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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성공 수기 응모
2004년 4월 30일!
15년간 오직 한 길, 청춘을 묻고 꿈과 희망을 불사르며 복무했던 부대를 전역신고를 위해 다시 찾았다. 1년 만에 찾아온 부대였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예전과 다름없이 활기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잠수함부대에서 오래 동안 알고 지냈던 많은 전우들과 뜨거운 이별의 악수를 나눴다. ‘이제 정말 떠나는 것인가!’ 정들었던 나의 안식처를 떠나는 마음에 가슴이 미어져왔다. 1년의 전역 전 직업 보도교육 기간 동안 나름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었다. 국방부 주관 행정사 교육, 사설 컴퓨터 학원 교육, 1종 대형면허 시험 등 1년이라는 기간이 지금처럼 짧게 느껴진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가슴에 남은 여운과 아쉬움은 쉽사리 떠나질 않았다. ‘그래 이제부터 시작이야! 내가 선택한 길 열심히 한번 살아봐야지!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도와주진 않는다.’ 마음속으로 궂은 다짐을 하면서 정들었던 진해와 이별을 하고 마산보훈지청을 찾았다. 앞으로의 취업을 위해 취업보호신청서를 작성하고 장기복무제대군인증을 발급 받은 후 내가 태어나 자라고 살아왔던 고향 거제도로 내려왔지만 발걸음이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았다. 비록 마음은 자신에 넘쳤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내와 두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 반듯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과 책임감이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어느 날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근무하는 형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영아! 당장 직장 구하기 힘들면 조선소에서 일해 볼래? 벌어야 가족 먹여 살리지. 일당도 괜찮고 하니 당분간이라도 일해 봐라.”, “네 형님 소개해 주세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조선소에 첫 발을 디뎌 협력업체 선실가구 설치 날일을 하게 되었다. 전혀 다른 환경과 근무여건에 적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일을 마치고 퇴근 때가 되면 온몸과 옷은 땀에 젖고 소금기가 말라 얼룩이 젓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었고 샤워를 하면 코와 입 속에서 새까만 가래가 나왔다. ‘그래! 내가 선택한 길 아닌가!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앞날의 더 나은 직업을 찾기 위해 저녁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과 씨름하며 각종 자료들을 검색했다. 관공서와 국방취업센터, 마산보훈지청, 제대군인지원센터 등의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혹시 모집공고가 나지 않았나 하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검색하였다. 전역 후 5개월쯤 흐른 뒤인 2 004년 9월 경상남도에서 10급 기능직 운전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드디어 인터넷에 떴다. 대형면허자격은 있었지만 운전경력이 없어 망설이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청에 접수를 했다. 면접 당일 날 분명 버스 운전할 수 있냐고 질문할 것이 분명한데 걱정이 앞섰다. 인터넷을 뒤지니 마침 서울에 대형버스 연수하는 곳이 있었다.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상경하여 1주일간 시내를 돌면서 운전연수를 받고 운전연수 수료증까지 받고나니 그나마 조금 마음이 가벼웠다. 서울까지 온김에 제대군인지원센터를 물어물어 찾아가 상담을 요청하여 신상명세서와 취업지원서를 작성하고 거제도로 내려왔다. 나름대로 면접 잘 보는 요령에 대해 각종 자료를 수집하여 공부하고 실습도 하였지만 면접 당일 날은 너무 떨려 완벽하게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철저히 준비할 걸’하고 혼잣말을 하며 후회해 봤지만 이미 버스는 지나간 뒤였다. 군 생활 중에는 많은 장병 앞에 나가 웅변도 하고 수병들 지휘도 했었는데....
