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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 타는 여인
김규련
늦가을 엷은 햇볕이 툇마루에 깔리고 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여인이 등에 햇볕을 받으며 조롱박을 타고 있다. 두 발로 조롱박을 고정시켜 놓고 실톱으로 박을 타는 솜씨가 꽤 익숙해 보인다. 그 연인의 옆켠에는 싱싱하고 탐스러운 조롱박이며 금시 두 쪽으로 타놓은 것들로 작은 추수가 뒹굴고 있다. 그녀는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아들 딸들이며 친구들이 표주박을 받아들고 기뻐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연신 톱질을 하고 있다.
조롱박을 다 타고 나면 씨앗이 들어있는 하얀 속을 드러내고 솥에 넣어 조롱박을 찔 모양이다. 쪄낸 조롱박은 잘 손질해서 햇볕에 말려야 한다. 뜨락 둘레의 돌담이며 닭장 지붕 위에는 아직도 풋풋한 조롱박이 달려 있다. 무서리가 두어 번 더 내린 뒤에 따들일 모양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빼어나게 잘생긴 놈 한두 개는 그냥 뒀다가 첫눈이 내릴 무렵 조심스레 따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년 봄 씨받이를 위해서 표주박을 만들지 않고 껍질을 잘 벗겨서 씨앗이 박혀 있는 둥그런 속을 그냥 그대로 처마 밑에 달아 두리라.
옛부터 큰 과실은 먹지 않고 새 생명의 씨앗으로 남겨두는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거룩한 슬기가 여기서도 엿보인다고 할까. 밤이 이슥하도록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여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솥에서 쪄낸 표주박에 마무리 손질을 하고 있다. 봄에 씨앗을 심고 가꾸어서 가을에 따들여 타고 찌고 손질해서 만들어 낸 표주박은 드디어 정성의 결실이리라. 아내의 손질을 곁에서 조용히 돕고 있던 남편이 넌지시 말을 건네 본다.
“임자, 이제 그만 잠자리에 들구료.”
“당신 먼저 주무세요. 아이들이 표주박을 얼마나 좋아한다고요.”
몇 마디 대화가 오가다가 남편의 시선이 아내의 손에 와 멎었다. 거칠고 굵은 손마디, 찌들고 저승꽃이 핀 손들, 그 흔한 보석 하나 달지 못한 손, 그러나 저 손이 오랜 병고와 절망과 가난 속에서 이 가정을 지켜온 구원의 언덕이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남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는 아내의 바쁜 일손을 괜히 꽈악 쥐어본다. 그리고 말이 없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이내 훤히 읽어보고 흐뭇한 표정으로 살며시 손을 빼낸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뇌리에 광망光芒처럼 스치는 지난날의 발자취.
젊은 날 암담했던 삶의 광야, 험준했던 고난의 산맥, 서러웠던 눈물의 강기슭, 상처를 입으며 흙탕물을 덮어쓰며 그래도 넘고 건너온 지천명知天命의 고갯마루, 때로는 분에 넘치는 축복 같은 것이 전혀 없지도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의 흔적만이 왜 이 밤 따라 주옥처럼 빛나는 것일까.
산은 높아 귀한 것이 아니고 수목이 무성해서 귀하고, 들은 넓어 소중한 것이 아니고 곡식이 자라 소중하듯, 인간의 삶도 생명이 있어 빛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자국이 있어 빛나는 것일까. 두 사람은 서로가 미덥고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괜히 무엇인가에 감사라도 드리고 싶었는지 뜨락에 나와 서성거려 본다.
늦가을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 마음의 뜨락에도 별빛이 쏟아진다. 상념의 의상을 훨훨 벗어 던지고 금시 지구의 맨 끝에 표표로이 서 있는 착각을 느껴본다. 시방 두 사람은 별을 우러러보며 말이 없다. 지복至福의 이 일순이 깨뜨려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리라. 두메산골 허물어져가는 지붕 밑에서 부엉이 우는 깊은 밤에 이들이 표주박을 손질하다 말고 고요한 기쁨 같은 것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제 안주安住의 성城을 얻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안빈낙도 安貧樂道의 어떤 깨달음 때문일까.
찬바람이 몸에 스며온다. 두 사람의 발길은 정성의 결심이 뒹굴고 있는 불빛을 찾아 서서히 옮겨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가슴 사이에는 무한한 사랑의 대화가 오가고 있다.
