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
배철현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13장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에스겔서 37, 3)
판도라의 상자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신통기』에는 ‘판도라’ 이야기가 나온다. ‘판도라’는 인생의 고해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先見之明’의의미)와 에피메테우스(‘後見之明’의 의미)는 올림푸스 신에 대한 반란에 가담하지 않아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감금되는 것을 면했다. 신들은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그들 대신 노동할 ‘인간’ 창조를 허용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진흙으로 만들고, 아테나는 그 형상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한편,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동물들이 각자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질들을 만들어 선사한다. 에피메테우스에게 모든 자질을 주어 인간에게 줄 자질이 없자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신들처럼 걷게 만들고 선물로 ‘불’을 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공경하는 대신 인간을 더 아낀다. 제우스가 인간에게 신들을 위하여 동물의 가장 좋은 부위를 바치라고 명하자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속여 인간이 바친 제물 중 겉만 번지르르한 뼈를 받게 한다. 화가난 제우스는 인간으로부터 불을 빼앗지만, 프로메테우스는 태양에서 불을 붙여 인간에게 준다.
더욱더 화가 난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명하여 인간에게 고통을 줄 ‘아름다운 악’인 여자를 만들도록 한다. 여자에게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을 선사했고 아테나 여신은 손재주와 은색 가운, 찬란하게 수놓은 베일, 목걸이, 은으로 된 왕관을 주었다. 포세이돈은 진주목걸이를 선물하고, 아폴론은 하프연주와 노래하는법을 가르쳤다. 제우스는 바보같고 장난기가 많은 동시에 게으른본성을 선사했고, 헤라는 치명적인 호기심을 주었다. 헤르메스는 남을 속이려는 마음과 거짓말 하는 혀를 선사한다.
그녀로부터 나온 여성이라는 인종은 치명적인 인종이며,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으나 부가 있을 때는 도움이 된다. 이여성의 이름은‘모든 선물’이라는 뜻의 ‘판도라’다. 헤르메스는 판도라에게 정교하게 만든 상자를주면서 절대 열지말라고 명령한다. 그런 후 제우스는 화려한 옷을 입은 판도라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프로메테우스는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의 선물을 절대로 받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끝내 판도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만다. 그는 신들이 열지 말라는 상자를 바라보면서 호기심으로 가득 차 마침내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게 된다.
상자에서는 인간이 겪어야 할 슬픔, 재난, 불행 등 모든 악들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상자 맨 밑바닥에는 이전 것들과 전혀 다른 한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바로 희망이다.
희망, 오늘을 사는 버팀목
예언자에스겔은 예루살렘이 기원전586년에 멸망한 뒤 바빌론으로 끌려간 포로였다. 그는 바빌론에서 유대인들 안에 자리한 ‘절망’을 깊이 묵상했다. 이러한 경우 이스라엘인들이나 에스겔이 보여줄 수 있는 행위는 애도가 아니라 회개와 겸손이다.
에스겔은 ‘마른 뼈 골짜기’ 환상을 본다. 그는 마른 뼈로 가득한 골짜기에 서 있다. 신이 그에게 묻는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마른 뼈’는 스스로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라고 하며 실의에 찬 이스라엘 사람들이다.
“너희 마른 뼈들아, 너희는 나 주의 말을 들어라. … 내가 너희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너희가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
이스라엘인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삼라만상을 관장하는 분이 바로 신임을 깨닫는다.
‘생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ruah)’다. 루아흐는 모든 동식물에 깃든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우주의 법이다. 에스겔은 이제 신의 특성인 루아흐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그는 고개를 들어 자신이 바라보는 만물이 바로 보이지 않는 루아흐에 의해 작동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는다. 에스겔은 모든 세대에 말을 걸어 특히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우리에게 한줄기 빛을 보여준다. 바울은 사람은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는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선포한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전, 온 세상은 “혼돈하며 공허하고 어둠이 깊음 위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고 전한다. 신의 첫 행동은 빛을 만들어 어둠을 쫓는 일이었다. 어둠과 밤은 신이 없는 세상을 상징한다. 깊고 짙은 어둠이 지나야 여명이 찾아오듯이, 희망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절망의 과정을 겪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갑작스러운 선물이다. 그런 측면에서 희망은 고통과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