그 뒤로 도청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질 않았다. ‘하기야 운전경력도 없는 나를 설마 뽑을까! 합격한 사람은 운전경력도 많겠지!’ 그렇게 내 자신을 위로 하였다.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며칠 후 전남여수해운항만청에서 10급 기능직 갑판원 모집 공고가 난 것을 보게 되었는데 자격요건을 보니 해기사 자격증이 있어야 되었다. 비록 자격증이 없어 응시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음 공고 때에 응시 하려면 자격증을 따야했다. 해운항만청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 결과 군 복무 중에 함정근무를 했어도 직별 중 행정사는 승함경력에 포함이 안돼 자격증을 취득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또다시 좌절인가! 언젠가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오겠지!’ 매일 매일 검색을 하였다. 울산 해운항만청에서 청원경찰을 모집한다는 공고문이 났다. 일단 응시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에 서류를 준비하여 아내와 함께 울산으로 향했다. 울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여보! 우리 울산으로 이사하면 울산에 있는 처남이랑 살 수 있겠지?” “그래! 서류 접수시키고 면접 통과하여 합격하면 울산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자!”. 그래도 남편을 믿어주는 아내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져오는 것을 느꼈지만 보이지 않도록 앞만 보고 운전을 했다. 서류를 접수시키고 돌아와 전화로 확인해 보니 1명 선발에 98명이 지원했다는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 졌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을 했다. 면접당일, 이번에는 면접을 통과해야 된다는 애끓는 심정으로 나름대로 묻는 말에 또박또박 답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시간이 흘러 발표날짜가 되었으나 또다시 전화벨 소리는 나의 편이 되어주질 않았다. ‘그래도 참으리라 언젠가 영광의 그날을 위해서...’ 이를 꽉 깨물었다. 전역 후 1년 넘게 보이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꿈만 꾸면 현역에서 근무하는 꿈과 반듯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꿈을 꾸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면 너무 공허한 나머지 소리 없이 흐느끼기도 하였다. 15년이라는 기간동안 직업군인으로 근무한 여파가 이렇게도 클 줄이야! 후회도 해보고 마음을 다잡아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2005년 가을 어느 날 지친 몸으로 퇴근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 거제 교육청에서 10급 기능직 행정사무보조원을 선발한다는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이젠 거의 본능적으로 응시원서에 펜을 들었다. 그래도 행정직별로 군 생활을 했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위안을 삼으면서 교육청에 응시원서를 접수했다. 필기는 일반상식과 사회과목, 실기는 문서작성이라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독서실을 계약하여 불철주야로 공부에 매달렸다. 열심히 공부했기에, 문서작성도 자신이 있었기에 ‘이번만은 놓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공부하는 동안 시간을 내어 지원인원을 확인했는데 5명 선발에 140여명이 지원서를 냈다는 답변에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러니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란 말이 실감이 났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지 않은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시험 당일 날 두 눈을 부릅뜨고 필기와 실기에 최선을 다하여 집중 했다. 응시인원은 많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기에 기대를 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합격자 발표는 교육청 사이트에 올린다고 했다. 운명의 날 오전 집에서 컴퓨터로 확인하기가 멋쩍어 PC방으로 가서 교육청 홈페이지를 열었다. 쿵쿵 뛰는 가슴을 안정시키고 합격자 발표 공고문을 클릭 했다. ‘응시번호야 제발 있어라! 있어라! 딸깍.......’. ‘쿵!’ 순간 망치로 정수리를 얻어맞는 듯한 심한 충격이 밀려왔다. ‘또다시 좌절인가! 열심히 했는데 밤잠 설쳐가며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순간 멍해졌다. 아내에게는 전화조차 할 수 없었다. 출근도 하지 않고 공부에만 매달렸던 나에게 묵묵히 내조해줬던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난 시간동안 노력했던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아니 이정도 가지고 좌절해서야 창창한 앞날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싸잡고 조선소일에만 매달렸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모집공고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검색했다. 그렇게 2005년은 지칠 줄 모르는 끝없는 도전이라는 멍에를 안기고 과거 속으로 흘러갔다. 전역 후 1년 8개월이란 시간이 무심하게도 흘러 가버렸다. 2006년 새해와 더불어 도전하리라고 수평선 너머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다짐했다. 분명 기회는 올 것이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한다면 영광의 순간은 오리라!