평생을 인고와 순종과 헌신으로 일관해 오면서 괴이고 괴인 아내의 그 흥건한 눈물을 씻어주는 남편의 깊은 정.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집념과 성실과 노력으로 일어서면서 고달프게 흘려온 남편의 그 더운 땀을 식혀주는 아내의 마음의 손길. 어쩌면 이것이 애환을 같이해 온 부부의 참된 대화가 아닐까. 여기에 부질없이 언어가 있어 무엇하랴!
조롱박 곁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마무리 손질을 계속해 본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가슴속에는 끝내 가시지 않고 향불처럼 타오르는 한 가닥 상념이 남아 있다. 어쩌면 그것은 거룩한 비원悲願일지도 모른다. 비록 하찮은 잡초같이 살아갈지라도 기약없는 이승의 남은 여로旅路에 욕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까.
쌀그락쌀그락, 조롱박 속을 긁어내는 소리가 깊은 밤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다. 울고 웃으며 가야 할 삶의 길목을 짚어보고 더듬으며 연신 조롱박 손질을 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어쩌면 묘하게도 닮아 보인다.
남녀가 부부의 인연으로 서로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닮아가는 것일까. 식성과 취미가 가까워지고 생각이며 성격이 비슷해지다가 드디어는 모습도 닮아가는 것이리라. 같은 모습의 반려자. 이것이 초로初老의 부부상일지도 모른다.
늦가을 밤은 이미 깊었다. 먼 데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은 잠을 잊은 채 서로의 깊은 애정을 담아둘 사랑의 표주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표주박
-조롱박 타는 여인을 읽고-
신금철
수필가 김규련(1929∽ 2015)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중학교 교사를 거쳐 교육장, 교육의원 등 45년을 교육계에 봉직하며 교육자의 최고 영예인 ‘한국 교육자 대상’을 수상했다. 교육자로서 명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이 인정한 수필 ‘거룩한 본능’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한국수필을 대표하는 명수필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작품 모두가 명수필이어서 몇 번을 읽어도 새롭기만 하다. 단편소설인 듯, 자신의 삶을 그린듯한 ‘조롱박 타는 여인’은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로 나에게 짙은 여운을 남겼다.
내 어머니는 벼 베기를 하는 날이면 두레꾼들을 위해 국수를 삶고 육수를 주전자에 담아 머리에 이고 들녘으로 나가셨다. 광주리에 새참을 이고 가는 어머니 뒤에서 나는 ‘달그락달그락’소리 나는 바가지 꾸러미를 들고 콧노래를 불렀다. 표제 ‘조롱박 타는 여인’은 들녘에서 바가지에 국수사리를 듬뿍 담아 양념장과 육수를 넣어 먹으면 꿀맛이던 소풍 같은 어린 시절을 회억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빼어나게 잘 생긴 놈 한두 개는 그냥 뒀다가 첫눈이 내릴 무렵 조심스레 따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년 봄 씨받이를 위해서 표주박을 만들지 않고 껍질을 잘 벗겨서 씨앗이 박혀 있는 둥그런 속을 그냥 그대로 처마 밑에 달아 두리라.
옛부터 큰 과실은 먹지 않고 새 생명의 씨앗으로 남겨두는 석과불식 碩果不食의 거룩한 슬기가 여기서도 엿보인다고 할까.
작고하신 시할아버님 댁은 반딧불이가 별빛처럼 반짝이고, 호롱불이 밤을 밝히며 가족의 웃음소리를 지켜보는 시골이었다. 할아버님 댁을 방문할 때마다 반지르르하게 윤기 나는 대청마루의 대들보에 매달려, 부활을 꿈꾸는 씨앗들이 종이봉투 안에 옹기종기 잠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었다.
할아버님은 석과불식碩果不食의 거룩한 슬기를 몸소 실천하시며 정성껏 푸성귀와 알곡을 거두어 장손부長孫婦인 나에게 가져다주셨다. 새 생명의 씨앗을 갈무리하는 마음엔 자식 사랑도 함께 들어있었을 것이다. 정성껏 기른 채소와 곡식들을 올망졸망 보자기에 싸서 가져다주시던 할아버님의 사랑이 소환되어 코끝이 찡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가다가 남편의 시선이 아내의 손에 와 멎었다. 거칠고 굵은 손마디, 찌들고 저승꽃이 핀 손들, 그 흔한 보석 하나 달지 못한 손, 그러나 저 손이 오랜 병고와 절망과 가난 속에서 이 가정을 지켜온 구원의 언덕이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남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젊은 날 암담했던 삶의 광야, 험준했던 고난의 산맥, 서러웠던 눈물의 강기슭, 상처를 입으며 흙탕물을 덮어쓰며 그래도 넘고 건너온 지천명知天命 의 고갯마루, 때로는 분에 넘치는 축복 같은 것이 전혀 없지도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뼈에 사무치는 아픔의 흔적만이 왜 이 밤 따라 주옥처럼 빛나는 것일까.
