은 구분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림 3. 엔크로마의 색보정 안경. 적록색맹에게 효과가 좋지만
실내에서 사용하기는 어렵다. (출처: Cnet)
미국의 칼라뷰(ColorView)가 선보인 색 보정 안경도 있다.
안경을 통해 색약자에게 결핍된 색의 빛은 많이 투과시키고 과하게 반응하는 색은 적게 투과시켜
색을 보정하는 원리다. 예를 들어 녹색 색약자는 녹색 빛의 강도를 2배 증가시켜 보여주면 녹색을
정상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색약자용으로 개별 맞춤이 가능하다.
녹색 색약자의 경우, 녹색에 반응하지 못하는 정도를 검사해 이에 맞게 안경을 코팅해 색을 보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렌즈 코팅이 특정 색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녹색과 적색의 중간인 노란색 등 다른 색에 대해서는
세밀한 보정이 어렵다.
색약자를 위한 앱도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가 출시한 ‘컬러 버나큘러스(Color Binoculars)’다.
빨강색과 녹색, 녹색과 빨강색, 파란색과 노란색, 세 가지 모드로 특정 색상을 강조해 보여줘 색 보정 효과를 낸다.
비슷한 원리의 소프트웨어도 있다.
예를 들어 적색 색약인 경우 모니터에서 적색을 필요한 만큼 진하게 표현해 색을 보정한다.
보정 안경과 달리 녹색과 적색, 중간색인 노란색도 개개인에 맞춰 세밀한 보정이 가능하다.
그림 4. 엔크로마의 원리. 색의 파장을 인위적으로 변조해서 원추세포가
분명히 다른 신호로 인식하게 하는 원리다.
■ 색맹, 유전자로 치료 가능해질까
불가능의 영역으로 인식됐던 색맹 치료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제인 니츠와 아내 모린 니츠 연구팀은 지난 2009년 색맹인 수놈 다람쥐 원숭이를 대상으로
유전자 치료 시험을 시행해 성공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광색소 유전자를 바이러스 매개체(Viral vector, 유전자를 체내 세포로 운반하는 재조합 바이러스)에 넣어 다람쥐 원숭이의 망막에 주입했다.
5개월 후 원숭이는 컴퓨터에 제시된 색상을 제대로 알아맞히면 과자를 받는 방식의 색각 테스트에 통과했다.
하지만 망막 주사를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실명 위험이 있다.
니츠 연구팀은 현재 안전하게 유전자를 전달할 방법으로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투명한 물질인 유리체에 주사를 놓는 방법에 대해 연구 중이다.
유리체 주사는 황반변성을 치료하는 데 쓰일 정도로 일반적이지만 유전자를 주입했을 때 유전자가 원추세포라는 목적지를 확실히 찾아가게 하는 것이 과제로 남아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유진성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