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현은 명종 (1563)명문 거족인 양천 허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경상감사 (경상도지사)를 지낸 허엽이었다.
허성. 허봉을 오빠로 두었고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1569 -1618)이
그의 동생이었다. 이들은 다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 틀림없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 한씨와 사별한 뒤에 재혼하여
봉.초희(허난설현). 균 삼남매를 두었다.
허난설현의 집안은 아버지와 자녀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나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허씨5문장"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현. 허균)이라 불렸다.
허난설현은 이러한 학문적인 분위기 속에서 어릴 때부터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허씨 가문과
친교가 있었던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웠다.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난데다 8세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어서 신동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허난설현은 15세에 무렵에 안동 김씨 김성림과 혼인하였다.
그는 詩에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가정을 돌보기보다 기생과 놀아나고 바람을 피우는 데
열성이니 원만한 부부생활이 이뤄질리 없었다.
거기에다가 고부가 불화하여 시어머니의 학대와 질시 속에 살았다.
기댈 곳 없는 그녀는 뒷 초당에 책을 벗삼고 시를 쓰는 것으로
우울하고 허무한 마음을 달래었다.
이윽고 돋은 달이 호수로 비쳐드니
연캐던 조각배는 밤으로만 돌아오네
저 배야 기슭으로는 들지 마라
단잠 든 원앙이 놀라 날겠다
이 시는 신혼 초 잠시나마 달콤했던 생활을 회상한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그렇지 못했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꿈 같은
생활을 동경한 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렵게 얻은 어린 자식들을 강보에 있을 때 저승으로 보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뱃속의 아이까지 잃는 아픔을 겪었다.
불행은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친정이 당쟁에 휘말려
오빠인 허봉은 함경북도 갑산으로,
동생 허균은 남쪽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오빠와 이별할 때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읊었다.
강물은 가을되어 잔잔하고
구름은 석양에 막혔구나
서릿바람에 기러기 울고 가니
차마차마 떠나지 못하네
허봉은 5년 만에 귀양에서 풀려나왔으나 과음으로
폐병을 앓다가 객사하였다.
그는 누이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재능을 아껴준
오빠였기에 슬픔은 더욱 컸다.
황진이가 자연을 읊고 명사들과의 사랑에 빠진 것에 반해 허난설현은
여인들의 고된 삶에 눈을 돌리기도 하였다. 가난한 여인의 삶을 읊은
(빈녀음貧女吟)이 그것이다.
손에 가위를 잡느라
추은 밤 열 손가락이 어네
남들 위해 시집갈 옷 지으면서
해가 거듭 돌아와도 혼자만 지내네
그러나 혼자 사는 여인의 외로움은 허난설헌도 어쩔 수 없었다.
한켠이 텅 빈 이불을 보면서 느낀 심정을 시로 달랬다.
붉은 비단 너머로 등잔불 붉은데
꿈 깨 보니 비단 이불의 한 편이 비었네
찬서리 옥초롱엔 앵무만 속삭이고
뜰 앞에 우수수 서풍에 오동잎 지네
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까.
허난설현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졌다.
집안에 가득찼던 그녀의 작품들은 유언에 따라 많이 불태워졌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계속된 가정의 참화 때문에
허난설현의 213수 가운데에 신선시가 128수나 된다
그런 만큼 그녀는 속세를 떠난 삶을 갈망하였던 듯하다.
허균이 허난설현의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주어
중국에서 간행된 (난설헌집)은 격찬을 받았다.
난설헌집은 1711년에는 일본에서도 분다이가 간행하여 애송되었다.
황진이와 허난설헌. 이 둘은 조선시대 여류 시인 중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는 각기 다른 환경과 감정 속에서 왔다.
황진이가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기생이 되어 혼자 산 반면
허난설헌은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황진이는 자신의 뜻대로 자연을 즐기고 명사들과
사랑을 누린 데 비해 허난설헌은
불행한 결혼생활로 여인의 고독과 고통을 느껴야 했다.
때문에 그들의 시도 달랐다.
황진이가 남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연을 노래한 반면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여인들의 한과
고통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페쇄적인 조선사회 속에서
그들이 남긴 시는 여인들의 삶과
감정을 잘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명작임에 틀림없다.
첫댓글 황진희와 허난설현은 조선시대 여인으로 시조시로 쌍벽을 이룬다고 합니다. 중국의시조시인 두보와 이백이 쌍벽을 이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