내 어머니는 가냘픈 몸매와 선한 눈망울을 지닌 연약한 분이셨다. 김매고 모내기하며 벼를 베는 억센 농부의 모습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도 꾸지 못하고 떠나신 남편의 부재는 어머니를 강하게 했고, 손은 삶의 절대적인 도구였기에 늘 상처 나고 거칠었다. 거친 손을 잡아줄 지아비가 없었고, 철부지인 나는 어머니의 위로자가 되지 못했다.
가정을 지켜온 아내의 거친 손, 저승꽃이 핀 손이 애처로워 가슴 뭉클한 남편의 아내 사랑이 눈물겨웠고, 힘든 생의 여정이었지만 속정 깊은 남편이 곁을 지켜주는‘ 조롱박 타는 여인’은 행복한 여인이란 생각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너무도 죄송하고,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험준한 산맥을 넘어도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부부가 함께라면 행복했을 여정을 홀로 견디신 어머니의 생을 천국에서 재회하신 아버지께서 어루만져 주시리라 위안을 해본다.
산은 높아 귀한 것이 아니고 수목이 무성해서 귀하고, 들은 넓어 소중한 것이 아니고 곡식이 자라 소중하듯, 인간의 삶도 생명이 있어 빛나는 것이 아니라 환난의 자국이 있어 빛나는 것일까. 두 사람은 서로가 미덥고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괜히 무엇인가에 감사라도 드리고 싶었는지 뜨락에 나와 서성거려 본다.
조롱박을 타는 여인은 별빛이 쏟아지는 지붕 밑에서 말없이 별을 우러러보며 서로에게 감사하며 행복했을 것이다. 살그머니 손잡으며 힘들었을 아내를 보듬는 남편에 대한 감사, 묵묵히 가정을 지키느라 힘들었을 아내에 대한 감사, 서로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그게 바로 사랑이며 행복이 아닐까? 나는 잠시 조롱박 타는 여인이 되어 부엉이 소리 들리는 시골 초가지붕 아래 서 있었다.
평생을 인고와 순종과 헌신으로 일관해 오면서 괴이고 괴인 아내의 그 흥건한 눈물을 씻어주는 남편의 깊은 정.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 집념과 성실과 노력으로 일어서면서 고달프게 흘려온 남편의 그 더운 땀을 식혀주는 아내의 마음의 손길. 어쩌면 이것이 애환을 같이해 온 부부의 참된 대화가 아닐까. 여기에 부질없이 언어가 있어 무엇하랴!
남녀가 부부의 인연으로 서로 만나서 오랜 세월을 한 지붕 밑에서 같이 살아가다 보면 모든 것이 닮아가는 것일까. 식성과 취미가 가까워지고 생각이며 성격이 비슷해지다가 드디어는 모습도 닮아가는 것이리라. 같은 모습의 반려자. 이것이 초로初老의 부부상일지도 모른다.
늦가을 밤은 이미 깊었다. 먼 데서 산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두 사람은 잠을 잊은 채 서로의 깊은 애정을 담아둘 사랑의 표주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오래 산 부부는 모습도 성격도 닮는다고 한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면 ‘나’의 존재보다 ‘너’의 존재 ‘우리’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고 배려해야 한다. 모나고 거칠던 자갈도 오랜 풍상을 겪으면 둥글어져 비슷한 모양이 되는 것처럼 오랜 세월 서로를 위해 인내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다 보면 서로의 모습도 성격도 닮아가게 되는 것 같다. 명화名畫처럼 아름다운 ‘애정을 담아둘 표주박을 만드는 부부의 다정한 모습’을 내 마음의 벽에 걸고 부부의 사랑을 되새김질 하고 싶다.
내년이면 결혼한 지 50주년이 되어 금혼식을 맞이한다. 반백 년을 사는 동안 사랑으로 살았지만 돌아보면 아쉬움도 많다. 그러나 큰 파도 없이 잔물결 찰랑이는 생의 바다에서 순항의 노를 저어왔다.
