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진구가 추천하는 남자 영화
눈이 부신 탓인지 잔뜩 찌푸린 얼굴, 거뭇한 수염 자국, 대충 꿰어 입은 듯한 옷차림에 다소 불량스러운 몸짓. 거기에 굵고 낮은 목소리로 한 마디 보태면 그가 바로 진구다. 진구는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남자들이 창궐하는 21세기에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수컷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다.
[달콤한 인생]에서 폭력조직의 1인자도 아닌 2인자의 오른팔 역할은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진구는 우아한 선우(이병헌)를 닮은 충성스러운 부하로, 이병헌에게만 영광이 돌아가기 쉬운 영화에서 당당히 이름을 남겼다. 특히 그는 모두가 선우에게 등을 돌리는 와중에도 그를 도와주며 어둠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남자의 의리를 지켜냈다. 연이어 2인자의 오른팔로 등장한 [비열한 거리]에서도 그는 '비열한 거리' 한 가운데에 섰다. 의리라는 것이 휴지 조각처럼 내팽개쳐지기 쉬운 세계에서 그는 병두를 배신했고,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남자들이 떠받드는 가치를 상징한 동시에 그것을 파괴하며 진구는 단순히 조폭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라 남자라는 이미지 그 자체로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작 [마더]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꽃미남이라는 수식어를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원빈과 나란히 화면에 들어온 진구는 프레임 바깥으로 물러난 순간에도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지어 김혜자와 함께 있을 때 조차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마더]에서 성적인 의미로 거의 유일한 남성이자 함께 하는 모든 이성과의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만드는 효과는 온전히 진구라는 배우에 의해 가능했다. 그런 남자가 말하는 '남자들을 위한 영화'에는 진구를 닮은 사랑에 빠진 남자, 성공을 위해 돌진하는 남자 그리고 외로운 남자가 있다.
글 l 이지혜 <10 아시아> 기자
, 사진 l BH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