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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들(3) - 행하지 않음(약 1:22)
세 주일 연속해서 우리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죄입니다. 로마서 7장 11절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죄가 기회를 타고 자기 자신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것은 자기 마음의 교만입니다. 오바댜 1장 3절입니다. “너의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바위 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오늘은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는 마지막 세 번째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집집마다 직장마다 꼭꼭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울입니다.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거울을 보고는 이리 고치고 저리 고칩니다. 얼굴도 고치고 옷차림도 고칩니다. 그런데 이 거울을 바라보고 잘못된 것을 발견했다면 고쳐야하는데 고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립스틱이 잘못 그려져 있고 속눈썹이 잘못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사람이 있겠어요? 혹시 개그맨이라면 한 번 웃겨볼 만하다고 싶어 한동안 깔깔대고 웃고는 무대로 나가볼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분이시라면 화장을 고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거울을 보고는 자기 얼굴과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다음에 나오는 23~24절입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그러나 거울을 보고 고치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25절입니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아멘.
이처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그 어떤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자기를 속여서 복을 받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습니다. 만약 앞으로 남은 일평생 동안 자기를 속인다면 복도 일평생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최우선적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듣지 않고 알지 않고 무엇을 행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언제 생기지요? 말씀을 들을 때 생기고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말씀을 자꾸 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날 때 먹어야 자라날 수 있듯이 우리 영혼이 자라나려면 말씀을 골고루 잘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21절에서도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이라고 했습니다. 들어서 마음에 담긴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이 들어 있어야 우리 영혼을 구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머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기도가 이루어지고 우리 영혼이 잘 되는 구원을 한결 더 잘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마음에 담아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오늘 본문 앞에 나오는 21절에서 “온유함으로 받으라”는 말씀대로 겸손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온유함은 원어로 ‘프라위테스’인데 친절, 겸손, 온화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20절에 나오는 ‘올게’(성내는 것)와 대조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 온유함은 가르치는 사람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는 겸손한 자세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설교 말씀을 사람의 말로 들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의 말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온유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설교단에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사람이 하는 말로 듣고 토를 달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람 말로 들리면 무시하기에 말씀이 역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힘이 없고 기적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멘”하면서 받아들일 때 운동력 있는 말씀이 되어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권능을 가진 신앙생활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 자신을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나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감정을 이겨야 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볼 때 마음에 드는 말씀은 집어넣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은 버리면 안 됩니다. 자꾸 그런 습관으로 말씀을 들으면 나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겨서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잣대로 말씀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듣기에 마음에 부담이 되는 말씀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말씀을 대하면 안 됩니다.
사도 베드로도 이것을 강조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입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아멘. 설교자가 마음대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을 입어서 설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는 사람이 사사롭게 해석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흥사가 “자기 입맛에 맞는 성경구절만 골라내면 그것은 복음서가 아니라 ‘내가 복음’이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말씀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르고 기적도 따르고 축복도 따르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말씀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입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여러 가지가 의미가 있지만 오늘 본문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을 베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자기 자신이 진 사람을 말합니다. 이 사람은 권능을 받고 천년 동안 왕 노릇을 합니다. 종말론적으로 보면 세상 끝 날까지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 역시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된 다음에 여생 동안에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왕권을 가지고 모든 일을 행하기에 잘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말씀의 권능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온유한 자세로 말씀을 듣고 마음에 담아두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오늘 본문 22절 앞에 나오는 21절을 보면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속지 않고 우리 영혼을 잘 되게 하는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말씀을 온유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22절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말씀을 행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신을 속이게 됩니다. 일평생 이 단계를 못 벗어나면 일평생 자신을 속이면서 살게 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 속여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자격은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 구원을 얻고 난 다음에 성도로서 살아갈 때는 힘을 써야 축복과 능력을 받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상급은 행함으로!” 누가복음 11장 27~28절을 보면,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소리를 높여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아니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9~21절에 나오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성경책 마지막에 나오는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예수님께서 이것을 많이 강조하시고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의 성경 말씀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친히 설교하신 것입니다. 이 설교를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의 비유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이 몰려와도 무너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해나갑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어려움이 닥치면 신앙생활이 연약해져서 무너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한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마음판에 잘 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 이 말씀이 자신을 이기게 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신에게 속지 않게 됩니다. 든든한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증언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아멘. 이런 성도에게는 역사가 많이 일어나서 하늘과 땅의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고린도전서 3장 18절을 보면,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아서 우리 자신을 많이 속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잘 듣고 잘 실천해서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복을 받지 못하도록 막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잘 듣고 잘 지키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자신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왕 같은 권능을 받아서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