아직은 초로들이 겪는 사고四苦의 고통 없이 살아가고 있으니 나 또한 행복한 여인이다. 무엇을 더 욕심내랴, 계면쩍어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지만 늘 변함 없이 내 곁에서 지켜주는 남편이 있으니 남은 항해도 큰 파도 없이 안전하리라 믿는다.
황송문 시인은 김규련론에서 ‘김규련 수필가는 가슴으로 얘기하는 문사’라고 했다. 그의 가슴엔 늘 자연과의 대화가 맑은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다. 그의 삶은 하늘과 땅을 벗 삼고, 나무와 풀꽃을 사랑하며, 자연과 일체를 꿈꾸는 수행자의 삶이었다. 그는 훗날 바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바위는 숲에서도, 들녘에서도, 바다에서도 침묵으로 존재한다. 침묵하지만 가치 있고 묵직하다. 교육계의 참스승이자, 수필계의 거목이었던 그가 한국수필 문학의 바위로 우뚝 서 있길 바란다.
그는 수필 ‘미완의 꿈’에서 ‘ 독자가 읽다가 밑줄 그으며, 암기하고 싶은 명언 두 줄 그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다. 작가의 바람처럼 그의 수필에 감동하여 손이 바쁘게 밑줄을 긋는다.
지지대支持臺
신금철
남편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마지못해 따라나선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육거리 모종 파는 가게에 들어선 그는 익숙한 듯 주인과 파종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장에는 출하시기에 맞춰 진열된 모종용 채소가 옹기종기 모여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맑은 아기처럼 야들야들하고 파르스름한 그들을 보자 내 마음도 조금 밝아졌다. 지난해 농사를 지어보니 너무 힘들어 올봄에도 농사지을 꿈에 부푼 남편을 다시는 따라나서지 않겠다던 마음이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산모는 첫 아이를 낳을 때 진통을 겪으면서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하지만 아이가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재롱을 부릴 즈음이면 눈 녹듯 스르르 산고産故를 잊고, 둘째를 출산한다. 내 마음도 그랬다.
남편은 밭에 만물상이라도 차릴 듯, 주섬주섬 여러 종류의 모종용 채소와 씨앗을 샀다. 농사지을 생각에 걱정이 되었지만, 너무도 표정이 밝은 남편이기에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새 주인을 만난 각종 씨앗,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고구마, 모종들은 우리 부부를 따라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무공해의 밭이랑으로 이주를 했다.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을 들으며 자란다.’라는 말은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실감한다. 씨 뿌린 자리에서 뾰족뾰족 잎이 나고, 새소리 끊이지 않는 숲속에서 바람과 벗 삼으며 자란 채소들이 하루가 다르게 재롱을 부리듯 잘 자라자, 우리 부부는 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유일한 낙이 되었다. 땀 흘리며 정성으로 가꾼 유기농 채소와 열매를 먹는 기분은 그 어떤 흐뭇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농사는 하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가뭄이 계속되자 한동안 잘 자라던 채소들이 목이 마르다고 보채었다. 매일 물 주고, 애정을 쏟는 채소보다 더 신나게 자라는 풀을 뽑는 게 힘들었다. 은근히 남편에 대한 원망이 슬슬 고개를 들 즈음, 가뭄을 잘 이겨낸 고추가 조롱조롱 달리고, 길쭉길쭉한 오이가 매달리고, 방울토마토가 발그레 익어갔다.
첫 오이를 따던 날, 남편은 ‘당신이 땀 흘리며 맺은 오이니 손수 따라.’며 나에게 양보를 했다. 시장에 지천으로 널려 돈만 주면 쉽게 사는 오이가 아니었다. 남편도, 나도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젖은 옷을 쥐어짤 정도로 정성 들여 수확을 앞둔 오이였다. 가뭄을 견디고 잘 커 준 오이를 따는 내 손에 감사와 보람의 전류가 흘렀다. 첫 수확의 기쁨을 내 공公으로 돌리는 남편이 고마웠다. 자신의 땀과 노력을 내세우지 않고 나에게 양보하는 그의 배려가 그동안의 힘겨움을 보상해줬다.