2006년 6월 어느 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날일을 하고 있을 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윤종영씨 되시죠? 여기 마산보훈청입니다. 거제교육청에서 10급 기능직 공무원 1명을 선발한다기에 우리청에 등록된 취업보호대상자 중 5명을 서류 접수시켰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교육청에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런 전화에 당황했지만 마음을 진정시키고 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사실이었다. 면접을 잘 보기 위해 교육과 관련된 내용에 초점을 맞춰 자료를 준비하고 실전연습을 하였다. 면접 전날 머리를 짧게 깎았다. 아무래도 짧은 머리가 인상에도 오래남고 깔끔하게 보이면서 점수도 후하게 줄 것 같았다. 드디어 면접! 이름을 부르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너무 긴장이 되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뒤 면접관 앞에 앉았다. “학교에 불이 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순간 너무나 고마운 질문이었다. 평소 군에서 잘 익히고 배운 소화훈련이 생각났던 것이다. 첫 단추가 잘 풀리니 연이은 질문에 대답은 술술 풀려나갔다.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합격자 발표 날까지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흘러갔다. 전역 후 다니던 가구설치 일을 그만두고 회사를 옮기는 중이라 새로 옮긴 회사 안전교육장에서 안전교육을 받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윤종영씨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추가서류 준비해서 교육청으로 방문해 주세요.” 교육받다 말고 함성을 질렀다. 모두가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곳을 박차고 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울먹거리는 내 목소리에 덩달아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축하해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통화를 끝내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보 끝까지 지켜봐줘서 고마워! 하느님!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정녕 저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16년간의 군 생활과 정들었던 군을 떠나 생활한 3년여의 세월이 순간 주마등처럼 교차되어 지나갔다. 군을 떠나 고향에 와서 2년동안 무려 5번의 이사와 5번의 전학때문에 마음고생으로 얼룩진 두 딸에게 너무너무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딸들아 그동안 미안했다. 이젠 마음 편하게 화목하게 울 가족들 행복하게 살자꾸나’ ‘그래 새롭게 시작하는 거야! 열심히 복무했던 현역생활을 거울삼아 이제 제2막에서의 인생도 학교와 사회와 가족을 위해 멋지게 펼치는 거야!’ 그렇게 합격과 함께 2006년 7월1일 기능직 공무원으로 임용되어 초등학교 행정실에 발령을 받았다. 현재까지 1년 넘게 열심히 근무하면서 군에서 익힌 군인정신과 근면성, 서비스맨 정신과 노하우를 통하여 열심히 근무한 결과 지난 3월 1일부로 10급에서 9급으로 승진하는 영광도 누렸다. 지칠 줄 모르는 끝없는 도전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 하는 자에게는 언제나 영광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현실에 안주하여 도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자리와 영광은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
몇 번의 실패를 통하여 더욱 굳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며 그로 인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그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헤쳐 나갈 것이다. 세월이 흘러 백발이 성성할 때 후회 없는 삶이 될 것이라고 감히 장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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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감동입니다 ! 저는 50 여번이넘는 서류접수와 수없는 모의 면접 그리고 최선을 다해서 합격하였읍니다. 그 노력 정말 잘 압니다. 고생하셨고 건승하십시요
존경합니다..~!! 생활 열심히 하시고 초심 잃지 마십시요.~!! 화이팅 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멋집니다,, 화이팅입니다,, ^^
너무나 감동적인 모습 저 또한 위사람과 같은 군생활과 여러번의 실패와 좌절끝에 이번에 한강에 발령대기중에 있습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 너무나 멋져부려 ! 화이팅 하세요, 행복한 가정이루세요.
멋있고 감동적입니다. 저 또한 직업군인했었기에 그 심정 충분히 이해됩니다. 앞으로도 좋은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화이팅!
살짝 눈물이 고이네여..^^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드네여
이런장문 읽기 힘들어용! 안읽을래용
저도 7년반이란 군생활을 하고 사회생활2년째 하구있지만 감동이고 저와 비슷한 내용인지라 용기를 주네여 ~~~~ 도전 도전 ..된다 되겠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배님에 모습에 용기를 얻고 갑니다 .
9년간의 군생활을 접고 현재 특수경비원으로 근무중에있습니다...나름 열심히 청원경찰/교정직/경찰등등 욕심이많아 자료수집중에 선베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아무쪼록 제가 다 행복해지는것같네요,,,,축하드리며 무궁한 발전과 가족의 행복을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