거침없이 뻗어나간 애플수박 줄기에서는 작고 귀여운 노란 꽃이 태동을 알렸다. 꽃이 떨어지고 며칠 후, 주먹만 한 수박이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자연의 섭리에 감탄하며 매일매일 수박을 들여다보았다. 드디어 아기 머리통만 한 수박이 잘 익었다고 생각되어 이번엔 남편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며 나 역시 남편에게 수고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새벽부터 온몸에 이슬을 적시며 일하다 보면 숨이 차오르고, 옷이 흠뻑 젖고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땀이 쏟아진다. 그럴 때면 남편에게 다시는 농사 짓지 말자며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한 뼘도 안 되던 옥수수가 내 키를 넘고, 이랑을 메울 정도로 씩씩하게 자라는 고구마 줄기를 보면 허리의 통증도, 힘겨움도 잊는다.
여름이 되자, 가지, 오이, 토마토, 고추는 가지를 벋고 잎이 무성해져 버거운지 중심을 잃고 주저앉으려 했다. 이쯤 되면 지지대支持臺를 세우고 줄을 매주어서 휘거나, 꺾이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어야 한다. 남편은 지지대를 세우고 세 차례에 걸쳐 삼단으로 줄을 매어 줄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해줬다. 지지대를 버팀목으로 끄떡없이 자란 가지, 오이, 고추에 드디어 꽃이 피고 조롱조롱 열매들이 풍성하게 매달리자 내 마음에도 보람의 열매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40년을 교직에 봉직하고 정년 퇴임을 한 남편은 농사 경험이 전무한 선비이다. 그런 남편은 인터넷으로 농사법을 배우고 연구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매사에 끈기 있고, 모험심이 강하고 집념이 강한 노력파이다. 요행이나 우연을 을 바라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지지대가 필요한 채소들처럼 남편은 내 인생의 지지대였다. 외롭게 자라 마음도, 몸도 약한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엄살이 심하고 겁도 많다. 소심하고 다부지지도 못해 눈물도 많다. 이런 나약한 나를 위해 남편은 50년을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이요, 아버지로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었다.
남편이 곁에 있어 어려움이 닥쳐도 큰 걱정 없이 살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서두르지 않고 나를 안심시키고 해결한다. 의지가 약하고 참을성이 부족한 아내를 이나마 강하게 만든 노련한 조련사이다. 내가 가정을 별 탈 없이 꾸려왔고, 힘든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달래주고, 믿어준 남편이 미덥고 든든하다.
내 인생에 지지대가 되어준 남편에게 감히 견줄 수 없지만, 나 또한 미약하나마 남편에게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랑의 지지대가 되려고 노력했다. 남은 날들, 늘 남편 곁에서 함께 하고, 힘들 때 서로 기대며 살다가 생의 끝자락에 해로동혈偕老同穴하는 부부이고 싶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오늘도 내 인생의 지지대인 남편을 따라 뙤약볕이 내리쬐는 고추밭으로 들어서는 용기를 내게 한다.
첫댓글 선생님
한국수필 특집 <추억의 명수필> 연재를 맡으신 것은
그간의 한국수필을 통한 문학활동의 수준을 인정받으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김규련 편은
그 분의 작품 <조롱박 타는 여인> 한 편만을 읽고 감상이 아니라
그 분의 많은 작품을 읽고 쓰신 평론에 가까운 작품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수필미학에 작고 문인 편에 김규련 평론을 써서 그 분의 작품성향과 인품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어서
선생님 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상도 예리했고 선생님의 관련 수필도 김규련 작품에서 받은 공명의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11월호에 어떤 작품이 실릴지 기대됩니다.
작품 청탁을 받고 망설였습니다.
오랜 시간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지만 선뜻 내놓기에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막상 글이 나오니 부끄럽네요.
늘 좋은 말씀으로 격려해주시는 선생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을 쓰기 위해 김규련의 수필집 3권을 읽었으니 나름대로 제게 도움이 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더 노력하여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선생님, 잘 보았습니다.
모르는 조롱박보다
노부부의 익은 사랑이 눈에 들어오네요.
저도 우리엄마가 떠올랐어요.
여자로서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는 참 행복한 삶일 겁니다. 아무리 양성평등시대라 하더라도요.
기억도 가물한 아빠보다 아빠였고 엄마인 여윈 울엄마 뒷모습이 갈수록 아련하네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행복하신 분이네요.
선생님처럼 예쁘고 효녀인 딸을 두셨으니...
노부부란 요란스럽지 않는 은근한 정으로 사는 것 같아요.
나이 먹고 보니 서로 안쓰럽고 애잔할 때가 있네요.
글로 더 멋진 표현은 못하지만 노부부란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는 존재인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 이해못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